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113) 투옥 91회
서문경은 거실 창변에 서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서서히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정원의 나무들
위로 엷은 아침 햇살이 선연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엇다.
산뜻하고 상쾌한 가을 아침이었다.
그러나 서문경의 기분은 도무지 유쾌하지가 못하고, 좀 울적하기까지 했다.
오늘이 송혜련을 일곱 번째 아내로 맞아들이는 혼일(婚日)이어서 마냥 즐거워야 할 터인데,
이상한 일이었다.
꿈 때문인 것 같았다.
간밤의 꿈의 한 대목이 묘하게도 머리에 달라붙어서 떨어져 나가지가 않았다.
어딘지 모를 벌판에 서문경은 홀로 서 있었다. 황혼인 듯했다.
그러나 사방이 어스름에 휩싸여 있을 뿐, 석양 같은 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한 대의 수레가 서서히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소가 끄는 달구지였다. 달구지 위에 사람 하나가 타고 있었다.
웅크리고 앉아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보니까 내왕이 같았다.
“내왕아, 맹주로 귀양 가는 길이냐?”
하고 서문경이 물었다.
내왕이는 아무 대답 없이 코를 삐딱하게 이지러뜨리며 비시그레 웃기만 했다.
비웃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그런데 달구지가 저만큼 멀어져 가는데 보니까 타고 있는 사람이
내왕이가 아니라 송혜련이었다.
송혜련이 까만 옷을 입고 앉아 있다가 이쪽을 향해서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그 얼굴은 하얗고 무표정했다.
“여보, 어디 가는 거야?”
서문경이 물어도 그녀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어스름 속으로 그 달구지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 하얗고 무표정하던 송혜련의 얼굴이 머릿속에 달라붙어서
사라지지가 않아 서문경은 혼자서,
“이상한 꿈인데... 아무래도 길몽(吉夢)은 아닌 것 같애.
오늘이 잔칫날인데, 그런 꿈을 꾸다니...”
입속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때 반금련이 들어섰다.
“여보, 혹시 송혜련이가 여기 와 있나요?”
“아니”
“이상한데요. 어디 갔는지 아무데도 없다구요”
“무슨 소리야, 그게?”
“글쎄 말이에요. 춘매가 여기저기 다 찾아봐도 없다는 거예요.
본 사람도 없고요. 그래서 혹시 여기 오지 않았나 싶어서 와봤죠”
“집안에 어디 있겠지. 오늘이 잔칫날인데, 가긴 어딜 갔겠어.
더구나 이 아침에... 당신이 직접 찾아보라구. 오월랑한테도 가서 물어보고...”
“예”
반금련은 대답을 하자마자 돌아서 나간다.
서문경은 간밤의 꿈 생각이 나서,
이거 무슨 불길한 일이라도 생기지 않았나 싶어 슬그머니 표정이 굳어든다.
투옥 92회
곧바로 반금련은 정실인 오월랑을 찾아갔다. 얘기를 들은 오월랑은,
“여기 올 턱이 있어”
하고 심드렁하게 말한다.
“도대체 어딜 갔는지 알 수가 없네요. 오늘이 잔칫날인데...”
“나타나겠지 뭐”
오월랑은 내사 알 바 아니라는 그런 표정이다.
정실로서 남편이 새로 여자를 들여앉힐 때마다 속이 상했지만,
이번 처사엔 유독 심사가 덜 좋았다.
하인의 여편네를 건드려 가지고 아내로 삼다니,
더구나 남편인 내왕이는 귀양을 가는 신세가 되었는데...
아무래도 집안에 망조(亡兆)가 깃드는 게 아닌가 싶고,
이웃에 민망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극구 반대를 했으나,
받아들여질 리가 없었다.
내사 모르겠으니 맘대로 하라고 토라져 있는 터이니,
송혜련이 안 보인다고 해서 놀랄 게 조금도 없다.
그러나 오월랑은 몸종인 옥소를 불러서,
“송혜련이가 안 보인단다. 네 육촌언니라면서? 어디 있는지 너도 나가서 찾아보려무나”
하고 마치 옥소가 뭘 잘못하기라도 한 것처럼 조금 화까지 내어 이른다.
옥소는 옥소대로 송혜련을 찾으러 나가고, 반금련은 곧바로 이교아의 거처를 찾아갔다.
거기에도 없자, 이번에는 맹옥루한테 가보았다.
역시 헛걸음이었다.
손설아한테 가 볼까 하다가 견원지간(犬猿之間)인 그녀한테는 춘매를 보냈다.
