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42) 제17장 불륜(不倫) <1~5회>

오늘의 쉼터 2014. 7. 2. 16:04

금병매 (142) 제17장

 

 

불륜(不倫) 1회 

 

 

 

 어느 날 저녁 무렵에 응백작이 혼자서 찾아왔다.

 

서문경은 그와 단둘이 술자리에 마주앉았다.

응백작은 서문구걸중의 한 사람으로 서문경과는 남달리 친한 사이였다.

 

서문경은 부전옥이 된 뒤로도 친구들과의 우정은 그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고,

 

오히려 감투를 쓴 장형(長兄)답게 더 호탕하고 후하게 대했다.

 




“오늘 자네에게 한가지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네”

응백작이 술잔을 서문경에게 권하면서 말한다.

그 잔을 받으며 서문경은,

“부탁이라니 뭔데? 자네 부탁을 내가 안 들어줄 수 있나”

대뜸 승낙부터 한다. 후한 태도를 내보이는 셈이다.

“고맙네. 부탁이란 다름 아니라, 저... 내 고종 사촌형이 요즘 놀고 있거든.

어떻게 일자리를하나 마련해 줄 수 없을까 해서...”

“그래? 그거야 뭐 어려운 일이겠나. 그런데 그 고종사촌형이 뭘 하던 사람인데?”

“장사를 했지”

“무슨 장사?”

“주로 생사(生絲)를 이곳 저곳 다니면서 사다가 파는 장사를 했는데...”

“아, 그럼 한도국(韓道國)이 아닌가?”

“맞다구. 어떻게 알지?”

“내가 이바닥에서 모르는 사람이 있나. 생사 상인은 한도둑이 말고는 없거든.

한도국이가 자네 고종 사촌 형이었구먼”

서문경은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도국이 형하고 잘 아는 사인가”

“그건 아닐세. 그저 말만 들었지. 사람이 꽤 착실하다 그러던데, 맞는가?”

“맞지. 꽤나 아니라, 아주 착실한 사람이지.

뭐라 그럴까, 너무 정직하다 그럴까...

그래서 이번에 어떤 놈에게 사기를 당해서 장사 밑천을 다 날려버렸다지 뭔가”

“허허허... 장사하는 사람은 정직해서는 안된다구.

날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도 안 되고, 얼렁뚱땅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 된다니까”

“맞아, 그런 것 같더라구”

“좋아, 그럼 말이야 당장 내가 쓰도록 하지.

우리 전당포를 맡아서 운영해 주었으면 좋겠다구”

“그래? 그런 일이면 아주 적격이지.

 꼼꼼하고 정직하니까 혼자 맡겨둬도 안심이라구.

그런데 진경제는 어떻게 하고? 전당포를 진경제가 맡아 하고 있잖아”

“진경제는 곧 동경으로 올라 간다구.

그러잖아도 사람을 하나 구하려던 참인데, 잘됐지 뭐야”

 

 

불륜(不倫) 2회 

 

 

 

 백지 사령서를 가지고 마음대로 누구에게나 감투를 씌어줄 수 있는 그런 권세를

 

손아귀에 쥐게 된 양태사가 자기 사위를 그대로 청하현에 내버려둘 까닭이 없었다.

 

동경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동경에서 벼슬자리에 앉히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진경제는 곧 아내인 양교랑을 데리고 그동안 신세졌던 서문경의 곁을 떠나

 

동경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서문경은 당장 내일부터 한도국을 자기네 전당포에서 일할 수 있도록 보내라고

응백작에게 일렀고, 응백작은 그날밤 고종사촌 형인 한도국을 찾아가 그 말을 전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서문경이 등청(登廳)을 하기 전에 한도국은 서문경을 찾아왔다.

작달만한 키에 곧 잘 생글생글 웃는 얼굴의 서른댓 되어 보이는 사내였다.

말도 나불나불 잘 지껄였다.

자기에게 전당포 일을 맡겨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필요 이상 고개를 굽실 거려 가며

늘어놓았던 것이었다.

마치 나긋나긋한 여자 같은 사내였다.

어젯밤에 응백작이 말했던 것처럼 아주 착실하고 너무 정직한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어쨌든 그를 처음 대하는 서문경은 첫 인상부터가 마음에 들었다.

곧 진경제를 불러 두 사람을 서로 인사 시키고 나서 서문경은 진경제에게 일렀다.

“진서방, 자네 동경으로 떠날 때까지 이 사람에게 전당포 일을 인계하도록 하게.

오늘부터 우리 전당포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경영 방식을 잘 가르쳐 주기도 하고...”


“예, 알겠습니다.”

