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136)
경사(慶事) 31회
그러나 오월랑은 당장 옥소에게 반금련을 불러오도록 이르지는 않았다.
반금련을 꾸짖는 일은 성급하게 서둘 일이 아니다 싶었던 것이다.
서문경이 밖에 나가고 없을 때 일을 벌이는 게 옳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선 옥소에게 주인어른이 지금 집에 있는지, 출타를 했는지
그것을 알아보고 오도록 시켰다.
가보고 온 옥소의 말이 출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월랑은 오늘 네가 할 일은 주인어른이 출타를 하는지 어떤지,
그것을 살펴서 출타를 하면 즉시 알리는 일이라고 분부를 내렸다.
그날 해질 무렵에야 서문경이 의관을 갖추고서 혼자 말을 타고 집을 나섰다는
옥소의 기별이 있었다.
오래간만에 기방에 가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그제야 오월랑은 옥소에게 다섯 마님을
모두 내 방에 모이도록 가서 전하라고 일렀다.
반금련만 불러서 일대일로 나무랄게 아니라 여섯이 다 모인 자리에서 담판을 하듯이
해야 단단히 창피를 줄 수가 있고 속이 시원할 것 같았던 것이다.
곧 다섯 부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모여들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모두 궁금한 표정들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자,
오월랑은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대뜸 본론을 끄집어냈다.
“얘기를 들으니 어젯밤에 비취헌에서 춘매가 발가벗은 채 울고불고 야단이 났었다는 데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이지? 어디 자네 얘기를 해보라구”
반금련을 턱으로 가리키자,
다른 부인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집중된다.
반금련은 난데없이 한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며 얼른 입을 열질 못한다.
“자네는 당사자니까 어떻게 된 일인지 알거 아냐.
처음부터 자세히 좀 얘길 해봐. 왜 춘매가 발가벗고 거기 같이 있었지?”
싹 가셨던 핏기가 이번에는 거꾸로 치솟아 오르는 듯
얼굴이 벌겋게 물들어서 반금련은 볼멘소리로 불쑥 내뱉는다.
“그이가 불러들였다구요”
“뭐, 그이가 불러들여?”
“그래요. 왜 별안간 이렇게 모두 모여 놓고서 그런 얘기를 꺼내는 거죠?”
맞서려는 태도가 역력하다.
“뭣이 어째? 그런 얘기를 꺼낸다구? 왜 못 꺼내지?
이제 보니까 이것이 간뎅이가 부었어. 누구한테 감히 대드는 거야. 앙?”
오월랑은 발칵 고함을 내지르고 만다.
다른 부인들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른다.
두 번째인 이교아가 반금련을 향해 입을 연다.
“자네, 그러는 게 아니라구. 맏형님한테 그 말투가 뭐야.
우리도 듣기가 거북하다구.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을 해야지”
경사(慶事) 32회
그러자 다른 부인들도 그 말이 옳다는 듯이 한마디씩 수군거린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는 듯 가만히 앉아있던 반금련은 현저히 수그러진 태도로 입을 연다.
“어젯밤에 춘매가 운 것은 내가 나무랐기 때문이라구요.
글쎄 그것이 뭐라 그러는가 하면, 저도 아이를 배겠다는거지 뭐예요.
그런 말을 하는데 가만히 둘 수가 있나요”
“춘매 그것도 불러다가 혼을 내줄 작정이라구.
전번에 그렇게 매를 맞았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또 그런 소리를 하다니...
그런데 말이야, 춘매도 춘매지만, 자네가 더 나쁘다구.
몸종하고 같이 발가벗고 놀아나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가지고 어떻게 마님으로서 위신이 서느냐 그거야. 그런 식으로 놀아나니까,
몸종의 입에서 아이를 배겠다는 말까지 나오는 거 아니냔 말이야”
오월랑의 말에 반금련은 또 대거리를 하듯 말한다.
“내가 그렇게 놀아나고 싶어서 놀아나나요.
다 그이가 그렇게 하자고 하니까 마지못해 그러는 거지요”
“아무리 그이가 그러자고 하더라도 몸종하고 같이 그러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자네가 마다하면 될거 아냐”
“.......”
“도대체 한 남자에 두 여자가 달라붙어서 뭘 어떻게 한다는 거야?
