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35) 마님과 노복 <16~20회>

오늘의 쉼터 2014. 6. 26. 11:20

금병매 (35) 마님과 노복 16회 

 

 

 

 정실과 둘째와는 달리 셋째인 맹옥루와 넷째인 손설아는 서문경이 집에 들어오거나 말거나,

 

바깥에서 몇날며칠을 무슨 짓을 하거나 말거나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가 귀가를 해도 자기들은 별 볼일이 없으니 말이다.

맹옥루는 그래도 어쩌다가 한 번씩 불쑥 서문경의 방문을 받았으나 손설아는

 

반금련과의 다툼 끝에 곤장을 맞은 그 소동이 있은 뒤로는 서문경의 발걸음이 아예 깨끗이

 

끊어져버린 터이라 한결 더 무관심이었다.

무관심이라기보다도 오히려 그가 집에 들어오지 않기를 그녀는 속으로 은근히 바랐다.

낯바닥을 대하기도 싫었던 것이다.

그가 없으니까 주방에서 그의 음식을 손수 만들어야 하는 귀찮은 일도 없으니,

도리어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했다.

다섯 부인들 가운데서 서문경을 가장 안타깝게 기다리며 애를 태우고 있는 것은 반금련이었다.

그녀는 밤으로 잠을 잘 이룰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거의 매일 밤 서문경의 화끈한 품안에 안겨왔을 뿐 아니라 때때로 춘매까지 한데 어울려

세 사람이 색다른 재미를 즐기기도 했던 터인데, 난데없이 생과부처럼 되어 독수공방을 하자니

견딜 수가 없었다.

금동이가 나귀를 몰고 주인을 모시러 갔다가 헛걸음을 하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이나 알아보자고 금련은 금동이를 찾아갔다.

금동이의 거처는 서문경이 기거하는 건물의 내정(內庭) 한쪽 구석에 있었다.

정원을 소제하고 나무와 화초들을 가꾸는 갖가지 연장을 넣어두는 조그마한 창고의

한편에 방 한 칸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곳이 금동이의 숙소였다.

서문경의 곁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열네살짜리 아량이에게 벅차는 그런 일과

바깥심부름을 맡고 있는 몸종이기 때문에 평소에 별로 하는 일이 많지 않아서

안쪽 정원을 맡아 관리하도록 그곳에 거처를 정해준 것이었다.

금동이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금련이 방문을 열고 들어서도 모르고 코까지 살살 골면서 늘어져 자고 있었다.

가을 오후의 화사한 햇살이 창문으로 흘러들어와 조그만한 침상 위에 두 다리를

살짝 벌리고 누워 자고 있는 그의 아랫도리에 마치 눈부신 홑이불처럼 걸쳐져 있었다.

주인이 없으니 제멋대로구나 싶으며 금련은 다가가 흔들어 깨우려 했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손을 거두고, 열일곱살 먹은 금동이의 잠자는 모습을

잠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짙은 눈썹과 반듯한 콧날이 인상적이었다.

그가 꽤나 미소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가까이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기는 처음이었다.

하얀 이마에 불쑥불쑥 돋아난 여드름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얼마 전보다 그 여드름의 수효가 한결 많아진 것 같았다.

금련은 공연히 혼자서 침을 한 덩어리 가만히 삼키고 있었다.

 

 

 

마님과 노복 17회 

 

 

 

 잠결에도 곁에 누군가가 와서 서있는 듯한 인기척이 느껴진 듯 금동이는

“으으응-”

 

 

 

 

 

기지개를 켜면서 돌아누우려 했다.

그러자 금련은 약간 당황하며 얼른 입을 연다.

“금동아, 웬 낮잠을 이렇게 자니? 일어나라구”

“으응-”

금동이가 부스스 눈을 뜬다.

뜻밖에도 반금련 마님이 들어와 곁에 서있는 것을 보자 금동이는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난다.

너무 당황하는 모습이 우습고 재미있어서 금련은 까르르 소리를 내어 웃는다.

그리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한다.

“왜 그렇게 놀라니? 내가 이방에 들어오면 안되나?”

“안되는 것이 아니라...”

“그럼?”

“이 누추한 곳에 마님이 들어오시다니 너무 뜻밖이어서요”

금동이는 낮잠을 자다가 들킨 터이라 무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며

침상에서 내려와 엉거주춤 서서 한손으로 뒤통수를 슬슬 긁는다.

그 태도와 표정이 어찌나 순박해 보이는지 금련은 속으로

썩 괜찮은 아이로구나 싶으며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낮잠을 자는데 방해를 해서 미안하다”

“아이고 마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제가 용서를 빌어야지요.

일할 시간에 낮잠을 잤으니까요”

“괜찮다. 더러 마음놓고 쉴 때도 있어야지”

금련은 필요 이상 관대해지고 싶은 그런 심정이다.

