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연성결(連城訣)

10. 당시선집 (唐詩選輯)

오늘의 쉼터 2014. 6. 20. 09:38

10. 당시선집 (唐詩選輯)

 

상서와 형주와의 거리는 멀지 않아 며칠이 안돼서

그는 형주에도착하였다.

형주에 오는 길은 그 옛날 사부를 따라서 사매와 함께 지나갔던 길이다.

산천은 변한게 없었으나 그 당시 함께 웃으며 걷던 척방은 찾아 볼수가 없었다.

그 당시 길거리에는 그녀의 웃음소리로 가득차 있었다.

성밖에서 알아보니 능퇴사는 여전히 형주부의 지부노릇을 하고 있었다.

적운은 여전히 얼굴에 검정칠을 하여 자기의 본래 모습을 감춘 채 성안으로 들어갔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친히 만규가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보아야겠다.

그는 상처가 치료가 되었을가?

그는 이곳에 이미 돌아와 있을까?

그는 어쩌면 호남에서 치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진산의 집에 당도하고 보니 멀리서 침성이 총총걸음으로 대문을 나오고 있었다.

그 표정은 매우 심각해 보였으며 당황해 보였다.

적운은 내심 생각했다.

 

'침성이 이곳에 있으니 만규도 틀림없이 집에 있을 것이다.

이 어두워지면 내가 들어가 살펴 보아야겠다.'

 

그는 폐허가 된 농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폐허가 된 농가는 만진산의 집에 그리 멀리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날 정전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고 주기와 경천패는 이 폐허가 농가에서 죽임을 당했다.

지금 그 장소에 다시 돌아와 보니 사방의 잡초는 옛날과 다름없었다.

주위엔 기와와 벽돌들이 널려져 있었다.

옛날과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오래 된 매화나무 옆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매화나무를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그날 정형님은 이 늙은 매화나무가지에 기댄 채 세상을 떠나 셨는데,

이 매화모양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는데 정형님은 이미 세상을 떠ぜ堅립.'

그는 즉시 매화나무 아래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삼경 정도가 되자 잠에서 깨어나 품 속에서 마른 음식을 꺼내먹고는

그 폐허가 된 농가에서 나와 만씨집에 도착했다.

만씨집 뒤를 돌아 담을 넘어 화원에 들어서자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이 시큰해졌다.

 

'그날 나는 몸에 상처를 입고 이 창고에 숨어 있었지.

사매가 나의 상처를 보고도 구해주지 않은 것만해도 서운 했었는데

그녀는 오히려 자기 남편을 불러와 나를 죽이려고 했다.'

 

막 발걸음을 음직이려고 하는데 갑자기 바위옆에서 세줄기의 불빛이 음직였다.

그는 나무뒤에 몸을 숨기고 빛이 나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 세개의 불빛은 향로에서 타고 있는 불빛이었다.

향로는 작은 탁자위에 놓여 있었으며 탁자 앞에는 두 사람이 무릎을 끓고

하늘을 향해 절을 하고 있었다.

잠시 뒤에 그들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분명히 볼수 있었다.

바로 척방과 그녀의 딸인 공심채였다.

척방이 기도하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첫 번째 향에 불을 붙여 천지신명께 간절하게 비나이다.

저의 부군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전갈의 독에 목숨을 잃게 하지 마옵서서.

공심채야 , 너도 말해라. 천지신명께 아버지의 병이 낫게 해달라고 빌어라."

 

어린 계집아이는 말했다.

 

"네, 엄마. 천지신명께 빌겠어요.

아버지가 더 이상의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해주세요.

다시는 아파서 끙끙거리지 않게 해주세요."

 

적운과의 거리는 비록 가깝지 않았으나

그는 모녀 두 사람의 말소리를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두 모녀의 말투속에서 만규가 중독되어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그는 내심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희열을 맛보았다.

그러면서도 척방이 이렇게 자기 남편에게 정성을 다하 있는 말을 듣게 되자

왠지 마음이 울적해졌다.

척방의 말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두번째 향을 붙여 천지신명게 비나이다.

저의 아버지께서 편안무사하시도록 보호하사 빨리 돌아오시게 해주시옵서서.