짐승도 그렇게는 안하잖아.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어떻게 하는지 좀 봤으면 좋겠어”
그 말에 그만 다른 부인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반금련은 귀 밑까지 발그레 물든다.
수치심이 극에 달한 그녀는 도저히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는 듯 발딱 일어난다.
그리고,
“사람을 놀리는 거예요, 뭐예요?”
한마디 내뱉고는 후닥닥 거실을 나가버린다.
문 밖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방안의 다섯 부인들이 까르르 웃어제낀다.
오월랑은 흡족했다.
정중한 사과와 앞으로의 다짐을 받지 못하고,
제 발로 뛰쳐나가도록 한 게 좀 아쉽기는 했으나,
어쨌든 반금련에게 더없는 수모를 안겨준 것 같았고,
앞으로는 그런 망측한 짓을 다시는 안하리라 싶었다.
다음은 춘매였다.
옥소에게 춘매를 데리고 오도록 일렀다.
다른 네 부인들도 자리를 뜰 생각을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눌러앉아 있었다.
모두 속으로는 은근히 통쾌했고, 재미도 있었던 것이다.
곧 옥소의 뒤를 따라 춘매가 거실로 들어섰다.
춘매는 이미 낌새를 짐작하고 있는 듯 얼굴이 새하얗게 굳어져 있었다.
경사(慶事) 33회
오월랑을 비롯한 다섯 부인이 앉아있는 그 앞에 서자,
춘매는 절로 그만 고개가 살짝 떨구어진다.
오월랑이 대뜸 호통을 친다.
“이년, 꿇어 앉아!”
춘매는 아직 확실한 영문을 모르면서도 마치 무슨 큰 과오라도 범하고 불려온 사람처럼
핏기가 싹 가신 얼굴을 하고 얼른 그 자리에 두 무릎을 꿇는다.
“너 이년, 왜 내가 불렀는지 알겠느냐?”
대답이 없다.
“모른단 말이냐?”
“예”
“네 잘못을 네가 모르면 누가 알지? 응?
춘매는 두려움이 가득 담긴 눈으로 오월랑 마님을 힐끗 보고는 시선을 내리깐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벌써 잊어버리지는 않았겠지? 비취헌에 네가 뭘 하러 갔었어?”
“...”
“아니, 이년이 별안간 벙어리가 됐나, 왜 대답이 없지.
전번처럼 매 맛을 좀 봐야 정신을 차릴 모양인가. 오냐, 좋아”
그러면서 오월랑은 매를 가지러 가려는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이고, 마님요. 말씀드릴께요.”
“어서 말해”
오월랑은 도로 앉는다.
“저... 구경을 하러 갔습니다.”
“무슨 구경?”
“마님이 주인어른하고 함께 목욕하시는 구경요.
낮에 비취헌에 큰 목욕통을 새로 만들어놓은 걸 봤기 때문에 호기심에...”
“밖에서 엿보았다 그거군. 맞지?”
“예”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너 이년, 종년이 주인어른과 마님이 같이 목욕하는 걸 몰래 엿보다니,
그런 못된 짓을 어디서 배웠어? 앙?”
“마님, 잘못했습니다요.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께요. 정말입니다.”
전번에 호되게 매질을 당해서 오월랑 큰마님이 전과 달리 화를 내면 사정없다는 것을 안 터이라,
춘매는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빈다.
“한번만 더 그따위 못된 짓을 하다가는... 알지?”
“예”
“그래 밖에서 엿보다가 너도 뛰어 들어가 같이 목욕을 했다 그거야”
“아니에요. 주인어른이 들어오라고 해서...”
“이년아, 주인어른이 들어오란다고 아무데나 함부로 뛰어 들어가는 거야?
종년이 제 분수를 알아야지”
경사(慶事) 34회
반금련이 했던 말과 틀리지가 않고, 또 그 대목을 너무 추궁하여 서이서 즐긴 일까지
들먹여 꾸짖다가는 남편도 싸잡아 욕되게 하는 셈이어서 오월랑은 그 정도로 넘기고,
말하자면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건 그렇고, 네가 아이를 배겠다는 말을 했다면서?”
“...”
“또 대답이 없네. 어서 정직하게 대답을 해. 그렇지 않으면...”
“예, 마님, 대답을 할게요. 저... 아이를 배겠다고 말한게 아니라,
배도 되겠느냐고 주인어른한테 물어봤을 뿐입니다.”
