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15) 유령 <6~10회>

오늘의 쉼터 2014. 6. 29. 19:37

 

금병매 (115) 유령 6회 

 

 

 

 잠시 후 오월랑의 숨소리가 새근새근 들린다.

 

잠이 든 모양이다.

서문경은 여전히 심정이 착잡하다.

 

송혜련의 자살 때문에 가뜩이나 우울한 판인데,

 

 이번에는 오월랑의 입에서 또 ‘자살’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비록 그것은 정실로서의 경고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기분이 언짢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오월랑의 말이 옳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정실도 여자니까 질투 때문에 그러기도 하겠지만,

 다분히 집안을 생각한 양처(良妻)로서의 염려에서 나온 말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송혜련을 소실로 들여앉히려다가 낭패를 당하고 이웃에 톡톡히 망신을 당했는데,

또 취첩(娶妾)을 하려든다는 것은 아닌 게 아니라 좀 지나친 일이 아닐까 싶다.

당장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지만 말이다.

그런저런 생각에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가 서문경은 하품과 함께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바깥에서 누군가가,

“여보 여보”

부르면서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서문경은 부스스 일어나 거실로 나가서 방문을 열어 보았다.

뜻밖에도 문 밖에 서 있는 여자가 송혜련이 아닌가.

위아래 까만 옷을 입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서 있는데

그녀의 뒤에는 웬 수레가 한 대 멎어 있었다. 소가 끄는 달구지였다.

서문경은 언젠가 어디서 본 듯한 달구지다 싶으며,

“아니, 당신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얼마나 기다렸다구”

하고 반가움과 원망스러움이 뒤섞인 그런 목소리로 말한다.

“미안해요. 저 달구지를 타고 고향에 갔다가 오는 길이지 뭐예요. 들어가도 되죠?”

“어서 들어오라구”

거실로 들어서자 송혜련은,

“여보, 오래간만이에요. 나 좀 안아줘요”

하면서 서문경의 품 안으로 다가든다.

서문경은 팔을 벌려 그녀를 지그시 끌어안는다.

그런데 보니까 조금 전의 미소를 지은 그 얼굴이 아니라,

푸르딩딩하고 거무죽죽하게 썩어가고 있는 송장의 낯바닥이 아닌가.

목에는 동아줄 올가미가 조여 있기까지 했다.

“으악-”

서문경은 질겁을 하고 비명을 내지른다.

꿈이었다.

잠을 깬 서문경은 무슨 그런 기분 나쁜 꿈이 다 있는가 하고

몽롱한 두 눈을 어둠 속에 멀뚱거리며 누워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똑똑똑 똑똑똑... 거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그러자 그 소리가 멎는다.

잠시 후 또 똑똑똑 똑똑똑... 두드린다.

“도대체 누구지? 이 밤중에...”

투덜거리면서 서문경은 부스스 일어나 침상에서 내려선다.

 

 

유령 7회

 

 

 

침실에서 거실로 나가는데, 여전히 똑똑똑 똑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누구야? 나간다니까”

 




큰 소리를 지르면서 서문경은 거실 문 쪽으로 다가간다.

그러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멎는다.

서문경은 방문을 열면서도 조금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이 밤중에 누구지?”

하고 내뱉는다.

그런데 뜻밖에도 바깥에 아무도 없질 않은가.

“아니...”

서문경은 약간 당황한다.

이상하다 싶어서 문 밖으로 나가보기까지 한다.

그러나 사위는 어둠에 잠겨있을 뿐,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아무데도 보이지가 않는다.

“이상한데... 누구야? 방금 방문을 두드렸잖아. 이리 나와 봐”

혼자 이쪽저쪽 회랑을 향해 큰 소리로 말한다.

아무런 기척도 없다.

어디선지 야옹 야옹- 하고 밤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놈의 고양이...”

고양이가 약을 올리는 것 같아 서문경은 그 소리가 들려온 정원 쪽 어둠을 노려본다.

그러다가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고양이란 놈의 소행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거실로 들어가며 방문을 쾅! 소리가 나도록 요란하게 닫아 버린다.

침실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똑똑똑 똑똑똑...

또 뒤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질 않는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만 돌려 문 쪽을 바라본다.

똑똑똑 똑똑똑... 분명히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다.

고양이가 그러는 것 같지도 않다.

고양이가 발로 어떻게 저렇게 또렷하게 똑똑똑 두드릴 수가 있는가 말이다.

틀림없이 사람이 손가락 등 쪽으로 두드리는 소리다.

“누구야! 응? 누구냔 말이야!”

서문경은 냅다 그만 고함을 내지르고 만다. 발칵 화가 치미는 것이다.

고함소리에 놀라 잠이 깬 듯 침실 쪽에서,

“아니, 왜 그래요? 당신 아직 안 주무셨나요?”

