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실명대협

제40장 失名大俠

오늘의 쉼터 2014. 6. 22. 19:02

제40장 失名大俠

 

 

 

철면사자(鐵面使者) 하나, 그리고 귀면사자 오십칠 명. 도합 오십팔 인의 천외신궁 마졸이었다. 

 

"저, 저 놈들이?" 

 

의검신협의 송충이 같은 눈썹이 심하게 꿈틀거렸다.

 

 

퍼런 힘줄이 돋은 손이 어느샌가 검자루에 닿았다. 

 

"훗훗, 저항 않는 게 좋아. 강남대협이자 인심대협(仁心大俠)인 의검신협께서 비명횡사했다는

 

소문을 내고 싶지는 않으니까." 

 

철면사자는 빈정대듯 내뱉으며 거만스레 손을 쳐들었다.

 

 

그의 손은 숯보다 시꺼멓게 변했다. 

 

'묵옥혈기공이다.' 

 

능설비는 즉시그의 마공을 간파했다.

 

 

철면사자는 그가 아는 인물은 아니었다.

 

 

하나, 마공의 수준은 상당했다.

 

 

능설비는 한 가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혈루지회(血淚之會). 

 

고금 무림계를통해 가장 번성했던 단일 마방! 

 

철면사자는 그곳 출신임에 분명하리라.

 

 

벌써 마의 뿌리는 무림을 뒤덮고 있다. 

 

'그 놈이 입김을 불고 있는 것이다.' 

 

능설비는 혈수광마웅의 힘을 느꼈다.

 

 

그는 모든 것을 서서히 그리고 철저하게 시작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차하면 손을 쓰자.' 

 

능설비는 팔짱낀 자세로 은근히 진력을 모았다.

 

 

한데, 의검신협이 갑자기 검을 놓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저항을 하지 않겠다는 모습이었다.

 

 

사실, 그는 의검방에 대한 미련 때문에 봉문까지 하면서 버틴 것은 아니었다.

 

 

기다릴 사람이 있기에 떠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가 기다리는 사람은 바로 신품소요객이나 그의 후예였다.

 

 

그렇다면 구태여 피를 흘려야 할 필요가 없었다. 

 

"으핫핫, 항복인가?" 

 

철면사자는 광소를 터뜨리며 득의에 찬 눈빛을 발했다. 

 

"간단한 짐만 꾸려 떠나겠소. 싸움은 하지 않겠소." 

 

의검신협은 차분히 말했다. 

 

"좋아. 그 정도의 아량은 있다. 자아, 어서 짐을 꾸려 갖고 떠나라. 으핫핫." 

 

철면사자는 소매를 저으며 여유를 부렸다.

 

 

의검신협은 탄식어린 한숨을 내쉬며 대의신타자와 함께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왜 기를 꺾을까?' 

 

능설비는 조금섭섭해 했다.

 

 

 하지만 그가 과히 서운해 하지 않아도 될 일이 생겼다. 

 

"헤헤 저 계집 좀 봐라." 

 

"크흐 한번 품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귀면사자들 중몇 놈이 능설비의 품에 안겨 있는 설화를 보고 군침을 삼켰다.

 

 

능설비는 자신도 모르게 설화의 풍성한 둔부를 받쳐 안고 있는 상태였다.

 

 

그 모습이 색마들의 욕심을 자아내게 한 것이다. 

 

"헤헤 쳐 죽이자." 

 

"아까 보니 이놈은 여기 사람이 아니었다." 

 

"여기 사람이건 아니건 상관없다. 저놈을 죽이고 저 계집을 천외신궁 분타의 노예로 부리자." 

 

그들의 말투는거침이 없었다.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닌던가? 

 

스슥슥.

 

귀면사자들은 능설비를 삥둘러 포위했다.

 

 

능설비는 아주 천천히 내뱉았다. 

 

"더 이상 다가서지 마라." 

 

그것은 경고였다.

 

 

아니 명령에 가까웠다.

 

 

하지만 경고든 명령이든 귀면사자들의 행동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훗훗, 용렬한 놈!" 

 

"이놈, 그 계집이 네 계집일 것이나, 헤헤 이제부터는 우리들의 계집이다." 

 

귀면사자들이 겁없이 다가섰다.

 

 

하지만 이들을 지켜보던 철면사자는 갑자기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의 안목은 그래도 귀면사자들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이상한 기도(氣度)가 느껴진다.' 

 

그는 바싹 긴장됐다.

 

 

생애 처음으로 강적을 대하는 기분이었다.

 

 

그의 걸음이 저절로 뒤로 이동됐다. 

 

"잠, 잠깐 멈춰라!" 

 

그는 일갈하여부하들을 저지시켰다.