“이년아, 물어봤을 뿐이라니, 그럼 잘못하지 않았다 그거야?”
“그게 아니라...”
“네가 이년아, 뭔데 아이를 배도되느냐고 물어보느냐 말이야. 네가 뭐지?”
대답할 말이 없어서 춘매는 또 고개를 떨구어 버린다.
“이년이 이제 보니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니까.
전번에 그렇게 매질을 당하고서도... 이년아,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는 거나,
일곱 번째 부인이 되겠다고 마음먹는 거나 뭐가 다르니? 결국 마찬가지 아니고 뭐야”
“아닙니다요. 마님, 그게 아니라, 마님들께서 누가 아들을 낳는가 경쟁을 시작했잖아요.
그 술자리에서 시중을 들면서 무척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도 아들을 낳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래서 한번 장난삼아 물어봤을 분이에요. 정말이에요.”
“장난삼아 물어봤다고? 이 시건방진 년아, 그런 일을 장난삼아 입 밖에 낼 수가 있는 거야?”
그러자 그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다른 네 부인들의 표정이 심히 이지러진다.
같잖고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뭐 저런 게 다 있어”
“나 참 기가 막혀서...”
“저게 우리를 얕잡아보는 거 아냐?”
이렇게 중얼거리기도 한다.
손설아가 정색을 하고서 오월랑에게 부추기듯 말한다.
“저년이 건방지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구요. 가만히 놔둬서는 안되겠어요.
버르장머리를 고치게 단단히 좀 혼을 내주시라구요”
춘매에 대해 손설아는 해묵은 감정이 있는 것이다.
몇 해 전 반금련과 싸우고, 그 때문에 서문경의 노여움을 사서 집안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곤장을 맞았던 그 치욕적인 일이 바로 춘매의 시건방진 태도가 발단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그 설욕을 하려는 셈이다.
경사(慶事) 35회
손설아의 그런 심정을 이해하는 터이라,
오월랑은 잠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생각하다가 그녀를 향해 불쑥 입을 연다.
“그럼 말이야, 자네에게 맡기겠네. 전번엔 내가 매질을 했으니,
이번에는 자네가 알아서 저년을 단단히 혼을 내주라구. 지금 여기서 말이야”
그리고 다른 부인들을 둘러보며,
“그게 좋겠지?” 하고 동의를 구한다.
모두 좋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구경거리가 생겨 재미있는 듯한 그런 표정들이다.
손설아는 뜻밖에 춘매를 혼내주는 일이 자기에게 넘겨지자 약간 당황하는 기색이더니,
곧 위아래 입술을 발끈 다물며 눈을 대고 깜작거린다.
어떤 식으로 혼을 내주는게 좋을지 잠시 생각해 보는 듯하다.
자세까지 빳빳하게 고쳐 앉으며, 춘매를 향해 말한다.
“춘매 너 잘 들어. 너를 혼내주라는 분부가 큰마님으로부터 나한테 내려졌다구.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은 곧 큰마님의 말과 마찬가지라구. 알겠지?”
“예”
춘매는 겁에 질린 듯한, 그러면서도 약간은 만만하게 여기는 것 같은 그런 눈길로
손설아를 힐끗 바라본다.
“내가 하라는대로 해야 돼. 만약 안 들으면 그때는 용서 없다구”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나서 손설아는 명령을 내린다.
“일어섯”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춘매가 부스스 일어선다.
“옷을 벗어”
춘매는 당황한다.
다른 부인들도 매우 뜻밖이라는 그런 표정이다.
눈이 휘둥그래지는 부인도 있다.
“어서 벗어. 위아래 다 벗으라구”
목소리가 매섭다.
춘매는 거의 울상이 되어 가지고 오월랑을 비롯한 다른 마님들을 바라본다.
이럴 수가 있느냐고, 구원을 요청하는 그런 눈길이다.
“시키는대로 하라구”
오월랑 역시 매정하게 내뱉는다.
한가닥 기대가 허물어지자,
춘매는 체념하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옷을 벗기 시작한다.
윗옷을 벗어내고, 좀 망설이듯 하더니 아래 옷을 벗는다.
그러나 아직 위아래에 엷은 내의가 남아있다.
내의도 다 벗으란 말이냐는 그런 눈길로 손설아를 바라본다.
“다 벗어”
“어머나, 너무 하잖아요“
춘매는 볼멘소리를 내뱉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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