“무슨 심부름 시킬 일이 있어서 오셨는지요?”

“심부름이 아니라, 뭐 좀 물어볼려고”

“아, 그러십니까. 마님, 여기 잠시 앉으시지요”

금동이는 얼른 한쪽 구석에 놓여있는 등받이도 없는

조그마한 걸상을 갖다가 권한다.

금련은 그 걸상에 궁둥이를 내린다.

“다름이 아니라... 금동아,

네가 오늘 아침 나절에 주인 어른을 모시러 갔었다면서?”

“예”

“그런데 왜 안 오신다는 거지?”

“글쎄요, 왜 안 오시는지 그런 말씀은 없었고요,

갈때가 되면 모시러 오지 않아도 갈테니 귀찮게 굴지 말어,

하시며 벌컥 화를 내시더라니까요”

“모시러 간 사람에게 화는 왜 내지? 별꼴이야”

금련은 서슴없이 서문경에 대한 반감을 혼자 중얼거리 듯이 금동이 앞에 나타낸다.

그것은 어쩌면 금동이에 대한 환호의 표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마님이 별안간 친근하게 느껴지는 듯

금동이의 얼굴에 엷은 홍조가 떠오르며 살짝 미소도 어린다.

 

 

 

마님과 노복 18회 

 

 

 

 “어떤 년한테 단단히 빠진 모양이지. 집에 돌아올 생각을 않는걸 보니...”

금련은 정말 속에서 화가 솟구치기라도 하는 듯 거침없이 투덜거린다.

 

금동이는 재미있다는 듯이 히들히들 웃기만 한다.

“그 집이 이교아 형님의 친정이라지?”

“예, 그런가봐요”

“그럼 처가에 간 셈이니까 며칠 묶는 것은 상관없지만,

처조카하고 놀아난다면서? 그게 정말이야?”

“확실한 건 알 수 없지만, 그런 것 같아요”

“아이 기가막혀. 어떻게 처조카를 데리고 놀까.

그것도 몇날 며칠을. 아무리 기생이라곤 하지만...”

금동이도 전적으로 동감이었으나,

차마 주인을 헐뜯는 말에 몸종이 동조를 할 수가 없어서 말없이

그저 두어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눈치가 남달리 빠른 금련은 금동이의 그런 기색을 보자 얼른 말머리를 돌린다.

아무리 아내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지만,

서문경을 그의 몸종 앞에서 너무 헐뜯어서는 재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금동이가 내 심부름을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예, 해드리고 말고요. 무슨 심부름인데요?”

“나 말이야. 요새 너무 적적해서 속이 상한다구. 무슨 말인지 알겠어?”

“하하하...”

금동이는 대답 대신 그만 큰소리로 웃어버린다.

“금동이가 열일곱살이라 그랬지? 열일곱살이면 무슨 말인지 알거야”

“예, 알아요”

“호호호... 그래서 말이야, 술을 좀 마실까 하고... 금동이도 술 마실 줄 아나?”

“조금요”

“남자가 열일곱살이면 마실 때도 됐지 뭐. 그럼 나하고 술 한잔 할까?”

“마님도 참, 제가 마님하고 어떻게 같이 술을 마셔요.

안된다구요. 주인어른이 아시면 큰일나요”

“그 양반은 지금 집에 안 계시잖아”

“그래도 다른 사람의 눈이 있잖아요. 안된다니까요”

“좌우간 말이야, 내 심부름을 좀 해줘”

“예, 심부름은 해드리고 말고요. 무슨 심부름인데요?” 말씀을 하세요“

“가서 특급주를 한 병 사다 달라구”

“예, 그거야 어렵지 않죠”

금련은 걸상에서 일어나며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본다.

그러나 집안에서 늘 입고 있는 옷의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있을 턱이 없다.

금동이에게 술 심부름을 시킬 생각을 미리 했던 게 아니기 때문에 그냥 왔던 것이다.

금련은 금동이를 데리고 자기 방으로 가서 돈을 건네주었다.

돈을 받아가지고 금동이는 특급주를 사러 집을 나섰다.

 

 

마님과 노복 19회 

 

 

 

 금련은 금동이를 심부름 보내놓고 나서 춘매에게 일러 주방에 가서

 

간단한 술안주를 두어 가지 얼른 만들어 오도록 했다.

 

그리고 거실의 탁자위에 손수 두 사람이 술을 마실 채비를 했다.

찬장에서 술잔 두 개와 작은 접시 두 개, 젓가락도 두개를 꺼내어 놓았다.

 

마른 안주도 두어 가지 접시에 담아 내놓았다.

 

금동이와 둘이서 한잔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금련은 문뜩 춘매는 어떻게 하나 싶었다.

춘매를 제 방에 가 있도록 따돌려 놓고 금동이와 둘이서만 술을 마신다는 것은

어쩐지 험 잡힐 일일 것 같았다.

