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36) 마님과 노복 <21~25회>

오늘의 쉼터 2014. 6. 26. 11:28

금병매 (36)

 

 

 

마님과 노복 21회 

 

 

 

 금동이가 다시 물러가려 하자

 

금련은 특급주를 구해오느라고 수고했는데 한잔 맛이라도 보고 가라고 붙든다.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금동이에게 의자에 앉으라고 하면서 금련은 얼른 일어나

 

찬장에서 조금 전에 치웠던 술잔과 젓가락을 도로 꺼내다 놓는다.

금동이는 마지 못하는 듯 궁둥이를 의자에 절반쯤만 걸쳐서 앉는다.

금동이의 잔에 금련이 술을 따라준다. 그리고 자기 잔을 들어올리며 말한다.

“마셔보라구. 향기가 아주 그만이야”

금동이도 말없이 잔을 든다.

금련은 입으로 잔을 가져가며 금동이를 헷끗이 고운 눈으로 바라본다.

금동이의 얼굴에 살짝 홍조가 어린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술잔을 기울인다.

말하자면 건배를 한 셈이다.

“맛이 어때? 좋지?”

“예”

“전에 특급주를 마셔본 일 있어?”

“아니오. 이것이 처음인데요”

“그럼 한 잔 가지곤 안되지. 쭉 마시라구. 몇 잔은 해야지”

“취한다구요”

“취하면 가서 자지 뭐. 내 방에서 자도 상관 없고...”

그 말에 금동이는 약간 놀라듯이 그러나 수줍은 듯한 묘한 눈길로 금련을 바라본다.

금련은 일부러 그 시선을 살짝 피하며 젓가락으로 안주를 집는다.

“자, 안주도 먹어”

“예”

“금동이하고 둘이서 술을 마시니까 술맛이 한결 좋은 것 같은데...”

“히히...”

“금동이는 어때?”

“저도요”

“그럼 됐지뭐야. 자, 쭉 마시라니까”

금동이는 잔을 들어 꿀컥꿀컥 단숨에 비워낸다.

“잘 마시는데... 자, 한 잔 더...”

“이러다간 정말 취하겠는데요”

“취하면 내 방에서 자라니까”

“그럼 안되죠”

“왜? 내 방에서 자면 어때서?”

“마님 방에서 제가 자다니, 큰일날 일이라구요”

“하하하... 왜 큰일난다는 거야? 술이 취해서 내 방에서 자는데 무엇이 어때서?”

“만약 다른 사람들이 알면 어떻게 되겠어요. 주인 어른 귀에 그 말이 들어가기라도 하면...”

“취해서 그냥 잠만 잤는데 무슨 상관이야”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럼 어떻게 생각한다는 거야?”

금련은 재미있다는 듯이 눈 언저리에 야릇한 미소를 떠올리며 묻는다.

금동이는 대답 대신,

“흐흐흐...”

묘하게 웃으며 살짝 고개를 떨꾼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한손에 보따리를 든 춘매가 들어선다.

 

 

마님과 노복 22회 

 

 

 

 금동이가 마님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을 보자

 

춘매는 그 자리에 주춤 멈추어 선다.

 

금동이도 한손에 웬 보따리를 든 춘매가 불쑥 들어서자

 

꽤나 당황하며 앉았던 자리에서 얼른 일어난다.

“왜 그래? 괜찮아. 앉으라구”

춘매를 보고 그처럼 당황하는게 우습다는 듯이 금련은

둘이를 힐끗힐끗 번갈아 보고는 예사롭게 금동이에게 말한다.

재빨리 분위기를 눈치 채고도 춘매는 짐짓 모르는 척 시치미를 뚝 떼고 작별 인사를 했다.

“마님,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응, 그래, 잘 다녀와”

춘매가 돌아서 나가려 하자,

“춘매야, 잠깐만...”

금련은 얼른 춘매를 불러 세운다.

