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연성결(連城訣)

12. 사랑 하는 사람아! (戀人)

오늘의 쉼터 2014. 6. 20. 09:41

12. 사랑 하는 사람아! (戀人)

 

적운은 담을 넘어 만씨 집의 서재로 다시 들어갔다.

날은 곧 밝아오려 하고 있엇다.

희미한 어둠속에서 적운은 한 사람이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언뜻 보니 척방인듯했다.

적운은 깜짝 놀라 부싯돌을 부딪쳐 탁자위의 촛불에 불을 켰다.

척방의 온몸은 붉은 피가 낭자했고 그의 배에는 단검이 하나가 꽂혀 있었다.

그녀의 몸 옆에는 벽돌이 가득 쌓여 있었고 벽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만씨부자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적운은 고개를 숙여 척방의 몸 옆에 끓어 앉아 외쳤다.

 

"사매! 사매!"

 

적운은 목쉰 소리를 내지르며 온몸을 부르를 떨었다.

적운은 손을 뻗어 척방의 얼굴을 더듬어 보았다.

아직도 따듯한 기운이 남아 있었고 코에서는 아주 약한 숨결이 스며나오고 있었다.

운은 다시 떨리는 음성으로 외쳤다.

 

"사매!"

 

척방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는 얼굴에 한줄기의 쓸쓸한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사형, 정말 미안합니다."

 

적운은 말했다.

 

"말하지마오. 내가 당신을 구해주겠소."

 

적운은 공심채를 옆에대 내려놓고 두 손으로 척방의 몸을 안아 들었다.

그리고 왼손으로 그녀의 몸에 꽂혀 있는 단도를 뽑으려 했으나 자세히 보니

단도는 그녀의 아랫배 깊숙이 박혀 있어서 그 단도를 뽑았다가는 그녀는

곧 절명하고 말 것만 같았다.

적운은 어찌할바를 몰라서 잠시 망연해 하다가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지? 누가 당신을 이렇게 만들었소 ?"

 

척방은 씁슬히 웃으면서 대꾸했다.

 

"사형,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니, 말해서 무엇하겠어요.

나를... 나를 탓하지는 말아주세요.

나는 남편을 구출해 냈어요.

그런데... 그가... 그가..."

 

적운은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만규 그자가... 오히려 당신을 해친 것이구료. 그렇지 않소 ?"

척방은 처연히 웃으면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적운은 가슴을 컬로 에이는 듯한 아픔을 느끼었다.

척방의 목숨이 워낙 경각에 달려 있었기때문에 아무리 손을 쓴다해도

그녀의 목숨을 구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한편 적운의 마음속에는 한 줄기의 질투심이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당신은... 결구 남편을 사랑하고 있었군요.

자신이 죽는 줄 알면서도 그의 목숨을 살리려고 했다니..."

 

척방이 그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

 

"사형, 한가지만 약속해줘요.

공심채를 잘 보살펴 주겠다고 말이예요.

마치... 당신의 딸처럼 보살펴 주세요."

 

적운은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적운은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이 못된놈은 어디로 갔을까 ?"

 

척방의 눈은 점차 빛을 잃고 있었고 목소리도 점차 가늘어지기시작했다.

그녀는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그 동굴에 두마리의 호랑나비가 숨어 들어갔읍니다.

양삭백 축영대.... 사형, 보세요.

그 한 마리는 당신이가 한마리는 저예요.

우리들은... 비록 이렇게 날아들어왔다가 날아가지만 영원히 헤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말씀 좀 해 보세요."

 

그녀의 목소리른 차츰차츰 작아졌고 몸에서도 서서히 따뜻한 기운이 사라지고 있었다.

적운은 한손으로 공심채를 껴안고 한손으로는 척방의 시신을 안은채

만씨 집의 담을 뛰어 넘었다.

적운은 본래 만씨 집의 저택을 불태우고 싶었으나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이 집을 태워버린다면 만씨부자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사매의 복수를 하기위해서라도 이 집은 그대로 남겨 두어야한다.'

 

적운은 폐허가 된 화원에 이르자 매화나무 밑에 구멍을 파고

척방의 시신을 묻었다. 척방을 묻기 전에 적운은 그녀의 몸에서 단도를 뽑아

자신의 품속에다 지녔다.

적운은 그 단도로 만씨부자의 목숨을 끊어 놓으리라 생각했다.

적운은 너무 상심한 나머지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단지 계속해서 자기 자신만을 책망했다.

 

'어째서 그 두 악당의 숨통을 그 자리에서 끊어 놓지 않았던가?

순간적인 실수로 사매의 목숨을 잃게 하고 말았구나.'

 

공심채는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엄마! 엄마!"

 

공심채의 울음 소리는 적운의 마음을 더욱 산란하게 만들었다.

적운은 강릉성 밖의 한농가를 찾아 농부 내외에게 은자를

쥐어주고는 공심채를 당분간 맡겼다.

그리고서 적운은 밤낯을 가리지않고 만씨 집 주위에서 그들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반달이 지나도록 그들의 그림자조차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이상한 것은 노곤, 복원, 침성, 손균, 풍탄등의 몇사람들이 실종된 후 다시는

만씨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였다.

만씨집의 노비들도 사방으로 흩어져서는 어떤 자는 도적질을 하고

어떤자는 싸움 질을 일삼고 있었다.

 

강릉성 안에는 수많은 무림의 인물들이 사방팔방에서 모여들었다.

어느 날 저녁, 적운은 몇 명의 강호의 호객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연성검결(連城劍訣)은 알고보니

당시선집에 숨겨져 있다고 하던데, 맨처음 네 글자로 '강릉성남' 이라고 합디다."

 

"그렇읍니다. 요사이 떠돌고 있는 소문들도 결코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네글자 다음의 글자들이 무슨 글자인지는모른다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글자이든 말든 무슨 상관이요?

