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130) 제16장
경사(慶事) 1회
하인의 처인 송혜련을 좋아했다가 한바탕 큰 우환을 겪고 난 서문경은
그 뒤로 좀 마음을 바로잡게 되었다.
우선 앞으로는 절대로 일곱 번째 여자를 맞아들일 생각은 않기로
마음을먹었다.
그러니까 아내는 여섯으로 끝막음하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송혜련을 건드렸던 일이 너무나도 끔찍한 재앙을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말하자면 가장 새 아내인 셈이고, 또 다른 다섯 여자들과는 달리 전당포 일에 재미를 붙여 진경제를 도와서 열심히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었다. 파고, 그 못가에 정자형(亭子型)의 아담한 별채를 하나 지었다. 그리고 그 건물의 이름을 비취헌(翡翠軒)이라고 붙였다. 물을 주며 화초 가꾸기를 취미로 삼았다. 그래서 그녀도 곧잘 그 비취헌에서 서문경의 화초 가꾸기를 도우며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 정실인 오월랑도 남편이 그처럼 고상한 쪽으로 취미를 돌리는 데 기뻤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더니, 송혜련의 죽음이 남편을 그처럼 변하게 한 것 같아 그녀에 대한 원망이 어느덧 고마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따금 무료하면 그 비취헌을 찾아 화초를 감상하며 쉬었다 가곤 했다. 간혹 그곳에 들렀다. 넷째이면서도 부엌데기에 불과한 셈인 손설아는 서문경의 취미가 고상해 지거나 말거나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는 식으로 무관심이었다. 이병아가 자기 다음으로 들어와 자기를 밀어내고 서문경의 애정을 빼앗아간 셈이어서 늘 그녀에 대해 질투를 느껴 왔는데, 연못을 파고 못가에 비취헌까지 지어 거기서 화초를 가꾸며 둘이 즐기는 터이라, 생각만 해도 시새움이 끓어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재미를 방해라도 하려는 듯이 곧잘 비취헌을 찾아갔다. 비취헌을 찾아간 반금련은 문 밖에서 가만히 걸음을 멈추었다. 마침 안에서 서문경과 이병아가 야릇한 말을 주고받고 있었던 것이다.
경사(慶事) 2회
"여보, 당신 이 더운데 웬 단속곳이지?"
당신이 허리를 굽히니까. 그래서 물어보는 거라구" 서문경은 등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그녀의 물주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줄장미 덤불 그늘에 숨어서 창 너머로 안을 살짝살짝 훔쳐본다. 더구나 빨간 색깔의... 이유가 뭘까?" 착실한 가장 같으면 잘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말한다. 그럼 못 알아맞히면 엉터리 가장이 되겠네. 허 그것 참, 음- 도대체 무슨 이율까? 한여름에 빨간 단속곳이라..." 서문경의 그런 표정이 재미있었던 것이다. 배탈이 나서 단속곳을 입고 있는거 아냐?"
경사(慶事) 3회
"아니예요. 호호호..."
냅다 활활 부채질을 해댄다. 다가들어 그 치마를 걷어 올린다. 그리고 빨간 단속곳을 밑으로 끌어내린다. 물 주던 손을 멈추고 그래도 다소곳이 내맡기고 있다. 그러니까 매우 편리하던데... 언제든지 치마만 들추면 되니까" 어디 제대로 행세하는 여자가 그럴 수 있나요. 아무리 더워도 나처럼 단속곳은 안 입더라도 속속곳은 입어야죠" 낮은 쪽을 짚는다. 매미 우는 소리가 찍- 맴맴맴 맴맴맴... 요란하게 들려온다. 이병아의 입에서 교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자기도 모르게 뜨거운 침을 한 덩어리 꿀컥 삼킨다.
경사(慶事) 4회
"여보, 나 아랫배가 아파요. 땅긴다구요"
"너무 센가봐요. 살살..." "알았다구" 서문경의 물결이 현저히 부드러워진다. "여보" "응?" "안되겠어요. 그만..." 그러면서 이병아는 굽혔던 상체를 일으켜 버린다. 자연히 서문경의 욕망이 그녀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저리 가서 누워봐" 서문경은 한쪽 창변에 놓인 침상으로 이병아를 데리고 가려 한다. "여보, 그만 참으세요" "이러다가 참을 수가 있나" "밤에 내가 다시 잘 모실테니까요. 지금은 안되겠다구요" "음-" "배가 왜 땅기는지 아세요?" 이병아는 마룻바닥에 떨어져 있는 빨간 단속곳을 주워 다리에 꿰며 살짝 미소를 짓는다. "몰라. 왜 땅기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서문경은 기분이 틀어진 듯 볼멘소리를 한다. "당신이 땅기게 만들었지 뭐예요" "언제는 그 정도로 안했나?" "호호호... 그래도 짐작을 못하는군요" "무슨 짐작?" "내가 한여름에 단속곳을 입고 있는 이유가 바로 배가 땅기기 때문이라구요. 알겠어요?" "땅기는 건 결국 아픈 거 아냐. 그럼 아까 내가 알아맞혔잖아. 배탈이 났다고. 그런데 왜 절반쯤 밖에 안 맞는다는 거지?" 그래서 배를 차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 더위에도 단속곳을 입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달려들어 냅다 이병아를 끌어안아 불끈불끈 들어올리며,
경사(慶事) 5회
밖에서 엿보고 있는 반금련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아찔해지고 만다.
이병아가 임신을 하다니...
너무나 뜻밖의 일이어서 가벼운 현기증이 눈앞을 지나가기까지 했다.
"예, 호호호..." "정말이라구. 아들만 하나 있으면 난 세상에 더 바랄게 없다구" 서문경은 대견해서 못 견디겠는 듯 탁자와 등의자가 놓여있는 쪽으로 데리고 간다. 이제 정욕(情慾) 따위는 싹 사라져버린 듯한 표정이다. 딸도 하나뿐이었다. 정실인 오월랑이 향림이 하나를 낳았을 뿐, 그동안 다른 네 아내들은 한결 같이 아이를 생산하지 못했다. 그래서 집안사람들 사이에 어쩌면 서문경이 뿌리는 씨앗은 제대로 알맹이가 박히지 않은 쭉정이가 아닌가 하는 말이 은밀히 나돌기도 했다. 오월랑이 낳은 딸 향림이가 서문경의 씨가 아닌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했다. 향림이가 진짜 서문경의 딸이라면 어째서 다른 네 부인한테서는 한 명도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가 싶은 것이었다. 있었다. 그래서 네 여자들을 아이 못 낳는 병신들로 여기며 공교롭게도 자기한테는 석녀(石女)들만 굴러들어왔다고, 처복(妻福)이 없는 모양이라고 내심 씁쓰레하게 생각해 오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여섯 번째인 이병아가 잉태를 했으니 그녀가 대견할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아들을 낳으면 그때 축하를 해줘도 늦지 않다구요"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안 마실 수가 있어? 허허허..." 출입문 쪽으로 간다.
눈에 띌게 뻔해서 살그머니 줄장미 그늘에서 나와 시치미를 뚝 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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