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116)
유령 11회
어떻게 된 영문인가 싶어서 서문경은 불을 켜 본다.
아니나 다를까, 아무도 없다.
혹시 어디 숨어있지나 않나 하고 거실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린다.
사람이 몸을 숨길만한 장소도 없다.
참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발자국 소리가 나고, 방문이 열렸다 닫히며 누가 들어와서
거실 안을 걷는 소리까지 들렸는데 아무도 없다니...
그렇다면 오월랑의 말과 같이 기가 허해져서 헛소리가 들렸단 말인가.
서문경은 탁자가 있는 쪽으로 간다.
탁자 위에 놓인 주전자의 엽차를 찻잔에 따라 꿀컥꿀컥 마신다.
추적추적 또 비 내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훅! 불을 끄고, 침실로 돌아가서 도로 잠자리에 든다.
긴장을 했던 탓인지 가벼운 피로가 느껴져 서문경은 가만히 두 눈을 감는다.
그러자 또 거실 쪽에서 짜박짜박짜박... 발자국 소리가 일어난다.
이번에는 침실 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지가 않고,
탁자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것 같다.
쪼르르- 물 따르는 소리가 난다.
주전자의 엽차를 찻잔에 따르는 모양이다.
그리고 꿀컥꿀컥 마시는 소리가 들린다.
서문경은 어둠속에 번쩍 눈을 뜨고 바짝 또 귀를 곤두세운다.
실제로 들리는 소린지,
아니면 기가 허해서 헛소리가 들리는 건지 분간을 하려고 애를 쓴다.
분명히 실제의 소리다. 헛소리가 아니다.
어떻게 헛소리가 저렇게 뚜렷하게 들릴 수가 있단 말인가.
딸그락, 찻잔을 탁자에 놓는 소리다.
그리고 드르륵 의자를 당기는 듯한 기척이 들린다.
털썩 거기에 앉는 것 같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
분명히 사람이 들어와 움직이고 있는 소린데,
나가서 불을 켜보면 아무도 없으니... 사람 환장할 노릇이다.
서문경은 벌컥 화를 내어 고함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사정을 하듯 침착한 목소리로 좀 크게 말한다.
“거기 거실에 들어온 게 도대체 누구야? 응? 대답을 좀 해 보라구”
그러자 대답 대신 드르륵 의자를 뒤로 밀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기척이 난다.
짜박짜박짜박... 또 발자국 소리다.
발자국 소리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누구야! 누구!”
침착이고 뭐고 없다.
그만 고함소리가 터져 나오며 서문경은 벌떡 일어나 앉는다.
짜박짜박짜박 짜박짜박짜박... 발자국 소리가 침실 입구까지 와서 멎는다.
“어떤 개새끼야!”
냅다 악을 쓰듯 내뱉으며 서문경은 침상에서 뛰어내려 침실에 불을 켠다.
그리고 거실 쪽을 내다본다. 아무도 없다.
그만 서문경은 모골이 송연해지고 만다.
등줄기를 섬뜩한 기운이 좍 훑어 내린다.
유령 12회
귀신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도대체 이런 괴이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말이다.
귀신이라는 생각이 들자 서문경은 잠시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후닥닥 침실에서 뛰어나가 거실을 달려서 방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숨을 헐떡거리며 정신없이 반금련의 거처로 향했다.
그녀의 거처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반금련은 깊이 잠이 든 듯 방문을 두드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문이 안으로 걸려 있어서 열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오월랑한테 갈까 하고 서문경이 돌아서는데,
그 때 바로 옆에 붙어있는 춘매의 방문이 열렸다.
“어머, 주인어른, 웬 일이세요? 이 밤중에...”
속옷 바람의 춘매가 눈을 비비며 내다본다.
옆방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깬 모양이다.
“잘 됐다. 오늘 밤은 춘매하고 같이 자야겠구나”
“어머나, 좋아라. 어서 들어오세요”
서문경은 얼른 춘매의 방으로 들어간다.
자다가 속옷 바람으로 일어난 춘매는 난데없이 주인어른이 나타나서
뭘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쩔쩔맨다.
“주인어른, 불을 켤까요?”
“그래”
방안에 불이 켜진다.
서문경은 침상에 걸터앉으며 그제야 좀 마음이 놓이는 듯 후유- 크게 숨을 내쉰다.
속옷만 입은 춘매는 부끄러워서 얼른 겉옷을 가져다가 입으려 한다.
“그냥 있으라구. 곧 잘 텐데 뭐. 입고 벗고 할 것 없잖아”
“히히히...”
그러나 아무래도 좀 쑥스러운 듯 치마만 입는다.
춘매가 치마를 입고 나자 서문경이 말한다.
“방문을 걸어버려. 무섭다구”
“무섭다뇨, 왜요?”