공심채야, 너도 천지신명께 외할아버지가 백살가지 살도록 빌어보아라."

 

어린 계집애는 말했다.

 

"예, 외할아버지 빨리 돌아오세요.

외할아버지께서는 어째서 오시지 않나요 ?"

 

척방은 말했다.

 

"천시신명께 비나이다. "

 

어린 계집아이는 말했다.

 

"천시신명께서는 외할아버지를 도와주세요.

그리고 할아버지 아버지도 지켜 주세요."

 

그 아이는 아직 척장발을 본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자기에게 기도를 하라고 하자

그녀는 자기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척방은 잠시 멈추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

 

"세번째 향을 피우노니,

천지신명께서는 그분이 편안하시고 만가지의 일이 잘 풀리도록 해주십시요.

그분이 하루 빨리 현숙한 처를 얻고 아들 딸 잘 낳아..."

여기까지 말하는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옷소매를 들어 눈물을 닦았다.

 어린 계집아이는 말했다.

 

"엄마, 엄마는 또 그 삼촌생각을 하시는군요 ?"

 

척방은 말했다.

 

"너도 빌어보아라. 공심채 아저씨가 편안하시도록..."

 

적우은 그녀가 세번째 향을 붙이며 비는 소리를 듣고 내심 의아해 하고 있는중에

가ㅂ기 그녀가 공심채 아저씨라는 말을 하자 머리가 크게 어지러워옴을 느꼈다.

'그녀는 지금 내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지금 나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

 

그 어린 아이는 말했다.

 

"엄마는 날마나 공심채 삼촌을 염려하고 있ㅇ고 날마다 천지신명께

삼촌이 돈 많이 버시고 큰 인형을 사서 저에게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는데.

그도 공심채隔 나도 공심채예요.

엄마, 공심채 삼촌은 어디에 가셨어요?

어째서 아작 돌아오지 않나요 ?"

 

척방은 말했다.

 

"공심채 삼촌은 아주 먼 곳으로 갔단다.

아, 삼촌은 너의 엄마를 버려두고 오시지 않는구나.

엄마는 날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까지 말하던 그녀는 딸아이를 가슴에 안고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적운은 향로가까이 다가서서 반짝이며 타고 있는 향불을 바라보며 ㄴ을 잃고 있었다.

그는 멍하니 서 있었다.

세개의 향이 끝까지 타고 모두 재로 변했어도 그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 서 있었다.

다음날 새벽 적운은 만씨집 화원을 빠져 나와 형주성의 이곳저곳을 마구 돌아다녔다.

갑자기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약을 파는 사람이었다.

적운은 문득 두눈으로 만규가 울부짖고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열냥의 은자를 주고 약상사의 옷가지부터 잡동사니까지 몽땅 사버렸다.

그 떠돌이 약장수는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이 물건들이 귀중한 것도 아니고

전부 비싸게 팔아야 세냥 남짓 한데 적운이 몇배나 되는 은자를 주자

아주 기쁜 마음으로 선뜻 그에게 팔아버렸다.

적운은 폐허가 된 농가로 돌아와서 약장수의 옷으로 갈아입고 만씨집안의 사람이

자신을 알아볼까봐 얼굴에 고약을 붙이고 약초를 얼굴에 발랐다.

그래서 자기의 얼굴을 알아 볼수 없도록 하고는 만씨집의 앞으로 갔다.

그는 문앞에 당도 하자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악기를 두드렸다.

 

"천하에서 제일 가는 약이 있읍니다!

어떤 독도 없앨수 있고 더욱 독충에 물렸다면 즉시 효험이 있는 약이 있읍니다! "

 

이렇게 서너번을 왔다갔다 하자 대문에서 한사람이 초총히 걸어나왔다.

그 사람은 손짓을 해서 적운을 부르더니 말했다.

 

"여보시오, 의사선생. 이쪽으로 와 보시오. 이쪽으로 와 보시오."

 

적운은 그가 바로 만진산의 제자이고 그날 자기의 다섯 손가락을 잘라낸

오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적운의 차림새와 모습이 그때와는 너무나 달라서

오감은 그를 알아 볼수가 없었다.

