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133)
경사(慶事) 16회
"그러나 내가 왜 당신을 그처럼 미워하게 됐는지 알지?"
"..."
"반금련이하고 싸울 때 당신이 한말이 있잖아. 모르겠어?"
손설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떨어뜨려 버린다.
잊어버렸을 턱이 없다.
남편을 독살한 년이라고 내뱉지 않았던가.
서문경은 표정이 굳어들며 방금 사과의 말을 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그런 어조로 추궁을 하듯이 말한다.
짚고 넘어갈 일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되겠다는 듯이.
"왜 대답이 없지? 잊어버렸단 말인가? 그렇게 고개를 떨구고만 있지 말고, 말을 해보라구"
그러자 손설아는 고개를 들고 서문경의 표정을 힐끗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연다.
"글쎄요, 무슨 말을 했었는지 잘 생각이 안나는데요"
"그래? 좋아, 그럼 내가 다시 물어보지. 반금련의 전남편 무대가 말이야,
행상을 하던 그 난쟁이가 죽었잖아.
그래서 내가 반금련을 다섯째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그 무대가 왜 죽었지?
죽은 원인이 뭐냐 말이야"
손설아는 좀 망설이다가 분명한 어조로 대답한다.
"병으로 죽었죠 뭐. 다들 그렇게 알고 있는데요"
"그렇다구. 내가 알기로도 분명히 병으로 죽었다구.
그런데 당신은 반금련하고 싸울 때 엉뚱한 말을 했었잖아"
"싸울 때는 감정이 복받칠대로 복받쳐서 무슨 말을 못하겠어요"
"그래서 남편을 독살한 년이라고 했었나?"
"제가 그런 말까지 했었나요? 잘 생각이 안 나는데요.
만약 제가 그런 말을 했었다면 큰 잘못이지요.
확실한 것도 모르면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으니 말이에요"
"그래서 그때 곤장을 맞았었잖아"
"맞아요. 생각나고 말고요.
정말 그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구요.
아무리 화가 나도 혓바닥을 함부로 놀리는 게 아니라는 걸
뼈아프게 느꼈지 뭐예요"
"음-"
서문경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한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만약 반금련이 자기 남편을 독살한 그런 무서운 여자라면
이 서문경이가 아내로 삼겠어. 안 그래?"
"그렇고 말고요"
손설아는 진정으로 그렇다는 듯이 고개까지 끄덕여 보인다.
"그래서 내가 그때 당신을 단단히 미워하게 되어 지금까지 멀리했던 거라구.
이제 다 지나간 일이니 잊어버리고 자, 술이나 들자구"
"예"
활짝 밝은 얼굴로 손설아도 술잔을 들어올린다.
경사(慶事) 17회
잠시 후 그들은 침실로 갔다.
손설아의 침실에 몇 해만에 들어선 서문경은 마치 즐겁게 뒹굴던
옛 보금자리를 찾아온 듯 꽤나 감회가 야릇했다. 절로 입에서,
“미안하게 됐군. 여기서 당신이 독수공방을 하며 매일 밤 나를 원망했을 거 아냐”
이런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다 지나간 일이잖아요. 그런 소리 마시고 자, 어서 벗으세요. 제가 벗겨 드릴까요?”
“그래, 벗겨 달라구”
서문경은 침상 곁으로 가서 가만히 멈추어 선다.
손설아가 다가서서 윗도리부터 벗겨낸다.
서문경의 널따란 앞가슴이 드러나자 손설아는 그만 한쪽 볼을 그 가슴패기에다 대고 문지른다.
못 견디게 그리웠던 낭군의 몸뚱이라는 듯이 말이다.
그러고 나서 아랫도리를 벗긴다.
이미 서문경의 욕망은 불끈 뜨거워져 있었다.
손설아는 이번에는 서슴없이 입술을 가져간다.
“음-”
서문경은 지그시 두 눈을 감는다.
그리고 피리를 불고 있는 그녀의 머리를 손으로 슬슬 어루만진다.
잠시 후 입술을 떼자 서문경은 그녀를 일으켜 세워놓고 이번에는 자기가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한다.
여름철이라 입은 옷이 간단해서 곧 그녀는 하얀 알몸뚱이가 되고 만다.
서서 알몸과 알몸이 휘감긴다.
입술과 입술이 마주치고 입술과 유방을, 배를, 그리고 그 밑으로 애무해 내려간다.
