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94)
하인의 처 61회
“음, 그랬었구먼. 그래도 그렇지,
남자가 나라는 것을 알았으면 못 본 체 해야지, 뒤를 밟다니... 안 그래?”
“질투가 나는데 그럼 가만히 있나요”
서문경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끼자,
반금련은 일부러 애교 있게 투정을 하듯 말한다.
“허허허...”
서문경은 드디어 웃음이 나온다.
“나는 버린 마누라처럼 찾아와 주지도 않으시면서,
또 어떤 여자에게 빠졌는가 싶었지 뭐예요.
누군가 했더니,
보니까 글쎄 송혜련이 아니겠어요.
놀랐다구요.
하인의 여편네에게까지 손을 대다니,
당신 정말 알아줘야 돼요”
반금련은 살짝 곱게 눈을 흘긴다.
말하는 투가 조금 전과는 좀 다른 듯해서 서문경은 슬그머니 또 표정이 굳어든다.
서방이 어디 가고 없는 여자 좀 데리고 놀면 어떠냐고,
대수롭지 않게 지껄이더니 말이다.
그때 춘매가 술과 안주를 차려들고 들어왔다.
탁자 위에 술병과 안주 접시, 그리고 잔과 젓가락 따위를 차려놓자,
서문경은 좀 무뚝뚝한 목소리로
“인제 됐으니 춘매는 네 방에 가서 자라구”
하고 이른다.
춘매가 물러가자,
반금련은 술병을 들어 오래간만에 남편의 잔에 정겹게 술을 따른다.
쭉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서문경은 반금련의 잔에 술을 따라준다.
그리고 다시 말을 꺼낸다.
“누구한테 그 얘기를 했어, 안 했어?”
“안 했다구요. 내가 뭐 어린앤가요. 그런 말을 함부로 입 밖에 내게”
“정말이지?”
“정말이라니까요”
그럼 됐다는 듯이 서문경은 잔을 들어 벌컥벌컥 비워 버린다.
반금련이 재빠르게 또 술을 채워준다.
“앞으로 말이야,
절대로 그 이야기를 아무한테도 해서는 안 된다구. 알겠지?”
“알고 있다구요”
“약속할 수 있어?”
“호호호... 왜 그렇게 다짐을 받으세요?
잔뜩 겁을 집어먹은 사람 같지 뭐예요.
당신답지 않게... 남이 알면 뭐 어떻다는 거예요?
내왕이가 겁이 나나요?”
그 말에 서문경은 말문이 막힌다.
그러나 곧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웬일인지 이번엔 슬그머니 겁이 난다니까. 허허허... 상것들은 말이야,
앙심을 품으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근다구.
잔을 들어 두어 모금 마시고 나서 서문경은 어떤 부호가 자기 집 하인의 처를 건드렸다가
그 하인의 칼에 찔리고, 물건이 잘려서 죽은 얘기를 했다.
그러자 반금련은,
“선수를 치면 되잖아요”
서슴없이 이렇게 말했다.
하인의 처 62회
“선수를 치다니, 그럼 내왕이를...”
“그렇죠. 화근은 도려내 버리는 게 상책이잖아요”
“도려내 버린다...”
서문경이 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에 잠기는 듯하자,
“그것보다 더한 일도 너끈히 해냈었잖아요.
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세요. 하인 하나쯤...”
반금련은 눈썹하나 까딱 않고 예사롭게 지껄인다.
자기 남편을 독살한 경험이 있는 독부(毒婦)답다.
“알았어. 그럼 그 일은 말이야 나중에 당신하고 상의해서 하기로 하고...
아직 내왕이가 돌아오려면 멀었으니...”
“맞아요. 미리부터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구요.
그 대신 말이에요 여보,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무슨 조건?”
“당신이 나한테 자주 주무시러 오는 조건이에요”
“허허허...”
“왜 웃으세요?
난 정말 근래 와서는 살맛이 안 난다구요.
밥만 먹으면 뭘 해요.
남편의 사랑을 받아야지. 안 그래요?”
“맞어. 허허허...”
“그러니까 앞으로는 나한테 이틀에 한번 씩은 주무시러 와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과 송혜련의 비밀을 지켜주지도 않을 것이고,
나중에 내왕이가 돌아와서 앙심을 품고 나서도 난 모른다구요.
정말이에요.
당신은 매일 밤 이 여자 저 여자 마음 내키는 대로 끼고 자니까 남의 속을 모르겠지만,
여자가 독수공방을 한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아세요?”
“알았어. 이제 그만...”
“여보, 얘기가 난 김에 한 가지 더 내 의견을 말할게요. 들어봐요”
“무슨 의견?”
“다름이 아니라, 저... 당신 말이에요,
언제까지나 송혜련을 동산의 석실 속에서 만날 거예요?
그러다가는 언제 또 누구의 눈에 띌지 모른다구요.
그러니까 이렇게 하시면 어때요?”
“어떻게?”
서문경은 귀가 솔깃한 표정이다.
“만나는 장소를 말이에요,
내 침실로 바꾸는 거예요.
