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106)
투옥 56회
“왜 안 돼? 헤어지지 않으면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끝장이 나도 좋다는 거야, 뭐야?”
“이대로 헤어지면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요.
월미 그년만 좋을 거 아니냔 말이에요. 난 그런 꼴 못 봐요.
그 배은망덕한 못된 년이 당신 아내가 되어 살아가는 꼴을 내가 어떻게 본단 말이에요.
난 절대로 그렇게 못해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어디 말해 보라구”
“그년을 내쫓고 말 거예요. 도저히 분해서 그대로 내버려둘 수가 없어요.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고 드는 년을 인간이라고 데리고 있나요. 안 그래요?”
“내쫓으면 월미가 그냥 순순히 쫓겨나갈 것 같애? 어림도 없다구.
당장 우리 관계를 터뜨리고 말거라구.
그건 자살 행위와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돼”
“당신하고 헤어지느니보다는 차라리 둘이 같이 끝장이라도 나버리는 게
오히려 속 시원하겠다구요”
손설아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내왕이는 가슴이 멍멍해져서 더 뭐라고 말이 나오지가 않는다.
자기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그 말 속에 짙게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손설아는 슬픔에 젖은 듯한 그런 간절한 어조로 말을 잇는다.
“난 이제 당신 없이는 못 산다구요.
당신을 월미한테 빼앗기고 살아서 무엇 하겠어요.
그러니까 기어이 나하고 헤어지려거든 죽여주어요.
날 죽이고서 월미한테 가란 말이에요”
“..........”
“여보, 왜 말이 없죠. 예? 자, 내가 싫거든 날 죽여 달라구요”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으며 손설아는 내왕이에게 다가가 몸을 내맡기듯
그의 가슴 안에 무너진다.
그리고 솟구치는 설움을 참을 길이 없는 듯 그만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기 시작한다.
내왕이는 적이 당황한다.
코허리가 시큰해지는 것을 어쩌지 못해 흐흑 하고 숨을 들이쉬며
그녀를 지그시 끌어안는다.
그녀의 울음소리가 한결 높아진다.
여자의 사무친 한(恨)같은 것이 줄줄 녹아내리는 듯한 그런 울음소리다.
내왕이는 가슴이 멍멍하게 벅차오르고,
코 안이 뜨끈하면서도 축축하게 젖어드는 것을 느끼며 잠시 말이 없다.
그러다가 훌쩍 콧물을 들이마시고 나서 목이 잠긴 듯한 소리로 나직이 속삭이듯 말한다.
“여보, 인제 그만 울어. 당신의 마음을 알았으니까”
그 말에 더욱 울음소리가 높아졌다가 곧 그녀는
흐흑 흐흐흑 하고 크게 어깨를 들먹이며 울음을 그친다.
내왕이는 가슴에 안긴 그녀를 침상에 눕힌다.
그리고 그 곁에 바싹 다가 누워 그녀를 여느 때보다
월등히 간절한 그런 심정으로 끌어안는다.
투옥 57회
손설아와 내왕이의 관계는 아직 월미밖에 아는 사람이 없었으나
내왕이가 월미를 데리고 잤다는 소문은 곧 집안에 퍼졌다.
부엌 아낙네들한테서 말하자면 그 정보를 입수한 내흥이는 곧바로
반금련을 찾아가 보고를 했고, 또 반금련은 지체 없이 서문경에게 가서 알렸다.
그 말을 듣자 서문경은 대번에,
“됐어 됐어. 허허허...”
썩 잘 된 일이라는 듯이 껄껄 웃었다.
내왕이와 월미가 그런 관계가 됐다면 이제 문제는 해결이 된 거나 다름이 없다 싶었던 것이다.
송혜련을 단념하고, 대신 월미에게 눈을 돌린 게 틀림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말이야 월미를 내왕이한테 시집보내도록 하라구. 그게 좋지 않겠어?”
“그럼 일은 깨끗이 끝나는 거죠”
“당신이 책임지고 그렇게 처리를 해버려. 알겠지?”
“염려 마시라구요”
반금련도 일이 의외로 쉽게 매듭이 지어진다 싶어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그러면서도 한편 좀 싱겁게 끝나는 것 같아 별로 재미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일이 꼬일 대로 꼬이고, 팽팽히 당겨질 대로 당겨졌다가 아슬아슬하게 해결이 돼야
신명이 나는데 말이다.
월미를 내왕이에게 시집보내는 임무를 부여받은 반금련은 우선 월미의 의사를 떠보려고
춘매를 시켜 그녀를 자기 거실로 불렀다.
“월미, 오래간만이야, 자 좀 앉어”
월미는 무슨 일인가 싶은 듯 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반금련 마님의 맞은편 의자에
다소곳이 앉는다.
“전보다 예뻐졌는데... 눈빛도 곱고... 무슨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지?”
