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34)
마님과 노복 11회
잠시 후 서문경은 의자에서 일어서며,
“자, 계저,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전생에 이루지 못한 사랑의 한을 이제부터 실컷 풀어보자구”
약간 장난기가 섞인 듯한 그런 어조로 말했다.
“호호호...”
“계저가 그랬잖아,
우리 사이에 어쩌면 전생에 이루지 못한 사랑의 한이 있는지도 모른다구.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니까.
고모부이면서도 서슴없이 처조카의 머리를 얹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야.
자, 그 한을 오늘밤에 내가 실컷 풀어줄테니까. 어서 일어나라구”
말없이 계저는 의자에서 다소곳이 몸을 일으킨다.
그 표정과 태도가 영락없는 첫날밤의 신부 같다.
서문경은 그녀 곁으로 다가가 두 팔로 안아서 번쩍 옆으로 들어올리려 한다.
“어머나, 싫어요. 이러지 마세요”
계저는 호들갑스럽게 놀라며 안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친다.
“왜 그러지? 내가 안아다가 침상에 눕힐까 하는데...”
“싫다니까요. 그러지 마시라구요. 제가 제 발로 걸어가겠어요”
“허, 그것 참...”
서문경은 무안을 당한 사람처럼 쩝쩝 입맛을 다신다.
“고모부님 미안해요.
그러나 오늘밤만은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고,
제가 하자는 대로 좀 해주시면 좋겠어요. 저는 말이에요,
철이 들면서부터 첫날밤에 어떤 식으로 남자와 동침을 시작하는 게 좋을까 하고
많이 생각 해 봤다구요”
“헛헛허...”
서문경은 약간 억지웃음을 껄걸 웃는다.
여러 모로 다르군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재미있다는 듯이 묻는다.
“그래, 어떤 식으로 동침을 시작하는 게 좋다는 거야?”
“저를 안아다가 침상에 눕히면 마치 제가 남자에게 억지로 몸을 바치는 것처럼 되잖아요.
안 그래요?”
“허, 그렇기도 하군”
“그러니까 제가 제 발로 걸어가는 거예요.
먼저 남자가 침상에 가서 누워있고 말이에요.
그래야 제가 그 남자를 사랑해서 스스로 몸을 바치는 셈이 되잖아요.
그렇죠?”
“응, 그럴 듯 하다구. 좋아, 그럼 내가 먼저 침상에 가서 누워있지”
서문경이 침상 쪽으로 걸음을 떼어놓으려 하자,
“잠깐만요”
계저가 얼른 옷소매를 붙든다.
“옷을 입은 채 침상에 가서 누우시면 안된다구요”
“그럼 옷을 벗고?”
“예”
“어디서? 여기 서서 말이야?”
“예, 호호호... 부끄러우세요?”
“부끄럽긴, 남자가... 오히려 기분이 좋지.
그런데 의식(儀式)이 뭐 그래? 남자만 옷을 벗고 침상으로 가는거야?”
“아니라구요. 여자도 벗는다구요”
마님과 노복 12회
서문경은 약간 낯간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일곱살짜리 처녀가 제멋대로 생각해낸 치기어린 신방 의식을 천하의 오입쟁이가
다소곳이 따르려 하고 있으니 쑥스럽기도 하고, 좀 우습기도 했다.
그러나 재미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어서 장난삼아 그녀의 의식에 순순히 응해보기로
마음을 먹고 묻는다.
“어떻게 하는데? 어디 계저가 생각한대로 순서를 말해 보라구.
그러면 내가 그대로 따라 할테니까”
“아이 좋아. 역시 우리 고모부님이 최고야”
계저는 마치 자기의 오랜 꿈이 이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스럽게
기뻐하고는 어조를 차분히 가다듬어 말한다.
“어떻게 하는가 하면 말이에요. 자기가 자기 옷을 벗는 게 아니라구요.
남자와 여자가 마주보고 선 다음 먼저 여자가 남자의 옷을 벗기는 거예요.