“어머나 아으-”
손설아의 입에서 참으로 오래간만에 교성이 흘러나온다.
꼬박 일년이 넘었다.
내왕이가 한밤중에 은밀히 찾아와서 독수공방의 외로움을 한껏 달래주던
그 일이 있은 지가 말이다.
아랫도리까지 애무를 마친 서문경은 손설아를 번쩍 들어다가 침상 위에 눕힌다.
그리고 얼른 자기도 침상위로 올라가고 곧바로 그녀의 알몸 위에 무너진다.
벌겋게 달아오른 욕망을 견딜 수가 없는 모양이다.
살 속이 매우 온기(溫氣)가 있다는 것을 느끼며 서문경은 그녀의 귀에다 대고 속삭인다.
“좋은데... 벌써 삼년이 넘었나? 독수공방을 한지가”
“그럼요”
“삼년동안 한번도 건드리질 않아서 그런지 아주 좋다구. 흡사 숫처녀 같다니까”
“호호호...”
손설아는 웃음이 나온다. 속으로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든다.
중간에 한동안 외간남자가 건드린 터이니 말이다.
경사(慶事) 18회
서문경이 일으키는 물결이 여느 때보다 한결 길었다.
찰싹찰싹 잔잔한 물결로 끌고 가다가 별안간 출럴출렁 거칠게 파고(波高)를 높였고,
그러다가는 철썩철썩 좀 기세를 누그러뜨리곤 했다.
따라서 손설아의 교성도 그 강도를 높였다가는 부드럽게 잦아들기도 하는
그런 파류상(波流狀)을 이루어 나갔다.
그러면서 손설아는 여러 차례 절정을 넘어서는 듯 자지러지며 바르르 떨곤 했다.
서문경이 그처럼 물결을 일부러 길게 끄는 까닭은 삼년이 넘도록 독수공방을 시킨데 대한
미안함 때문이기도 했고 그녀의 온기가 묘하게 감칠맛이 있어서 쉬 끝내고 싶지가 않기도
했던 것이다.
그전에도 손설아의 살이 이처럼 좋았던가 하고 서문경은 돌이켜 생각해 보며,
이렇게 감촉이 좋은 여자를 나 몰라라 하고 돌아보지도 않았다니 후회스럽기도 했다.
“여보, 당신 기가 막히다구”
계속 서서히 물결을 일으키면서 서문경이 속삭인다.
“어머, 그래요?”
손설아의 목소리가 약간 비음(鼻音)이다.
벌써 서너 번 절정을 넘은 터이라 몸이 나른하기도 하고,
정신이 몽롱하기도 한 모양이다.
“이런 좋은 몸을 가지고서 삼년이 넘도록 독수공방을 하다니...
나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정말 내가 너무했군”
“호호호...”
“말이 삼년이지. 보자...삼년이면 천일(千一)이 넘잖아. 천 날밤을 넘게 혼자서 지내다니...”
“호호호...”
손설아는 그저 웃기만 한다.
중간에 한동안 내왕이와 사랑에 빠진 일이 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앞으로 내가 당신을 각별히 위해 줄게”
“어머, 좋아라”
“그리고 말이야 정말 아들만 하나 낳으라구.
그러면 그때는 당신이 우리집안의 여왕 격이 될 터이니”
“기어이 아들을 낳을 거예요. 두고 보세요. 하나만 낳는 게 아니라,
줄줄이 셋은 낳아야죠. 그래야 큰소릴 칠 수 있을 거 아니겠어요”
“허허허... 정말로 그렇게만 하라구”
여자가 좀 허황한 것 같아서 약간 어이가 없으면서도 서문경은 기분이 좋아
그녀의 허리를 바싹 힘주어 당겨 안으며 거세게 물결을 일으켜 댄다.
그리고 잠시 후,
“으으음-”
냅다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뜨거운 씨앗을 그녀의 살 속 깊숙이 뿌려 넣는다.
부디 아들의 싹을 틔우라는 듯이 온통 몸부림까지 쳐대면서...
경사(慶事) 19회
여섯 아내들 가운데서 새삼스럽게 손설아의 육체적 매력을 알게 된 서문경은
자기 말마따나 각별히 그녀를 위하며 닷새 동안을 낮에도 거의
그녀와 함께 지내다시피 했다.
오후에는 그녀를 데리고 비취헌으로 가서 그곳에서 함께 화초에 물을 주기도 하며
더위를 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섯 번의 밤이 지나가자,
서문경은 다음 순번인 반금련에게 옮겨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여보, 다음 당신 차례가 돌아올 때 까지 잘 있어.
