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07) 투옥 <61~65회>

오늘의 쉼터 2014. 6. 29. 13:04

 

금병매 (107)

 

 

 

투옥 61회 

 

 

 

 송혜련이 뉘우치고 돌아온다고 해도 더러워서 받아들일 생각이 조금도 없으면서

 

내왕이는 반금련이 얄밉고 아니꼬워서 속에 없는 말을 억지를 부리듯 계속 지껄인다.

“순진하고 안순진하고가 어디 있어요. 두고 보라구요. 틀림없이 돌아올 거니까”

 




“만약 안 돌아오면 어쩔 테야?”

“안 돌아오면 가만히 내버려 두나요”

“가만히 안 내버려 두면 어떻게 한다는 거지?”

“까짓것 이판사판이니...”

“그래서?”

반금련은 절로 긴장이 되는 듯 표정이 굳어든다.

‘죽여 버리죠 뭐’라고 내뱉으려다가 차마 그런 말까지 입 밖에 내서는

안 되겠다 싶은 듯 내왕이는 반금련을 노려보듯 바라보며 말이 없다.

“그래서 어쩐다는 거야? 이판사판이니까...”

“.........”

“응?”

“어떻게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구요. 그건 그 때 가봐야죠”

“아이구, 내왕이가 이제 보니까 큰일 낼 사람이네. 이 사람아,

여자 하나 때문에 신세 망칠려고 그러나?”

“그럼 마누라를 빼앗기고도 모르는 척 가만히 있어야 되나요?”

“마누라는 무슨 놈의 마누라...

남편이 없는 동안에 화냥질을 해서 등을 돌린 여자를 마누라라니...

세상에 어디 여자가 없어서 끝내 그런 생각을...

그러지 말고, 이 사람아, 생각을 돌려 먹으라구. 차라리 잘됐지 않은가.

그런 더러운 여자를 버리고, 새 처녀한테 장가를 들면...

안 그래? 생각을 그렇게 먹어야 마음도 편하고, 앞날도 훤해지는 거라구.

자기를 배반한 여자 때문에 신세를 망쳐서야 쓰겠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내왕이는 조금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가만히 듣고만 있다.

내왕이가 좀 수굿해지는 듯하자, 반금련은 다시 얼굴에 엷은 미소를 떠올리며

한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니까 내 말을 듣는 게 현명하다구. 벌써 좋아하는 처녀가 있다던데 뭐.

내가 모를 줄 알아? 다 알고 있다구. 누군지 알아맞혀 볼까?”

“..........”

“왜 대답이 없어? 호호호... 부끄러운 모양이지. 사내대장부가 부끄럽긴... 월미지? 맞지?”

내왕이는 대답 대신 그만 히죽 웃어 버린다.

“송혜련이보다 월미가 얼마나 더 나으냐 말이야. 얼굴은 좀 못할지 모르지만,

마음씨가 그만이잖아. 사람은 마음씨가 좋아야지, 얼굴만 고와서는 안 되는 거라구.

뭐 얼굴 뜯어 먹고 사나. 안 그래? 그러니까 월미한테 장가를 들도록 하라구.

그게 내왕이한테 어느 모로나 득이라구. 처녀한테 새장가를 드는 게 어디냐 말이야”

 

 

투옥 62회 

 

 

 

 내왕이는 말없이 히죽히죽 웃고만 있다.

 

속으로는 꽤나 착잡하고, 입맛도 씁쓰레하다.

 

월미하고만 관계가 되어 있다면 반금련의 말을 그대로 좇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손설아가 또 있질 않은가 말이다.

 

그녀를 제쳐두고 월미한테 장가들기는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처지다.

“왜 아무 말이 없지? 내 말대로 하는 거지?”

 




반금련이 다그치듯 묻는다.

난처해서 내왕이는

“생각해 보고요”

하고 대답한다.

