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39) 경사(慶事) <46~50회>

오늘의 쉼터 2014. 7. 2. 15:33

 

금병매 (139)

 

 

경사(慶事) 46회 

 

 

 

 먼저 반금련은 무당에게 자기가 아들을 가질 수 있는지 없는지를 물어보았다.

 

있다는 것이었다. 팔자에 아들이 하나, 딸이 하나라고 했다.

그 말에 반금련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이번에는 지난해에 생리가 한 달 멎었다가

 

다시 있었는데, 그건 무슨 까닭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무당은 잠시 두 눈을 감고 중얼중얼 주문을 외더니,

“동자(童子)가 화가 났었구려. 자리를 제대로 안 해 놓았으니 그럴 수밖에...

맨바닥에 드러누울 수는 없다면서 들어왔다가 나가버렸다니까”

이렇게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반금련은 잘 알 수가 없었다.

“자리를 제대로 안 해 놓다니요?”

“동자를 맞을 채비가 제대로 안되어 있었다 그거지.

저승에서 동자가 이승에 오고 싶어 당신을 택했다구.

그런데 막상 당신 속으로 들어가 보니 제대로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릴만한 텃밭이 못되더라 그거야.

만약 텃밭이 제대로 되어 있었다면 당신은 아들을 낳았을 거라구.

당신을 찾아왔던 게 동자였으니까 말이야”

“어머나, 그래요?”

반금련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아쉬워서 못 견딘다.

그리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그 동자가 또 찾아올까요? 찾아오겠죠, 그지요?”

“글쎄... 당신 하기 나름이지”

“내가 어떻게 해야 되나요?”

“치성을 드려야지. 동자를 부르는 굿을 해야 된다구”

“하지요. 하고말고요. 아들만 낳는다면 무슨 짓이든지 다 하겠어요”

“좋아요. 그래야 돼요. 지성이면 감천이니까”

무당의 얼굴에 흐뭇한 표정이 떠오른다.

그래서 반금련은 그 이튿날 돈을 가지고 집안사람들 아무도 모르게 다시

그 무당을 찾아가 저승 동자를 자기 속에 불러들이는 굿을 꽤나 풍성하게 치렀다.

굿이 끝난 다음 반금련은 미리 정한 비용 외에 수고했다면서 더 얼마를 무당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물었다.

“이제 틀림없이 동자가 찾아오는 거죠?”

“그럼요. 그런데 색시, 찾아오는 것은 틀림없지만,

이번에도 제대로 자리를 못 잡고 돌아가 버릴지 모른다구.

그러니까 당신의 텃밭을 튼튼히 해놓고 기다려야겠어”

“어떻게 하면 텃밭이 튼튼해지는데요?”

 

 

경사(慶事) 47회 

 

 

 

 무당은 잠시 또 두 눈을 감고 자기 신령에게 물어 보는 듯 중얼중얼 주문을 외고 나더니,

“색시에겐 포의(胞衣)가 제일이라는 구려. 포의를 구해가지고 불에 구워서 먹도록 해요”

 




하고 일러 주었다.

“포의가 뭔데요?”

“포의라는 것은 아기가 어미의 뱃속에서 들어앉아 있던 방인 셈이지.

아기를 싸고 있는 막과 태반(胎盤)을 말하는 거라구”

“그걸 구해서 구워 먹는단 말이에요?”

“그렇지”

“어머나”

반금련은 약간 놀란다.

“어제 아들을 낳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다 하겠다고 했었잖수?

그걸 먹어야 색시의 텃밭이 튼튼해진다구.

그렇지 않으면 당신 뱃속으로 들어왔던 동자가

또 뿌리를 못 내리고 지난해처럼 돌아가 버린다구”

“그런 걸 도대체 어디서 구하죠?”

“색시도 참, 돈만 있으면 못 구하는게 어디 있수?

처녀 불알 말고는 다 구할 수 있는 세상인데...”

“호호호...”

“어렵게 사는 사람들 중에서 곧 해산할 여자를 물색해 가지고

돈을 집어주면서 부탁하면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가난에 찌들면 자기 자식도 팔아치우는 판인데...”

그러자 반금련은,

“옳지”

혼자서 속으로 그러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며칠 전에 태어났던 이병아의 아기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 태를 손에 넣으면 되지 않는가 말이다.

반금련은 태를 구해서 구워먹는 일을 절대로 비밀로 하고 싶었다.