적운는 그가 자기의 목소리를 알아 볼까봐 천천히 걸어가면서

목소리를 낮추고 목쉰f 음성을 냈다.

 

"나으리께서는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몸에 무슨 낫지 못할 병이라도 있는지요 ?

그렇지 않다면 무슨 독에라도 물렸읍歐 ?"

 

오감은 ㅌ! 하고 침을 밭더니 말했다.

 

"당신의 눈에는 내가 중독된 사람처럼 보입니까? 보시오.

전갈 한테 물린 사람을 당신은 치료할 수 있소 ?"

 

적운은 재빨리 대답했다.

 

"청죽사, 적련사, 금각대, 철산두와 같은 무서운 독사가 사람을 물었을때도

말끔하게 치료할수 있읍니다.

전갈쯤이야 무슨 문제가 있겠읍니까 ?"

 

옥마은 말했다.

 

"당신은 그렇게 허풍을 떨지 마시요.

이번에 사람을문 전갈은 그리 흔히 볼수 있는 놈이 아니였소.

형주성의 유명한 의사들도 와 보고는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소.

당신 역시 치료할 재간이 없어 보이는구려."

 

적운은 눈쌀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렇게 무섭읍니까?

천한의 전갈은 단지 회모갈, 흑백갈, 금전갈, 마두갈, 홍미갈, 낙지교낭갈, 백각갈...

등에 불과합니다."

 

그는 들은 풍월과 자기가 아무렇게나 지은 전갈의 명칭을 단숨에 주워섬겼다.

그리고는 말했다.

 

"모든 전갈은 독성이 제각기 다르지요.

전갈마다 틀리기 때문에 그 특징에 따라 치료를 해야 합니다.

설사 유명한 의사라도 그 전갈의 특성을 모른다면 치료를 할 수가 없읍니다요."

 

오감은 그가 얼굴이 上피構 옷은 남루하며 비록 전갈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지만

말투가 더듬거리며 분명치 못하자 대단한 의사가 못된다고 생각했던지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들어가서 한번 살펴보시요.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아니겠소?

개똥도 약이 될 때가 있다고 하지 않소 ?"

 

적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 만씨집의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을 들어서자 옛날 사부를 따라 사매와 함께 이곳에 왔던 정경이 되살아 났다.

그때는 시골 소년이 도시에 들어왔으므로 눈에 보이는 것 마다

모두 신선해 보였고 호기심을 느꼈으므로 자기와 사매는

이것 저것 만져보았는데 오늘 다시 보아도 옛날 그대로 인 것을 보자

내심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오감을 따라 대문을 지나 동쪽의 건물 앞에 이르렀다.

오감은 고개를 빳빳이 세우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형수님, 떠돌이 의사가 전갈의 독을 고칠수가 있다고 합니다.

사형의 상처를 한번 보여주는 것이 어떻겠읍니까 ?"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이 열리더니 척방이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좋아요. 오사제 정말 고마워요.

사형께선 오늘 더욱 아프신 모양입니다. , 선생님, 올라오세요."

 

오감은 적운에게 말했다.

 

"자 올라가시오."

 

그리고는 자기는 올라가지 않고 서 있었다.

척방은 말했다.

 

"오사제께서도 위로 올라오시지요. 와서 좀 도와 주세요."

 

오감은 대답하고는 올라섰다.

적운은 섬돌에 올라서 바라보니 건물 중간의 창문 가까운 곳에

하나의 커다란 책상이 놓여 있었고 책상에는 지필묵과 십여권의 책이 널려 있었으며

또 반쯤 짓다만 어리아이의 옷이 놓여 있었다.

척방이 방에서 나와 맞이했다.

얼굴은 화장을 하지 않아서인지 매우 초췌해보였다.

적운은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 그녀가 자기를 알아차릴까봐 더 이상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곧바로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의 침대위에는 한 사람이 누워있었는데 계속해서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바로 만규였다.

그의 어린딸은 침대옆의 의자에 앉아서 아버지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그녀는 지저분하고 괴상하게 생긴 적운의 얼굴을 보자 놀랜 기색을 보이더니

어머니 몸 뒤로 숨어버렸다.

오감은 말했다.