 

 

순간, 능설비의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떠올랐다.

 

 

귀면사자들은 아찔한 환영에 사로잡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늘을 가득 뒤덮은 일백팔 개의 검은 그림자.

 

 

정확히 일백팔 개의 흑영은 삽시간에 귀면사자들을 에워쌌다. 

 

"이, 이럴 수가!" 

 

"마공 중의 마공인 환영분신행(幻影分身行)을 쓰다니!" 

 

"흐윽!" 

 

철면사자를 비롯한 모든 귀면사자들은 이 엄청난 현상에 심장마저 멎을 지경이었다.

 

 

하늘과 땅을 휘감은 흑영 속에서 천신의 음성인양 준엄한 외침이 터졌다. 

 

"참(斬)." 

 

꽈르르릉. 하늘의 노여움인가?

 

 

고막을 찢는 뇌성 속에 핏빛 혈장이 폭풍처럼 뿌려졌다.

 

 

수천수만 개의 손바닥.

 

 

그 하나하나의 위력은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정도였다.

 

 

가공할 마공의 위력 앞에 귀면사자들은 물론 철면사자까지 속수무책이었다.

 

 

동시에 터지는 폭음 속에 비명이 난무했다. 

 

"으아악." 

 

"아아, 악. 하늘을 모르고 시비를 걸었다니!" 

 

"케에엑." 

 

수십 군데에서피바람이 일어났다.

 

 

철면사자는 머리가으스러져 죽었다.

 

 

다른 자들은 시체조차 남기지 못했다.

 

 

능설비는 단 일초로 모든 사람을 격살한 것이다. 

 

"눈꽃, 나를 믿어도 된다고 하지 않았더냐?" 

 

능설비는 잠든설화의 보드라운 볼을 다독였다.

 

 

이때, 장원 안으로 들어갔던 의검신협과 대의신타자가 부리나케 뛰어나왔다.

 

 

물씬 풍기는 피비린내가 난무할 뿐 기세등등하던 천외신궁의 고수들은 이미 어디에도 없었다. 

 

"오오, 무신(武神)." 

 

"역시 신품소요객, 그분이 보내신 분은 다르군요?" 

 

능설비는 담담히 미소지을 뿐이었다. 

 

"아아, 하늘을 이제야 알았읍니다." 

 

"대체 의협께서는 어떤 분이십니까?" 

 

두 사람은 오체복지(五體伏地)를 했다. 

 

"내 이름은 나는 이름을 묻은 사람이오." 

 

능설비는 얼른등을 돌렸다.

 

의검신협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시다면 실명대협(失名大俠)이란 말씀이십니까?" 

 

"실명대협이오? 그런 이름은 처음인데?" 

 

두 사람이 어찌 능설비를 알겠는가! 

 

실명대협(失名大俠). 

 

무림사의 일장(一章)을 장식하게 되는 이름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아득한 거실은마치 학자의 거처인양 묵향이 물씬 풍겨졌다.

 

 

고금에 이름높은 명가의 서필과 묵화가 거실 가득히 둘러져 있었다. 

 

붉은 비단이 덮혀진 목탁 위로 작은 나무 상자가 하나 놓여졌다.

 

 

다소 고풍스럽게 느껴지는 목궤(木櫃)였다.

 

 

목궤를 내려놓고 사마장천은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바로 이것입니다." 

 

"무엇이오?" 

 

능설비는 받으려 하지 않았다.

 

 

설화는 호피가 둘러진 의자 한쪽에 기대 뉘여져 있었다. 

 

"천인명부(千人名簿)지요." 

 

의검신협 사마청천은 목궤를 열었다.

 

 

그 안에는 장부책 열 권이 들어 있었다. 

 

'산서성(山西省)' 

 

'호남성열사(湖南省烈士)' 

 

'호북성(湖北省)' 

 

'섬서성(陝西省)' 

 

'산동성(山東省)' 

 

'하북하남성(河北河南省)' 

 

장부책에는 일성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무엇을 뜻하는 것이오?" 

 

능설비는 책명을 훑으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제가 의검방을 세워 이룩한 것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의검신협은 목궤를 바쳤다. 

 

"이 안에는 천 명의 이름과 그들의 사는 곳이 적혀 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제가 남몰래 은자를 대어 글공부를 했습니다!" 

 

"무슨 목적으로?" 

 

"모두 그분이 시키신 일이었습니다." 

 

"신품소요객?" 

 

"그렇습니다." 

 

" ?" 

 

능설비는 회상에 젖어가는 사마장천을 응시했다.

 

 

그는 두 손을 마주 모은 채 천천히 거실을 거닐었다. 

 

"십 년 전이었읍니다. 당시 그분은 소림사에서 열리는 동의지회(同義之會)에 참가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시는 중이었지요." 

