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30) 하녀 춘매 21회
세상사에 비밀이란 있을 수가 없는 법이다.
더구나 한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집안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모를 턱이 없다.
밤으로 곧잘 세 사람이 한데 어울린다는 소문은 멀지 않아 집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은밀히 퍼졌다.
지금까지 없던 그런 망측하고 추잡한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새로 들어온
다섯 번째 부인인 금련의 탓이라고 모두 수군거렸다.
그러나 주인인 서문경이 좋아서 하는 일이어서 속으로는 욕들을 하면서도
감히 누구도 입 밖으로 내놓고 빈정거리거나 헐뜯는 일은 없었다.
주인어른이 하는 일은 어떤 일이 됐든 절대로 드러내놓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않는게 집안의 법도처럼 되어 있었다.
정부인인 오월랑을 비롯해서 둘째 셋째 넷째도 다 그 사실을 알고,
뭐 그런 요물 같은 게 다 있느냐고 금련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넷째부인인 손설아가 가장 금련을 얄밉고 아니꼽게 여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섯째가 들어오는 바람에, 넷째가 밀려난 셈이니 말이다.
부인들 중에서 가장 질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손설아는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늘 불만에 싸여있었다.
주방 일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깔끔하고, 음식 솜씨가 좋은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그녀를 넷째 부인으로 들어앉혔을 당시 그녀가 만든 음식을 먹어본 서문경은
자기의 입맛에 꼭 들어맞는다면서 앞으로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일을 맡아서
해달라고 분부를 내렸던 것이다.
처음 한동안은 자기 솜씨를 치켜 올려 주는 터이라 우쭐해져서
열심히 음식솜씨를 부려 서문경을 비롯해서 집안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으나,
차츰 싫증이 났고,
나중에는 이거 뭐 부엌데기 노릇이나 하게 되었나 싶어서
슬그머니 불만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음식 솜씨 좋은 게 도리어 우환이 된 셈이었다.
그런 그녀인지라,
금련이 서문경과의 잠자리에 몸종인 춘매를 끌어들여 말하자면
삼인성희(三人性戱)를 즐긴다는 말을 듣자 대뜸 흥! 코방귀부터 뀌고는
“잘 노는군. 더러운 년. 그러면 그렇지, 제 서방을 제 손으로,,,,,”
독살을 한 년이니....라는 말까지 내뱉으려다가 꿀컥 삼켰다.
손설아는 금련뿐 아니라 춘매도 싸잡아 욕을 해댔다.
“열여섯 밖에 안된 어린 것이 벌써부터 노는 꼴이라니...
흥! 좋은 것부터 배우는군. 구역질이 나서 못 참겠다구.
그 주인에 그 몸종이지, 별수 있겠어”
이렇게 투덜투덜 입밖에 내어 지껄이는 사람은 집안에 손설아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입 때문에 곧 봉변을 당하게 되고 만다.
하녀 춘매 22회
어느 날 아침 서문경은 침상에서 내려와 요연을 보러가면서 금련에게 일렀다.
“오늘 아침은 말이야 하화병(荷花餠)하고 은사자탕(銀絲紫湯)이 먹고 싶군”
하화병이란 반죽한 밀가루를 엷게 늘여서 구운 떡이고
은사자탕은 당면과 소금에 절인 생선을 함께 넣어 끓인 국이었다.
“예, 알겠어요”
세수를 마치고 경대 앞에 앉아 화장을 하고 있던 금련은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고서
얼른 하녀의 방 쪽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춘매야, 어서 이리 와봐”
“예”
곧 춘매가 나타난다.
간밤에 세 사람이 한데 어울려 엎치락뒤치락 했던 터이지만
춘매는 벌써 여러 차례 그런 희한한 짓거리를 즐겼던 터이라
이제 조금도 쑥스러워 하는 기색이 없다. 금련도 역시 마찬가지다.
“너 말이야, 주방에 가서 하화병하고 은사자탕을 빨리 만들어라 그래.
주인어른께서 오늘 아침은 그걸로 하시겠다니까”
“예, 알겠어요”
춘매는 가느다란 허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경쾌한 걸음으로 방을 나선다.
서문경에게 숫처녀를 바치고 때때로 삼인 성희를 즐기게 된 뒤로 춘매는
공연히 우쭐해져서 매사에 약간 들뜬 것처럼 덤비기도 했고,
마치 자기의 신분이 한층 격상되기라도 한 듯 콧대가 높아져 경망스럽게 굴기도 했다.
여전히 금련의 몸종임에는 변함이 없는데도 순진하고 고분고분한 맛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었다.
주방에 들어서자 춘매는 손설아에게 아침 인사도 안하고 대뜸 명령조로 말했다.
“하화병하고 은사자탕을 빨리 만드세요”
“뭐라구?”