하는 오월랑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똑똑똑 똑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서문경은 오월랑의 목소리는 아랑곳없이,

“누구냐니까! 어떤 개새끼가 누굴 놀리는 거야, 뭐야!”

치미는 화를 견디지 못해 그만 후닥닥 달려가서 냅다 방문을 발길로 걷어차서 열어 버린다.

그러나 바깥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다.

“아니, 당신 왜 그러는 거예요? 안 주무시고 뭘 하고 있어요?”

오월랑이 놀란 듯 침실에서 나와 거실에 불을 켠다.

그러자 서문경은 잔뜩 화가 났으면서도 이상한 일이라는 듯이 고개를 기울이며 말한다.

“글쎄, 자꾸 누가 방문을 두드리지 뭐야”

 

 

유령 8회 

 

 

 

 “방문을 두드리다뇨? 이 밤중에 누가...”

“글쎄 말이야. 문을 열어보면 아무도 없다니까”

 




“당신이 잠결이라 잘못 들은 거예요.

이 한밤중에 누가 와서 방문을 두드리겠어요”

“아니야, 분명히 들었다구. 그것도 한번만 두드린 게 아니라,

여러 번이나 두드렸다구. 방금도 내가 침실로 돌아가는데 또 똑똑똑 하고 두드리지 뭐야.

그래서 화가 나 냅다 방문을 발로 걷어차 버린 거라구”

그 말에 오월랑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일부러 자기가 열려진 문 밖으로 나가본다.

 아무도 없다. 삼경이 넘은 한 밤중이라 사위는 어둠 속에 잠겨 고요하기만 하다.

 밤 고양이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도 없잖아요.

몇날며칠 계속 술을 마셔대서 기(氣)가 허약해져 헛소리가 들린 거라구요.

자, 어서 가서 잠이나 자도록 해요”

오월랑이 도로 거실로 들어와 방문을 닫는다.

“헛소리가 들리다니, 말도 안 돼.

 틀림없이 사람이 손으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구.

 가만히 있어 보라구. 곧 또 들릴 테니까”

서문경은 그 자리에 서서 방문을 노려보듯 지켜보고 있다.

오월랑도 말 없이 방문을 바라보고 있다.

멍석 깔아놓으면 하던 지랄도 안한다더니,

서서 기다리니 문 두드리는 소리가 일어나질 않는다.

“봐요, 누가 문을 두드린단 말이에요. 자, 가서 자자구요”

오월랑이 서문경의 한 쪽 팔을 잡아 이끈다.

그 때 꼬꾸댁 꼭꾜- 꼭꾜- 어디선지 첫 닭 우는 소리가 가물가물 들려왔다.

“어머, 닭이 울잖아요. 밤이 무척 깊었다구요. 어서 가서 자자니까요”

마지 못하는 듯 그제야 서문경은 침실로 향한다.

이상하게도 온몸에서 긴장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 같고,

나른해진다. 하품이 나온다.

침상의 이부자리 속에 들자 서문경은 곧 깊숙한 수렁으로 빠져들어 가듯 잠이 들어 버린다.

이튿날 아침 서문경은 해가 거의 중천에 이르렀을 무렵에야 잠을 깼다.

온 몸이 노자근하고, 골이 띵했다.

간밤에 문 두드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치기는 했지만,

그 뒤부터는 곤히 잠이 들어 꿈을 꾼 것 같지도 않고,

한 번도 깨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부스스 일어나 앉으니 가벼운 현기증이 머리를 때리는 듯 눈앞이 어질어질 했다.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구어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데 몸종인 아량이가

쟁반에 그릇 하나를 받쳐 들고 들어온다.

 

 

유령 9회 

 

 

 

 “주인어른, 이거 드시지요”

“뭐야?”

 




“약이에요.

 

마님이 일어나시거든 곧 갖다드리라고 하셨어요.

 

공복에 잡수셔야 되나 봐요”


한약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오월랑은 자기 거처로 가서 옥소를 시켜 전속의생을 불러오게 했다.

자기네 약국에서 일하며 서문경을 비롯한 가족들의 병을 맡아 다스리는

그 의생은 말만 듣고도 대뜸 약을 지을 수가 있었다.

서문경의 체질에 대해서 훤하게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동안에 지은 보약과 치료약의 방문(方文)을 하나 빠뜨리지 않고

다 보관하고 있기도 했던 것이다.

상심(傷心)을 해서 술을 연일 과음하여 기가 쇠약해져 혼자서 헛소리를 하고

또 귀에 헛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다는 오월랑의 말에 의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주독을 푸는 약 한 제를 잡숫고,

다음에 기를 돋우는 보약 두 제 정도 잡수시면 거뜬하실 겁니다”

이렇게 말했다.