그러자 한도국은 재빨리 진경제에게도 고개를 굽실거리면서 나불나불 지껄인다.

“전당포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습니다.

아무쪼록 잘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부탁드립니다.”

“염려 마시오. 잘 가르쳐 드릴 테니... 전당포 일이란 뭐 그다지 어려운 게 없으니까,

당신 같은 분은 하루 이틀이면 익숙하게 될 거요”

“아이구 별말씀을...”

“정말이오”

두 사람의 주고받는 말을 들으며 서문경은 싱그레 웃음을 떠올린다.

자기도 진경제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한도국이 하루 이틀이면 전당포 일에

익숙해질 것 같았던 것이다.

사람이 좀 경박해 보이기는 하지만, 회전이 빠를 것 같고,

손님들에게 더없이 친절할 것 같아 전당포라는 질물(質物)장사를 해나가는 데에

안성맞춤이라 싶었다.

그날부터 근무를 시작한 한도국은 아닌 게 아니라 이삼일 후에는

이미 전당포 일에 이골이 난 사람 같았다.

 

 

불륜(不倫) 3회 

 

 

 

 어느 날 한도국이 전당포 일을 마치고 해질 무렵에

 

우피가(牛皮街)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니 뜻밖에도 동생 한이(韓二)가 와 있었다.

“아이구, 자네가 왔구나, 휴가를 왔느냐?”

 




무척 반가운 듯 한도국이 묻자 한이는,

“휴가가 아니라 이번에 병복을 벗고 돌아 왔어요” 하고 대답한다.

“아, 그래? 잘했다”

“형님, 그동안 고생이 많았지요?”

“우리야 무슨 고생... 네가 고생이 많았지. 보자... 병정(兵丁)에 나간지 몇 년만이지?”

"육년만이죠. 내가 스무 살 되던 해에 병정에 나갔거던요“

“그랬었나? 벌써 육년이 지났구나. 참 세월 빠르다”

“형님은 빠른지 몰라도 난 지겨워서 혼났다구요”

“그래? 허허허...”

웃고 나서 한도국은 주방 쪽을 향해 큰소리로 이른다.

“여보, 한이가 돌아왔는데 오늘 저녁은 특별히 좀 잘 차리구려.

오래간만에 같이 술도 한잔 하도록 준비하고...”

“예, 염려 마시라구요. 지금 준비하고 있어요”

주방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한도국의 아내 왕육아(王六兒)의 목소리다.

그 음성에 진정이 배어있는 듯 억양이 부드럽고 밝다.

육년만에 병복을 벗고 고향에 돌아온 한이는 마냥 기분이 좋은 듯

절로 싱그레 웃음이 얼굴에 번진다.

그때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시장에 갔던 애저가 손에 보자기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아버지, 특급주를 한 병 사왔다구요”

“특급주를?”

한도국은 약간 놀라는 표정이다.

자기네 형편에 특급주라니 과분하다 싶은 것이다.

“예, 어머니가 사오라고 그랬어요.

삼촌이 오래간만에 돌아오셨으니 특급주를 대접해야지요”

“그래그래, 잘했다”

주방으로 들어가는 애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이는 대견하다는 듯 말한다.

“형님, 곧 사위를 봐야겠어요. 애저가 벌써 저렇게 컸다니... 처녀티가 줄줄 흐르는데요”

“키만 멀쑥하게 컸지, 아직 어린애라구”

“지금 몇 살이죠?”
“열다섯이지”

“벌써 그렇게 됐나요? 하기야 내가 육 년만에 집에 돌아왔으니까.

내가 집을 떠날 때는 아직 코흘리개였었는데...”

 

 

불륜(不倫) 4회 

 

 

 

 잠시 후, 애저가 주방에서 얼굴을 내밀며,

“식사 준비 다 됐어요. 오셔서 드시라구요” 하고 말한다.

 




한도국과 한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간다.

한쪽 가에 놓인 식탁에 가서 앉으며 한이는 형수인 왕육아에게 말한다.

“형수씨도 어서 이리 오세요. 같이 들게...”

“예, 어서 들어요. 시장할텐데...”

왕육아는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다가온다.

왕육아는 도살업에 종사하는 왕도의 누이동생이었다.

열일곱살 때 한도국과 결혼하여 이듬해 애저를 낳았다.

그러니까 그녀는 지금 서른 두 살이었다.

한도국이 키가 작고 몸집도 갸날픈 데 비해서 왕육아는

훨씬하게 큰 키에 늘씬한 몸매일 뿐 아니라,

쌍꺼풀에 속눈썹이 긴 서글서글한 눈을 가진 미녀였다.