아들을 낳기 위해 아기의 태까지 먹었다는 사실이 집안에 알려지면

창피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고, 서문경이 혹시 무슨 소리를 할지도 두려웠다.

그래서 반금련은 무당 집을 나와 귀가하면서 어떻게 이병아의 아기태를

아무도 모르게 손에 넣어 감쪽같이 먹어치울 것인지, 궁리를 해 보았다.

우선 그 태를 어떻게 했는지 그것부터 알아봐야 될 것 같았다.

이미 처리를 해버렸는지, 아니면 아직 보관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태를 처리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반금련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불에 태워 없애버리는 수도 있고, 강물에 던져 흘려보내버리기도 하며,

산에 갖다가 묻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경사(慶事) 48회 

 

 

 

 만약 이병아가 자기 아이의 태를 불에 태워버리거나 강물에 갖다가 던져버렸다면

 

허사지만, 흙에 묻는 방식으로 처리를 했다면 손에 넣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 묻은 장소만 알면 캐내면 되지 않는가 말이다.

그날 밤 반금련은 한집안 식구지만 해산을 한 터이니 맨손으로 갈 수는 없어서

 

아기 옷감을 한 벌 보자기에 싸들고 이병아를 찾아갔다.

 




평소에 늘 어딘지 모르게 시기를 하는 듯 못마땅한 그런 태도로 대해 오던 반금련이

혼자서 찾아오자, 이병아는 의외의 일이다 싶으며 반가이 맞이했다.

“아이구 아들을 낳느라 얼마나 수고했어? 정말 축하해. 아직 얼굴의 부기가 다 안빠졌구먼”

반금련은 침상에 일어나 앉아있는 이병아에게 다가가 한쪽 손까지 잡아보며 진정으로

축하와 위로를 하듯 말한다.

그리고 곁에 누워 잠자고 있는 아기를 들여다보며 호들갑을 떤다.

“어머나, 갓난아기가 벌써 이목구비가 또렷하네. 살결도 어쩌면 이렇게 보오얗지?

 갓난아기는 대게 뻘건데... 아이구 희한해라”

“형님, 좀 앉아요”

이병아는 고맙고 기분이 좋아서 분명한 발음으로 형님이라는 호칭을 쓰며 말한다.

반금련은 의자를 끌어다가 침상 곁에 놓고 궁둥이를 내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묻는다.

“아기가 쉽게 나왔어?”

“쉽게 나오긴요. 저녁 먹고부터 산기가 있더니 글쎄, 첫닭이 운 뒤에야 해산을 했지 뭐예요”

“어머, 고생깨나 했네. 첫 아기지?”

“예”

“그러니까 그렇다구, 첫 아기는 누구나 어렵게 분만을 하지 뭐야”

손위랍시고 반금련은 마치 자기가 분만을 해본 듯이 말한다.

그리고 불쑥 묻는다.

“태는 잘 나왔어? 태가 잘 안나와서 큰 고생을 하는 사람도 있다더라구”

“태는 쉽게 나왔어요”

“그거 참 다행이었구먼”

반금련은 잠시 망설이다가,

“태를 어떻게 처리했어? 태워버리기도 하고,

강물에 던져버리기도 하고, 땅에 묻기도 한다던데...”

그저 얘기삼아 묻는 듯이 말한다.

“아직 그대로 있어요”

“그래?”

속으로 옳지, 됐구나, 싶다.

“그이가 아직 그대로 두라지 뭐예요.

세 이레가 지난 다음에 땅에 묻는다나봐요”

 

 

경사(慶事) 49회 

 

 

 

 “세 이레가 간 다음에? 왜 그럴까?”

“도사가 그렇게 하라더래요. 해마다 신수를 보아주는 도사가 있다면서요?

 

그 도사를 찾아가서 아기의 사주를 보고,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더니,

 

도사 말이 사주가 아주 좋다면서 그대신 이름은 세이레가 지나간 다음에 지어야

 

되겠다고 하더래요.

 

그리고 태도 세 이레를 넘긴 다음에 땅에 묻고요.

 

그래야 아기의 명이 길어진다나요. 그래서 태를 항아리에 담아 두었다구요”

 




“항아리에?”

“예, 도자기 항아리를 그이가 갖다 주더라구요. 뭐 그걸 태호(胎壺)라 그런다나요”

“태호?”

“예, 태를 담는 항아리란 뜻이래요”

“아, 그래? 그거 좀 구경했으면 좋겠는데... 어디다가 두었어?”