우리는 이곳 강릉성만 지키고 있다가 사람들이 보물을 찾아내면

그때 끼어들면 되지 않겠읍니까?"

 

"맞습니다. 설사, 전부를 찾치할수는 없다고 해도 조금은 나누어 가질수 있을 것입니다.

기다려보면 국물이 있긴 있을 것입니다."

 

"하하! 요즘 서점에서 당시선집을 사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오늘 내가 책방에 들러 보았더니 미처 말도 꺼내기 전에

그곳에서 일하는 아이가 말하기를 '당신도 당시선집을 사려고 왔지요?

이 책은 우리들이 지금 방금 가져온 것으로 사시려면 빨리 사세요.

꾸물대다가는 한권도 사지 못 할 것입니다.

' 그래, 하도 이상해서 그 아이에게 물어 보았지요.

'너는 내가 어찌 당시선집을 사려 한다는 것을 알았느냐?'

그랬더니 그 책파는 아이가 무어라 한줄 아십니까?

그 아이가 말하기를 ' 어르신네께는 사실 대로 말씀드리지요.

요 며칠동안 몸에 도나 검을 찬 무술깨나 할 만한 사람들은

우리 책방에만 오면 열이면 열 다 그 책을 찾았읍니다.

책 한권에 은자가 다섯 냥입니다.

어르신네도 한권 사시겠읍니까 ?' 하더군요."

 

"제기랄 뭔놈의 책값이 그렇게 비싸 ?"

 

"당신은 책값을 잘 아십니까? 책을 사본적이 있나요 ?"

 

"하하! 나는 평생 책방이라고는 문턱도 넘지 않았소이다.

도박이라면좋아하지만 책하고는 아예 담을 쌓았읍니다."

 

적운은 그들의 말을 들으며 내심 생각했다.

 

'연성검결의 비밀이 새어 나왔구나. 누가 그 말을 퍼뜨렸을까?

분명 만씨 부자의 말을 노곤등이 듣고서는 퍼뜨렸을 것이다.

래서 아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 지는 것이다.'

 

적운은 그 옛날 정전과 함께 감옥에 있을 때 많은 강호의 친구들이

풍문을 듣고 찾아온 후 정전에게 당했던 일이 떠 올랐다.

 

'정전형의 큰일을 아직 처리하지 못했구나.

정전형의 일은 내 복수보다 훨씬 중요하다.'

 

능소저의 아버지는 강릉부의 지부였다.

적운은 강릉성에서 가장 큰 장의사와 비석을 만드는 곳에서

능소저의 묘가 강릉성의 동문(東門)밖 12리정도 되는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적운은 곧 한자루의 삽과 곡괭이를 가지고 동문 밖을 나섰다.

그는 곧 그 무덤을 찾을 수가 있었다.

묘비에는 '애녀능상화지묘(愛女凌霜花之墓)'라는 일곱 자가 쓰여져 있었다.

묘지 앞에는 꽃도 나무도 없었다.

능소저는 생전에 꽃과 나무를 무척 사랑하였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묘지 앞에 한그루의 나무도 꽃도 심지 않았던 것이다.

 

"사랑하는 딸? 사랑하는 딸? 하하하... 당신은 정말로 딸을 사랑했단 말이요?"

 

적운은 냉소를 터뜨렸다. 정전과 척방을 생각하자 지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내렸다.

눈물이 다 마른 줄 알고 있었는데 능상화의 묘지 앞에 이르니

다시 눈물이 펑펑 흘러 내렸다.

그묘지는 인가와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 있었으나 낯에는 사람들의 이목이 있어서

그 무덤을 파헤칠수가 없었다.

날이 저물자 적운은 삽을 들었다.

삼합토가 봉해진 큰돌을 젖히자 비로서 관이 드러났다.

몇년동안 계속된 고초로 인하여 적운은 쉽게 슬퍼하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교교한 달빛아래에서 관을 보게 되자 정대형이 바로 이 관때문에

담한 죽음을 당했다는 생각이 떠올라 비통한 나머지 다시 눈물을 흘리지 않을수 없었다.

능퇴사는 이 관의 겉에 금파순화(金波旬花)라는 독을 묻혀 놓았다.

비록 오랜 세월이 흘렀고, 관을 이곳까지 옮겨와 묻었기 때문에 독은 다 제거되었으리라

생각했지만 적운은 감히 손으로 관을 잡지를 못했다.

적운은 혈도를 뽑아 관뚜겅의 틈새에 천천히 밀어 넣었다.

그 혈도는 쇠를 자르고 돌을 자를 수 있는 칼이 었기 때문에 목재로 된 관은

마치두부를 자르는 듯이 맥을 못추었다.

적운은 별로 힘도 들이지 않고 관뚜껑의 못을 모두 제거 할 수 있었다.

적운이 손에 힘을 불끈 주자 관뚜껑은 날아가고 말았다.

순간 관속에서 뼈만 남은채 두손을 위로 향하고 있는 시체를 볼수가 있었다.

관뚜껑이 떨어져 나가면서 두 손이 움직이는 모양이

마치 해골이 살아서 음직이는 것만 같았다.

적운은 깜짝 놀라 생각했다.

 

'능소저가 입관할때 어떻게 두 손을 위로 쳐들 수가 있었을까?

정말 이상한 일이로군!'

 

관 안에는 수의나 수장품들이 전혀 없었다.

능소저는 단지 하나의 얇은 옷을 입고 묻혔던 것이다.

적운은 묵묵히 합장했다.

 

'정전형, 능소저, 당신 두분은 살아서 부부가 되지 못하고,

어서야 같이 묻히는 소원을 이루게 되었군요.

