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72) 모살(謀殺) <31~35회>

오늘의 쉼터 2014. 6. 28. 10:33

 

금병매 (72)

 

 

 

모살(謀殺) 31회 

 

 

 

 점심 때가 되어서야 기운을 되찾은 서문경은 분노와 모욕감에 치를 떨면서 집에 돌아갔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이병아를 찾아가 요절을 내주고 싶었으나,

 

그 집이 어딘지 알 수가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해가지고는 오히려 자기의 체면에 먹칠을 하는 결과가 될 뿐,

 

 제대로 분풀이가 될 것 같지가 않아 일단 집으로 가서 보복의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서문경은 점심을 조금 먹는둥 마는둥 하고 자기의 침실에 가서 방문을 안으로 잠그고,

 

침상에 드러누워 버렸다.

 

난생 처음 그런 창피하고 치욕적인 꼴을 당한 터이라,

 

 집안사람은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는데도 혼자서 망신스러워 방문까지 처닫아 버렸던 것이다.

 

말하자면 자괴(自愧)인 셈이었다.

 

서문경이 그런 심정이 되기는 처음이었다.

 

 

 




침상에 누워 쭉 다리를 뻗으니, 아직도 불알이 약간 감각이 마비된 듯 얼얼한 느낌이었다.

“그년, 지독한 년,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니까”

혼자서 중얼거린다. 그 순간 용케 그년의 팔뚝을 냅다 깨물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정말 불알이 축 늘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싶으니

아찔한 생각에 절로 몸서리가 쳐진다.

만약 불알이 망가져 버렸으면 어떻게 됐을까. 죽었을지도 모르고,

설령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할지라도 연장까지 쓸모없이 됐을 게 뻔하니,

앞으로 무슨 살맛이 있겠는가.

여색(女色)과 재물을 삶의 제일 가치로 동격(同格)에 올려놓고 있는 서문경으로서는

오늘 정말 아슬아슬한 위기를 넘겼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지면서도

한편 안도의 숨이 내쉬어지기도 했다.

서문경은 처음에는 이병아에게 직접 보복을 할 생각으로 어떤 방법이 좋을까 궁리해 보았다.

가장 통쾌한 방법은 역시 다시 그녀를 겁탈하는 일이었다.

기어이 힘으로 굴복시킨 다음 그녀의 부끄러운 곳을 냅다 한 대 발길로 걷어차 준다면

자기가 당한 수모에 대한 분풀이가 깨끗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를 다시 단둘이서 만나기가 어려우리라 싶었고,

설령 만날 수 있다 치더라도 겁탈을 하는 데는 위험 부담이 따랐다.

혹시 뜻대로 되지가 않아 다시 그녀의 국부 공격이라도 받게 되는 날이면

공연히 사서 볼 장 다 보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녀에게 폭행을 가하는 방법밖에 없겠는데,

자기가 직접 주먹을 휘두를 경우 아무래도 체면이 손상될 것 같았다.

소문이 안 퍼질리 없고, 비난의 소리가 자기에게 집중될 게 뻔했다.

까닭이야 어찌 됐건 여자에게, 더구나 개가를 했다 치더라도

죽은 친구의 미망인에게 손찌검을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남을 시켜서 두들겨주는 수밖에 없는데,

그 방법은 아무래도 사내답지 못한 비겁한 짓인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해가지고는 자기가 당한 모욕에 대한 충분한 분풀이도 될 것 같지가 않았다.

 

 

 

 모살(謀殺) 32회 

 

 

 

 겁탈과 폭행이 아닌 다른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궁리를 거듭한 끝에 서문경은 마침내 무서운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겁탈이나 폭행은 일시적인 고통을 안겨주는 행위여서 얼마가 지나면

 

오히려 이병아에게 홀가분한 심정을 가져다주는 결과가 될 것 같았다.

 

자기의 잘못에 대한 죄과를 치렀다고 생각할 터이니 말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있어서도 그녀의 정사 불응과 불알 공격에 대한 분풀이는 될망정

 

사랑의 배신행위와 장죽산의 도전 행위에 대한 보복은 되지 않는다 싶었다.

