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05) 투옥 <51~55회>

오늘의 쉼터 2014. 6. 29. 12:18

 

금병매 (105)

 

 

 

투옥 51회 

 

 

 

 “왜 때려요. 왜”

“이년이 그래도 잘했다고 말대꾸야?”

 




“내가 잘못한 게 뭐 있어요? 결혼할 거라는데 왜 때리느냐 말이에요.

그이가 먼저 결혼하자 그랬다구요. 알겠어요?”

“뭣이 어쩌고 어째?”

“가서 물어보라구요. 거짓말인가...”

손설아는 또 말문이 막히며 부들부들 떤다.

뺨을 맞은 월미는 아무래도 분을 못 참겠는 듯

그만 지금까지 자제해 왔던 말을 내뱉고 만다.

“마님이 왜 이러는지 내가 모르는 줄 알아요? 다 알고 있다구요”

“뭐라구?”

“자기 애인을 나한테 빼앗길까봐 그러는 거 아니고 뭐예요”

“아니, 이것이...”

손설아는 그만 새파랗게 질린다.

“난 처녀지만, 마님은 남편이 있잖아요.

남편이 있는 몸이 딴 남자하고 놀아나도 되는 거예요?”

“아가리 닥치지 못해?”

“왜요? 내가 틀린 말을 했나요?”

사팔뜨기 눈으로 날카롭게 쏘아보는 월미를 손설아는 또 냅다 그만 한 대 올려붙인다.

“이이고! 왜 때려요? 아응-”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월미는 정신없이 악을 쓴다.

“이년이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어.

당치도 않은 말을 함부로 지껄였다가는 정말 죽여 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

“뭐가 당치도 않은 말이에요?

그래 마님이 내왕이하고 같이 안 잤다는 거에요?

자도 한두 번 잔 게 아니라,

지금까지 대여섯 번은 된다구요.

내가 다 봤단 말이에요. 알겠어요?”

“이년이 사람 잡네. 정말, 아이고-”

눈앞이 아찔하면서도 손설아는 솟구치는 분을 못 참겠는 듯

 냅다 달려들어 월미의 머리끄덩이를 휘어잡고 마구 뒤 흔든다.

“아이고- 정말 사람 잡네. 사람 살려- 아이고 나죽네-”

질겁을 하고서 월미는 호들갑스럽게 소리를 내지른다.

밖에서 듣고 집안사람들이 몰려들까 두려워서 손설아는

얼른 머리끄덩이를 놓고, 후닥닥 한 팔로 월미의 목줄기를 휘감아 죄면서

한손으로는 아가리를 꽉 틀어막는다.

“으으음-음-”

월미는 신음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을 친다.

사팔뜨기인 눈이 허옇게 뒤집히자,

유난히 섬뜩해 보인다.

말하자면 마님과 그 몸종인 두 여자가 한 남자를 두고 연적(戀敵)이 되어

질투의 불꽃을 튀기면서 싸우고 있는 셈이다.

그 때 혜상이 황급히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

부엌에서 만두를 빚고 있다가 떠들썩한 기척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어머, 왜 이러세요. 마님, 참으시라구요. 예?”

월미의 목을 쥐고, 입을 틀어막아 질식사를 시킬 것만 같아서 달려들어 뜯어 말린다.

 

 

투옥 52회 

 

 

 

 그 날 내내 손설아는 분하고, 뒤숭숭하고, 불안하기도 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드디어 일이 터지기 직전에 이른 듯한 느낌이었다.

월미란 년이 어떻게 알고 어디서 엿보았는지, 정말 귀신이 곡 할 노릇이었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 바로 그런 격이었다.

 

그것의 눈에 띈 것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년이 한술 더 떠 내왕이에게 접근해서 그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 들다니,

 

정말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것은 바로 자기에 대한 도전이 아니고 무엇인가.

 

자기와 내왕이가 깊은 관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이에 뛰어들어

 

내왕이를 차지하려고 들었으니 말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더니,

 

바로 그런 배은망덕(背恩忘德)한 년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람을 잘못 봐도 이만저만 잘못 본 게 아니고,

품안에 호랑이 새끼를 키운 것만 같아 손설아는 후회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생각할수록 분하고 괘씸해서 이를 뿌드득 갈기도 했다.

비단 괘씸한 것은 그년뿐이 아니라,

 내왕이도 마찬가지였다.

자기와 그처럼 절절한 사랑을 나누고 있으면서 뒷구멍으로는

또 월미를 좋아해서 데리고 자기까지 하다니,

사내 녀석이 여우같다는 생각이 들어 얄밉기 그지없었다.

월미가 혹시 예쁘기라도 하다면 또 모르겠는데,

그렇지도 않고, 곰보에다가 눈이 약간 사팔뜨긴데 무엇이 좋아서인가 말이다.

사내들이란 다 짐승 한가지라더니,

정말 더럽다 싶으면서도 묘하게 질투의 감정이 가슴 밑바닥을 긁는 듯해서

견딜 수가 없어 당장 내왕이를 찾아가서 붙들고 늘어지며 따지고 싶었다.