두 사람의 혼백이 있다면 지금은 응당 구천에서나마 기뻐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적운은 등에 메고 있던 보따리를 끌러 정전의 화장한 뼈를 능소저의 시신위에 뿌렸다.

이후 적운은 땅바닥에 무릎을 대고 공손히 절을 네번한 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정전형의 뼈를 쌌던 보자기를 손에 들고 열려진 관뚜겅을 덮고자 하였다.

뿌연 달빛 아래에 가서 관뚜껑 안쪽에 쓰여진 희미한 글자를 우연히 볼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적운은 관뚜껑의 안쪽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정랑, 정랑. 내세에 다시 부부가 되기를...'

 

적운은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끼며 땅바닥에 털석 주저 앉았다.

그 글자는 분명 손톱으로 새겨쓴 것이다.

한참을 생각해 보던 적운은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능소저는 산채로 묻혔던 것이구나. 관에 집어넣어 졌을때

녀는 아직 죽지 않은 몸이었다.

이 글자는 그녀가 죽기전에 손톱으로 새겼던 것이리라.

그래서 죽은 후에도 그녀의 두손은 위로 치켜져 있었던 것이로군.

천하에 이렇게 악독한 애비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정대형과 능소저는 결국 그에 굴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그녀의 한이 맺힌 글자이다.'

 

적운은 또 생각했다.

 

'능지부는 정대형이 탈옥한 것을 알고 틀림없이 그가 복수를 할 것이 두려워

급히 관뚜껑에다가 금파순화를 묻혔던 것이구나.

놈의 마음은 실로 금파순화보다 백배, 천배 더 독하구나.'

 

적운은 다시 관뚜껑 안쪽에 눈을 가까이 해서 다시 그곳에 새 겨진 글자를 보았다.

그 글자 아래에는 또 세줄의 글자가 새겨

져 있었다. 그것은 '51, 33, 28'등과 같은 숫자로 되어 있었다.

적운은 큰 숨을 한번 들이쉬고 생각했다.

 

'맞다. 능소저는 죽기 전까지 정대형과 합장되기를 원하고 있었군.

그녀는 정대형에게 말하기를 누구든 둘을 합장시켜 준다면

연성결(連城訣)을 그 사람에게 알려 준다고 했지.

정대형은 그 폐허가 된 장원에서 나에게 이야기해 주셨지만 미처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독이 몸에 퍼져 죽고 말았지,

사부의 그 검보위의 비밀은 사매가 눈물로 발견한 것인데 만씨부자가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렸지.

나는 이로부터 그 비밀이 사라진줄 알았는데 능소저가 이곳에 써 놓았을 줄은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적운은 묵묵히 축원을 하였다.

"능소저, 당신은 정말로 신의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호의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 낙심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정대형과 당신 곁에 같히 묻히고 싶읍니다.

그러나 아직 만씨주ㅂ와 당신의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지 못했읍니다.

금은보화는 내게 마치 먼지와도 같은 뿐입니다. 아무런 의미도 없읍니다."

적운은 말을 하면서 관뚜껑을 닫으려고 하는 찰나

머릿속에서 한가지 생각이 떠 올랐다.

 

'옳다! 만씨부자가 지금어디에 숨어 있는지 나는 모르고 있다.

아마 살아 생전 그들을 찾을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물이 숨겨져 있는 비밀을 세상에 드러낸다면 그들 만씨 부자는

틀림없이 소문을 듣고 그곳에 나타날 것이다.

이 비밀은 정말로 크나큰 미끼이다.

만씨부자는 의심이 많은 자들이지만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이 비밀의 소문을 듣고는 오지 않고는 못 배길것이다.'

 

적운은 관뚜껑을 내려놓고 숫자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는 한 글자, 한 글자 혈도의 검끝으로 숫자를 삽에다가 새겼다.

 그 이후 다시 자신이 새긴 글자가 틀림이 없는 가를 확인한

관뚜껑을 닫고 석판을 덮고 흙을 덮어 원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정대형의 마지막 유언을 이제야 지켜드리게 되었군요.

복수를 한 이후 이곳에 와서 주위에다가 수백 그루의 국화를 심어 주어야겠다.

정대형과 능소저는 국화를 제일 좋아하셨지. 될 수 있는대로 춘수벽파라는

국화를 찾아서 이곳에 심어주어야겠다."

 

다음날 아침 강릉성 남문 옆의 성벽에는 세줄의 석회수(石灰水)로 쓰여진 글자가 출현했다.

글자의 크기는 사방 한자정도였기 때문에 멀리에서도 '4,51,33,28...'등의

글자를 볼수가 있었다.

이상한 것은 그 글자가 땅과 두장 정도 위치에 쓰여져 있었다는 점이었는데

강릉성 안에는 그렇게 긴 사다리가 없었다.

람이 그 글자를 쓰기 위해서는 성 위로부터 밧줄로 몸을 묶고 내려와서 쓸수밖에 없었다.

이 몇 행의 글자가 쓰여진 곳에서 십여장 떨어진 성 한쪽 귀투이에서는 거지로 분장한

적운이 옷을 벗어들고 따뜻한 햇볕 아래에서 이를 잡고 있었다.

남문을 출입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았다.

몇 시간이 지나지 않는 사이에 강릉성의거리나 시장,

혹은 찻집에서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해졌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남문으로 와서 그 숫자들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나 그 숫자들은 써 있는 장소가 특출할뿐 그리 잘 쓴 글씨도 아니어서

일반 사람들은 한참 쳐다보다가 서로 이런저런 억측들만 하면서 돌아가곤 했다.

그 자리에는 몇명의 강호 협객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제각기 손에 '당시선집'이라는 책을 들고 있었는데,

두들 벽에 쓰여진 숫자를 베껴쓴후 한참이나 눈쌀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적운은 손균이 온 것을 보았으며, 침성이 온것도 보았다.