 

 장죽산이 이병아를 옆치기 해간 것을 서문경은 자기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병아가 이미 자기의 소실이나 다름없는 여자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녀를 빼앗아 갔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이병아에게만 분풀이를 할 게 아니다.

장죽산도 함께 싸잡아서 보복을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더구나 그 녀석은 자기의 사업에 방해가 되는 놈이 아닌가.

이병아와 혼례를 한 다음 집을 넓혀 새로 개업을 했다면 지금까지와는 달리

앞으로 만만치 않은 지장을 줄 게 뻔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서문경은 이병아에 대한 분노가 장죽산에게로 옮겨가 증오로 뒤바뀌었다.

이번 일의 뿌리도 따지고 보면 장죽산이란 놈에게 있지 않은가.

그녀석이 이병아의 병이나 고쳐주고 말았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터인데,

 의생이란 놈이 병자인 여자에게 흑심을 품은 게 원인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 증오와 분노를 되씹으며 생각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서문경은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며 오른손을 불끈 주먹쥐고 이빨을 뿌드득 물었다.

그리고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없애 버려야지. 그 녀석을...”

하고 중얼거렸다.

장죽산을 없애버리면 사랑의 적(敵)일 뿐 아니라,

사업의 방해자를 제거하는 셈이 되고,

또 이병아를 다시 과부로 만드는 터이니,

그녀에 대해서도 더없는 보복이 되는 셈이었다.

두 사람에게 동시에 깨끗하게 복수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방법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게 작정을 한 서문경은 그날 저녁

호주머니에 돈을 넉넉히 넣어가지고 다시 왕파를 찾아갔다.

지난해의 살인 공범자인 그 너구리 노파를 만나 그녀의 지혜를 빌리기 위해서였다.

무대를 독살할 때는 그의 처가 살인공범자였기 때문에 일이 비교적 수월했으나,

이번의 경우는 그게 아니어서 어려움이 따를 것 같았다.

이병아도 눈치채지 못하게 장죽산을 감쪽같이 해치워야 되겠는데,

그런 좋은 방법이 얼른 머리에 떠오르지가 않았다.

장죽산을 살해한 다음 그 배후 조종자가 자기라는 것이 탄로나면 큰일이니,

어떻게든지 완전범죄가 되도록 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이병아가 장죽산의 시체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해야 될 터인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 궁리를 하면서 찻집에 당도한 서문경은,

“어험!”

헛기침을 하면서 문을 열고 들어섰다.

 

 

 

모살(謀殺) 33회 

 

 

 

 저녁에 다시 서문경이 찾아오자, 왕파는 속으로 꽤나 당황했다.

 

필경 아침나절의 수모에 대해서 보복을 하기 위해 무슨 계략을 꾸미려고 나타난 게

 

 틀림없는 것 같고, 또 그 일에 자기를 끌어들이려는 속셈인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러나 늙은 너구리답게 왕파는 조금도 그런 기색을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

 

오히려 몹시 반가운 듯이 맞이하면서,

 

 




“몸은 이제 괜찮으시나요?”

걱정스레 묻기까지 한다.

서문경은 공격을 당한 불알에 대해서 안부를 묻는 셈이어서 좀 쑥스러웠으나,

“지금도 약간 얼얼하다니까”

하고는 껄껄 웃는다.

마침 가게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서문경은 좀 목소리를 낮추어 왕파에게 말한다.

“안방으로 좀 들어가자구. 할멈하고 뭘 좀 상의할까 싶어서...”

그 말에 왕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바로 그 일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짐짓 모르는 척 묻는다.

“무슨 상의인데요?”

“방에 들어가서 얘기할테니까”

“그러세요”

마지못하는 듯 왕파는 앞장을 선다.

“할멈”

“예?”

“가게 문을 닫으라구”

“왜요? 장사는 어떻게 하고요?”

“오늘밤 장사는 내 혼자서 다 해줄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지?”