그것은 여자가 남자를 사랑한다는 표시거든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옷을 벗기고 싶겠어요? 그렇죠?”
“응, 그럴듯하다구”
“그 다음엔 남자가 여자의 옷을 벗기죠”
“남자도 여자를 사랑한다는 표시라 그건가?”
“예, 호호호...”
“그러고는?”
“그러고 나서 남자가 여자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는 거예요.
다음은 여자가 남자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요. 사랑의 맹세인 셈이죠”
“사랑의 맹세를 왜 이마에다가 하지? 직접 서로 입을 맞추지 않고”
“맹세는 좀 고상하게 해야죠”
“이마에 입을 맞추는 것은 고상한건가? 어느 정도 그렇긴 하군. 허허허...”
“그것이 끝나면 남자가 먼저 침상으로 가서 눕는다구요.
그 다음에 여자가 침상으로 가고요.
제 발로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가는 거죠. 말하자면...”
“침상에 오른 다음에는 어떻게 하는데?”
“그때부터는 남자가 알아서 하는거죠 뭐. 여자는 뭘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숫처녀라 잘 모른다 그건가? 허허허... 좋아. 자, 그럼 시작하자구”
서문경은 꽤 재미있겠다는 듯이 능글능글한 웃음을 온 얼굴에 번지르르 흘리며
계저를 향해선다.
“불을 꺼야죠”
계저가 촛불을 끄려한다.
“뭐? 불을 끄고 의식을 하는 건가? 그런 깜깜해서 어떻게...”
“고모부님도 참... 불을 켜놓고 하는 줄 아셨어요?
의식은 신성한 거니까 불을 켜놓고 하면 안된다구요.
환한데서 어떻게 서로 옷을 벗겨요. 아이 흉해.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나누는 의식은 불을 끄고 깜깜한 데서 해야 신성하다구요”
“좋아. 그럼 신성하게 하자구”
계저가 촛불을 훅 불어서 꺼버린다.
마님과 노복 13회
촛불이 꺼졌으나, 바깥에 달이 밝은 듯 방안이 칠흑 같은 어둠은 아니었다.
창으로 달빛이 흘러들어오고 있진 않았지만,
어렴풋이 서로 얼굴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의 박명(薄明)이었다.
계저의 말마따나 신성한 사랑의 의식을 행하기에는 안성맞춤인 듯했다.
어둠 속에 서로 마주보고 서자, 서문경이 먼저 입을 연다.
“자, 어서 의식을 시작하라구”
그러나 계저는 선뜻 행동을 개시하기가 주저되는 듯 망설이고 있다.
“여자가 먼저 남자 옷을 벗긴다면서? 자, 어서 옷을 벗기라구”
“예”
“어서. 바쁘다니까”
“호호호...”
몹시 쑥스러운 듯 계저는 어둠 속인데도 한손으로 입을 가리며 나직하게 웃고 나서
가만히 두 손을 서문경의 웃옷으로 가져가 단추를 끄르기 시작한다.
웃옷을 벗겨내고, 아랫도리를 벗길 때는 계저의 손끝이 가늘게 떨린다.
가슴도 야릇하게 두근거려 절로 숨이 멈추어졌다가는 후루루 떨리면서 내뱉어진다.
코 언저리에 빙그레 웃음을 떠올리며 지그시 두 눈을 감고 있던 서문경은 계저의
손길에 의해서 벌건 알몸이 되자 번쩍 눈을 뜬다.
“이제 내가 벗길 차례지?”
“예”
계저의 나직한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서문경은 덥석 두 손을
그녀의 웃옷으로 가져가 훌훌 잽싸게 벗겨낸다.
어둠 속이지만 여자의 옷 벗기는 데에 이골이 난 그런 솜씨다.
금세 홀랑 벗겨져 알몸이 되어버린 계저는 쑥스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며
살짝 두 손을 부끄러운 데로 가져가 가린다.