난 그 정도의 아량은 있는 여자니까요.
나와 번갈아가며 내 침실에서 사랑을 나누는 거죠 뭐.
때로는 셋이서 같이 즐기기도 하고...”
“허허허... 그거 참 괜찮은 생각인데...
그러면 말이야 송혜련을 아예 당신 곁에 두도록 하지.
주방 일을 그만두게 하고.
그러면 아무도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 아니야”
“그것도 좋죠. 호호호...”
음탕한 지아비와 지어미는 뜻이 잘 맞아떨어지자,
쭉쭉 기분 좋게 술잔을 비운다.
잠시 후, 서문경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오래간만에
반금련을 번쩍 들어 옆으로 안고서 침실로 향한다.
하인의 처 63회
낮에 동산의 석실에서 송혜련과 한바탕 뜨겁게 놀고 난 몸이었으나,
서문경은 반금련을 두 차례나 절정의 희열을 맛보도록 해 주었다.
물론 정력 절륜의 서문경인지라 그도 더불어 절정의 쾌감을 만끽했다.
그리고 알몸인 채로 휘감기듯이 하고서 서문경은 잠들기 전에 새삼 일렀다.
“당장 내일 송혜련을 당신 곁으로 부르도록 해. 응? 내 명령이 떨어졌다고...”
“예, 염려 마시라구요”
반금련은 약간 질투가 담긴 그런 눈매로 곱게 흘겨보며
살짝 서문경의 엉덩이를 꼬집었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나자,
반금련은 곧 춘매를 시켜 송혜련을 자기 거실로 오도록 했다.
송혜련은 무슨 일로 반금련 마님이 자기를 부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제 낮 서문경과의 밀회가 반금련에게 들통이 났으니,
어쩌면 그일 때문이 아닌가 싶어 심정이 착잡하고, 불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거실로 들어서니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반금련의 표정은 뜻밖에도 밝고 부드러웠다.
“어서 들어와. 이리 좀 앉으라구”
“예”
송혜련은 반금련의 맞은편 의자에 조심스레 궁둥이를 내린다.
“내가 자네를 부른 것은 말이야 다름이 아니라,
오늘부터 주방 일을 그만두고,
내 곁에 와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구.
어떤가? 고된 주방 일보다 내 곁에 와 있으면서 시중도 좀 들어주고,
같이 지내는 게 좋지 않겠어?”
“너무 뜻밖의 일이라 도무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군요”
“그렇기도 하겠지.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말이지,
내가 우리 집 양반한테 잘 말씀드려서
그렇게 하도록 하라는 승낙을 받아낸 거라구”
“어머, 그럼 주인어른께서...”
“글쎄,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당장 지금부터 일자리를 주방에서 내 거처로 옮겨라 그거야”
송혜련은 그저 얼떨떨해서 뭐라고 얼른 말이 나오지가 않는다.
주방 일이 좀 고되기는 하지만,
그러나 송혜련은 반금련의 곁에서 시중을 드는 일이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그러나 서문경의 승낙 하에 이루어지는 일이라 하니 도리가 없었다.
그길로 주방으로 가서 손설아 마님에게 이야기를 하고서
반금련의 거처로 옮겨왔다.
그날 밤 반금련은 침실을 송혜련을 위해서 내주었다.
말하자면 서문경과 송혜련의 사랑의 보금자리를 제대로 마련해 준 셈이었다.
그제야 송혜련은 무슨 수작이었는지를 알고서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도무지 반금련이라는 여자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기의 남편과 동침을 하도록 침실을 다 내주는 여자가 있다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인의 처 64회
무슨 까닭인지도 모르게 송혜련을 반금련이 데려가 버리자,
손설아는 기분이 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싹 무시를 당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재수 더럽게 주방 책임을 맡아 만날 천날 부엌에서
하인의 아낙들을 데리고 부엌대기 노릇이나 하는 터이라
불만이 이만저만 아닌데다가 반금련과 크게 다투어 곤장을 맞기까지 한 뒤로는
서문경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한 번도 남편과 같이 자본 일이 없이
늘 독수공방을 하는 처지여서 심사가 항상 부드럽지가 못한 판인데,
이번에는 난데없이 자기가 오른팔처럼 아끼는 송혜련을
한마디 양해도 없이 마치 낚아채듯 반금련이 데려가 버리다니
괘씸하기 짝이 없고, 분하기 그지없었다.
생각다 못해 손설아는 필경 무슨 곡절이 있으려니 싶어서
몸종인 월미(月美)를 불러서 은밀히 귓속말로 일렀다.
“월미야, 내가 분해서 견딜 수가 없구나.
너도 알다시피 반금련이가 우리 송혜련을 한마디 양해 말도 없이 빼내가 버렸지 뭐야.
도대체 한 집안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니?
아무리 생각해도 분해서 그냥 가만히 참아 넘길 수가 없다구.
반드시 무슨 내막이 있을 거야.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무슨 짓을 하려고 송혜련을 데려갔는지,
그 뒷구멍을 네가 좀 캐보란 말이야.