월미가 말한 대로 정말 결혼을 하자는 말을 내왕이가 먼저 했는지 캐묻고 싶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자기에 대한 명백한 배반이고 모욕이니,

도저히 그대로 참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내왕이를 찾아간다는 것은 곧 그와 자기와의 비밀을 스스로 집안에

터뜨리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꾹 눌러 참는 수밖에 없었다.

밤에 찾아오면 따지기로 하고 말이다.

그렇게 분한 생각과 착잡한 감정에 휘말려 있으면서도 한편 손설아는

문득 문득 고개를 쳐들곤 하는 불안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일이 아무래도 탄로가 날 것만 같은 두려움이었다.

자기에게 손찌검까지 당한 월미가 그냥 잠잠히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만약 그렇게 되어 서문경이 자기와 내왕이의 관계를 알게 되는 날이면

벼락이 떨어질 게 뻔했다.

어쩌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까짓것 아차하면 도망을 쳐버려야지 싶었다.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보따리를 꾸렸다.

도망칠 때 가지고 갈 값진 패물과 옷가지들만 골라 한 보따리 만들어서

쉽사리 꺼낼 수 있는 곳에 감추어 놓았다.

 

 

투옥 53회 

 

 

 

 그날 밤 삼경이 지나서 손설아를 찾아가는 내왕이는 꽤나 심정이 착잡했다.

 

자기와 월미가 어젯밤에 같이 잤다는 사실이 탄로가 나서 월미가 손설아에게

 

손찌검까지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엌 아낙네들이 얘기를 해주었던 것이다.

아침나절, 그러니까 손설아가 월미를 윽박지르고 있을 무렵에 내왕이는

 

 볼일을 보러 출타하고 없었다.

 

용무를 마치고 돌아오니 부엌 아낙네들이 히죽히죽 웃으면서 한마디씩 지껄였다.



“어젯밤에 새장가를 들었다면서요?”

“처녀장가를 들어서 좋겠수”

“한턱 내슈”

“차라리 아저씨한테 잘된 일이라구요.

혜련이 그년 봐요. 얼굴이 좀 반반하니까 어디 쓰겠어요.

월미가 얼굴은 좀 그렇지만 마음씨는 그만이라우.

 정식으로 장가들어서 잘 데리고 살아요”

처음에 이런 말들을 할 때 혜상은 입을 떼지 않고 좀 난처한 듯한 표정으로 웃고만 있었다.

자기가 발설을 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그녀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지 마님이 알고서 단단히 화를 냈다구요.

내가 봤는데, 월미를 죽일 듯이 입을 틀어막고, 목까지 조였지 뭐유.

마님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알 수가 없더라니까요.

그러니까 마님한테 잘 말씀을 드려서 승낙을 받는 게 좋을 것 같애요.

월미는 마님의 몸종일 뿐 아니라, 조카뻘이 된다잖아요.

 아마 그래서 그렇게 화를 냈을 거라구요”

내왕이는 속으로 우스웠다.

 아주머니 되는 입장에서 손설아가 화를 낸 줄 아니 말이다.

연애를 하는데도 승낙을 받아야 하나요, 하고 말하려다가 그만두고,

“예, 알았어요”

대수롭지 않은 듯이 대답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야, 이거 일이 난처하게 됐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손설아와 자기의 관계는 아직 탄로가 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좀 놓이기도 했다.

생각 같아서는 밤에 손설아를 찾아가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의 회피이지, 해결의 길은 아니었다.

어차피 그녀가 알게 되었으니,

찾아가서 사내답게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다고 마음먹었다.

내왕이는 아내를 빼앗기고서 난데없이 여자가 둘이나 굴러 들어와서

오히려 복이 터졌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도무지 떳떳하지가 못하고,

서로 묘한 관계로 얽혀 있어서 복이라기보다도 도리어 골칫거리를 안은 셈이었다.

월미가 손설아보다 먼저 접근해 왔더라면 그녀하나를 차지하고 말았을 것인데,

 일이 거꾸로 되어 심히 난처해지고 만 것이다.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손설아의 거실로 살그머니 들어서기는 했지만, 내왕이는 아무런 작정이 없었다.

그저 되는대로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투옥 54회 

 

 

 

 거실에 불은 켜져 있었다.

 

그러나 손설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불을 켜놓고, 문을 안으로 걸지 않은 것을 보니

 

그녀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해서 우선 내왕이는 긴장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방문을 안으로 걸고서,



“어험, 어험.”

남은 헛기침을 하면서 내왕이는 가만 가만 침실 쪽으로 다가갔다.

침실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여보, 여보, 자는거야?”

내왕이는 침상으로 다가가며 입을 연다.

아무 기척이 없다.

거실의 불빛이 문짝의 위아래로 비쳐 들어서 침상에 누워있는

손설아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녀는 눈을 감고 반듯이 누워있다.

잠이 들었는지, 아니면 일부러 자는 척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우선 내왕이는 침실에 불을 켜고, 가서 거실의 불을 꺼버린다.