한참이 지나자 노곤도 왔다.

그러나 그들은 비록 손에 각자 한권씩의 책을 지니고 있었고,

만씨부자의 대화를 들어 숫자와 비밀간의 관계가 깊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나

연성검법의 초식의 차례를 알수가 없어서 숫자의 한자 한자를 어떻게 시에 응용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이 세상에는 오로지 만진산, 언달평, 척장발만이 알 뿐이었다.

노곤등 세사람은 몰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적운은 그들의 말을 알아 들을수가 없었다.

세 사람이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성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후 세사람은 분장을 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한명은 과일장사였고, 다른 한사람은 나무를 파는 사람이었고,

한명은 곡괭이를 맨 농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세사람은 성의 한 귀퉁이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적운은 그들의 마음을 추측할 수가 있었다.

그들은 만진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 비밀을 알아내지 않고도 만진산을 따라가면 보물을 찾아낼수 있고,

그 보물을 다 빼앗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조금은 나눠가질수 있을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다시 사부와 만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으나 부자가 될 판에 어찌 위험하다 해서

물러 날수가 있겠는가!

 

'연성검보'중의 맨 앞 숫자는 이미 이 바닥에 널리 퍼져 있었다.

곧 '4, 51, 33, 28'의 네 숫자는 바로 강릉성남을 가르키는 말이었다.

아무리 멍청한 사람일지라도 그 후의 많은 숫자들이

바로 검보중의 비밀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성 한쪽 구석에는 시간이 갈수록 앉아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 지고 있었다.

어떤 자는 분장을 한 모습으로, 어떤 자는 본래의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적운이 세어보니 모두 78명이었다.

다시 시간이 지나자 복원과 풍탄도 나타났다.

그들 사형제 두사람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다투고 있었다.

자칫 싸움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였으나 결국 조용해지더니

강가 옆에 앉고 말았다.

오후가 되어도 만씨부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벌써 어둑어둑해졌으나 그들은 여전히 출현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욕지거리를 하고 있었고,

심지어 만씨집안의 조상까지 욕을 했으며,

그 집안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늘어 놓았다.

날씨가 어두워지려 하자 서당 선생인 듯한 자가 종이 한장과 필묵을 들고서

눈치를 힐끗힐끗 보면서 성벽에 적혀져 있는 숫자를 적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심심했는지 아니면 화를 낼만한 대상이 없어서였는지

그 사람을 잡고 물어보았다.

 

"당신은 이 숫자들을 적어서 무엇하려고 하는거요?"

 

그 선생은 대답했다.

 

"이 늙은이가 나름대로 쓸 데가 있읍니다.

다른 사람은 굳이 알 필요가 없지요."

 

그러자 다시 그 사내가 말했다.

 

"말할 거요? 안할 거요? 말하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을 뭉개 놓겠소."

 

그러면서 사내는 무쇠같은 주먹을 그 선생의 코끝에다가 들이대었다.

선생은 두려운 듯이 벌벌 떨며 말했다.

 

"네... 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것을 적어 오라고 시켰읍니다."

 

다시 사내가 말했다.

 

"그게 누구요 ?"

 

"한분의 노인장입니다. 아니... 분명히 말씀드리겠읍니다.

분은 이 성안에서 명성이 자자한 만진산 어른이시요.

당신은 절대로 그분의 노여움을 피할수는 없을 것이오."

 

만진산이라는 이름이 입에서 튀어 나오자

여러 사람들은 동시에 웅성대기 시작했다.

적운은 내심 기뻐했다.

그 기쁜 마음속에는 많은 원한과 복수심,

그리고 괴로움이 섞여 있었다.

 

그 늙은 서당선생은 전전긍긍하며 앞에 서서 절뚝절뚝 똑바로 동쪽을 향해서 걷고 있었다.

백여 명의 사람들이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만진산이 오지 않자 그를 직접 찾아 나섰던 것이다.

로지 만진산이만이 그 비밀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 사내를 칭찬하였다.

 

"노형의 선견에는 정말 감탄하였읍니다.

우리는 만진산이 설마사람을 보내어 숫자를 적어오도록 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소.

만일 노형이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꼼짝없이 사흘 낯, 사흘 밤을 앉아서

세면서도 만진산의 교활한 수뭏萱 새까맣게 모를뻔했소."

 

그 사내는 의기양양해서는 말했다.

 

"나는 첫눈에 보자마자 그자가 만진산이 보낸 사람인줄 알았소이다."

 

그 사내는 마치 자기가 좋은 일이라도 한듯 의기양양해 했다.

 

적운은 많은 사람들 속에 끼어 있으면서 생각했다.

 

'만진산은 교활하고 무술에 능한 사람이니

절대로 그렇게 쉽게 이 사람들에게 잡히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히 다른 흉계가 있을 것이다.'

 

이때 이들 일행은 남문에서 꽤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성벽을 바라보았다.

언뜻 보나 한 사람의 그림으微 성벽을 스쳐서 서쪽으로 급히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적운은 생각했다.

 

'이 한 무리의 사람들은 저 사람을 ㅉ으면서 그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만약 만진산을 찾는다 하더라도 역시 만진산의 곁을 떠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넓은 강릉성에서 만진산을 찾는 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찾는 다는 것은 쉽기가 여반장이니

이 사람들의 뒤를 굳이 따를 필요가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그는 얼른 나무뒤로 몸을 숨겼다가 경공을 사용하여

남문으로 되돌아갭【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자가 사라진쪽을 향해 급히 달려가보니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나 그 자를 찾을 수가 있었다.

그의 경공 역시 대단한 것이었으나 적운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는 뒤에서 사람이 ㅉ아오는 것도 모르고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적운은 그가 한 작은 집 앞에 이르러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적운은 문밖에 서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한참후에 작은 집의 창문을 통해서 불빛이 비쳐 나왔다.