 

"저의 사형은 전갈에게 물렸는데 차도가 없으니 점점 심해지는 것 같읍니다."

 

적운은 말했다.

 

"오, 그렇읍니까 ?"

 

그는 문 밖에서 오감과 이야기를 할때에는 태연자약했으나

때 척방을 보자 가슴이 크게 울렁거리고 두뺨이 화끈화끈 달아올랐으며

목이 마르고 입술이 타기 시작하여 아무 말도 할수가 없었다.

그는 침대 가까이 가서 만규의 어깨를 툭툭쳤다.

만규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눈을 뜨고 적운의 표정을 바라보자 심히 놀라는 눈치였다.

척방은 말했다.

 

"여보, 이분이 바로 오사제께서 당신을 위해 모셔온 의사선생님이십니다.

이분은... 이분은 어쩌면 당신을 낫게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말투를 들어볼때 이 떠돌이 의사에 대해서 심히 믿지 않는 눈치였다.

적운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만규의 부어오른 손등을 바라보았다.

그 손등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으먀 무척 위험한 증세였다.

그는 목쉰음성을 내어 말했다.

 

"이것은 상서, 원릉 일대에서 서식하는 꽃무늬 전갈이 물은 것입니다.

우리 호북지방에는 이런 전갈이 없지요."

 

척방과 오감은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네, 네, 바로 상서 원릉의 전갈에게 쏘인 것입니다."

 

척방은 기쁜 어조로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전갈의 내력을 아시고 계시니 틀림없이 치료도 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적운은 손가락을 짚어 날짜를 계산해 보더니 말했다.

 

"이것은 저녁에 물린 것이고 지금까지 이미 칠일정도가 지난것 같소이다."

 

척방은 오감을 한번 더 쳐다보더니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정말 귀신 같으십니다.

틀림없이 밤에 물린 것이고 오늘까지 정확하게 칠일이 되었읍니다."

 

적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나으리께서는 일장을 가하여 그 전갈을 때려죽이지 않았읍니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조금은 희망이 있었는데...

그 전갈이 죽으면서 독성을 있는대로 모두 손등에 내 쏟았기 때문에

독을 빼내려면 정말 어렵겠읍니다."

 

척방은 그가 원래 날자까지 정확히 알아 맞추자

틀림없이 치료 할 방법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희색이 만면했으나

그가 이렇게 말하자 다시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알겠읍니다.

어쨌든 선생님께서는 그의 생명을 건저 주시기 바랍니다."

 

적운이 떠돌이 의사로 분장을 하여 만씨집에 들어 온 것은 본래가 눈으로

만규가 고통하고 신음하며 죽는 광경을 보고 싶었고

그래서 마음속에 쌓여있던 울분을 풀려고 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생명을 구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는 어려서부터 척방의 말이라면 모두 따랐고

그 어느것 하나 거슬린적이 없었다.

이때 그녀가 이렇듯 초초히 구해달라고 하자

마음이 약해져 약상자를 열고 언달평에게서 빼앗은 약병을 꺼낼뻔 했다.

그러나 바로 생각이 바뀌였다.

 

' 이만규라는 놈은 내게 무수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나의 사매도 빼앗아 간 놈이다.

나의 손으로 그를 죽이지 않는 것만 해도 자비를 베푸는 것인데

내가 왜 그의 생명을 구해주어야 하는가 ?'

 

그는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내 구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독이 너무 깊게 들어갔읍니다.

또시간을 너무 지체하여 독성이 깊숙히 침투했으니 고칠수가 없읍니다."

 

척방은 눈물을 떨구면서 딸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

 

"공심채야, 이리 오너라.

너는 이 아저씨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생명을 구해달라고 빌어라."

 

적운은 급히 손을 흔들며 말을 했다.

 

"아닙니다! 절을 할 필요까지는 없읍니다..."

 

그러나 그 여자에는 매우 착했다.

지금까지 말을 듣고 자기의 아버지의 병이 매우 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때문에 아이도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 즉시 땅에 무릎을 끓고는 땅바닥에 이마가 닿도록 절을 세번을 했다.

적운은 우측손가락이 모두 절단 되었기 때문에 옷소매에 손을 숨기고 있었다.

