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08) 투옥 <66~70회>

오늘의 쉼터 2014. 6. 29. 13:11

 

금병매 (108)

 

 

 

투옥 66회 

 

 

 

 내흥이가 반금련을 찾아가 그 사실을 보고한 것은 이튿날 아침나절이었다.

 

얘기를 들은 반금련은 대번에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치솟는 듯한 느낌이었다.

“뭐라구. 그 놈이 그런 소리까지 해?”

 





“술이 만취가 되어가지고 글쎄 그 따위 돼먹지 않은 소리까지 하더라니까요”

“오냐, 이놈 어디 두고 보자. 이놈이 간뎅이가 부어도 이만저만 부은 게 아니로구만.

난 저를 생각해서 장가를 들여 주려고 애를 스는데,

고마운 줄고 모르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내뱉다니...

제가 나를 처치한다구? 흥, 그놈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군”

“고량주를 마셨거든요.

그래서 너무 취해 그만 그런 말까지 나왔던 것 같애요”

“취중에 진담이라 그러잖아.

평소에 먹었던 생각이 취중에 튀어나오는 법이라구.

그놈이 아마 나한테 무슨 감정이 있는 게 틀림없다구.

그러니까 그런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면서 나를 처치해 버리겠다고 하지.

안 그래? 이놈을 당장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네”

분해서 못 견디겠는 듯 반금련은 바르르 눈꺼풀을 떨기까지 한다.

반금련이 그렇게 노한 것은 내왕이가 자기의 아주 아픈 데를 찔렀기 때문이었다.

‘남편을 독살한 년’이라는 말은 반금련으로서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녀석이 제 손으로 처치해 버리겠다는 말까지 했다니,

그렇다면 일은 끝난 것이 아닌가.

그런 녀석을 장가를 들여 무마를 하려고 나섰던 자기 자신이 우습기만 했다.

아무리 만취가 되어 내뱉은 말이라 하지만,

그런 말이 자기 귀에 들어온 이상 도저히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더구나 서문경까지 죽이겠다고 했다질 않는가.

선수를 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분에 못 이겨 반금련은 당장 서문경을 찾아갔다.

서문경은 전당포에서 진경제로부터 경리 관계의 보고를 잠시 받고 돌아와서

거실에 앉아서 막 차를 한 잔 마시려하고 있는 참이었다.

반금련은 대뜸,

“여보, 큰일 났어요”

하고 호들갑스럽게 입을 떼며 마주 앉았다.

“큰일 나다니, 뭐가?”

이 여자가 아침나절부터 무슨 방정을 떨려고 그러나 싶은 듯

서문경은 차를 홀짝 한 모금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으며 빤히 바라본다.

“내왕이가 말이에요, 당신이랑 나를 죽인다지 뭐예요”

“뭐라구?”

“글쎄 그 놈이 뒈지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봐요.

어제 내흥이한테 그러더라는 거예요. 술을 마시고서...”

“그 녀석 제법인데. 허허허...”

뜻밖에 서문경은 껄껄 웃는 것이 아닌가.

 

 

투옥 67회 

 

 

 

 “제법이라니, 무슨 소리예요? 당신...”

반금련은 약간 어이가 없는 듯이 묻는다.

 




“내왕이도 불알을 찼다는 얘기지.

제마누라를 빼앗기고서 아뭇소리도 못한다면 그건 사내라고 할 수 없잖아”

“아니, 당신을 죽이고, 나도 죽이고, 물론 송혜련이도 죽여 버린다는데도

당신은 태평스럽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예요?”

“술을 마시고 한 소리라며?

 술에 취하면 간이 벙벙해져서 그런 말이 튀어나오는 법이라구”

“취중에 진담이라잖아요. 그놈이 제 속마음을 내보인 거라구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지 뭐.

자기 마누라를 빼앗겼는데 죽이고 싶지 않았어?

그리고 자기를 배반한 여편네도 죽여 버리고 싶은 게 당연하지.

속에 있는 그런 생각을 술에 취해서 자꾸 내뱉아 버리면 맺힌 응어리가 풀리는 법이라구.

그렇지 않고 그런 생각을 속에 담아두고 있기만 하면 나중에는

정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그거야”

“어머, 당신 이제 보니까 아주 성인군자 같으네요.

자기를 죽인다는데도 오히려 그놈을 감싸주려 드니 말이에요”

“감싸주는 게 아니라, 그녀석의 심정을 이해한다 그거지”

서문경은 찻잔을 들어 천천히 입으로 가져간다.

반금련은 그런 서문경을 놀랐다는 듯이 가만히 바라본다.

그러나 곧 그녀는 그 태연한 척하는 남편의 표정이 슬그머니 얄미워진다.

내왕이의 보복이 두려워서 자기에게 감시의 임무를 맡겼고,

또 그가 월미와 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알고도 둘을 결혼 시키도록 하라고까지 해놓고서

남이 애써 그녀석의 속마음을 알아내어 보고를 하니까

자기가 무슨 성인군자라도 되는 것처럼 그따위 소리를 태연하게 지껄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놈이 또 무슨 말을 했는지 알기나 해요?”