반금련은 생글생글 눈웃음을 웃으며 말한다.
예쁘다는 데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
월미의 얼굴에도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내가 월미를 부른 건 말이야, 다름이 아니라, 저... 월미를 시집 보내줄까 해서야”
대뜸 본론부터 꺼낸다.
뜻밖의 말에 월미는 어리둥절해진다.
난데없이 반금련 마님이 자기를 시집 보내주겠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다.
“월미 나이가 아마 꽤 됐을걸. 시집 갈 때가 늦었지 않았어?”
“모르겠어요”
“모르다니, 하하하... 쑥스럽다 그거지? 지금 몇 살이지?”
“열아홉이에요”
“열아홉이면 늦었고말고. 서둘러 결혼을 하는 게 좋겠어. 안 그래?”
“히히히...”
“왜 웃지? 좋다는 뜻이겠지. 그렇지?”
“예”
월미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한다.
투옥 58회
“누구한테 시집 보내줄까?”
반금련은 약간 장난스럽게 묻는다.
월미는 살짝 얼굴을 들어 힐끗 반금련 마님을 한번 바라보고는 도로 시선을 내리깐다.
“대답해 보라구. 월미가 원하는 남자한테 시집 보내줄 테니까”
“..........”
“이제 보니까 월미가 퍽 수줍음을 타네. 그게 좋지.
처녀는 수줍음이 많아야 된다구. 나도 처녀 땐 무척 수줍음을 탔었다구.
그러나 말이야 내가 지금 농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마음에 있는 말을 솔직하게 얘기하라구.
나 혼자서 월미를 시집보내려고 하는 게 아니거든”
“그럼 또 어떤 분이?”
월미는 이제 수줍음을 떨쳐버리고 고개를 들어 똑바로 반금련 마님을 바라보며 묻는다.
“그야 뻔 하잖아. 주인어른이지 누구겠어.
주인어른이 말이야 나한테 월미를 시집 보내주도록 하라고 분부를 하시더라구”
“어머, 그래요?”
월미는 약간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러니까 주저할 것이 없이 솔직하게 대답을 해봐.
누구한테 시집을 갔으면 좋겠어?”
“제가 원하는 대로 보내주실 건가요?”
‘물론이지. 싫은 사람한테 억지로 보내겠어“
“저...”
그래도 선뜻 입이 열리지가 않는다.
“내가 다 알고 있는데 뭐. 월미가 누굴 좋아하는지...
알아맞혀 볼까? 내왕이잖아. 맞지?”
“예”
서슴없이 대답하고 월미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또 고개를 떨군다.
“하하하... 부끄러울 것 하나도 없다니까.
좋아, 그럼 내왕이한테 시집을 보내주지.
월미 시집보내는 일을 내가 맡았으니까,
앞으로 나하고 자주 만나야 될 거야.
내가 부르거든 만사 제쳐두고 곧 달려오라구. 알겠지?”
“예”
“그럼 그쯤 알고 돌아가 있으라구”
월미는 의자에서 일어서려다가 무슨 궁금한 것이 있는 듯한 표정을 하며 도로 궁둥이를 내린다.
“저... 마님, 한 가지 물어보겠는데요”
“뭔데? 물어보라구”
“내왕이 그이의 아내는 어떻게 되나요?
송혜련 아줌마 말이에요.
제가 그이한테 시집을 가도 아줌마가 가만히 있을까요?”
“그런 걱정은 조금도 할 필요가 없다구.
송혜련이가 주인어른의 것이 된 줄을 월미는 모른단 말이야?”
“알기는 알아요”
“그럼 됐지, 무슨 쓸데없는 걱정을...”
“예, 잘 알았어요.
그리고 말이에요,
저... 우리 마님한테 얘기를 할까요?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요?”
투옥 59회
반금련은 잠시 생각해본 다음 좀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자기와 사이가 좋지 않은 손설아가 들먹거려지니 그런 모양이다.
“아직 얘길 하지 말라구.
그 얘기는 일이 다 된 다음에 내가 직접 하든지,
주인어른께서 하도록 하는 게 좋겠다구.
미리 얘길 하면 그 여자 성질로 봐서 틀림없이
기분나빠하며 방해를 하려 들지도 모른다구.
월미 시집보내는 일을 자기를 제쳐두고 내가 맡아서 한다고 말이야.
더구나 월미는 손설아의 조카뻘이 된다면서?”
“예, 마님이 알면 틀림없이 화를 내며 방해를 할 거예요. 왜냐 하면...”
월미는 말을 뚝 멈춘다.
그 까닭, 즉 내왕이와 깊은 관계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부지중에 입에서 나오려 했던 것이다.
만약 그 말을 했다가는 일이 엉뚱하게 터져서
내왕이와 마님의 신세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며,
자기가 내왕이에게 시집가는 일도 다 틀려버릴 게 뻔하다.