하인들의 여편네 몇몇과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있던 손설아가 힐끗 흘겨보듯 돌아본다.
그 말투가 귀에 거슬렸던 것이다.
“주인어른께서 오늘 아침은 그걸 드시겠다는 거예요”
“너 말투가 그게 뭐니?”
“내 말투가 뭐 어떤데요?”
손설아는 두 눈의 긴 속눈썹이 바르르 떨린다.
“제”가 아닌 “내”라는 말을 쓰는 춘매가 건방지고 아니꼽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너 누구 앞에서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는 거야?”
“내가 무슨 말을 함부로 했다는 거예요?
주인어른께서 하화병과 은사자탕을 자시겠다고 주방에 가서 시키라고 해서
그 말을 전했을 뿐인데 뭐가 어쨌다는 겁니까?”
주방에서 부엌데기 노릇이나 하는 넷째 부인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춘매는 손설아를 빤히 바라보며 대꾸를 한다.
하녀 춘매 23회
성미가 꽤나 급한 손설아는 발칵 화를 내어 내뱉는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지.
열여섯 밖에 안 된 어린 것이 벌써 주인을 유혹해서 몸을 바치더니
간뎅이가 부어 올랐어”
“뭐라구요? 몸을 바쳐요?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춘매는 시치미를 뚝 떼고 손설아를 똑바로 쏘아본다.
“이제 보니까 이것이 앙큼하기도 하구나. 그래 몸을 안 바쳤단 말이냐?”
“몸을 바치는 걸 봤어요?”
“그걸 모르는 줄 아니?
한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비밀이 있을 거 같애?
네가 운다는 것도 다 알고 있는데”
“울다니요?”
“그래도 시치미를 떼나. 나 참 기가 막혀서. 기분이 좋아 운다면서?
헤헤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단 말 모르니?”
그제야 춘매는 살짝 눈언저리가 붉어지며 뭐라고 말이 나오지가 않아
입을 꼭 다물고 손설아를 노려보고만 있다.
“그것만 아는 줄 아니?
몸종하고 그 주인이 벌거숭이가 되어 같이 주인어른한테 덤벼든다는 것도 다 알고 있다구.
공공연한 비밀이라구. 알겠어?”
“.....”
“더럽고 망측한 것들 같으니라구. 개보다도 못하지 뭐야. 개들도 그런 짓은 안한다구”
식사 준비를 하던 여편네들도 모두 일손을 놓고 재미있다는 듯이,
그러나 경멸의 눈초리로 춘매를 바라보고 있다.
춘매는 여러 사람의 시선이 자기한테 집중되는 것을 느끼자
도저히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버티고 있을 수가 없어
그만 홱 돌아서서 주방을 뛰쳐나간다.
뛰쳐나가면서도 힐끗 손설아를 돌아보며,
“흥! 샘이 나서 밸이 꼴리는 모양이지”
한마디 기어이 내뱉는다.
방으로 돌아간 춘매는 주방에서 당한 분함을 금련에게 외어 바쳤다.
그 말을 들은 금련은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세 사람이 밤으로 은밀히 즐기고 있는 비밀이 어떻게 알려졌는지
놀라면서 약간 당황하기도 했다.
아침부터 기분 잡치는구나 싶었다.
“그래, 하화병하고 은사자탕은 만든다던?”
“글쎄요, 제 말을 트집 잡아 나무라기만 하고, 그 음식을 만들 생각은 안하던데요”
“내가 가봐야겠군”
금련은 치맛자락을 펄럭거리며 방을 나선다.
금련이 주방으로 들어서도 손설아는 힐끗 한 번 돌아보았을 뿐,
아무 말 없이 자기 할일을 하고만 있었다.
싹 무시해 버리는 듯한 태도였다.
하녀 춘매 24회
“형님”
손설아를 가만히 지켜보고 서있던 금련은 속으로는 몹시 불쾌했으나,
되도록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또 힐끗 돌아볼 뿐,
손설아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다.
그러자 금련은 좀 볼멘소리로 묻는다.
“하화병과 은사자탕은 어떻게 됐어요? 만드나요, 안만드나요?”
그 말투가 귀에 거슬리는 듯 손설아는 가볍게 흥! 코방귀를 뀌고는 불쑥 뇌까린다.
“자네가 좀 만들면 안되나? 자네는 조막손이야 뭐야?”
“형님이 주방 일을 책임지고 있잖아요”
“난 뭐 부엌데긴 줄 알어?
만날 부엌에서 일이나 하게. 밤으로는 독수공방을 하고”
“하하하....”
“왜 웃는 거야?
매일밤 서방하고 자는 년이 그 서방 아침 요리를 좀 만들어다 바치면 안되나?”
“형님, 오늘 아침에 별안간 왜 그래요? 뭐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나요?”