“무슨 말을 했는데?”

“글쎄 당신하고 나한고 짜고서 난쟁이 행상 무대를 독살했다는 말까지 하더라지 뭐예요.

그러면서 그런 악질은 살려두면 안된다면서 제 손으로 두 연놈을 처치해 버릴 테니

두고 보라고 큰 소리를 치더라는 거예요”

내흥이로부터 들은 얘기를 월등히 부풀려 가지고 반금련은 지껄여 댄다.

그래야 서문경이 핏대를 세울 것 같아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말에는 그만 서문경도 대번에 안색이 달라지며 내뱉는다.

“그게 정말이야?”

“정말이라니까요. 내흥이를 불러다가 물어 보시라구요”

“그런 때려죽일 놈이 있나. 그놈의 아가리를 찢어놓아야겠는데...”

“글쎄 그래야 된다니까요. 선수를 쳐야 된단 말이에요”

“알았어”

 

 

투옥 68 

 

 

 

 내왕이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성인군자처럼 굴던 서문경은

 

자기의 아픈 데를 찔리자 그만 심사가 벌떡 뒤집혀 가지고 당장 그 자리에서

 

반금련과 선수를 어떻게 치는 게 좋을지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했다.

먼저 내왕이 그놈을 죽여 없애느냐, 어떻게 하느냐,

 

 그것부터 상의를 했는데, 반금련은 감쪽같이 죽여 없애는 것이 뒤탈이 없고

 

가장 안심이 되는 현명한 방법이라고 했다.

 

그러나 서문경은 죽이는 것까지는 너무하다는 생각이었다.

 

자기가 데리고 있는 하인일 뿐 아니라,

 

그의 아내를 빼앗기도 한 터이어서 심장에 털이 돋아나고 낯가죽이 쇠가죽 같은

 

서문경이지만 일말의 가책은 있어서 목숨까지 빼앗는다는 것은 너무하다 싶었다.

 




무대와 장죽산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생각이었다.

장죽산은 자기에게 도전을 한 셈이었고,

무대는 자기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한낱 미천한 행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리고 어쨌든 두 사람의 멀쩡한 목숨을 빼앗고 보니 결코 뒷맛이 개운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남의 목숨에 또 손을 대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남몰래 해보기도 했었다.

“죽이지는 말고, 죄를 뒤집어 씌워 가지고 관가에 넘기기로 하자구.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관가에서 풀려 나오면 그놈이 더 앙심을 품고 기어이 복수를 하러 들 것 아니에요”

“글쎄 관가에 넘겨지기만 하면 내가 알아서 처리한다니까.

당신은 그런 걱정은 말고, 무슨 죄를 어떻게 뒤집어씌우면 꼼짝없이 뒤집어쓰게 될지

궁리를 해 보라구. 나도 연구를 해 볼 테니까”

“그러죠. 당장 이 자리에서는 잘 생각이 안 나니까, 궁리를 한 다음 다시 의논하죠.

여보, 그런데 말이에요,

실은 내흥이를 내가 끌어들여 가지고 내왕이의 감시를 시켜 왔다구요.

 그래서 조금 전에 내흥이한테서 그런 정보가 들어왔지 뭐예요”

“응, 그렇게 됐군”

“그러니까 내흥이한테도 얘길 해서 어떤 방법이 좋을까 같이 상의를 하는 게 옳겠어요.

어차피 내왕이에게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우려면 하수인이 필요하거든요”

“그렇지. 그럼 내흥이한테 당신이 얘기하라구. 당신의 끄나풀인 셈이니까”

“끄나풀이라 그러지 말아요. 듣기가 흉하다구요. 우리를 위해서 애써 주는데...”

“그래, 끄나풀이든 염탐꾼이든 좌우간 당신이 알아서 잘 조종하라구”

“그러나 당신하고도 사전에 한 번은 만나야 된다구요.

앞으로 할 일은 감시를 시키는 것과는 다르니까요.

당신 입에서 직접 분부가 떨어져야 제대로 움직인단 말이에요.

 내가 내왕이의 감시를 부탁했을 때 조건을 달더라구요.

나중에 식품 조달계를 도로 자기에게 돌려 달라고요”

 

 

투옥 69회 

 

 

 

 “그야 말할 필요도 없지. 내왕이를 내쫓고 나면 그 직책은 도로 내흥이에게 돌아갈 수밖에...

 

그것뿐이겠어. 내흥이가 우리 수족이 되어 이번 일을 잘 해내면 상금을 단단히 줘야지”

“그러니까 그런 얘기도 해줄 겸 사전에 한번 만나야 된다니까요”

 




“알았으니까 우선 얘기를 해서 좋은 방법을 생각해 보도록 이르라구.

그런 다음에 셋이 만나서 의논을 하면 되잖아. 그 때 그런 말도 해주고...”

“예, 그럴게요”

“그럼 내일 이맘 때 모이기로 할까?”

“그러죠”

“내흥이한테도 내일 이맘 때 내 방으로 오도록 이르라구”

“물론이죠”

반금련은 곧바로 내흥이를 찾아가 은밀히 얘기를 했고,

 내흥이도 처음에는 좀 주저하는 듯했으나 마지 못하는 듯 동의를 했다.