어둠 속이어서 잘 보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이번에는 내가 이마에 입맞춤을 한단 말이지?”
“예”
그만 서문경은 계저의 희끄무레한 알몸을 왈칵 끌어안고는
이마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맞춤을 한다.
그리고 일부러 짓궂게 그만 그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덮쳐 버린다.
“어머-”
이러면 의식에 어긋난다는 듯이 계저가 버둥거린다.
그러나 소용없다는 듯이 서문경은 냅다 그녀의 야들야들한 입술을 짓이겨 댄다.
도리 없는 듯 계저도 다소곳이 내맡기며 두 눈을 살포시 감는다.
사랑의 고상한 맹세인 이마에의 입맞춤이 그만 진짜 입맞춤이 되어 두 사람은
잠시 한 덩어리로 뜨겁게 엉겨 있었다.
입맞춤이 끝나자,
계저는 기어이 서문경의 이마에다가 잽싸게 한 번 입술을 갖다댄다.
“기어이 의식은 의식대로 갖춘다 그거지? 좋아. 그럼 이제 내가 침상으로 갈 차롄가”
중얼거리고 나서 서문경은 벌건 알몸으로 건들건들 침상 쪽으로 걸어간다.
좀 쑥스러운 듯 히들히들 웃으면서........................... .
마님과 노복 14회
침상에 올라간 서문경은 앉아있을까 누울까 좀 망설이다가 벌렁 드러누워 버린다.
그리고 계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둠속에 희끄무레하게 서있는 계저의 알몸이 잠시 움직일 줄을 모른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서문경이 약간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뭘 하고 있어? 빨리 오질 않고”
“예, 갈게요”
나직한 대답 소리와 함께 계저는 드디어 걸음을 떼놓는다.
다가오는 그녀의 걸음걸이가 어쩐지 자연스럽지가 못하고 좀 어색해 보인다.
제딴은 아주 진지하고 엄숙하기까지 한 순간인 모양이다.
서문경은 속으로 문득 우습고 같잖다는 생각이 든다.
숫처녀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기묘한 의식까지,
더구나 한낱 기녀에 불과하면서... 싶으며 짓궂은 장난기 같은 것이 고개를 쳐든다.
한번 화끈하게 곯려줄까 싶어진다.
깨끗한 체하는 것, 고상한 체 혹은 신성한 체하는 것을 볼 때 묘하게 반감이 느껴지며
심술 같은 것이 꿈틀거리는 그런 심리라고나 할까.
서문경은 코언저리에 빙그레 짓궂은 웃음을 떠올리며 침상 가까이로 다가온
계저에게 한손을 내민다.
그 손을 계저가 잡는다.
“자, 올라오라구”
누운 채 서문경이 살짝 당긴다.
계저는 말없이 침상에 오른다.
그녀가 침상에 오르자 서문경은 벌떡 몸을 일으켜 냅다 거칠게 쓰러뜨리듯
그녀의 알몸을 발딱 눕히고는 대번에 하지(下肢)를 활짝 사정없이 열어젖혀 버린다.
깨끗한 것이 어디 있으며, 신성한 것이 다 무엇이냐는 듯이.
“어머나-”
너무나 순식간의 일에 계저는 질겁을 하듯 비명을 내지른다.
서문경은 서슴없이 입술과 이빨로 마구 덤빈다.
그것은 남자가 여자를 애무한다기보다 마치 굶주린 맹수가 연약한 짐승을
잡아 쓰러뜨려 놓고 여지없이 조져대는 것만 같다.
계저의 입에서는 연달아 비명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그 비명 소리가 잠시 후에는 약간 잦아들면서 야릇한 음색(音色)을 띠기 시작한다.
그냥 단순한 고통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쾌감이 뒤섞이고 열기를 머금은 듯한 신음에 가까운 그런 기묘한 비명이다.
마침내 숫처녀를 짓뭉개는 단계에서도 서문경은 여전히 억세고 거칠다.