“생각해 보기는 뭘 생각해봐. 벌써 월미를 데리고 자기까지 해 놓고서...

월미가 숫처녀더라면서? 맞지? 내 말이....”

“몰라요”

약간 볼멘소리로 불쑥 내뱉는다.

“모르긴... 데리고 자 봤으면 다 알 수 있는 거지.

숫처녀를 따 먹고 차버리면 죄로 간다구. 알겠어?”

“글쎄, 생각해 본다니까요”

내왕이는 이제 귀찮은 기색이 역력하다.

“좋아, 그럼 잘 생각해 보도록 하라구. 장가 가는 일을 당장 이 자리에서 결정할 수는 없겠지.

이삼일내로 마음을 정해서 나한테 알려주면 좋겠어. 그러면 내가 잔치를 서둘도록 할 테니까”

반금련은 이제 용건을 마친 셈이어서 나무 의자에서 일어나 방문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러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멈추어 서서 내왕이를 돌아보며 입을 연다.

“참, 월미는 말이야 승낙을 했다구.

 내왕이 자네에게 시집을 보내주겠다니까 좋아서 못 견디던데...”

“그래요?”

내왕이의 두 눈에 기쁜 듯한 빛이 어린다.

 그러나 여전히 속은 착잡하다.

“그러니까 잘 생각해서 월미를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알겠지?”

대답은 없이 내왕이는 씩 조금 웃기만 한다.

곤혹스러운 그런 웃음이다.

“그럼 난 가네. 어서 저녁을 마저 먹게. 음식이 다 식었겠는데...”

반금련은 일부러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방문 밖으로 사라진다.

당장 확답을 받아내지는 못했으나,

반금련은 십중팔구 내왕이가 월미와의 결혼을 승낙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혹시 모를 일이어서 마음이 푹 놓이는 것은 아니었다.

일말의 불안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서문경의 분부가 있어서 자기가 두 사람의 결혼을 주선하게 됐다는

말을 안 한 게 찜찜했다.

그 말까지 했더라면 틀림없이 내왕이가 거절을 못할 터인데 말이다.

그렇다고 그 말을 하러 다시 찾아갈 수도 없는 일이어서 이튿날 반금련은

내흥이를 불러 자초지종을 대충 얘기하고서 그게 서문경의 분부라는 말을

내왕이에게 전하도록 했다.

그래서 내왕이가 월미와의 결혼을 거절 못하도록 하라고 일렀다.

 

 

투옥 63회 

 

 

 

 내흥이는 그날 해질 무렵 내왕이를 술집으로 유인했다.

 

저녁때라 술 생각이 났을 뿐 아니라,

 

그런 얘기는 아무래도 술이 한 잔 들어가야 자연스럽게 펼쳐질 것 같았던 것이다.

“내왕이, 자네 나한테 술 한 잔 살 용의 없나?

 




내흥이가 말문을 떼자,

내왕이는 평소에 늘 그에게 속으로 미안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이라 서슴없이,

“사고 말고”

하고 대답했다.

술집을 찾아간 두 사람은 마주 앉아 독한 고량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내왕이는 자기 분수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안주를 시켰고,

술도 말할 것 없이 자기가 먼저 내흥이의 잔에 따라 주었다.

나이는 내흥이가 두어 살 아래인데도 말이다.

고량주여서 취기가 빨랐다. 내흥이도 술이 꽤 센 편이었지만,

두 잔을 비우고 나자 관자놀이께가 발딱발딱 뛰면서 기분이 혼혼해 왔다.

그래서 자연스레 본론(本論)이 입에서 이끄러져 나왔다.

“얘길 들으니 내왕이 자네 횡재를 했더구먼”

내왕이도 이미 눈언저리가 발그레 물들어 오르고 있었다.

“횡재를 하다니, 무슨 소린가?”

약간 긴장이 된다.