스무닷새만 독수공방을 하면 되잖아.
삼년도 혼자 지냈는데, 스무닷새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뭐. 그렇지?”
말하자면 이십오일간의 이별을 나눌 때 서문경은
이렇게 아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듯이 말했다.
“아무 염려 마시라구요.
다음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테니까요.”
손설아는 애써 나긋한 미소를 지어 보였으나,
그 얼굴에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기색이 엿보였다.
그런 그녀의 표정이 가슴에 와 닿는 듯 서문경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내가 말이야. 틈을 봐서 그동안에도 당신을 찾아올 테니까. 알겠지?”
“예, 호호호...”
손설아의 표정에서 쓸쓸한 기색이 사라지고, 대신 두 눈에 살짝 물기가 어린다.
웃는데도 말이다.
반금련은 자기가 순번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이병아가 잉태를 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더없는 충격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반금련은 한 번도 임신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일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다.
무대와 같이 살 때는 그저 남편이 난쟁이여서 아마 씨앗이 부실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전처와의 사이에 태어난 영아가 있기는 했으나,
그것이 반드시 무대의 씨라는 보장도 없다 싶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서문경의 다섯 번째 아내로 들어온 뒤에도 그저 마음껏 여자로서의 욕망을 채우고,
지금까지 누리지 못했던 호강을 누리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넘기는 데 만 신경을 썼지,
아이를 낳아서 길러봐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거추장스럽고, 즐겁게 살아가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정실인 오월랑에게는 딸이 하나 있지만,
그 밖의 다른 부인들 아무에게도 아이가 없으니,
자기도 아이가 없다고 해서 뒤가 당길 게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경사(慶事) 20회
그러나 이병아의 임신을 서문경이 그처럼 기뻐하고 아들 낳기를 학수고대하니
질투에 못 이겨서라도 기어이 자기도 임신을 해서 득남(得男)을 해야지 하고 반금련은
작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이제 모든 부인들이 아들 낳기 경쟁에 돌입한 셈이니 말이다.
그래서 반금련은 자기의 순번이 돌아오면 어떤 식으로 서문경을 모실 것인가 하고
궁리를 거듭했다.
그저 종전처럼 술을 마신다음 벗고 침상에 올라 관계를 가지는 것만으로는
싱거울 것 같았다.
좀더 색다른 방법이 없을까 궁리를 한끝에 반금련은 한 가지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옳지, 그렇게 한번 해봐야지. 재미있겠는데... 틀림없이 그이도 좋아할 거야. 히히히...”
지레 혼자서 킬킬거리기까지 했다.
서문경이 반금련을 찾아간 것은 저녁을 먹고 잠시 후였다.
해가 지고 밤이 깊었는데도 아직도 더위가 가시질 않고 후덥지근했다.
어쩌면 밤에 소낙비가 쏟아질 것도 같은 그런 날씨였다.
부채질을 하며 앉아서 기다리고 있던 반금련은 성큼 의자에서 일어서며 반긴다.
“어서 오시라구요. 저녁은 자셨나요?”
“응”
“덥죠? 자, 이리 앉으세요”
서문경이 의자에 앉자 반금련은 손수 부채질을 해주기까지 한다.
여느 때의 반금련과 달리 유난히 나긋나긋하게 반기는 터이어서
서문경은 기분이 좋기만 하다.
“술을 가져올까요, 차를 드시겠어요?”
“차를 한잔 가져오라구. 더워서 술 생각은 안나는군”
“예, 시원한 냉차를 드릴께요”
얼음이 담긴 오미자차(五味子茶)를 한잔 가져다 놓는다.
그것을 마시며 서문경이 불쑥 싱겁게 묻는다.
“당신 이번 차례는 한달에 한번씩 있는 그것을 하는 때라면서?”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구요”
“그래? 그럼 오늘밤은 괜찮겠고...그것이 시작되면 같이 자도 소용이 없잖아.
그때는 내가 없어도 상관없는 거지?”
“어머, 그럼 당신은 누구한테?”
“나혼자 내방에서 자는 거지 뭐”
좀 생각해 보더니 반금련은 냅다 고개를 내젓는다.
“안돼요. 관계는 안하더라도 나하고 같이 자야 된다구요.
혼자 주무신다면서 혹시 딴 여자한테 찾아가면 규칙 위반이잖아요. 안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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