무슨 일인지 내막을 알아야 분풀이를 할 수 있지 않겠어. 안 그래?”
“예, 맞아요. 마님, 염려 마시라구요”
월미는 야무진 목소리로 또렷하게 대답한다.
달 월 자, 아름다울 미 자인 월미는 그 이름과는 달리 얼굴의 어느 구석에도
달과 같은 아름다움은 찾아볼 수가 없는 계집애였다.
오히려 살짝 곰보에다가 한쪽 눈이 약간 사팔뜨기이기도 했다.
열아홉 살이어서 엉덩이가 벌어지고 장딴지도 굵어서 처녀티가 흐르기는 했으나,
몸 전체를 훑어보아도 여자다운 별다른 매력을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런 외모인지라 그녀는 열아홉 살인데도 아직 남자의 손이 한 번도 안닿은 숫처녀였다.
열아홉 살이면 그 시대로서는 노처녀에 속했다.
노처녀 월미는 손설아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곧이듣고 따르는
그런 충성형(忠誠型)에 속했다.
손설아의 먼 친척 조카뻘이 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팔려가는 그녀를 거두어서 자기 밑에 데리고 있어준
그 은혜 탓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월미는 열두 살 때 아버지를 병으로 여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있을 때부터 벌써 샛서방을 보아
아버지가 하루 빨리 죽기만을 고대하는 그런 여자였다.
열두 살짜리 어린 계집애의 눈에도 어머니의 그런 행태는 서럽도록 밉고 원망스러웠다.
아버지가 죽자,
얼씨구 잘됐구나 하고 어머니는 장례를 치르기가 무섭게
어린 월미를 버리듯이 남겨두고,
샛서방을 따라 자기 살 길을 가버리고 말았다.
하인의 처 65회
열두 살에 고아처럼 되어버린 월미는
이집 저집 친척집을 부엌 강아지처럼 굴러다니며 자랐다.
어린 가슴에 사무치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었다.
세월이 흐르면 그런 원망도 엷어지는 법인데,
어찌된 셈인지 월미는 그 원망이 증오로 바뀌어
가슴 속 깊숙한 곳에 응어리처럼 굳어갔다.
열네 살 때 요릿집 부엌데기로 팔려가는 몸이 되었다.
그 때 월미를 먹여주고 있던 칠촌뻘인 재당숙(再堂叔)이 돈이 아쉬워
그녀를 팔아넘기기로 했던 것이다.
부엌일은 잘한다고 하지만, 용모가 살짝 곰보에 한쪽 사팔뜨기이기 때문에
값도 제대로 나가지가 않았다.
더구나 기방에 기녀 감으로 팔리는 것도 아니고,
요릿집의 부엌데기로 넘겨지는 판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마침 친정에 다니러갔던 손설아가 그 얘기를 듣고 불쌍히 여겨 자기가
그 돈을 지불하고 데리고 와서 몸종으로 삼아 지금까지 잘 거느리고 있는 것이다.
먼 조카뻘인 월미를 불쌍히 여겨 자기가 사서 데려온 것은 손설아 자신이
꼭 그만한 나이에 부엌데기로 팔려간 서러운 지난날이 있기 때문이었다.
월미는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과 손설아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양극을 이루어 가슴속에 도사리고 있을 뿐 아니라,
못생긴 용모에서 오는 열등감이 또한 거기에 겹쳐서 조화를 상실하고,
외곬으로 치닫는 그런 성격을 형성하고 있었다.
손설아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 즉 충성형이 된 것도 그런 성격의 일단인 셈이었다.
손설아 마님으로부터 은밀히 지시를 받은 월미는 당장 그날부터
수상한 냄새를 맡으려는 무슨 개라도 된 것처럼 반금련의 거처 언저리를 맴돌았다.
며칠이 안가서 월미는 내막을 알아내고야 말았다.
그런 일이란 좀처럼 비밀에 붙여지는 게 아닐 뿐 아니라,
동산에서 은밀히 만날 때와는 달리 이제는 반금련이 든든한 자기편이 된 터여서
서문경은 뭐 그다지 남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송혜련 역시 서서히 간덩이가 부어올라
마치 벌써 일곱 번째 부인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굴었다.
그러니 더욱 비밀이 지탱 될 리가 없고, 절로 밖으로 새나갈 수밖에...
춘매한테 그 사실을 확인까지 한 다음 월미는 손설아 마님에게 보고했다.
“마님, 송혜련이가 주인어른하고 같이 자기도 한다지 뭐예요.
반금련 마님의 침실에서...”
“아니, 그게 정말이야?”
“예, 틀림없는 사실이에요.
춘매한테 직접 물어보기까지 했다구요”
“오냐, 요년 잘됐다. 두고 보자”
손설아는 다짜고짜 독기를 내뿜듯이 내뱉고는 회심의 미소를 싸늘하게 떠올렸다.
그런데 그‘요년’이라는 말이 송혜련을 두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반금련을 두고 하는 말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두 년을 싸잡아서 하는 말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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