혹시 내흥이가 남의 무슨 구린 데라도 건드리려고 그러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식품 조달계란 흑심을 먹지 않아도 곧잘 고물이 떨어지는 자리여서 지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새장가를 들게 된다면서? 더구나 처녀한테... 그보다 더 큰 횡재가 어디 있는가. 안 그런가?”

“허허허...”

구린 데를 건드리려는 게 아니어서 내왕이는 절로 웃음이 나온다.

“좋겠네. 자네는... 날은 받았는가?”

“도대체 무슨 소리지? 처녀장가를 들다니, 누가 그러던가?”

“소문이 났던데 뭐. 시치미 떼지 말라구”

내흥이는 단수 높게 이런 식으로 이미 내왕이와 월미의 혼사가 결정된 것처럼

얘기를 이끌어 나간다.

“실은 말이야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내왕이는 내흥이가 반금련의 밀명(密命)을 받고 자기에게 접근해서 수작을 부리고 있는 줄을,

다시 말하면 그녀의 끄나풀 노릇을 하고 있는 줄을 꿈에도 모르고,

그 소문에 대한 해명을 하듯이 털어 놓는다.

“어제 저녁에 반금련 마님이 난데없이 불쑥 나를 찾아 왔더라구.

집에서 혼자 저녁을 먹고 있는 데 말이야”

“그래서?”

내흥이는 재미있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 데고 묻는다.

“뭐라 그러는가 하면, 여자는 혼자 살아도 괜찮지만,

남자는 홀애비 신세가 되면 궁상맞아서 볼 수가 없다면서 글쎄,

장가를 들라는 거지 뭐야”

 

 

투옥 64회 

 

 

 

 “자네가 혼자서 밥을 먹고 있는 게 보기가 딱했던 모양이지?”

“모르는 소리 말라구. 보기가 딱하다니, 누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데...”

 




“자네가 홀아비가 된 게 어디 반금련이 탓인가. 서문경이 탓이지”

내흥이는 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부러 그렇게 서슴없이 마님과 주인어른의 이름을 마구 들먹이며 지껄인다.

그래야 마음을 놓고 내왕이가 속에 있는 말을 쏟아낼 테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왕이도 맞장구를 치듯 함부로 혀를 놀 리가 시작한다.

내흥이가 자기편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만 마음의 끈이 느슨해지고 만 것이다.

“서문경이나 반금련이나 그놈에 그년이지 뭐. 지금 내 마누라가 어디 있느냐 말이야.

반금련이가 데리고 있잖아. 그걸 보면 다 알 수 있는 일이라구.

틀림없이 반금련이 그년이 내 마누라를 꼬셔내는 역할을 했을거라구.

 서문경이가 직접 유혹하지는 않았을 게 아니냐 말이야.

아무리 색골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체면이 있는데,

집안 어른이라는 자기가 직접 나서기야 했겠어. 안 그래?”

“글쎄, 그런지도 모르지”

내흥이는 그 내막까지는 실제로 모르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 송혜련이가 서문경의 여자가 되었는지,

그 자세한 내막은 내흥이 뿐 아니라,

집안사람들 거의 모두가 잘 모르고 있었다.

 동산의 석실 속에서 서문경과 송혜련이가 관계를 가지는 장면을 목격했던

반금련과, 두 사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다리를 놓아서 붙여준 옥소만이 알고 있었다.

“그래 놓고서 그 여우같은 년이 글쎄, 나를 찾아와서 무슨 선심이라도 쓰듯이 장가를 들라니

어쩌니 나불나불 지껄여대지 뭐야.

그년의 혓바닥을 뽑아버리고 싶더라구”

내왕이의 입에서 거침없이 ‘여우같은 년’이니,

‘그년의 혓바닥’이니 하는 말까지 나오자 내흥이는

그의 편을 드는 체하고 있으면서도 듣기가 거북한 듯

 조금 이맛살을 찌푸리며 그 말을 가로막듯이 말한다.