그는 즉시 좌측손을 꺼내어 그 여자아이를 부축해 일으켰다.

그 여자아이가 몸을 일으켜 세웠을때 보니

목에는 덕용쌍무라고 세겨진 금목걸이가 보였다.

적운은 그것을 보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날 자기가 만씨집안의 창고에서 정신을 잃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자신의 몸은 배에 실려서 떠내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그의 옆에 금목걸이가 있었는데 킥藪〉

이와같은 문귀가 세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는 머리속이 극도로 혼란해졌다.

 

'내가 이 만씨집의 창고에서 기절하여 쓰러져 있을때

만약 사매가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그 누가 나를 구해주었겠는가?

날에 나는 그녀가 나를 밀고했다고 의삼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제밤에... 그녀는 기도하면서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지 않았는가 ?

그날도 틀림없이 나를 곤경에 빠뜨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천지신명께서 도우셔셔 나와 사매가 이런 고난을 격은 뒤

다시 함께 모여 살수 있게 안배해 주시는 것이 아닐까 ?'

 

함께 모여산다는 생각을 하자 그는 저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눈을 들어 척방을 힐끗 쳐다보니 그녀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차 있었고

눈도 돌리지 않은채 만규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한 그녀의 눈빛은 염려와 슬픔으로 가득차 있었다.

적운은 그녀가 그런 표정을 짓자 가슴이 서늘해져 왔다.

그는 분명히 기억할 수가 있었다.

그날 자기와 만문의 여덟제자사이에 싸움이 벌어져 자신이 얻어 맞았을때

사매는 그의 옷을 꿰매주면서 그와 같은 눈빛을 띄지 않았던가?

 

'만약 내가 그에게 해독약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 누가 나를 탓하겠는가?

만규가 신음하다 죽은 뒤에 밤중에 살며시 그녀를 데리고 간다면

그 누가 내 앞을 가로 막겠는가?

나는 옛날 일을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그녀와 다시.... 다시 부부가 되어,

여자아이를 기른면 되지 않겠는가?

안된다! 안돼! 사매는 이 몇년동안 이 만씨 집에서 마님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다시 소를 먹이고 밭을 가는 일을 할수 있겠어?

또, 나는 이미 병신이 되었는데 어찌 그녀와 어울리겠서?

그녀가 나를 외면하고 말거야.'

 

자기의 처지를 珝▤求 내심 부끄러워서 고개가 땅으로 떨어졌다.

척방이 떠돌이 약장사의 마음속에 이렇게 무수한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단지 그를 멍청하게 쳐다보며 그가 구할 수 있다는 말을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만규는 계속해서 몸을 뒤척이고 있었는다.

이때 전갈의 독은 이미 겨드랑이 관절까지 번지고 있었으며

손목과 손바닥은 퉁퉁 부어 있었다.

또한, 표정역시 극도의 고통을 참느라고 찡그리고 있었다.

척방은 아무리 기다려도 적운이 아마말도 하지 않자 다시 애걸했다.

 

"선생님, 한번 시험삼아 해보세요...

다만... 다만... 그이의 고통만... 고통만이라도 덜어주셔요....

절대로 당신을 탓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말은 만규의 생명은 이미 붙잡을수가 없으니 통증이라도

라 앉혀주기를 바란다는 의미 같았다.

결국 죽음은 면치 못할것이니 고통이라도 덜어달라는 것이었다.

적운은 음 하는 소리를 지르며 상념에서 천천히 깨어났다.

는 이순간에서 죽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그는 전심전력으로 사매를 사랑해 왔지만

지금 그녀는 자기의 원수에게 시집을 가서 자기보고

이 원수를 구해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차라리 만규가 되었으면 좋겠다.

몸은 비록 고통을 당하지만 사매의 이런 정을 듬뿍 받을수 있으니

설령 며칠 못살고 죽는다 해도 아무런 여한이 없겠다.'

 

그는 천천히 한숨을 쉬고는 상자를 열어 언달평에게서

빼앗은 해독약을 꺼내어 들었다.

그 병에서 검정색의 가루를 꺼내더니 만규의 손등에 뿌렸다.

오감은 외쳤다.