그리고 일어나 장롱 안에서 은화 두 닢을 꺼내어 춘매에게 준다.

“어머, 은화를...”

“모처럼 고향에 다니러 가는데 그것으로 선물이나 좀 사가지고 가라구”

“아이고 고맙습니다, 마님. 그럼 다녀 올께요”

춘매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며 잰 걸음으로 사라진다.

다시 슬그머니 의자에 궁둥이를 내리며 금동이가 묻는다.

“고향에 가는 모양이죠?”

“응, 내가 보냈다구”

그게 무슨 뜻인지 금동이는 얼른 머리에 와닿지가 않는 듯 멀뚱히 금련을 바라본다.

“춘매가 있어서는 금동이하고 둘이서 술도 마음놓고 마실수가 없잖아.

그래서 내가 고향에 한 열흘 다녀오라고 말미를 주었다니까.

무슨 말인지 인제 알겠어?”

“흐흐흐 흐흐흐...”

약간 취기가 도는 듯 금동이는 코를 쳐들며 히들히들 묘하게 웃어댄다.

“왜 웃지? 뭐가 그렇게 우스워?”

“아니요. 인제 안 웃을게요. 인제 안 우습다구요”

“하하하 하하하...”

재미있다는 듯이 이번에는 금련이 냅다 깔깔거린다.

웃음이 멎고, 다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데, 방문 바깥에 인기척이 들렸다.

두 사람은 말없이 가만히 시선을 마주친다.

누군가가 회랑을 지나가는 모양이다.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간다.

금련은 예사롭게 다시 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그러나 금동이는 슬그머니 굳어들었던 표정이 풀리질 않고, 어쩐지 불안해 보인다.

“문을 잠글까?”

방문을 안으로 걸려고 금련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자 금동이는,

“아닙니다. 마님, 인제 가봐야겠어요. 정원 소제도 하고, 할일이 많다구요”

취기가 싹 가시고 정신이 번쩍 돌아오는 듯 얼른 일어나 후다닥 방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금련은 닭 쫓던 개 울타리 쳐다보듯 멀뚱히 서 있다가 혼자 투덜거린다.

“뭐 저런 맹추 같은 것이 다 있어”

 

 

 

마님과 노복 23회 

 

 

 

 그날 밤 금련은 도무지 잠을 이루질 못했다.

 

온몸에 야릇한 미열 같은 것이 느껴지면서 특히 아랫도리가

 

얄궂게 근질근질 달아오르는 듯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술기운은 이제 말끔히 가신 것 같았으나,

 

특급주 속에 미약(媚藥) 성분이라도 섞여 있어서 그것이 몸의 구석구석을 돌며

 

유독 아랫도리의 욕망을 화끈화끈하게 긁어 일으키는 듯 했다.

지금쯤 서문경은 자기의 처조카라는 어린기생을 끼고서 온갖 짓을 다하고

 

있으려니 싶으니 입안의 침이 다 바싹 바싹 마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무정한 놈, 나를 데려다 놓은 지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딴 계집한테 빠지느냐 말이야.

빠져도 적당히 빠져야 말이지. 오입을 한다고 누가 뭐라 그러나.

왜 몇날며칠 집에도 안 들어오고 눌어붙어서 그 지랄이냐 그 말이야.

뭐 그 계집애는 금테라도 둘렀는가. 흥! 푹 빠져서 뒈질 작정인 모양이지”

생각할수록 약이 오르고 밸이 꼴려서 견딜 수가 없는 듯 금련은 침상에 누워 입에서

나오는대로 나불나불 서문경을 욕해대다가 이번에는 금동이 쪽으로 생각을 돌린다.

“그 녀석은 또 왜 그렇게 숙맥이지.

열일곱살이나 먹었으면 인제 여물 것은 다 여물었을 것이고,

알 것은 다 알텐데, 뭣이 그렇게 겁이 나서 불안해 하는지..