“정원의 숲 속에다가 갖다놓았어요.

세 이레 뒤에 묻는다는데, 집안에 놔두면 태가 상해서 냄새가 날 것 같아서요”

“숲 속 어딘데? 놔둔 자리가...”

“숲 속에 들어가면 조그만 바위가 하나 있다구요.

수춘이가 그 바위 위에 갖다 얹어놓았대요”

“어디 한 번 가볼까”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반금련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하하...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이 밤중에... 내일 낮에 가봐도 되잖아요”

“아니야, 태호가 도대체 뭔지 신기해서 당장 보고 싶다구. 등불을 들고 가보지 뭐”

“내가 같이 나갔으면 좋겠는데, 아직 몸이...”

“아이구 안되지. 자네는 찬바람을 쐬면 안된다구”

“수춘이하고 같이 가 봐요”

“응, 그러지”

이병아는 수춘이를 불러서 등불을 들고 반금련 마님을 숲 속의 태호 놓아둔 곳으로

안내해 드리라고 이른다.

반금련은 등불을 든 수춘이의 뒤를 따라 숲 속 오솔길을 걸어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조그마한 바위 위에 방방한 항아리가 한개 얹혀있는 게 불빛에 비쳤다.

“어머나, 하하하”

반금련은 절로 웃음이 나온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뚜껑이 있는 예쁘장한 항아리였다.

등불에 비쳐서 확실한 색깔은 알 수가 없으나, 청록색인 듯했다.

“이 속에 태가 들었구먼”

하면서 반금련은 그 뚜껑을 열어본다.

 

 

경사(慶事) 50회 

 

 

 

 수춘이가 등불을 바짝 항아리 아가리에 갖다대어 비추어 주는데 보니,

 

안에 얼룩덜룩 자국이 진 희끄무레한 보자기 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태를 베어다가 싸서 넣어둔 것이었다.

 

얼룩덜룩한 자국은 피가 묻어서 그런 것 같았다.

반금련은 절로 찔끔 고개가 움츠러든다.

 




“태를 베에 싸서 넣어두었구먼”

“예”

“땅에 묻을 때 꺼내어 묻는 모양이지?”

“아니요”

“아니라니, 그럼?”

“주인어른이 그러시는데, 이 항아리째로 묻는대요”

“아, 그래? 그럼 이 항아리가 말하자면 관인 셈이구먼. 태의...”

“그렇죠”

반금련은 고개를 끄덕이며 뚜껑을 닫는다.

그리고 방방하고 예쁘게 생긴 그 태호를 손으로 한번 어루만지고는,

“아이 추워. 됐어. 가자구” 하면서 자기가 앞장을 선다.

이튿날 밤, 반금련은 집안에 불이 죄다 꺼지고 모두 잠든 삼경이 지난 시각에

살그머니 밖으로 나가 그림자처럼 그 태호가 놓여있는 숲을 찾아갔다.

한 쪽 손에는 허연 보자기를 하나 들고 있었다.

돼지 창자를 흰 베로 싼 것이었다. 얼룩덜룩 돼지 피까지 묻어 있었다.

낮에 저자거리에 나가서 돼지

창자를 사다가 아무도 모르게 마치 아기의 태인 것처럼 그렇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하늘 한쪽에 이지러진 달이 얼어붙은 듯 싸늘하게 걸려있었다.

희미하기는 했지만 달빛이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들 사이로 흘러들어서

숲 속은 등불이 없어도 앞을 분간할 만은 했다.

태호는 어젯밤처럼 바위 위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반금련은 무의식중에 사방을 한번 휘둘러본다.

그리고 태호의 뚜껑을 연다. 얼른 한손을 집어넣어 안에 들어있는 것을

들어낸 다음 자기가 가지고 온 것을 대신 집어넣는다.

그리고 뚜껑을 닫아버린다.

감쪽같이 바꿔치기를 마친 반금련은 꺼덕꺼덕 얼어있는 태보자기를

재빨리 치맛폭으로 감싸듯이 하고는 후닥닥 그 자리를 떠나

발자국 소리를 죽여 가며 잰걸음으로 자기 거처로 돌아간다.

하늘에 얼어붙은 달만이 멀뚱히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거실로 돌아온 반금련은 그 태 보자기를 탁자위에 놓고는 잠시 의자에

기대앉아 숨결을 가다듬는다.

어찌나 긴장이 되었던지 온몸이 나른해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