“내가 듣기는 말이야 반금련이가 선심을 쓰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서문경이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는 거야”

“그렇겠지 뭐. 반금련이 그년이 제가 뭔데 나한테 장가를 들여 주겠다고 나서겠어”

“그러니까 반금련이한테 그렇게까지 욕을 할 건 없다구.

반금련이도 서문경이가 시키니까 도리 없이 자네를 찾아간 거 아니겠어. 안 그래?”

“좌우간 그년이나 그놈이나 똑같다구. 난 분해서 참을 수가 없다 그거야”

내왕이는 앞에 놓인 잔을 들어 독한 고량주를 단숨에 들이대듯이 거칠게 내밀며,

“자, 받아. 씨팔 것 오늘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시자구”

하고 내뱉는다.

 

 

투옥 65회 

 

 

 

 “그래, 좋아. 자, 따르라구”

권하는 잔을 덥석 받으며 내흥이도 호기 있게 말한다.

 

그러나 그는 찰찰 넘치도록 따라주는 고량주를 한 모금만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같이 만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안주를 한 입 집어넣어 불룩 불룩 씹으며 내흥이는 이러다가는

자기가 반금련으로부터 은밀히 지시를 받은 임무와는 딴판으로 오히려

내왕이게 동조를 하는 결과가 되겠다 싶어서 이번에는 주저 없이 불쑥 말을 꺼낸다.

“자네 월미를 벌써 데리고 자기까지 했다면서?

그래서 월미한테 새장가를 들여주겠다고 하는 모양이던데?”

“맞다구. 월미가 제 발로 찾아왔더라구.

그래서 데리고 잤지 뭐.

임자 없는 처녀가 제 발로 굴러들어 왔는데 마다할 남자가 있겠어?

자네는 마다하겠나? 안 그래?”

내흥이도 취기가 올라 서슴없이 털어놓는다.

“그렇고 말고. 허허허...

그러니까 차라리 잘된 일 아닌가 말이야.

처녀한테 새장가를 들면 그게 어딘가? 이만저만한 횡재가 아니지”

“횡재고 뭐고 나는 싫다구. 내 마누라를 도로 찾고야 말겠어.

불알을 찬 사내가 제 마누라를 빼앗기고 그냥 딴 데 장가를 든대서야 말이 돼?

더구나 자기 마누라를 빼앗은 그것들이 보내주려는 장가를 말이야”

“그럼 도대체 어쩌겠다는 거지?

송혜련이는 이미 서문경이의 여자가 돼버렸는데,

어떻게 도로 찾는다는 거야?

도로 찾을 자신이 있어?”

“까짓것 못 찾으면 그 때는...”

“그 때는 뭘 어떻게?”

“끝장인 것이지 뭐. 저 죽고 나 죽으면 만사가 해결이라구”

“뭐라구? 저 죽고 나 죽다니, 그럼 송혜련이를 죽이겠다는 거야?”

“송혜련이뿐 아니라구. 모조리 죽여 버리겠어. 모조리, 모조리...”

내왕이는 독한 고량주 기운데 흰자위가 월등히 많아진 듯한 두 눈을 굴렁거리며

거침없이 내뱉는다.

마치 살짝 실성한 사람 같다.

“응, 알았다구. 알았어”

내흥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코언저리에 웃음을 떠올린다.

야 이놈아, 네가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하는 그런 냉소다.

독한 고량주가 화근이었다.

내왕이는 내흥이의 부축을 받으며 술집을 나와 귀가를 하면서도

정말 머리가 뒤집혀버린 사람처럼 곧장 허공에다 대고 주먹질까지 해대며

입에 거품을 물고 ‘서문경이 그놈을 내가 안 죽이는가 보라’느니,

‘반금련이 그년은 제 서방을 독살한 년인데, 살려두어서 되느냐,

 내 손으로 처치해 버리겠다’는 따위 말을 혀 꼬부라진 소리로 뇌까려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