불알을 헛달고 있지 뭐야. 나같으면 까짓것 얼마나 좋아.

준다는 떡 넙적 받아서 냉큼 삼켜버릴 건데.. 병신같은 녀석”

도무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못견디겠는 듯 그만 금련은 벌떡 일어난다.

거실로 가서 낮에 먹다 남은 술병을 꺼내 들고 병 째 꿀컥꿀컥 두어 모금 넘긴다.

곧 속이 화끈해지며 눈앞이 아른해 온다.

“옳지, 그래야지. 히히히...”

무슨 생각이 더올랐는지 혼자서 키들키들 웃는다.

금련은 찬장에서 마른 안주인 어포(魚脯)를 꺼내고, 술잔도 두 개 채비를 한다.

그리고 술병과 함께 들고 가만히 방을 나선다.

밤이 꽤 깊었으나 아직 불이 켜저있는 방이 더러 있다.

금련은 혹시나 집안사람의 눈에 띌까 싶어서 조심조심 걸음을 떼놓는다.

회랑을 걸어가다가 얼른 정원으로 내려선다.

달이 아직 돋아 오르지 않아서 뜰 안은 어둡다.

어둠 속으로 살금살금 걸음을 옮겨 금련은 금동이의 숙소 쪽으로 다가갔다.

금동이는 이미 잠이 든 듯 조그마한 창에 불이 꺼져있었다.

금련은 살그머니 창으로 다가가서 걸음을 멈춘다.

숨을 죽이고 안의 기척을 엿듣는다.

금동이의 잠자는 숨소리가 들리는 듯 마는 듯하다.

똑똑똑 똑똑똑... 창문을 가만가만 두들긴다. 아무 반응이 없자,

“금동아 금동아, 자니? 일어나봐 나야, 나야”

나직이 소리를 지른다.

 

 

 

마님과 노복 24회 

 

 

 

 여전히 안에서 아무 기척이 없자,

 

금련은 앞문 쪽으로 돌아가 문짝을 가만히 당겨본다.

 

안으로 잠겨있다.

“병신같이 잠그기는... 누가 뭐 훔쳐갈 것이라도 가지고 있나. 흥!”

 

같잖다는 듯이 금련은 가볍게 코방귀를 한번 뀐다.

그리고 좀 세게 문짝을 흔든다.

“누구요?”

그제야 금동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야. 금동아, 문좀 열어봐”

“아니, 마님 아니세요?”

금동이의 후다닥 뛰어일어나는 기척이 나고, 곧 방에 불이 켜진다.

그리고 문이 열린다.

“이 밤중에 웬일이세요? 마님”

“잠이 와야 말이지. 심심해서 금동이하고 술이나 한잔할까 싶어서...”

금련은 나긋이 눈웃음을 지어 보이고,

금동이는 좀 쑥스러운 듯 공연히 한손을 뒤통수로 가져가 슬슬 긁는다.

“나 들어가도 괜찮지?”

“예, 들어오세요”

금련이 들어서자 금동이는 서둘러 침상의 흐트러진 잠자리를 대충 정리한다.

그리고 등받이도 없는 조그마한 나무걸상을 내놓으며 앉으시라고 권한다.

“괜찮아, 그냥 여기 방바닥에 앉아서 술을 마시자구”

“방바닥에 앉아서 어떻게요. 마님이...”

“괜찮다니까. 그게 더 편하고 좋을 것 같애”

“그럼 이것이라도 깔까요?”

금동이는 자기가 덮고 자던 얇은 이불을 가리키며 묻는다.

“이불을? 더러워지면 어쩌지?”

“상관없다구요”

“그럼 내가 나중에 빨래를 해주지”

“히히... 마님이 제 빨래를 해주시다니요. 별발씀을다...”

금동이는 싫지 않은 듯 히죽이 웃으며 이불을 활짝 펴서 방바닥에 널다랗게 깐다.