 

"흐음." 

 

"저는 그때 화적에서 다 죽어가는 상태였읍니다.

 

그분의 자비로운 손길이 없었다면 벌써 이 세상 목숨이 아니었지요.

 

그분은 저를 구해 주셨고 무공까지 가르쳐 주셨읍니다.

 

그런 후 한 가지를 명하셨읍니다." 

 

능설비는 눈에이채를 발했다. 

 

"한 가지 명이라면?" 

 

"언제고 쓰일 것이니 일천 명의 영재(英才)를 모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일천 명의 영재라." 

 

능설비는 목궤의 명부책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신품소요객이라면 천하의 기인이다.

 

십 년 후를 내다보는 이 안배는 반드시 곡절이 있을 것이다. 

 

"예, 그분은 그렇게만 말씀하셨읍니다.

 

그리고 언제고 무림에 환란이 닥칠 것이고 그때 그들이 일어날 것이라 하셨습니다." 

 

능설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것을 적어 주셨습니다." 

 

사마장천은 목궤 바닥에서 작은 봉서를 집어들었다.

 

 

봉서는 아주 누렇게 변색돼 있었다. 

 

"때가 되면 펴보라 하신 것입니다." 

 

능설비는 봉서를 받아들자 가벼운 설레임에 젖었다.

 

 

그는 봉서에서 서찰을 꺼내 펴보았다. 

 

'언제고 천 명의 준걸(俊傑)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 동의대호법이신 쌍뇌천기자의 말씀이시었다' 

 

첫 구절이 몹시 놀라웠다.

 

의검방의 일에도 쌍뇌천기자의 입김이 작용되었을 줄이야.

 

 

글이 이어졌다. 

 

 

<그 일 뒤에는 무서운 사연이 있다. 마도(魔道)는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최소한 천 명의 아이들을 금조에 태워 어디론가 보냈다. 

 

언제고 그들이마도의 부흥을 위해 나설지 모른다. 

 

십 년간 주도면밀한 조사를 해봤지만, 그 아이들이 어디 갔는지 알지 못했다. 

 

동의지회는 나와 각별한 교분이 있어, 자주 사사로운 술자리를 마련하곤 했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 탕마금강(蕩魔金剛)이 있어야 하오. 

 

그분은 천 개의 영단을 준비하실 것이다.

 

 

나는 소림사를 떠나며 생각해 봤다.

 

 

그러다가, 언제고 사람이 필요할지 모른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여기 사는 장천(長天)에게 그것을 부탁했다. 

 

장차의 일은 어찌될지 모른다.

 

 

장천이 일을 잘 할지도, 마도가 과연 일어날지도 모른다.

 

 

하나, 유비무환(有備無患)이 아니겠는가?

 

 

항상 한가롭게만 살아왔던 나 신품소요객이다.

 

 

그러나, 나도 정의가 무엇인지는 알고, 그것이 목숨바쳐 지킬 것임을 안다> 

 

 

글은 아주 길었다.

 

 

신품소요객은 능설비를 다시 한번 착잡하게 했다. 

 

'나와는 다른 분이다. 그분은 자신을 위해 사는 척했으나,

 

사실은 모든 것을 백도에 희생한 것이다.' 

 

능설비는 목궤가 아주 무겁다 여겼다.

 

 

천 명의 영재, 그들은 의검신협이 누구인지 몰랐다.

 

 

하나, 의검신협이 그들과 약속한 한 가지 신호를 하면 그들은 붓과 책을 집어 던지고 한데 모일 것이다.

 

 

의검신협은 그들에게 학비를 대고,

 

그들이 재간을 익힐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의검방을 세웠다 할 수 있었다.

 

 

신품소요객이 뿌린 한 알의 씨앗이 그도 모르는 사이 아주 거대한 황금 벌판으로 변화한 셈이었다. 

 

능설비는 손을떨었다.

 

그는 봉서를 목궤에 넣었다. 

 

"나란 인간은 이것을 받을 수 있는 위인이 못 되오."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도 아니 됩니다." 

 

의검신협은 얼른 뒤로 물러났다.

 

 

그는 계면쩍은 듯 얼굴을 붉혔다. 

 

"이제부터 주인(主人)으로 섬기고 싶습니다.

 

실명대협, 부디저와 대의신타자를 속하로 거둬 주십시오.

 

그럼 그것을 받아 등에 지고 다니겠읍니다." 

 

"아니 되오." 

 

"핫핫, 제 마음은 이미 정해졌읍니다.

 

지금 거절하신다 하더라도 저와 대의신타자는 실명대협의 속하임을 떠벌이고 다닐 것입니다." 

 

의검신협은 능설비의 일초신의(一招神威)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가장 높이 사는 것은 능설비의 겸손함이었다.