“귀신이 나타났다구”
“귀신이요? 하하하...”
춘매는 그만 재미있다는 듯이 웃어 버린다.
“정말이라구. 내 방에 귀신이 나타났지 뭐야. 그래서 무서워 뛰어나온 거라구”
“어머나, 그래요?”
그제야 춘매는 약간 놀라는 듯한 표정으로 바뀐다.
얼른 방문을 걸어 버린다.
귀신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춘매는 그것이 실제로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질 않는다.
그런데 주인어른의 입에서 귀신이 나타났다는 말이 나오니
좀 으스스하면서도 바짝 호기심이 동한다.
“얘길 해보세요. 뭐 어떤 일이 있었는데요?”
“아까 잠시 소낙비가 퍼부었잖아?”
“소낙비가요? 모르겠는데요”
춘매는 자느라 몰랐던 것이다.
유령 13회
"소낙비가 뚝 그치자, 발자국 소리가 나더라구. 짜박자박짜박 하고 말이야.
그러더니 그 소리가 거실로 들어오지 않겠어.
방문을 열었다가 닫는 소리까지 나더라니까"
"어머, 정말이에요?"
"정말이라니까.
그리고 침실로 다가오기에 누구냐고 고함을 지르면서 거실로 뛰어 나갔다구.
난 도둑놈인줄 알았어.
그런데 아무 기척이 없기에 불을 켜보니 글쎄, 아무도 없지 뭐야"
"어머"
춘매는 약간 눈이 휘둥그래진다.
서문경은 그다음에 있었던 일까지 자세히 얘기해 준다.
얘기를 듣고 난 춘매는 참 신기한 일이라는 듯이 눈을 깜짝이면서 좀 생각해 보는 듯 하더니
아무래도 믿어지지가 않는 듯 불쑥 말한다.
"쥐가 아닐까요?"
"뭐 쥐? 허허허..."
서문경이 오히려 어이가 없는 듯 웃음이 나와 버린다.
"쥐가 아니면 고양이거나..."
"쥐나 고양이가 주전자 물을 다 따라 마시나?
사람이 틀림없는 것 같더라니까.
그런데 두 번이나 불을 켜봐도 없지 뭐야. 그렇다면 귀신이지 뭐겠어"
춘매는 말없이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그리고 좀 조심스럽게 말한다.
"주인어른이 뭘 잘못 들은게 아닐까요?
몸이 허약해지면 귀에 헛소리가 들린다구요.
저도 감기로 몹시 않고 난 뒤 귀에서 벌이 앵앵거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더라니까요.
주인어른께서 요새 몸이 좀 안좋으시다던데, 그래서 그럴거예요"
"허허허..."
오월랑의 말과 같아서 또 웃음이 나온다.
그때 바깥에서 냐옹 냐옹 하고 밤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고양이가 그랬나봐요. 저 보라구요.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리잖아요."
"글세, 아니라니까 그러네. 틀림없는 귀신이라니까"
춘매는 입을 다물고 만다.
냐옹 냐옹 냐옹... 고양이 우는 소리가 계속된다.
"아이 기분 나빠"
서문경은 다시 으스스해지는 듯 가볍게 몸을 떤다.
그리고 말한다.
"어서 자자구. 이불 속에 들어가면 좀 괜찮을 거야"
"침상이 좁아서 어떻게 하죠?
주인어른이 침상에서 주무시라구요.
저는 이 바닥에서 잘테니까요"
"그럼 둘이서 같이 잘수가 없잖아.
오늘밤은 춘매하고 한 이불 속에서 자고 싶단 말이야.
이부자리를 방바닥에 깔도록 해"
"예, 그럴게요"
춘매는 좋아서 생글생글 웃으며 서둘러 침상 위의 이부자리를 방바닥으로 옮겨 깐다.
서문경은 서서 멀뚱히 지켜보고 있다.
유령 14회
방바닥에 이부자리가 펴지자,
잠옷 바람인 서문경은 그대로 먼저 이불 속으로 들어가며 춘매에게 말한다.
"치마를 벗고, 자 어서 들어오라구"
"예"
춘매는 살짝 돌아서서 치마를 벗는다.
그리고 속옷을 입은 채 히힉 좀 쑥스러운 듯 웃으면서 이불 속으로 기어든다.
서문경은 한 팔을 옆으로 뻗어 춘매에게 베개 대신 베도록 하고는
그녀를 향해 돌아누우며 다른 팔로 지그시 끌어안는다.
"춘매, 오래간만이지? 보자... 언제 내가 귀여워해 주었더라?"
"너무 오래돼서 언젠지도 잊어버렸지 뭐예요"
"그런가. 허허허......"
"일 년이 다돼 가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 됐나?"
"송혜련 아줌마를 좋아하시게 된 뒤부터는 한번도..."