같은 숫처녀라도 춘매의 경우에는 얇은 유리그릇을 다루듯 조심스럽고 부드럽더니,
이번에는 그와 정반대다.
깨끗한 것을 짓이겨 버리고, 고상한 것을 망가뜨려 버리며,
콧대 높은 것을 여지없이 납작하게 짓눌러 버리려는 심술궂은 심보인 듯하다.
수없이 많은 여자를 다루어 왔지만, 서문경이 이처럼 거칠게 나오기는 처음이었다.
그의 몸안에 자기도 모르게 간직되어 있던 가학성(加虐性)이 불끈 고개를 쳐든셈이었다.
마님과 노복 15회
오입쟁이의 길이란 가늠할 수가 없이 제멋대로인 듯 서문경은 친구의 아내인
이병아를 이번 가을의 사냥 목표로 점찍었으면서도 한눈을 팔 듯 엉뚱하게 처조카인
계저의 머리를 얹어주고, 그녀의 소망대로 보름 동안을 그 집에 머물면서
그녀와의 밀월 아닌 밀월의 단꿈을 만끽하기에 이르렀다.
자기의 몸 안에 자기도 모르게 간직되어 있던 가학적(加虐的)인 성 기교가 발동되어
매일 밤 그런 새로운 방식으로 색다른 황홀감에 젖었고, 안성맞춤으로 계저는
피학적(被虐的)인 성 쾌감을 천성으로 타고난 듯 서문경의 그런 거칠고 억세며 사정없는
애무를 조금도 마닿지 않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숫처녀를 바치던 첫날밤에는 뭐가 뭔 줄을 잘 몰랐으나 이튿날 밤부터 남자와의 관계가
이번이 처음인 계저는 서문경의 그런 가학적인 행위가 으레 남자란 여자를 그렇게 다루는
것이려니 여기게 되었고 그것이 고통이라기보다 오히려 화끈하고 얼얼한 쾌감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밤이 거듭됨에 따라 나중에는 그만 신음과 감미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히히히... 흐흐흐...
괴상야릇한 웃음을 냅다 킬킬거리기에 이르렀다.
춘매는 울더니, 계저는 웃는 것이 아닌가.
서문경은 정말 여자란 가지각색이며, 골고루도 경험하는구나 싶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기가 생각해도 이제 천하에 손색없는 오입쟁이인 것만 같아 매우 흡족하기도 했다.
서문경이 그렇게 아주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기방에 늘어 붙어 있게 되자,
정실인 오월랑은 슬그머니 염려가 되었다.
가장이 집을 비우고 없으니 집안일과 약국일이 다 제대로 잘 돌아가는 것 같지가 않아서였다.
오월랑도 서문경이 계저의 머리를 얹어주고 그 집에 늘어 붙어 있다는 것을
이교아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가을이면 으레 서문경이 유별나게 바람을 피워댄다는 것도
해마다 겪어온 일이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몇날며칠이고 집에 코빼기도 내배치지 않고
그대로 바깥에 눌러앉아 있기는 처음이어서 가을바람이 금년에는 얄궂게 부는 것 같아
어떻게 된 영문인가 싶어 심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닷새가 지나도 귀가를 하질 않자 서문경의 몸종인 금동이에게 당나귀를 몰고 가서
주인을 모셔오라고 일렀다.
그러나 헛걸음이었다. ‘갈 때가 되면 모시러 오지 않아도 갈테니 귀찮게 굴지 말어’하고
벌컥 화를 내더라는 전갈이었다.
오월랑과 대조적으로 이교아는 서문경이 그처럼 조카인 계저에게 푹 빠져있는 것이
속으로 은근히 기뻤다.
아무래도 계저가 서문경의 몸과 마음을 꽉 틀어 잡은게 틀림없으니 말이다.
부디 여섯 번째 부인으로 들어와서 그 얄미운 반금련을 밀어내 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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