 

 

수수한 옷차림, 그리고 자신을 내어보이고 싶지 않아 얼굴을 죽립으로 가리는 점 등이

 

존경심을 품게 했다. 

 

'이분이야말로 당세를 구할 영웅이다.' 

 

의검신협은 그런 인물을 모시게 된다는 사실에 스스로 감격했다. 

 

'나는 이럴 수 없다.' 

 

능설비는 착잡한 마음에 이대로 서 있을 수 없다 여겼다. 

 

"마음대로 해도 좋소. 하나 나는 그 누구의 윗사람도 아니 될 것이오." 

 

능설비는 급히설화를 안아들었다. 

 

"저는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갈 것입니다." 

 

의검신협은 능설비의 의도를 눈치챈 듯 목궤를 둘러메었다.

 

 

하나, 그는 능설비가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능설비의 뒷모습을 놓치고 말았다. 

 

"축지성촌(縮地成寸)이다!" 

 

의검신협은 입을 딱 벌렸다.

 

 

능설비는 찰나지간에 모습을 감췄다. 

 

"아아, 빠르기가 유성(流星) 같다.

 

그러나 해산시킨 수하들의 이목(耳目)을 이용한다면 실명대협을 달포 안에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의검신협은 목궤를 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대의신타자도 그 뒤를 따라갔다.

 

 

그들의 의욕은 대단했다.

 

 

십 년의 세월 속에 영화를 누리던 의검방은 그 할 일을 마치고 커다란 문을 열어놓은 채

 

다른 주인을 기다리게 됐다. 

 

피에 젖은 대문 앞은 바람에 흩뿌려지는 죽엽(竹葉)들로 덮혀져갔다.

 

 

가을은 깊어지고 있었다. 

 

등선에 걸린 달은 황금빛으로 고왔다.

 

 

산 속은 이미 어둠에 젖어들고 어디선가 구슬픈 들개의 울음 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왔다.

 

 

능설비는 설화를 업은 채 계수가 흐르는 계곡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실명가가, 배가 고파요." 

 

설화는 한기를느낀 듯 능설비의 널찍한 등판에 볼을 기대며 아이처럼 보챘다. 

 

"걱정 마라. 어디엔가 인가(人家)가 있겠지." 

 

"살명가가는 왜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을 피해 외진 곳으로만 가지요?

 

그 덕에 저만 배가 텅 비게 되었잖아요." 

 

"설화야, 너는 정말 모를 것이 세상에는 많단다." 

 

능설비는 늦은산책을 나온 사람처럼 산길을 걸어올라갔다.

 

 

꼭하니 이 길을 택할 이유는 없었다.

 

 

괜히 산 속을 걷고 싶어 배회하는 중이었다.

 

 

그는 개봉부로 가는 것을 잠정적으로 포기한 상태였다. 

 

'나는 가봤자 앉을 자리조차 차지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처지가 어떤지 알고 있었다. 

 

'구마령주는 죽었다' 

 

'전마도가 전보다 더 무섭게 북수를 시작했다' 

 

'새로운 구마령주가 나타났다' 

 

바람이 일러 준 말들, 모든 것은 보고 듣지 않아도 뻔했다. 

 

'그놈은 나를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내가 구절기를 파괴하게 내버려둔 다음 나를 제거해 버린 것이다.

 

백도 명숙들마저 함께!' 

 

능설비는 이제야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혈수광마웅은 그를 철저하게 이용했던 것이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되었다 할 수 있었다.

 

 

어쩌면 능설비 손에 죽은 금면마종사도 혈수광마웅에게 속았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나의 자리를 찾아야 하는가?' 

 

능설비는 태사의를 기억했다.

 

 

출도 이래 천하를 뒤덮었던 그의 명성,

 

지옥의 수련을 함께 헤쳐와 자신의 수하가 됐던 십구비위,

 

그리고 만화지의 정경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다지 오래 전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득한 과거처럼 느껴졌다. 

 

'나의 자리는 구마령주의 권좌다.

 

하나, 구마령주이지 않은 이상 마도에는 나의 자리가 없는 것이다.' 

 

그는 점점 더 착잡해졌다.

 

 

그는 자신의 존재가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조차 아직 알지 못했다. 

 

얼마를 갔을까?

 

 

땅만을 보고 가던 능설비의 고막에 설화의 목소리가 비수같이 되어 파고들었다. 

 

"저기 인가가 있어요, 실명가가!" 

 

"으응?" 

 

능설비는 고개를 들었다. 

 

무성한 수림이병풍처럼 둘러진 산기슭에 한채의 모옥(茅屋)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창에서 불빛 한 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토록 외진 산 속에 인가가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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