운은 잽싸게 창가로 달려가 문틈을 통해 안을 뻗離罹맘年.

방안에는 한 늙은이가 등을 적운쪽으로 하고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알아 볼수가 없었다.

그 늙은이는 책상위에 한권을 책을 펼쳐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당시선집'임을 알아 볼수가 있었다.

그는 한하자루의 붓을 쥐고 한 장의 노란 종이 위에다가

강릉성남 이라는 네 글자를 쓰고 있었으며,

그의 입에선 가볍게 '15,16,15,16... 열여섯번째 글자.'등의 말이 세어 나오고 있었다.

후 그는 바로 종이위에다가 편(扁)자를 썼다.

적운은 깜짝 놀랐다.

 

'저 사람이 당시(唐詩)에서 글자를 찾아내다니,

설마하니 그 역시 연성검법을 알고 있단 말인가 ?'

 

그의 뒷모습을 보아 틀림없이 만진산은 아니었다.

그 늙은이는 낡은 회색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누구인지 수가 없었다.

그가 책을 살펴보면서 손가락을 꼽아 숫자를 계산하기도 하고,

또 글자를 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모두 스물여섯자를 썼다.

그 글자의 뜻은 대충 이러했다.

"강릉성남의 서천영사(西天寧寺)의 대전불상을 향해 경건하게 절을 하고 기도를 하면

석가여래는 왕생극락의 복을 내릴 것이다."

 

그 늙은이는 화가 난 듯 붓으 책상위에 던지면서 말했다.

"무슨 불상을 향해서 경건하게 절을 하고 기도를 하면

석가여래가 왕생극락의 복을 내린단 말인가!

왕생극락을 하라니, 제기랄. 나더러 염라대왕 앞에나 가란 소리가 아닌가 ?"

적운은 이자의 음성이 매우 귀에 익다는 것을 느꼈다.

적운이 생각애 잠겨. 그의 얼굴이 이쪽을 향했다.

 

"둘째 사백이다!"

 

그는 이어 언달평이 왕생극락이니

염라대왕이니 하던 말이 생각나 웃음을 금치 못했다.

 

'그들 세 사형제는 연성검보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

서로 죽이고 사부까지 죽였는돋... 헤헤... 왕생극락을 하려고 고생을 한 꼴이 됐군!'

 

그는 밖으로 웃음을 터뜨리지 않았지만 방에서는 언달평이 크게 웃고 있었다.

 

"하하하! 나보고 석가여래를 향해서 경건하게 절을 하면서 빌라고?

그러면 나무조각이나 흙으로 빛어 만든 빌어먹을 보살이

나에게 복을 내리신단 말이지? 하하하! 제기랄...

정말 이럴수가 있을까? 이럴수도 있느냔 말이다.

강릉성내에서 수백명이나 되는 영웅호걸들이나 후레자식 또는 강도녀석들이

다투는 것도 모두다 이 한가지 목적인 왕생극락을 위해서렸단 말이렸다? 퓔逑하..."

웃음소리는 처량한 기색을 띄고 있었다.

언달평은 웃음을 그치지 않으면서 당시선집을 박박 찢어대고 있었다.

적운은 자기 자신이 몇년이나 고난을 겪어야 했으며 척방을

참혹히 죽도록 한 연성검결이 결국이 희롱하는 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자

미친 듯한 분노가 가슴 속을 채우는 걸 느끼고 앙천대소를 터뜨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때 언달평은 웃음을 뚝 그치고는 창 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에라! 일이 이렇게 된 바에야 이왕 속는셈 치고 천영사에 가볼까 말까?

밑져야 본전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제기랄! 강릉성 남쪽이라... 맞다! 거기에 절이 하나 있었던 걸 본 기억이 난다."

그는 소매자락을 휘둘러 기름등잔의 불을 끄고는 문을 열고 나와서 경신술을 전개하여

서쪽을 향해 몸을 날려 달려가기 시작했다.

적운은 잠시 망설였다.

 

'내가 만진산을 찾아가야 할까?

아니면 언사백을 따라가야 하나? 으음,

아무래도 한무리의 사람들을 찾기가 쉬우니 아무래도 먼저 언사백을 따라가야겠다.'

 

그는 생각을 마치자 언달평의 뒷모습을 ㅉ아 따라가기 시작했다.

반시진도 되지 않아 언달평은 어느 한채의 낡은 절에 도착했다.

그는 먼저 절밖에서 안의 동태를 살핀 다음에 주변을 한바퀴 돌면서

절 안팎이 조용하고 사람이 기척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 천영사가 있는 곳은 황폐하였고 몇년동안 수리를 하지 않았으며

스님들이 살고 있지 않았다.

언달평은 대전 앞에 이르러 부싯돌로 신단 위의 초에 불을 붙이려고 했다.

이때 바라보니 그 촛대의 촛농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의아하여 촛대를 만져보니 아직 따듯한 온기가 남아 있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얼마전에 어떤 사람이촛불에 불을 당긴 흔적이 아닌가?

언달평은 경계심이 생겨서 불을 끄고 사방을 살펴보려고 하는

갑자기 등짝에 화끈한 감각이 느껴졌으며 어느센가 한자루의 예리한 검이

그의 가슴까지 꿰뚫고 삐져 나왔다.

그는 짤막한 비명을 지르고는 즉시 절명하고 말았다.

적운은 문뒤에 숨어 있다가 불빛이 꺼지면서 동시에 언달평의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를 듣고 즉시 언달평이 흉계에 걸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와같은 현상은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으므로 적운으로서도

언달평을 구출할 겨를이 없었다.

적운은 언달평을 죽인 흉수가 누구인지를 살펴보려고 했다.