말을 하려다가 말고 월미는,
“예, 잘 알았습니다. 마님, 그럼 가볼게요”
하고 후닥닥 의자에서 일어나 마치 도망이라도 치듯이 얼른 거실을 나가버린다.
반금련은 계집애가 왜 저러나 싶어서 멀뚱히 바라본다.
월미의 의사를 타진했으니, 다음은 내왕이 차례였다.
이제 내왕이만 승낙을 하면 일은 다 된 거나 마찬가지다.
손설아 따위가 기분나빠하거나 말거나 상관없다.
가장인 서문경의 뜻으로 하는 일인데,
제까짓 게 감히 어쩔 것인가 말이다.
곧 내왕이를 자기의 거실로 부를까 하다가 반금련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무리 하인이긴 하지만,
그의 아내를 꾀어내듯이 해서 자기가 데리고 있는 터인데,
더구나 지금 그녀가 바로 옆방에 있는데,
그를 이곳으로 오게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피차 난처하다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반금련은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나서 곧 내왕이를 만나러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혼자 저녁을 먹고 있던 내왕이는 뜻밖에 반금련이 찾아오자
무슨 일인가 싶어 꽤나 당황했다.
“아이고, 혼자서 저녁을 먹고 있구먼. 쯧쯧쯧...”
안됐다는 듯이 반금련은 혀를 차면서 침상 곁에 놓여 있는
조그마한 나무 의자에 가서 궁둥이를 내린다.
“웬일로 이런 누추한 곳을 다 찾아오십니까?”
내왕이는 젓가락을 놓고, 약간 긴장이 된 표정으로 반금련을 바라본다.
“왜? 내가 찾아오면 안 되는가? 처녀는 찾아와도 괜찮고...”
반금련은 일부러 생글생글 웃으며 농담조로 말한다.
투옥 60회
‘처녀는 찾아와도 괜찮고’라는 말에 내왕이는 가볍게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다.
월미를 두고 하는 말에 틀림없는 것이다.
자기와 월미의 관계가 이미 반금련의 귀에까지 들어갔는가 싶으니,
말이라는 것은 참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든다.
비밀이란 이렇게도 지켜내기가 어려운 것이라면 손설아와의 관계도 어쩌면
곧 탄로가 나는 게 아닌가 싶어 더욱 불안하다.
내왕이가 바짝 굳어드는 듯하자,
반금련은 재빨리 말머리를 돌리듯 한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지껄인다.
“혼자서 저녁을 먹고 있는 걸 보니 안됐지 뭐야. 여자는 혼자 살아도 괜찮지만,
남자는 홀애비 신세가 되면 궁상맞아서 볼 수가 없다구.
그러니까 내왕이도 어서 여자를 하나 얻는 게 좋지 않을까? 어때?”
“나는 홀애비가 아니라구요”
불쑥 이렇게 내왕이는 내뱉듯이 말한다.
반금련의 말이 못마땅하기만 했던 것이다.
그녀가 하필 남 저녁 먹고 있는데 찾아온 것부터가 기분이 안 좋은데,
여우처럼 겉으로는 동정을 하는 척하며 그 따위 말을 지껄이니
그만 참을 수가 없어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고 말았다.
송혜련을 빼돌려 자기 밑에 데리고 있으면서 밤에 곧잘 서문경이와 셋이서
개 같은 지랄을 한다는 것까지 이제 다 알고 있는데, 병 주고 약 주는 격으로
어디서 그런 뻔뻔스러운 말이 나오느냐 말이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내왕이의 입에서 그런 퉁명스러운 소리가 튀어나오자,
반금련은 약간 당황했다. 속으로 야, 이것 봐라,
싶으면서도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오히려 더 코언저리에 미소를 짙게 떠올리며 말한다.
“홀애비가 아닌데 그럼 왜 혼자서 저녁을 먹고 있지?”
“몰라서 물으세요?”
“송혜련이를 아직 자기 마누라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아냐?”
“착각이라뇨? 그럼 내 마누라 아니고, 누구 마누라란 말인가요?”
“이제 보니 내왕이 상당히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군.
송혜련이가 남이 된지 벌써 언젠데,
아직까지 혼자서 자기 마누라라고 생각하고 있지? 호호호...”
반금련은 나오지도 않는 생웃음을 억지로 웃는다.
그런 그녀를 똑바로 쏘아보며 내왕이는 거침없이 뇌까린다.
“누가 뭐래도 송혜련은 내 마누라라구요.
지금은 비록 꾐에 빠져서 내 곁을 떠나 있지만,
언젠가는 정신을 차리고 나한테 돌아올 거라구요.
두고 보세요. 내 말이 틀리는가”
“하하하...”
“왜 웃어요?”
“내왕이가 이제 보니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게 아니라,
무척 순진하군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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