그리고 자기는 이병아의 거처인 별채 쪽으로 잰걸음을 쳤다.
춘매는 먼저 월미의 방으로 가 보았다.
“월미야, 혹시 송혜련 아줌마 못 봤니?”
“못 봤는데... 왜?”
“아줌마가 없어졌지 뭐야”
“없어지다니? 어머나, 어떻게 된 일이지?”
월미는 화들짝 놀란다.
그 놀라는 표정이 유난스럽다. 그리고 후닥닥 손설아 마님의 거실로 뛰어 들어간다.
“마님, 마님, 송혜련 아줌마가 없어졌대요”
“뭐라구? 없어지다니, 무슨 소리야?”
그러자 춘매가 뒤따라 들어서며 말한다.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지 뭐예요. 그래서 혹시 여기 오지 않았나 싶어서 와봤죠”
“여기 안 왔는데...”
별안간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서 손설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월미가 살짝 사팔뜨기인 눈을 유난히 굴렁거리면서 지껄인다.
“어딜 갔을까? 오늘 잔칫날인데 없어지다니...
그럼 잔치는 어떻게 하지? 집안을 다 찾아본 거야?”
“그랬다니까”
“참 이상한 일이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더니, 정말 그렇지 뭐야. 도대체 어딜 갔지?”
월미는 정말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이 기울이기까지 한다.
투옥 93회
반금련이 이병아의 별채를 찾아가 보아도 송혜련은 없었다.
집안이 온통 발칵 뒤집히다시피 되고 말았다.
잔칫날인데 주인공의 한 사람이 어디로 증발했는지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으니 말이다.
설마 동산의 석실 속에 싸늘한 고깃덩어리가 되어 매달려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아무도 그곳까지는 찾아가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혼사(婚事)는 허사(虛事)가 되고 말았다.
서문경은 간밤의 꿈이 어쩐지 흉몽(凶夢)같더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고 말았구나 하고 혼자서 잔칫술 아닌
울홧술을 종일 마시고 취해서 뻗듯이 늘어져 버렸다.
송혜련의 시체가 동산의 석실 속에서 발견된 것은 이듬해 이른 봄이었다.
하인 하나가 낡은 가구를 석실 속에 가져다 두려고 들어갔다가
목매어 늘어져 있는 여자의 시체를 보고 질겁을 했던 것이다.
시체는 이미 누군지 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식되어 있었다.
그러나 입은 옷과 얼굴형용과 몸매로 보아
그게 송혜련의 시체라는 것을 대뜸 짐작할 수가 있었다.
몇 달 뒤에 석실 속에서 목을 매어 자살한 시체로 송혜련이 발견되자,
집안은 또 한 번 발칵 뒤집히다시피 했다.
서문경은 너무나 의외의 일에 어처구니가 없는 듯,
“참 싱거운 여자도 다 보겠군. 팔자를 고치게 됐는데,
자살을 해버리다니... 살짝 돌았던 모양이지. 허 나 참...”
하고 쓰디쓰게 입맛을 다셨다.
송혜련의 자살에 대해서 집안사람들의 의견은 대체로 두 갈래였다.
“비록 남편을 배반하긴 했지만, 그래도 양심은 있는 여자였다구”
“맞어, 귀양 간 내왕이에 대한 가책 때문에 자살을 한 게 아니고 뭐겠어”
“쯧쯧쯧... 팔자도 기구하지”
이런 식으로 동정론을 펴는 쪽과,
“자살을 할 바에야 무엇 때문에 처음부터 그런 짓을 했지”
“글쎄 말이야. 팔자를 고치게 된 판에 제 목숨을 제 손으로 끊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다구”
“자살한다고 저한테 누가 열녀라 그러겠어. 안 그래? 헤헤헤...”
이런 투로 비아냥거리며 못마땅해 하는 축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의 자살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목을 매달아 죽어있는 그 정황이 틀림없는 자살이기 때문이었다.
서문경의 지시에 따라 송혜련의 시체는 동산의 숲 한쪽에 매장되었다.
관(棺)이 땅에 묻힐 때 월미는 사람들 속에 섞여 서서 찔끔찔끔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숲의 어떤 나뭇가지에는 동아줄 올가미가 걸려서 비바람에 썩어가고 있었다.
그날 밤 송혜련을 살해한 월미가 석실을 나와 동산을 내려가다가 치마 속 허리춤에 찼던
올가미를 꺼내어 숲을 향해 공중으로 힘껏 던져버렸던 것이다.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그 올가미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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