살결은 약간 검은 편이지만,

그래서 더 남자를 끌어당기는 야릇한 매력이 풍기는 그런 여자였다.

미끈하게 잘 생긴 암 생마같다고나 할까.

한도국이 왕육아를 아내로 맞아들여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을 무렵,

곧잘 친구들이 “방아깨비의 등에 올라타 꽁무니를 맞추고 있는

조그맣고 빼빼 마른 수 방아깨비에 빗대어서 하는 말이었다.

겉으로 보기뿐 아니라,

마음 쓰는 것도 왕육아는 여자로서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녀가 시집 왔을 때 시동생인 한이는 열한 살이었는데,

이만저만한 말썽꾸러기가 아니었다.

걸핏하면 이웃 아이들과 싸워서 상처가 나 피를 흐리며 집으로 기어들기 일쑤였고,

곧잘 남의 물건을 훔쳐오기도 하는 손버릇 나쁜 아이였다.

그런 아이를 그녀는 마치 자기의 어린 친동생처럼 나무라고 타이르고 다독거려가며

뒤치닥꺼리를 했다.

그러나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한이는 나이가 들자 이번에는 술과 도박에 빠져서 속을 썩였다.

열아홉이 되던 해 한이는 도박판에서 대판 싸움을 벌여 노름꾼 하나를 칼로 찌르는

불상사를 일으켰다.

용케 그 노름꾼이 죽지는 않았으나, 한이는 붙들려 옥에 갇히는 몸이 되었다.

일년을 옥살이를 하고 집에 돌아온 한이를 형인 한도국은 이제 꼴도 보기 싫다고,

내 앞에서 썩 꺼지라고 고래고래 악을 쓰며 내쫓으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을 만류하고, 시동생을 감싸서 다시 집에 들어앉혔다.

 

 

불륜(不倫) 5회 

 

 

 

 형수 덕분에 집안에 들어앉기는 했으나, 한이는 앞날이 막막했다.

 

실의에 빠져서 방구석에 늘어져 누워있기가 일쑤였는데,

 

그런 시동생을 왕육아는 안되겠다 싶어서 간곡히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도련님의 앞날을 위해서 부디 병정에 나갔다가 오는 게 좋겠다는 권유였다.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병복을 입을 길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한이는 처음엔 들은 척도 안했다.

 

병정에 나간다는 것은 곧 고생길로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진데

 

어떤 놈이 어리석게 제 발로 걸어들어 가겠느냐고, 형수가 자꾸 권하는 것이

 

 자기를 집안에서 쫓아내려는 수작인가보다 싶어서 못마땅하기만 했다.

 

그래서 한번은 대놓고 반발을 했다.

 




“나를 집에서 쫓아내겠다 이거죠? 내가 형수의 속셈을 모를 줄 알아요?

차라리 형님처럼 고래고래 욕을 하며 집을 나가라고 하는 편이 솔직해서 낫다구요.

엉큼한 그런 수작에 내가 속아 넘어갈 것 같애요? 어림도 없다구요”

그 말에 왕육아는 콱 목이 메어오는 것을 어쩌지 못해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도련님, 도련님이 나를 그런 여자로 생각한다면 나는 정말 억울하고 분해요.

어쩌면 그렇게도 남의 속을 몰라주나요.

병정에 안 나가도 좋으니, 부디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내가 도련님에게 병정에 나가라는 것은 집에서 내쫓고 싶어서가 아니라,

병정에 나갔다가 오면 사람이 달라질 것 같애서 그러는 거예요.

병정에 나갔다 돌아온 사람들을 보니까 모두가 몸도 튼튼해 보이고,

정신도 똑바로 박힌 것 같더라구요. 건달처럼 건들거리던 사람도 병정에 갔다 와서는

정신을 차리고 일자리도 구하고 장가도 들어서 아들딸 낳고 잘 살게 되더라 그거예요.

도련님도 그래야 될 거 아니겠어요?

도련님의 앞날을 위해서 권하는 것이지,

집에서 내쫓고 싶어서 그러겠어요?

난 그렇게 나쁜 여자는 아니라구요.

도련님 잘 되라고 하는 소린데. 그렇게 오해를 하다니...”

말끝을 흐리는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고여 올랐다.

그리고 그만 그 눈물이 주르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한이는 말없이 형수의 볼에 흐르는 두 줄기 눈물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튿날 아침, 한이는 식사를 하면서 불쑥 형에게 말했다.


“형님, 나 병정에 나갈까 해요”

그 말에 한도국은 귀가 번쩍 뜨이는 듯,

“뭐라구? 병정에 나가?”

“두 눈이 휘둥그레지기까지 했다.

왕육아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으나,

놀라움과 기쁨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