둠속에서 '흐흐흐' 하고 냉소짓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가 들리는 순간 적운은 자기도 모르게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껴야 했다.

그 음성은 음산하기 그지 없었으며 매우 귀에 익었다.

갑자기 촛불에 불이 당겨지면서 한사람의 그림자가 생겨났다.

사람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적운은 하마트면 '사부님!' 하고 소리 지를뻔 했다.

그 사람은 바로 척장발이었다.

그는 언달평의 등뒤에 꽂혀 있는 장검을 뽑아내고 언달평의 시체에

발길질을 퓔構炙ぜ 다시 그의 등을 연신 칼로 내리찍었다.

적운은 사부가 동문사형을 살해하고 그의 시체를 난자하는 것을 보고

사부라는 소리를 다시 삼키고 말았다.

척장발은 킥킥 괴이한 웃음을 내며 말했다.

"둘째사형, 그대도 연성결의 비밀을 찾아 냈었군! 히히히...

강릉성 남서쪽 천영사의 대전에 있는 불상을 향해 경건하게 절을 하고 간절하게 빈다? ...

둘째 사형, 과연 석가모니는 그대에게 복을 내려 왕생극락을 시켜드린 셈이 아니겠소?

이야말로 석가모니 불상의 크나크신 자비가 아니겠읍니까? "

 

그는 다시 고갭낯 돌려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래불상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에는 음흉한 빛이 가득했고 매서운 눈초리로 여래불상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제미랄놈의 불상아, 네놈이 나의 평생을 망쳐놓았고 나를 평생동안 희롱했구나!

이 벌어먹을 게 나를 이꼴로 만들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구나."

 

그는 몸을 날려 신단위로 올라서며 단검을 빼어들고 불상의 배를 세번이나

검으로 힘주어 내리 찍었다.

일반적으로 불상은 흙이나 나무로 만들기 일수인데 이 불상은 쇠로 만든듯

검과 부ㄷ히자 챙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다시 튕겨져 나왔다.

그는 촛불을 들고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 보았다.

검의 흔적이 깊게 패인 곳에서는 찬란한 금빛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척장발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급히 손가락으로 자국이 난 자리의 흙을 파헤쳐 냈다.

그러자 번쩍이는 황금빛이 눈을 부시게 하지 않는가?

겉은 진흙을 발랐지만 그 불상은 사실 순수한 황금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는 참을 수 없어 부르짖었다.

 

"이 커다란 불상은 모두 금으로 만들어졌구나."

 

이 불상의 크기는 높이만 삼장정도로 컸다.

적게 잡아도 오륙만릴牡犬 되는 황금덩어리였다.

그것이야말로 큰 보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척장발은 미친듯 기뻐하다가 문득 정신을 가다듬고 이곳 저곳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불상의 허리부근에는 하나의 작은 문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는 그곳에다 대고 힘차게 칼질을 했다.

흙이 사방으로 튀고 단검이 닿는 곳에 수십개나 되는 틈바구니가 드러났다.

그는 검을 틈속에 쑤셔 넣고 마구 휘젓었다.

갑자기 검이 뚝 하고 부러졌다. 그는 부러진 검을 문틈 사이에 밀어 넣고 이리저리 흔들고

비틀어댔다.

몇번 그렇게 하자 그 문은 많이 헐거워졌다.

척장발은 장검을 버리고 손에 힘을 주어 문을 뜯어냈다.

촛불을 비쳐보니 불상의 뱃속에는 온갖 보석들이 영롱하고 찬란한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이 불상의 뱃속에는 얼마나 많은 보물들이 담겨져 있는지는 얼핏 보아서는

알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척장발은 침을 꿀걱 삼키고는 손을 내밀어 그안에 들어있는 보석을 꺼내려고 했다.

문득 신단이 흔들리는 듯했다.

그는 내심 의아하고 경계심이 생겨서 몸을 날려 아래로 떨어졌다.

좌측발이 막 땅에 닿으려고 하는 순간 아랫배가 시큰해져 왔다.

이미 혈도를 짚히고 만것이다.

그는 꽈당하고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는데 바로 이때 신단 아래에서

한사람이 나오더니 고개를 갸우뚱하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척사제, 자네가 이곳을 찾았고 둘째도 이곳을 찾았는데,

어째서 대사형인 내가 이곳을 찾아오리라고 예측하지 못했는가?"

 

바로 만진산이었다. 척장발은 원래 매우 침착한 사람이었으나

보물에 현혹된 나머지 일시 평상시의 기민함을 가질 수 없게 되

었고 만진산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척장발은 한 맺힌 음성으

로 부르짖었다.

"처음에 당신이 나를 죽이렇졀 했을때도 나는 죽지 않았는데

뜻밖에도 지금에 와서 당신의 손에 죽게 되었구료."

"나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지. 분명히 자네를 죽여서 벽속

에 밀어넣고 밀봉하였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났나?"

척장발은 눈을 감고 대답하지 않았다. 만진산은 말했다.

"네가 대답하지 않는다고 내가 모를 줄 아느냐? 그때 너는 나

를 죽이지 못하자 숨을 멈추고 죽은채 하여 벽속에 갇힌 다음에

방법을 강구했을테지. 멋진 솜씨야, 멋진 솜씨! 당시 나는 막힌

벽에서 벽돌이 삐죽 튀어 나온 것을 보고 속으로 조금 이상하다

고뉨 생각했었지만 네가 이렇게 내 앞에 나타나리라곤 생각도 하

지 못하였다. "

만진산은 그날 척장발을 벽 속에 쑤셔 넣고 다음날 벽의 벽돌

이 한개 툭 튀아 나온 것을 보고 불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몽유

병을 얻은 것이고 척장발이 나올까봐 꿈속에서까지 벽을 쌓고 쌓

고 쌓았던 것이다. 만진산은 냉소하며 말했다.