“하하하... 참 좋은데...”

금련은 나중에 둘이서 뒹굴어도 좋겠다 싶으며 그 이불 위에 가지고온 술병과 술잔,

그리고 안주를 내려놓고, 편안히 자리를 잡고 앉는다.

금동이도 좀 멋쩍으면서도 기분좋은 그런 표정으로 마주 앉는다.

“이렇게 마시는 술이 월등히 맛이 좋다구. 비록 안주도 이것뿐이지만 말이야”

“흐흐흐...”

“맞지?”

“예”

“자, 한잔하자구”

금련이 잔을 들자 금동이는 얼른 술을 따르며 말한다.

“이차인 셈이네요”

“그렇지 이차인 셈이지. 하하하...”

“마님, 아주 술을 좋아하시는 모양이죠?”

“별로 그렇지도 않다구. 마시면 마시고, 안 마셔도 그만이고...

그런데 요즘은 너무 외로원서 술이라도 마셔야지,

도무지 견딜 수가 있어야 말이지”

 

 

 

마님과 노복 25회 

 

 

 

 오후에 마셨던 술기운이 아직 몸 안에 남아있었던 모양으로 금동이는

 

한 잔을 비웠는데도 벌써 취기가 올라 눈언저리가 발그레했다.

두 잔을 비운 금련은 눈이 약간 게슴츠레해 보일 뿐

 

아직 얼굴이 조금도 붉어오르질 않는다.

 

“금동이 너 연애해본 일 있어?”

금련이 불쑥 묻자, 금동이는 발그레 물든 얼굴을 더욱 붉히며 멋쩍게 대답한다.

“없어요”

“열일곱살이나 먹었는데 아직 연애를 한 번도 안해봤단 말이야?”

“예”

“정말이야?”

“정말이라니까요”

“그럼 그동안 뭘 했지?”

“흐흐흐... 뭐 연애 아니면 할일이 없나요”

“할일이야 많지만, 연애보다 더 좋은게 뭐 있어야 말이지”

“마님은 연애가 제일 좋으세요?”

술기운에 힘입어 금동이는 입에서 나오는대로 서슴없이 묻는다.

금련도 게슴츠레한 눈에 살짝 요염한 미소를 담으며 거침없이 대답한다.

“물론이지. 솔직히 말해서 연애보다 더 좋은 건 없더라구.

남자들은 주색잡기(酒色雜技)라고 술을 색보다 앞세우는 모양인데,

난 안 그래. 색주잡기라고 하는 게 옳겠어”

“흐흐흐...”

“왜 웃지? 아직 몰라서 웃는거야.

연애란 그렇게 좋은 건데 금동이는 아직 모르니...”

“아직 어린데요 뭐”

“열일곱살이 뭣이 어리다는 거야? 연애를 하고도 남지”

“그럼 마님은 몇 살에 처음으로 연애를 했는데요?”

“열여덟살 때였다구”

술기운 탓인지 금련은 노복인 금동이 앞에서 조금도 쑥쓰러운 기색이 없이 대답한다.

“열여덟살이면 저보다 한 살 많았잖아요”

“난 여자니까...”

“남자가 여자보다 빨리 연애를 하는 건가요?”

“금동이는 화제가 썩 구미에 당긴다는 듯이 어포를 질근질근 씹으며 자꾸 묻는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남자가 빠르지 않겠어.

 여자는 생각이 있어도 남자가 꼬시기 전에는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특히 처녀 때는 말이지”

금동이는 묘하게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듯해서 술잔을 들어 단숨에 벌컥벌컥 비워낸다.

그리고 또 묻는다.

“마님은 지금까지 연애를 몇 번이나 했어요?”

“몇 남자하고 했느냐 그 말이지?”

“예”

그 대답은 차마 금련도 얼른 입에서 나오지 않는 듯 좀 망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