그럼 우선 주독을 푸는 약부터 지어서 달여 오라는 오월랑의 분부에

의생은 식전부터 약국 문을 열고 서둘러댔던 것이다.

아량이로부터 약사발을 받아 서문경은 단숨에 꿀컥꿀컥 들이켰다.

아침을 조금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나니

오월랑이 찾아 와서 우선 주독을 풀어야 된다고 하니

약 한 제를 먹을 동안은 술을 끊도록 하라고 간곡히 말했다.

서문경은 자기를 진정으로 염려하는 사람은 역시 정실인 오월랑이로구나

싶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때가 가까워지면서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몸이 나른한데, 비가 내리니 더욱 찌뿌드드하고 무거웠다.

그래서 서문경은 정말 병자가 된 것처럼 종일 침상에 누워서 지냈다.

그날 밤이었다. 저녁을 조금 먹고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서문경은 도무지 잠이 오지가 않았다.

종일 누워서 낮잠을 조금씩 자고 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봄비가 밤이 되어도 그치질 않고 마치 장마철처럼 추적추적 계속 내리고 있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누워있는 서문경은 오늘 하루 술을 입에 대지 않았는데도

무척 오래 안 마신 것 같고, 묘하게 갈증까지 느껴지며 술 생각이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몸에서 주독을 빼는 약을 먹는 터인데,

하루도 못 견디고 다시 술을 몸 안에 부어 넣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간절한 욕구를 눌러 참으며 이따금 신음까지 하면서 뒤척이고 있었다.

빗줄기가 별안간 거세어지는 듯 좍- 퍼붓는 소리가 났다.

 한참 무섭게 퍼부어대더니 뚝 그치고, 사방이 고요해졌다.

마치 여름철 지나가는 소낙비 같았다.

그런데 그 때 바깥에서 짜박짜박짜박...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유령 10회 

 

 

 

 웬 발자국 소릴까.

 

이 밤중에,

 

더구나 소낙비가 퍼붓다가 방금 그쳤는데,

 

누가 정원을 걷고 있는 것일까...

 

서문경은 그 소리에 바짝 귀가 기울여진다.

짜박짜박짜박 짜박짜박짜박...

 

발자국 소리가 멀리서 차츰 이쪽으로 가까워져 오는 듯 뚜렷해진다.

 

그런데 아무리 깊은 밤중이고,

 

소낙비가 그친 뒤의 정적(靜的)이라고는 하지만,

 

바깥의 발자국 소리가 이렇게 침실에까지 선명하게 들려오다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문경은 슬그머니 긴장이 된다.

 




짜박짜박짜박... 발자국 소리가 뜰에서 회랑으로 올라서는 것 같다.

짜박짜박짜박... 회랑을 걸어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분명하다.

혹시 도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비 오는 이 밤중에 바깥을 걸어 다니겠는가 말이다.

바짝 긴장이 되어 귀를 곤두세우고 있는데,

발자국 소리가 거실 방문 앞에 가만히 멎는다.

똑똑똑... 이번에는 문을 두드린다.

어젯밤의 그 소리와 똑같다. 똑똑똑 똑똑똑...

“누구야?”

벌컥 고함을 내지른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멎는다.

“누구냐니까? 이 밤중에...”

아무 대답이 없다.

서문경은 발끈 화가 치민다.

일어나 나가볼까 하다가 왠지 온몸이 바짝 굳어드는 듯해서 누운 채

그대로 가만히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인다.

삐그그극... 방문 열리는 소리가 난다.

바깥에서 문을 열고 누군가가 거실 안으로 들어서는 모양이다.

삐그그그... 문을 닫는 것 같다.

짜박짜박짜박 짜박짜박짜박... 또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거실을 가만가만 걸어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틀림없다.

서문경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치솟아 온통 머릿속이 탱탱해지는 느낌이다.

짜박짜박짜박...

“누구야! 어떤 놈이지?”

냅다 고함을 지르며 벌떡 일어나 앉는다.

발자국 소리가 뚝 멎는다.

거실 한 가운데쯤에 가만히 멈추어 서 있는 모양이다.

도둑놈에 틀림없는 것 같다.

서문경은 와들와들 떨리면서도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

“어떤 놈이냔 말이냐!”

후닥닥 그만 침상에서 뛰어내린다.

그리고 거실로 달려 나간다.

“권법(拳法)을 좀 익힌 터이라,

서문경은 도둑놈 하나쯤 자신이 있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가격(加擊)자세를 취하며 외친다.

“덤벼라! 맛을 보여줄 테니까!”

아무 기척이 없다.

깜깜한 어둠 속이지만 거기 사람이 서 있는 것 같지가 않다.

느낌이 그렇다.

“왜 안 덤비지? 아무도 없나?”

고함소리가 거실에 공허하게 울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