 

"아이고... 바로... 바로 이런 종류의 약입니다!

이번에는 생명을 구할 수 있겠군요."

 

적운은 그의 말투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본래 살아 날수 있다는 말을 하면 응당 기쁨에 차야할텐데

그의 말투는 실망하는 투였고 기분 나쁜듯한 기색이 섞여 있었다.

적운은 심히 이상하게 생각하고 고개를 갸우뚱하여 그를 쳐다보았다.

순간 오감의 눈빛에 매섭고 독살스러움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적운은 더욱 의아해 하다가 만문의 여덟제자끼리 암투갚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내심 탄식했다.

 만진산, 언달평, 척장발이 동문끼리 서로 죽이고 싸운걸로 보아

만규와 오감도 사이가 좋지는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감은 어째서 만규를 위해서 의사를 찾아 나섰을까 ?

만규의 손등에 약이 뿌려지자 얼마 있지 않아 상처에서는 검은 피가 흘러 나왔다.

그는 고통이 점점 감소되자 입을 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이 해독약은 정말 좋군요."

 

척방은 크게 기뻐하여 몇개의 대야를 가져다가 피를 받아냈다.

뚝둑 가벼운 소릴φ 나면서 피가 대야속으로 떨어졌다.

척방은 적운을 향해 계속하여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오감은 말했다.

 

"형수님, 이번에는 소제가 크게 공을 세웠죠 ?"

 

척방은 말했다.

 

"예, 정말 오사제께 감사를 드려야겠군요."

 

오감은 웃으면서 말했다.

 

"감사하다고 말로만 하시면 안됩니다."

 

척방은 더 이상 말대꾸를 하지 않고 적운에게 말했다.

 

"선생님의 존칭은 어떻게 되나요?

우리는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 하지요 ?"

 

적운은 고개를 흔들면서 말을 했다.

 

"감사할 필요는 없읍니다.

이 독은 계속하여 열차례 약을 묽渗야만 비로서 완전히 해소시킬수 있읍니다."

 

그의 마음은 쓸쓸하고 고통스러웠다.

 

"자, 이 한병의 약을 전부 당신께 드리지요."

 

그는 약병을 건네주었다.

척방은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릴 줄은 몰랐는지

얼른 손을 내밀어 약병을 받지 못하고 말했다.

 

"약을 사도록 하지요. 얼마나 드리면 될지 모르겠군요."

 

적운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당신에게 드리는 것이니 돈은 필요없읍니다."

 

척방은 매우 기뻐하면서 두손으로 약병을 받아들고

몸을 숙여 깊이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말했다.

"선생님께서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정말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읍니다.

오사제님, 당신은 이 의사선생님을 모시고 아랫층에 내려가 잠시 기다려주세요."

 

적운은 말했다.

 

"아닙니다. 이만 물러가겠읍니다."

 

척방은 말했다.

 

"아니예요.

선생님께서는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우리는 그대에게 보답은 못해도 약주한잔이라도 대접하고 싶읍니다.

선생님은 절대 가지 마세요."

 

가지마세요라는 말을 듣자 적운의 마음은 금방 부드러워졌다.

그는 내심생각했다.

 

'이젠 복수도 할수 없게 되었구나.

정형님을 안장시킨 다음 다시는 이 형주성에 돌아오지 말자.

내가 살있는 한 절대로 사매를 만나지 말자.

그녀가 나에게 술을 대접한다고 하니

그녀를 잠시만 바라보아도 나쁠 것은 없겠지.'

 

그렇게 생▤構 고개를 끄덕였다.

술 좌석은 아랫층 작은 객실에 차려져 있었다.

적운이 상석에 앉고 오감은 옆에서 술을 따랐다.

척방은 은덕에 감격하여 친히 부엌에 나가 요리를 만들었다.

만진산등은 마침 집에 없는 것 같았고 다른 제자들도 술좌석에 나타나지 않았다.

척방은 공손하게 그에게 세잔의 술을 따라 주었다.

적운은 그 술을 받아마셨다.

갑자기 가슴속에 울컥 치밀어 오르는게 있었고 눈물이 핑돌았다.