"흠, 그렇게 됐구나. 일 년이 다돼 가도록 내가 춘매를 한 번도 귀여워해 주지 않다니,
일이 썩 잘못됐는데... 오늘밤 실컷 귀여워해 줄테니까"
그러면서 서문경은 입술을 춘매의 한쪽 귀로 가져가 야들야들한 귓불을
쭈루룩 빨아들이듯 입안에 넣고 자근자근 애무하기 시작한다.
"주인어른, 요새 매일 술을 자신다던데, 왜 그러세요?"
"..."
"송혜련 아줌마 생각이 나서 그러시는 거예요?"
서문경은 가만히 그녀의 귓불에서 입을 뗀다. 그리고 말한다.
"혜련이가 왜 자살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니까.
안 그래? 춘매는 어떻게 생각해? 왜 자살을 하지?"
"글쎄 말이에요. 저도 너무나 뜻밖의 일에 놀랬지 뭐예요"
"참 이상한 여자라니까"
"맞아요. 잔치 전날 저녁까지도 얼마나 명랑하고 기분 좋아했는지 모른다구요.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그만 그런 일을 저지르다니, 정말 알 수가 없어요"
"글쎄 말이야"
"그래서 말이에요 주인어른, 저는 혹시 자살을 한 게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니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자살할 이유가 없거든요."
"그럼 자살이 아니고... 누가 죽였단 말이야?"
"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석실 속에 목을 매고 죽어 있었는데 뭐"
"죽인 다음에 그렇게 자살한 것처럼 해놓을 수도 있는 일이죠.
내왕이는 뭐 정말 불을 지르고, 도둑질을 했었나요.
그렇게 꾸며서 뒤집어씌웠잖아요.
마찬가지로 송혜련 아줌마도 자살한 걸로 뒤집어씌웠는지도 알 수 없다구요"
"그럼 도대체 누가 혜련이를 죽였단 말이야? 죽일만한 사람이 생각나나?"
유령 15회
춘매는 잠시 말이 없다가 조심스럽게,
"예, 생각나요"
하고 대답한다.
"누군데? 그게"
"저... 월미라구요"
"뭐, 월미?"
서문경은 놀란다. 너무 의외이기 때문이다.
"월미가 혜련이를 왜 죽이지?"
"확실한 것은 물론 아니죠.
그런데 만약 송혜련 아줌마가 자살을 한 게 아니고,
누군가가 그렇게 일을 꾸몄다면 월미가 아닐까 싶어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되는 거야? 그럴만한 이유가 있나"
"서문경은 바짝 호기심이 동하는 표정이다.
"월미가 송혜련 아줌마를 몹시 미워하더라구요.
심지어 뭐라 그러는가 하면,
그런 년은 죽여 없애버려야 된다면서,
귀신들은 다 뭘하고 있는지,
그런 년을 안잡아가고... 글쎄 이러잖아요"
"흠- 월미가 뭣 때문에 혜련이에게 그런 악담을 했을까. 무슨 원수라도 졌나?"
"남편을 배반했다고 그러는 것 같았어요"
"그년 참 시건방지네.
남이야 남편을 배반하거나 말거나 제가 뭔데 그런 악담을 하는 거지"
"글쎄 말이에요. 계집애가 이상하더라니까요.
잔칫날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는 누구맘대로, 잘 안될걸...이러더라구요.
그런 점으로 미루어봐서 월미가 죽인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지 뭐예요"
"음-"
서문경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불쑥 내뱉듯이 말한다.
"아니야. 월미 따위가 그러진 못해. 사람죽이는 일이 그렇게 쉬운게 아니라구.
그리고 죽인 다음 석실까지 어떻게 옮겨간단 말이야.
혼자서 시체를 석실 천장에 매단다는 것도 되는 일이 아니고...
도저히 계집애가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지.
그렇다고 누구하고 짜고서 그랬을 리도 없고...
그런 겁나는 일을 누가 함부로 같이 하겠어.
무슨 이득이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안그래?"
"하긴 그래요. 저도 설마 월미가 그렇게 무서운
일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싶으면서도 그런 말을 했었기 때문에
혹시...하고 의심해 봤던 거죠"
"자, 이제 그런 얘긴 그만하고, 우리 할 일이나 하자구"
"예, 호호호..."
"내의를 벗어야지. 내가 벗겨줄까?"
"아니에요. 제가 벗을게요"
춘매는 일어나 앉아서 위아래 속옷을 홀랑 벗어버리고는
후다닥 서문경의 품안으로 파고든다.
"주인어른도 벗으셔야죠"
"물론이지"
"제가 벗겨 드릴까요?"
"그래"
춘매는 다시 발딱 일어나 앉아서 서문경의 잠옷과 내의를 하나하나 벗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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