"너는 참으로 무섭더군. 네놈의 딸이 나의 며느리가 된 것을

알면서도 끝내 나타나지 않았지.

네게 묻겠는데 왜 그랬느냐? 그이유는 무엇이냐 ?"

 

척장발은 그에게 가래침을 뱉었다.

만진산은 몸을 날려피하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세째야, 너는 깨끗이 죽겠느냐?

아니면 가루가 되어 고통을 받다가 죽겠느냐 ?"

 

척장발의 얼굴에는 공포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좋다, 내가 말해주지.

내 딸이 그 검보를 홈쳐다가 그 산동굴에 갖다 놓았기 때문에

그때부터 나는 그년을 내딸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이제야 알겠느냐? 이 만가놈아, 빨리 나를 처치해 버려라."

만진산은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다. 내가 통쾌하게 죽여주지.

이치대로라면 나는 너를 이렇게 쉽게 죽여서는 안되지만 나는 시간이 너무 없거든.

빨리 불상을 원상태로 회복시켜 놓아야 하니까.

아우야, 너는 머나먼 저승길로 안녕히 가려므나."

 

말을 하면서 그는 검을 척장발의 가슴을 향해 내리 찍었다.

은 빛이 번쩍이면서 만진산의 팔과 검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한 그의 다리 한 쪽도 잘라져 있었다.

바로 적운이 혈도로 척장발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그는 고개를 숙여 척장발의 혈도를 풀어주면서 말했다.

 

"사부님, 놀래셨지요 ?"

 

이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척장발은 멍청해져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그제서야 적운을 알아보고 말했다.

 

"운... 운아... 너였구나."

 

적운은 사부와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는데 지금 운아라는 소리를 듣자

자기도 모르게 슬픔이 밀려왔다.

적운은 말했다.

 

"네, 사부님. 적운입니다."

 

척장발은 말했다.

 

"이 모든 것을 너는 보았느냐 ?"

 

적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사매는... 사매는... 그녀는... 그녀는..."

 

만진산은 한쪽 발이 잘려 나가자 바닥을 기어서 절 밖으로 나갔다.

척장발이 재빨리 달려가 검으로 찌르자 검 끝이 가슴 앞까지 튀어 나오며 절명하고 말았다.

척장발은 두사형의 시체를 쳐다보며 말했다.

 

"운아, 네가 때를 맞추어 와줘서 나의 생명을 구했구나.

그런데 저기 오는 사람은 너의 사매 방아가 아니냐 ?"

 

말을 하면서 한쪽을 가리켰다.

적운은 척방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며 몸을 돌려 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그순간 등뒤가 아파왔다.

그는 잽싸게 손으로 기습해온 적의 손목을 잡았다.

리를 돌려보니 그 사람의 손에는 번쩍 번쩍 빛나는 비수를 들고있었다.

바로 사부인 척장발이었다.

적운은 믿을 수가 없어서 말했다.

 

"사부... 사부님,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읍니까?

왜 저를 죽이려고 하십니까?"

 

구榴 이제서야 생각이 났다.

조금전 사부가 자기의 등을 찔렀을때 자기는 오잠의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면할수 있었다는 것을...

 

척장발은 그에게 손목이 잡히자 반신이 마비되고 손을 쓸 수가 없자

놀람과 분노가 교차되어 무섭게 말했다.

 

"좋다. 너는 매우 높은 무공을 배웠구나.

그래서 사부는 안중에도 두고 있지 않는 것이냐!

자, 너는 빨리 나를 죽여라. 죽여! 왜 죽이지 않느냐!"

 

적운은 손을 조금 풀며 말했다.

 

"제가 어찌 사부님을 죽일 수 있겠읍니까?"

 

척장발은 외쳤다.

 

"너는 성인군자처럼 가장퓔構 있구나!

황금으로 만들어진 큰 불상을 보고도 너는 혼자 독차지 하고 싶지 않느냐?

내가 먼저 너를 죽이지 못했으니 내가 네 손에 죽는 것은 당연하다.

이 금불상의 뱃속에는 가치를 알수 없는 많은 보물이 있다.

너는 왜 나를 죽이지 않느냐? 왜 나를 죽이지 않느냐?"

 

그는 큰 목소리로 외쳐댔다.

그의 외침속에는 탐욕과 애석함과 아까움과 울화가 충만되어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상처 입은 야수가 황야에서 울부짖는 소리와 같았다.

적운은 고개를 흔들며 뒤로 몇 발자욱 물러나더니 말했다.

 

"사부가 나를 죽이려고 한것은 다 이 황금불상 때문이었군요?"

 

척장발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사부를 죽였고, 사형도 죽였고,

친딸의 생사안위도 걱정하지 않는데 어찌 제자 하나쯤 죽이지 못하겠는가?

그는 마음속에 정전의 말이 떠 올랐다.

 

'사람들은 그를 철소횡강이라고 부른다. 못할 일이 없지.'

 

그는 뒤로 물러서면서 말했다.

 

"사부님, 나는 이 황금불상에 미련이 없읍니다.

당신 혼자서 가져다가 부자가 되십시요."

 

그는 정말로 알 수가 없었다.

한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부도 필요없고,

사형과 사제돋 필요없으며, 친자식까지 버리면서

재물의 성(城)을 쌓아봐야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척장발은 자기의 귀를 믿을수가 없어 생각했다.

 

'세상 사람가운데 이렇게 많은 황금과 보물을 보고

그 누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는가?

적운 이놈에겐 다른 어떤 계략이 있는 지도 모르지.'

 

그는 이미 울화가 치밀어 참을 수 없었던 차라 큰소리로 말했다.

 

"너는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느냐?

이것은 황금으로 만들어진 불상이고 뱃속에는 보물이 그득한데

너는 왜 안가지겠단 말이냐?