웃음이 나오기는 하지만, 썩 기분 좋은 표정은 아니다.

돈도 좋지만, 그 돈의 대가가 뭐라는 것을 짐작하는 터이니 말이다.

가게 문을 닫고, 안방으로 서문경을 안내하여 들어간 왕파는

탁자에 그와 마주앉아 묘하게 긴장이 되어 온몸이 굳어들며 가늘게 떨리기까지 했다.

서문경은 무슨 말부터 해야 될지 잠시 망설이다가 먼저 호주머니에서 돈부터 꺼냈다.

손에 집히는대로 한 움큼 집어내어 그것을 왕파 앞에 일부러 소리가 나도록

주르르 쏟아놓으며 입을 연다.

“자, 오늘밤장사 못한 대가라구. 이만하면 되겠는가?”

“어머, 이걸 다 주시는 거예요?”

왕파는 눈이 휘둥그래진다.

얼른 보아도 은화도 여러 닢 섞여있는 것이 오늘밤의 장사 이문이 문제가 아니라,

아마 반달분의 이문은 실히 될 것 같았다.

“많은가?”

“헤헤헤...”

“어서 받아 두라구”

두려우면서도 우선 당장 눈앞에서 반질거리는 돈을 보니 절로 군침이 도는 듯

왕파는 서슴없이 쓸어 모아 앞에 차고 있는 돈주머니에다가 넣어버린다.

“내가 왕파에게 상의할 일은 뭔가 하면 말이야...”

서문경은 점잖은 어조로 말을 꺼낸다.

 

 

 

모살(謀殺) 34회 

 

 

 

 사람 하나를 또 처치해 버리려고 왕파와 그 방법을 의논하는 터이니,

 

어째서 그런 일을 하려고 마음을 굳히게 되었는지

 

그 까닭에 대해 먼저 왕파가 납득을 해야 될 것 같아서 서문경은

 

이병아와 가까워지게 된 시초부터 차근차근 얘기해 나갔다.

친구의 아내와 깊은 관계가 됐다는 사실은 누가 들어도 좋지 않게 여길 터이어서,

 

서문경은 이병아가 먼저 자기에게 꽃과 떡을 선물로 보내어

 

은근히 유혹의 손길을 뻗기 시작했다는 식으로 얘기를 꺼내어,

 

자기는 그녀의 유혹에 마지못해 끌려들어가 그녀의 남편인 화자허가 죽자

 

마침내 깊은 관계에까지 이르렀으며, 그 뒤 일이 이렇게 되어

 

결국 그녀가 자기를 배반하고 장죽산이란 놈에게 개가하고 말았다고,

 

어디까지나 자기의 잘못은 거의 없다는 투로 자초지종을 늘어놓았다.

 

그녀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된 것도 그녀의 남편이 죽은 뒤의 일이라고,

 

자기 옹호조의 새빨간 거짓말까지 섞어서 말이다.

 

 


서문경이 얘기를 늘어놓는 동안 왕파는 시종 긴장된 표정으로

이따금 입안의 침만 조심스레 삼키면서 한마디도 입을 떼지 않고 듣고 있었다.

“그래서 말이야 내가 며칠 전에 몸종인 수춘이를 불러내어 얘기를 들어봤고,

또 오늘 아침에는 그년을 직접 만났던 거라구.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려고...”

서문경은 왕파의 반응을 살피듯이 그 주름살 진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예”

왕파는 그제야 입을 열어 그저 알았다는 식으로 나직이 대답만 한다.

“그런데 글쎄 그년이 자기는 잘못한 게 조금도 없다는 투로 말하지 뭔가.

다 운명이라나. 운명이니까 잊어달라는 거야”

“......”

“내가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을 알고서 마음을 싹 돌려 딴 놈 품에 안긴 년이

그게 운명이라니 말이 돼? 괘씸하기 짝이 없더라구.

그래서 홧김에 그년의 옷을 홀랑 벗겨 욕을 한 번 보이려고 했지 뭐야.

그런데 기어이 말을 듣지 않더니 그만 남의 불알을...”