혹시 춘매가 수상히 여기고 이상한 눈으로 몰래 지켜보기라도 하면 야단인 것이다.

그녀의 입을 통해 어떤 말이 서문경의 귀에 들어갈지 알 수가 없었다.

이미 금동이를 유혹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 생각을 굳히고 있는 금련은,

“춘매를 조심해야지, 암...”

가만히 속으로 뇌었다.

그렇지만 춘매도 동석시켜 셋이서 마시거나, 아니면 아예 혼자서 마시거나 둘 중 하나였다.

금동이를 유혹하는 기회는 다음으로 미루고서 말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금련은 의자에 앉아 잠시 생각해 보았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는 것도 말이 아니었다. 하녀와 노복을 데리고 앉아서 술을 마시다니,

 마님으로서 체면이 서지않을 것 같았다.

혹시 형님들이 알면 뭐라고 험담을 할 것인가 말이다.

그런 체통에 관한 일 말고도 셋이서 술을 마시게 되면

어쩌면 금동이를 춘매한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춘매는 열여섯, 금동이는 열일곱, 한살 차이일 뿐 아니라 같은 몸좀이라는 신분이니,

유(類)는 유끼리 통한다고, 술기운이 오르면 아마도 서로 눈이 맞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더구나 춘매는 이미 서문경으로부터 남자의 몸뚱어리 맛을 알대로 다 안 계집애여서

숫총각일지도 모를 금동이에게 대뜸 호기심이 갈 게 아닌가 말이다.

안될 일이었다.

그렇다면 혼자 마시는 도리밖에 없었다.

금련은 얼른 일어나 탁자 위에 차려놓은 한 사람 분의 술잔과 젓가락 따위를

도로 찬장 속에 치워 넣어버렸다.

잠시 후, 춘매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술안주를 두 접시 들고 왔다.

그것을 탁자위에 내려놓으며 춘매가 입을 열었다.

“마님, 오늘은 웬일로 혼자서 술을 다 자실려고 그래요?”

“너무 적적해서 술이라도 마셔야지, 견딜 수가 없지뭐냐”

“예, 알겠어요”

그 심정 춘매 저 역시 동감이라는 어투다.

“춘매야”

“예?”

“너 고향에 다니러 가고 싶은 생각 없니?”

금련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마님과 노복 20회 

 

 

 

 난데없이 고향에 다니러 가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는 말에 춘매는

 

약간 뜻밖이라는 그런 눈길로 금련을 바라보며 대답한다.

“왜 없어요. 가고 싶죠”

 

“가고 싶으면 다녀오지 그래. 주인어른도 안 계시고 하니 내가 말미를 내줄테니까”

“어머, 정말이에요?”

“정말이라구. 네 고향이 어디라 그랬지?”

“여기서 별로 멀지 않아요. 곤산(崑山)이라는 곳인데, 이십리도 잘 안된다구요”

“그럼 지금 출발해도 해지기 전에 도착하겠네”

“하고 말고요. 마님, 지금 출발할까요?”

“무척 가고 싶은 모양이지? 그러라구”

금련은 얼굴에 살짝 미소까지 떠올리며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흔쾌히 승낙을 한다.

다 꿍꿍이속이 있으면서도 말이다.

뜻밖에 휴가를 얻어 고향에 다니러 가게 된 춘매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며 묻는다.

“며칠 동안이나 말미를 주시는 거예요?”

“너무 오래는 곤란하고, 한 열흘 있다가 오지 뭐”

“어머, 열흘이나요? 아이 고맙습니다, 마님”

비록 삼인성희(三人性戱)를 즐기고 있는 사이긴 하지만,

 춘매는 열여섯살짜리 몸종답게 고개를 깊이 숙여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얼른 자기 방 쪽으로 사라진다.

춘매가 자기 방에서 서둘러 고향에 갈 채비를 하고 있을 때

금동이가 특급주를 사들고 돌아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요리가 알맞게 식어 있었다.

“마님, 오래 기다리셨지요?

특급주가 마침 동이 나서 여러 군데 찾아다니느라고 늦었습니다”

금동이는 탁자 위에 술병을 내려놓고 식은 듯한 요리를 힐끗 바라보며 말한다.

“아니, 오래 기다리진 않았어. 수고했다구”

“수고는 무슨 수고요”

금동이가 물러가려 하자,

“금동아, 나 술 한잔 안따라 주겠어?”

금동은 살짝 눈웃음을 지어 보인다.

“히히... 그러죠”

금동이는 조금 멋쩍은 듯하면서도 싫지않은 표정이다.

손으로 공손히 기울인다. 맑은 술이 잔에 가득 넘치자,

“그만, 그만, 됐어”

금련은 금동이를 향해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가딱하면서 곱게 웃어 보인다.

그리고 잔을 살짝 입에 가져가 맛을 보듯 한 모금 마신다.

“아, 향기가 그만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