더 이상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조금만 더 앉아 있다가는 자기의 정체가

노출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즉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술은 충분합니다. 저는 떠나겠읍니다. 이후 절대로 저를 찾지는 못할 것입니다."

 

척방은 말했다.

 

"선생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는데 우리는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여기 백냥의 은이 있으니 선생님께서 가시다가 술이나 사서 드세요."

 

말을 하면서 두손으로 한주머니의 은덩이를 받쳐 들었다.

적운은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쳐다보며 껄껄 웃으며 외쳐댔다.

 

"내가 그를 구했다!

내가 그를 살려냈어! 하하하! 정말 웃긴다!

이 세상에 나보다 멍청한 사람이 있을까? 하하하!"

 

그는 마음껏 크게 웃었다.

두뺨에는 두 줄기의 눈물이 흘러 내렸다.

척방과 오감은 그의 미친 듯한 태도를 보자 모두 아연실색했다.

척방의 딸인 계집아이가 말했다.

 

"아저씨가 울어요. 아저씨가 울어요."

 

적운은 깜작 놀랐다.

그는 척방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부터 나는 절대로 너를 만나지 않을 것이다.'

 

왼손을 품속에 집어넣고 뎠欄셀【 가져온 당시선집을 더듬어 오른쪽 옷소매 위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옷소매를 천천히 내려 살며시 의자 위에 당시선집을 내려놓으며

더 이상 척방을 쳐다볼 자신이 없어 고개를 돌리며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척방은 말했다.

 

"오사제님, 당신이 이분을 바래다 주세요."

 

오감은 말했다.

 

"좋읍니다."

 

그러더니 적운의 뒤를 따라나갔다.

척방은 손에 은덩이를 들고 있으면서 웬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 의사선생님은 누구일까?

그의 웃음소리는 어째서 그 사람과 그렇게 닮았을까?

아, 내가왜 이럴까? 이 며칠동안 남편이 심하게 앓고 있는데

내 마음이 이렇게 뒤죽박죽 이라니...

언제나... 그를... 그를...'

 

그녀는 은덩이를 탁자위에 내려 놓으며 의자에 앉아 손으로 턱을 고였다.

그 의자는 적운이 앉았던 의자였는데 척방은 의자에 무엇인가 놓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급히 몸을 일으켜 보니 한권의 노란 헌책이었다.

책 갈피에는 당시선집이라는 네글자가 씌여져 있었다.

그녀는 깜작 놀라며 책장을 펼쳤다.

책장속에는 한쌍의 꽃무늬가 나타났다.

바로 자기가 옛날 상서의 옛집에서 오려낸 것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몇장을 넘겼다.

한쌍의 호랑나비 문양이 보였다.

그 옛날 적운과 굴속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이 호랑나비를 오려내던 정경이

갑자기 번개처럼 뇌리에 떠 올랐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세에 엇!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것은... 이 책은 어디서 나타났을까? 누가... 누가 가져온 것일까?

설마하니 그 떠돌이 약장수 의사선생님일까 ?'

 

계집아이는 어머니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하자

놀라서 연신 외쳤다.

 

"엄마! 엄마! 왜 그러세요 ?"

 

척방은 멍청히 서 있더니 그 책을 집어 품속에 넣고 나는듯

랫층으로 달려 내려갔다.

그녀는 만씨집에 시집을 온후 항상 점잖게 행동했으며

이렇게 대청사이를 급하게 뛰어간 적은 없었다.

만씨집 하인들은 마님이 경공을 전개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랬다.

척방이 대청에 이르자 오감이 대문에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급히 물었다.

 

"그 떠돌이 의사 선생님은 어디 있읍니까 ?"

 

오감은 말했다.

 

"그 사람은 정말 이상하기 짝이 없읍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가버렸어요.

형수님은 왜 그자를 찾으십니까?

사형의 상처는 어찌 되었읍니까 ?"

 

척방은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급히 대문쪽으로 달려가 사방을 두루 살폈다.

그러나 약장수의 종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매우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대문 밖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손을 들어 품속에서 그 헌책을 꺼내어 뒤적였다.

문양 한장씩을 볼 때마다 어렸을 때 기쁘게 뛰놀던 일이 생각났다.