나는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는 것이냐?"

 

적운은 고개를 흔들며 절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대 갑자기 발걸음 소리다 들리더니 많은 사람들이 벌떼처럼 밀려왔다.

그는 몸을 날려 지붕위로 올라가 밖을 살펴 보았다.

백여명의 사람들

이 횃불을 손에 들고 서둘러 달려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한무리의 강호협객이었다.

한사람이 욕을 했다.

 

"만규, 이 빌어먹을 놈아! 빨리 가자, 빨리 가!"

 

적운은 그곳을 떠나려 했으나 만규라는 소리를 듣자

즉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직 척방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한무리의 사람들은 서로 다투며 으暄횬막 들어왔다.

적운은분명하게 볼 수가 있었다.

만규는 몇명의 대한에게 끌려 오고 있었는데

몸에는 학자가 입고 있는 옷을 입고 있었고 몸에 상처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벌써 늘씬 두들겨 맞은 모양이었다..

알고보니 그는 서당선생으로 자기를 꾸미고 고의로 성문 밖에 나타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데로 돌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만진산이 천영사에 당도하여 보물을 찾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그를 심문해 결국은 마각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각자가 목숨을 위협하자 그는 보갸 없이 그들을 이끌고 천영사에 도달한 것이다.

척장발은 사람 소리가 나자 급히 몸을 날려 신상위로 올라가 불상에 난 칼자욱을

숨기려고 했지만 때는 늦어 모든 사람들은

그가 신상위에 서서 불상의 배를 끌어안고 옮기려는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수십개의 횃불이 절안을 비추자 절안은 마치 대낯처럼 밝아졌다.

각자는 황금불상을 보자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갔다.

서로 다투어 불상에 붙어 있는 흙은 털어내고 있었다.

각자의 도검이 불상에 부딪치자 얼마 안있어 불상이 찬란하게 금빛으로 빛나게 되었다.

돋愍潔 불상 뒤의 문을 찾아내 너도 나도 그 속의 보물을 끄집어 냈고

그중 힘센 자들은 너도 나도 품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갑자기 문밖에서 호각소리가 들리더니 절문이 열리며 수십명의 병정이 들어왔다.

그리고 크게 외쳤다.

 

"모두 멈춰라! 지부대인이 도착하셨다! 모두 멈춰라!"

 

이때 한 사람이 관복을 입고 들어왔다.

바로 강릉부지부인 능퇴사였다.

그는 성내와 성밖에서도 이름이 나 있었으므로 이 강호의 협객등중에는

그의 부하가 섞여 있어서 소식을 듣자 마자

즉시 병사를 이끌고 당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강호의 협객들은 이 많은 보화를 보자

관리를 눈에 두지도 않았다.

각자 목숨을 다해 보석을 빼앗기에 정신이 없었다.

땅바닥에는 진주, 보석,금그릇, 백옥비취 산호등의 온작 보물이 널려 있었다.

능퇴사의 부하들도 어찌 참을수 있겠는가?

병정들은 몸을 숙여 보물들을 주웠고 우두머리들

조차도 보물줍기에 여념이 없었으며

어느누구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척장발도 주웠고, 능퇴사도 주웠으며,

만규도 상처뿐인 몸을 이끌고 보물을 줍고 있었다.

이렇게 되니 싸움이 안 일어 날수가 없었다.

이기는 자는 이겼고 피를 흘리는 자는 피를 흘렸고,

죽는 자는 죽었다.

싸움은 점점 치열해졌으며 어떤 자는 불상의 머리에 올라가

아래를 향해서 무작정 검을 내리 찍고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슴팍을 머리로 들이받기도 했다.

아수라장이었다.

적운은 생각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싸워야 할까?

아무리 재물에 눈이 멀어도 그렇지,

미치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을 것이다.

모두 미치고말았어. 미쳤단 말이야!"

 

지금 서로 물고, 뜯고, 찌르고, 베어대며 싸우는 사람들 틈엔

낙화유수 강남사협중의 한명인 화철간도 있었뉨.

그들은 서로 죽이는 한편 보물들을 주워서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으며

호주머니가 다 차자 입속에다가 물기도 했다.

적운은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떠 올랐다.

 

'이 보물에는 극독이 묻어 있다고 정형이 말하지 않았던가?

날 보물을 감추었던 양원제는 위병이 빼앗아 갈 것을 염려하여

보물에다가 독약을 묻혔다 그러지 않았던가?'

 

그는 사부를 구해야 겠다고 생각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후 적운은 정전과 능상화의 묘 앞에 몇백 그루의 국화를 심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손수 국화를 심었다.

그는 원래 농부였으므로 밭을 갈고 곡식을 심는데 익숙해져 있어서 어려움이 없었다.

단지 옛날에는 꽃이 아닌 고추와 호박, 배추, 가지, 공심채등을 심었던 것이다.

그는 척방의 딸 공심채를 품에 안고 말을 달려 형주성을 떠났다.

그는 강호의 사람들이 싫어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곳에 가서

공심채와 함께 공심채를 심으며 살려고 떠나는 것이다.

몇달후 그는 서장땅에 있는 옛날의 눈덮힌 계곡으로 돌아왔다.

거위의 깃털같은 눈송이가 펄펄 내리고 있었다.

그는 공심채를 안고 옛날의 그 동굴의 앞에 이르렀다.

문득 동굴에서 멀지 않은 산벽에 한 소녀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바로 수생이었다.

그녀는 기쁜 미소를 지으며 그를 향해 힘껏 달려왔다.

그녀의 검고 긴 머리칼이 몸 뒤로 흩날렸다.

그녀는 적운을 향해 달려오면서 외쳤다.

 

"나는 당신을 이곳에서 오랫동안 기다려 왔어요!

나는 벌써 당신이 이곳으로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