기왕에 끌려든 일이고, 또 자기가 조금 전에 반금련에게 내왕이가 술에 취해서

그런 소리를 하더라는 정보를 제공했으니, 물러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 일을 잘 해내면 식품 조달계를 도로 맡게 해줄 뿐 아니라,

상금까지 후하게 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하기도 했다.

그리고 선수를 치되 내왕이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관가에 넘겨 옥살이를 시킬 모양이니 조금은 가책이 덜 하기도 했다.

이튿날 아침나절 서문경의 거실에 세 사람이 모여 방문을 닫아걸고 마주 앉아 모의를 했다.

물론 모의에 들어가기 전에 서문경은 내흥이의 노고를 치하해 주었고,

앞으로의 일을 감쪽같이 잘 해내기만 하면 식품 조달계를 도로 맡게 해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상금을 섭섭지 않도록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내왕이에게 어떤 죄를 뒤집어 씌워서 관가에 넘길 것인지,

각자 생각해 온 것을 내흥이부터 얘기를 해나갔는데,

그는 내왕이를 방화범으로 몰면 어떠냐는 의견이었다.

내왕이가 집에 불을 지른 것처럼 꾸민다는 것이었다.

반금련은 살인미수범으로 조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제 입으로 모조리 죽이겠다는 말을 했으니,

그렇게 꾸미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했다.

두 사람의 의견을 들으면서 서문경은 대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가지가 다 그럴듯하다 싶었던 것이다.

“나는 말이야, 그 녀석을 도둑으로 몰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구.

그 녀석 성격으로 봐서 그게 제일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거든”

서문경은 도범(盜犯)으로 몰자는 생각이었다.

방화범, 살인미수범, 도범, 세 가지를 놓고 세 사람은 어느 것이 가장 덮어씌우기에

손쉽고 증거도 확실한 것을 만들 수가 있는지,

 말하자면 범죄 조작의 타당도(妥當度)를 검토 했다.

의견을 주고받다가 반금련이 불쑥 말했다.

“세 가지를 다 덮어씌우자구요”

 

 

투옥 70회 

 

 

 

 그 말은 내왕이에 대해서 반금련이 가장 증오를 느끼고 있다는 표시인 셈이었다.

 

 ‘남편을 독살한 년’이라는 말은 그만큼 그녀의 감정을 극단으로 밀어붙였던 것이다.

“세 가지를 다요?”

 

내흥이는 좀 너무하지 않으냐는 표정이었다.

내왕이에게 별로 감정이 없으니 절로 그런 반응이 나왔다.

“허허허...”

서문경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다.

역시 삼인 공모조(共謀組)의 우두머리답게 여유가 있는 셈이다.

웃고 나서 서문경은 말한다.

“그것이 좋겠는데... 그래야 세 가지 중에 한두 가지는 성공을 할게 아니야.

세 가지 다 성공하면 더욱 좋고...”

“그렇게 하자구요. 내흥이는 어때?”

반금련이 묻자,

“그러지요 뭐”

내흥이도 쉽사리 동의를 한다.

자기는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처지이니 뭐 군말이 필요하겠느냐는 그런 표정이다.

그 세 가지 죄목을 내왕이에게 어떤 식으로 덮어씌울 것인지,

이번에는 구체적인 방법을 의논했다.

방화범으로 몰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한 내흥이부터

자기가 생각해 본 방법을 늘어놓았고, 서문경과 반금련이

그 방법에 대해서 좀 더 치밀하고 완벽하게 보충을 하는 식으로 모의를 진행시켰다.

반금련의 살인미수범 조작과 서문경의 도범 조작의 방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세 가지 죄목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이 결정되자,

다음은 그 세 가지 범행 조작을 따로따로 실시하느냐,

아니면 동시에 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동시에 실시하려면 약간의 어려움이 따를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렇게 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지,

그렇지 않고 따로따로 실행해서는 세 가지 죄목을 다 덮어씌우기는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세 가지 죄목을 다 뒤집어 씌워야 옥살이를 시켜도 오래 시킬 수가 있지 않겠느냐고,

역시 내왕이에 대한 감정이 가장 안 좋은 반금련이 강력히 주장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세 가지 방법을 어떻게 하나로 얽어서 한꺼번에 실시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았다. 그러나 그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세 사람 가운데서 반금련의 머리가 그런 방면에는 가장 재빠르게 돌아가는 듯

곧 이렇게 이렇게 해서 그렇게 그렇게 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허허허... 역시 당신은 알아줘야 돼. 책임지고 당신이 그렇게 잘해내라구. 때는?”

“일은 서둘러야 된다구요. 미룰 게 없잖아요. 당장 오늘밤에 해치우죠 뭐”

“그러자구”

“그리고 말이에요. 이 일에 춘매를 끌어들여야겠어요.

그래야 감쪽같이 해낼 수가 있을 것 같애요”

“그거야 당신이 알아서 하고. 절대로 비밀이 안 새도록 단단히...”

“염려 마시라구요”

말하자면 모의는 깨끗이 마무리가 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