“몰라서 묻는 거야? 약 올리지 말라구”
“어머, 약을 올리다니, 내가 왜 형님한테 약을 올려요?
그게 아니라니까요.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래요?”
“춘매란 년까지 나를 업신여기러 드니 분하단 말이야”
“춘매가 뭘 어떻게 했는데요?”
“고것이 글쎄 주인어른한테 몸을 바치고 나더니 아주 버르장머리가 없어졌지 뭐야.
콧대가 높아져 가지고 아무한테나 말을 함부로 한다니까.
나한테 글쎄 이래라 저래라 명령조지 뭐야. 나참 기가 막혀서.....”
“어머, 그래요? 뭐 그런 것이 다 있어”
“자네 잘 들어. 내가 한가지 충고를 하겠는데 말이야.
몸종하고 같이 벌거숭이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구”
“뭐라구요? 그게 무슨 말이야, 도대체...”
이미 춘매가 외어바친 말을 들어서 알고 있는 터이면서도
막상 손설아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금련은 속으로 적이 당황하며 짐짓 처음 듣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식사 준비를 하던 여편네들이 일손을 멈추고 일제히 금련의 얼굴로 눈길을 보낸다.
그 시선들 앞에 금련은 절로 얼굴이 살짝 붉어지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
기왕에 말을 꺼냈으니 좀더 단단히 오금을 박아야겠다는 듯이 손설아는 거침없이 지껄인다.
“몸종과 함께 그런 짓까지 해대니 그 몸종의 행실이 나빠질 수밖에.
그리고 주인으로서 체면이 뭐가 되느냐 말이야”
“아니, 내가 뭘 어쨌다는 거야? 응? 도대체 무슨 말이야?”
금련은 발칵 화를 내어 마구 반말지거리로 대든다.
하녀 춘매 25회
“아니, 자기가 한 일을 몰라서 묻는 거야? 맞바로 까놓고 얘기를 해야 알아듣겠어?”
손설아는 금련을 경멸의 시선으로 노려보며 마구 퍼붓듯 말한다.
금련은 분해서 못견디겠는 듯 한쪽 가느다란 눈썹을 바르르 떤다.
“나 참 아침부터 재수가 없을라니까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듣겠네.
만들라는 음식은 안 만들고, 왜 자꾸 앙탈을 부리는 거야?”
“앙탈을 부린다고? 말 조심해. 누구 앞에서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리는 거야”
“흥! 누가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는지 모르겠네. 그러다가 큰 코 다칠 줄 알라구”
“큰 코 다치는 것 좋아하네. 누가 큰 코 다치는가 보라구.
그 따위로 추잡하게 놀아대다가는 정말 큰 코 다칠테니까 두고 보라구.
개보다도 못한 것.............”
“뭐라구? 개보다 못해? 이년이 뒈지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이년? 누구한테 이년 저년 하는거야? 앙!
몸종하고 함께 벌거숭이가 되어 서방한테 달려들어 그 짓을 해대는 년이
그래 개보다 나을 것 같으냐? 개들도 그렇게는 안 한다구. 알겠어?”
“야, 이년아, 네가 봤어? 네 눈깔로 봤느냐 말이야”
“흥! 꼭 언젠가 하던 말 같군 그래.
무송이가 쳐들어 온 날 밤도 꼭 지금처럼 네 눈깔로 봤느냐고 생떼를 부렸잖아.
제 남편을 제 손으로.....”
손설아는 피가 머리꼭지까지 치솟아 있었으나,
‘독살을 해놓고서’라는 말까지는 차마 내뱉을 수가 없어서 꿀컥 삼켜 버린다.
“멋이 어쩌고 어째!”
금련은 그만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와락 달려들어 손설아의 머리끄덩이를 불끈 거머쥔다.
“아니, 이 망할 년이... 이거 안 놔?”
기습을 당한 꼴이 된 손설아는 어쩔 줄을 모르다가
냅다 자기도 두 손을 내뻗어 금련의 머리끄덩이를 휘어잡는데 성공한다.
“아이구 왜들 이러세요”
“참으시라구요”
여편네들이 일손을 놓고 우르르 몰려들어 뜯어말린다.
아침부터 주방에서 넷째 마누라와 다섯째 마누라가 냅다 붙어서
드잡이를 해대고 있는 줄을 모르고 서문경은 세수를 마치고서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상쾌한 기분으로 거실로 돌아와 금련의 경대 앞에 앉는다.
갖가지 화장품 중에서 남자도 사용할 수 있는 놈을 하나 집어 들고
얼굴에 찍어 바르고서 썩썩 문지른다.
춘매는 거실 한쪽에 놓인 식탁에다가 이것저것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서문경이 돌아보며 묻는다.
“배가 고픈데 하화병하고 은사자탕은 어떻게 됐어?
아직 멀었나? 집사람은 어디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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