‘불알’이라는 말이 서문경의 입에서 서슴없이 튀어나오자,

왕파는 그제야 히죽 웃으며, 늙은이지만 역시 쑥스러운 듯 살짝 시선을 돌린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지 뭔가. 그런 망할 년이 어디 있느냐 말이야.

남의 불알을 잡아당기고서 제가 무사할 것 같애? 어림도 없다구”

서문경은 약간 흥분이 된 듯해서 숨을 가다듬고서 좀 가라앉은 어조로

왕파를 똑바로 바라보며 묻는다.

“할멈, 그년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왕파는 다시 슬그머니 긴장이 되어 두 눈을 꿈벅거릴 뿐 대답이 없다.

“내 이 분함을 어떻게 하면 시원하게 풀 수 있겠느냐 말이야. 어서 대답을 해보라구”

 

 

 

모살(謀殺) 35회

 

 

 

“한 번 단단히 혼을 내줘야지요”

왕파는 낮으나 분명한 어조로 대답한다.

 

기왕에 말을 꺼낼 바에야 서문경의 환심을 사야겠다는 듯이.

 

 




“물론이지. 그런데 어떤 방법이 좋겠느냐 그거야. 그걸 묻는 거라구”

“글쎄요, 좀 생각해 봐야죠.

갑작스런 일이라 어떤 방법이 좋을지 얼른 머리에 떠오르질 않네요”

그러자 서문경은 별안간 벌컥 화라도 솟구치는 듯 표정을 싹 바꾸어

왕파를 노려보며 냉랭한 목소리로 말한다.

“생각할 게 뭐 있어. 뻔하잖아”

“뻔하다뇨?”

“늙어서 기억력이 희미해진 모양이지? 작년에 했던 일 생각안나?”

“아니, 그럼...”

“바로 그거라구. 이거 말이야”

그러면서 서문경은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을 빳빳이 세워서

거꾸로 내리찍는 시늉을 해보인다.

“어머나...”

왕파는 입이 딱 벌어지고 만다.

“왜? 놀랬어? 그것밖에 달리 좋은 방법이 없다 그거야.

그저 혼내주는 정도로는 내 분이 풀리질 않는다구. 알겠어?”

“예”

“그리고 말이야 할멈, 없애버리는 데도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지 않으냐 그거야.

작년처럼 독살을 할 수도 있고, 또 납치해다가 때려죽이거나 굶겨 죽일 수도 있을 것이며,

강물이나 호수같은 데 빠뜨려서 없애버려도 될 것이고...

어떤 방법이 가장 뒤탈이 없고, 감쪽같겠느냐 그걸 묻는 거라구.

 만약 탄로가 나면 큰일이니까”

두려운 눈길로 서문경을 바라보며 가만히 듣고 있던 왕파는 아무래도 잘 이해가 안되고,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불쑥 묻는다.

“아니, 서문 어른. 그 여자를 기어이 죽이기까지 해야 합니까?

소행은 괘씸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한때 좋아했던 여잔데,

죽이기까지 한다는 것은 좀...”

그러자 서문경은 코언저리에 살짝 웃음을 떠올리며 말한다.

“그 여자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구. 장죽산이란 놈을 없애버리겠다 그거야”

“아, 그렇습니까?”

그것 또 뜻밖이라는 듯이 왕파는 살짝 고개를 기울인다.

“나도 사람인데, 할멈 말마따나 한때 좋아했던 여자를 죽일 수야 있나.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난 아직 그 여자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구.

그년이 비록 내 불알을 잡아당기기까지 했지만,

세월이 흐르면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지 뭐야”

“어머, 그래요?”

왕파는 놀랍기만 한 듯 서문경을 새삼스럽게 바라본다.

자기를 배반하고 딴 남자에게 개가를 했을 뿐 아니라,

불알까지 잡아당긴 여자에 대해서 미련을 떨쳐버릴 수가 없고,

세월이 흐르면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니...

지극한 순정이 아니고 무엇인가.

서문경에게 그런 일면이 있을 줄이야...

왕파는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