그리고 돌아오니, 반듯이 누워있던 손설아가 저쪽으로 돌아누워 있질 않은가.

내왕이는 가만히 웃음을 떠올리며,

“안자면서 왜 자는 척하고 있어. 내가 찾아왔는데 반갑지도 않아?”

하고 약간 농담기 어린 그런 목소리로 말한다.

“흥!”

손설아는 그대로 돌아누운 채 콧방귀를 뀐다.

그리고 빈정거리듯이 지껄인다.

“뒷구멍으로는 다른 년을 좋아하면서 무슨 낯짝으로 찾아오는 거야.

곰보에다가 사팔뜨기인 계집애가 그렇게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지?

오늘 밤도 그 계집앨 끼고 자지, 왜 나한테 왔어?”

그 말투로 보아 아주 심하게 토라진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서 내왕이는

 여전히 히죽이 소리 없이 웃으며 응대한다.

“어떻게 된 내막인지도 모르고서 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못 쓰는 거라구.

내 얘기를 좀 들어봐. 일이 어떻게 됐는가 하면...”

내왕이는 침상 한쪽에 걸터앉으며 말을 잇는다.

“글쎄 월미가 말이야, 우리의 관계를 알고 있지 뭐야.

그 동안 번번이 엿보았다는 거야.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어디서 엿보았는지...

그러면서 뭐라 그러는가 하면 주인어른한테 일러바친다는 거야”

“그게 정말이에요?”

가만히 듣고 있던 손설아는 참을 수가 없는 듯 얼른 내왕이 쪽으로 돌아누우며 묻는다.

“정말이라구. 그래서 내가 안 되겠다 싶어서 월미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하룻밤 데리고 잤던 거라구.

그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생각해 보라구. 말로 타일러서는 안 될 것이고,

그렇다고 내가 뭐 돈이 있어서 돈으로 입을 틀어막겠어? 안 그래?”

“그럼 나한테 상의를 할 일이지, 데리고 자버리다니 말이 돼요?”

 

 

투옥 55회 

 

 

 

 “왜 말이 안 돼. 그 방법이 글쎄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니까.

 

그러고 나면 절대로 일러바치지 못할 거 아니겠어? 나를 봐서 말이야”

“그렇다고 데리고 자면 그년이 그 맛을 알고 안 떨어지려 할 거 아니냔 말이에요.

 

데리고 자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건가요? 더구나 처녀를...”

 




“월미가 그것을 원하기도 하더라구. 마님만 좋아하지 말고, 자기도 좀 좋아해 달라는 거야.

그러면 안 일러바치겠다고...”

“뭐라구요?”

어이가 없는 듯이 내뱉으며 손설아는 벌떡 일어나 앉는다.

겨우 좀 가라앉으려던 심사가 다시 휘떡 뒤집히는 것이다.

월미란 년이 괘씸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런다고 얼씨구 잘됐다 하고 데리고 잔 내왕이가 더 밉고, 분통이 터지는 것이다.

설사 그랬다 치더라도 대놓고 자기에게 그런 말까지 꺼내다니,

뭐 이런 머저리 같은 사내가 다 있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데리고 잤더니 결혼을 하고 싶도록 좋더라 그거야?

 자기 입으로 그년한테 결혼을 하자는 말을 했다던데..”

손설아는 다시 반말로, 사정없이 눈을 흘기며 쏘아 붙인다.

“누가 그래?”

“누가 그러긴... 그년이 그러지”

내왕이는 말문이 막힌다.

뭐라고 변명을 할까 망설이는데, 손설아가 마구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는다.

“사내면 좀 사내답게 놀라구.

겉으로는 나를 좋아하는 척하면서 뒷구멍으로는 딴 년한테 결혼하자는 말까지 하다니,

겉 다르고 속 달라도 분수가 있다구”

“뭣이 어째?”

마침내 내왕이도 화가 치솟는다.

“왜 내 말이 틀렸어? 사람을 업신여겨도 분수가 있다구.

그래 나하고 관계를 가지면서 뒷구멍으론 내 몸종하고 붙다니,

그게 잘 한 일이야? 더러워서 못 보겠다구”

그러자 내왕이는 더 듣고 있을 수가 없는 듯 불쑥 내뱉고 만다.

“못 보겠으면 안 보면 될 거 아냐.

나하고 관계를 끊으면 될 거 아니냔 말이야. 뭐가 그리 걱정이야”

그 말에 그만 손설아는 한 대 정통으로 얻어맞은 것처럼 당황하며 원망스러운

그런 눈초리로 쏘아보며 아무 말이 없다.

“이제 정리를 하자구. 그러잖아도 적당한 때 헤어지는 게 서로를 위해서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구. 바로 그 때가 온 거라구.

이대로 질질 끌다가는 곧 큰일을 당하고야 만다구.

서문경이가 알게 되면 당신도 끝장이고, 나도 끝장이라 그거야.

그렇게 되기 전에 헤어지는 게 좋아”

“안 돼요, 절대로 안 돼요. 난 이대로 헤어질 수는 절대로 없어요”

손설아는 다시 경어로 돌아가 결연히 내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