눈물은 쉬지 않고 옷깃을 적시고 있었다.

그녀는 문득 떨오르는 생각이 있어 중얼거렸다.

 

'내가 어째서 이렇게 멍청할까?

시아버지와 남편이 최근 상서성의 언사숙을 만나러 가지 않았는가?

그들은 묽ダ퓰컨傷 산동굴에 들어갔다가 이 책을 가져왔을 것이다.

이 떠돌이 의사가 어찌 이 책과 관계가 있겠는가?'

 

그러나 즉시 다른 생각이 떠 올랐다.

 

'아니다. 아니다. 일이 그렇게 딱 들어 맞을수는 없다.

그 산동굴은 은밀하기 짝이 없어서 아버지조차도 모르시는데

남편과 시아버지가 어찌 그 동굴을 찾을수 있겠는가?

그들은 언사숙을 방문하러 갔는데 어떻게 그 산동굴속에 들어갈수 있었겠는가?

금전에 내가 술 좌석을 마련할때 분명히 그 의자를 닦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런 책은 그곳에 없었다.

만약 그 떠뎠뮌 약장수가 가져 오지 않았다면 어디서 나온 것이지 ?'

 

그녀는 마음속 깊숙히 많은 의문을 남긴채 천천히 방안으로 들어갔다.

만규가 약을 바른 다음 정신이 많이 좋아져 있었다.

녀는 그 책을 남편에게 보이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

 

'절대로 경거망동을 해서는 안된다.

 만약 그 의사가... 그 의사가...'

 

만규가 말했다.

 

"그 의사선생님은 나의 은인이시요.

반드시 후하게 대접해야 될 것입니다."

 

척방은 말했다.

 

"그렇지요. 내가 그분에게 백냥의 은을 드렸는데 그는 받지 않으셨읍눙求.

정말 강호에 보기 힘든 인물입니다.

이 해독약은... 어! 해독약은요 ? 당신이 거두었읍니까 ?"

 

만규는 말했다.

 

"나는 갖지 않았소. 책상에 없소 ?"

 

척방은 탁자위와 침대, 화장대, 의자, 상자, 침대 위아래, 책상등 구석구석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해독약은 보이지가 않았다.

그녀는 내심 초초해졌다.

 

'조금전 내가 정신이 없어 뛰어 나갈때 땅에 떨어뜨렸을까?

니다. 내가 분명하게 기억하기로는 그 약을 책상위에 놓아 두었다. '

 

만규역시 초초하여 말했다.

 

"당신은... 당신은 빨리 찾아보시요. 어째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요?

내가 조금전 눈을 붙였는데 잠을 자기 전에도 그 약이 탁자위에 있는 것을 보았소."

그가 이렇게 말하자 척방은 더욱 초초해졌다.

방을 나와 딸아이를 잡고 물어보았다.

 

"조금전 엄마가 이 방을 나갈때 누가 들어왔니 ?"

 

어린딸은 말했다.

 

"오아저씨가 왔었어요.

그는 아빠가 잠이 드신 것을 보자 나가셨어요."

 

척방은 문득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느꼈다.

그러나 만규는 병중에 있는 모이라 그에게 걱정을 끼칠수 없었다.

그래서 말했다.

 

"공심채야, 너는 아빠와 함께 있거라.

엄마가 그 의사선생님께가서 약을 한병사서 아버지의 상처를 치료해야겠구나."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엄마, 빨리 돌아오세요."

 

척방은 정신을 가다듬고 책상 속에서 한자루의 비수를 꺼내들고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며 생각했다.

 

'오감, 이자는 사람이 없을 때는 항상 엉뚱한 마음을 품고 있었지

이 의사는 그가 모셔왔다.

혹시 그가 의사와 긴밀하게 내통하여서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의사는 돈을 받지 않았고 그 해독약도 보이지 않는 것일가 ?'

 

그녀는 생각을 하면서 뒷뜰로 갔다.

회당에 이르자 오감이 난간에 기대어 연못속의 금붕어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척방은 말했다.

 

"오사제, 당신은 왜 혼자서 이곳에 있나요 ?"

 

오감은 고개를 돌리며 환히 웃더니 말했다.

 

"누가 오는가 했더니 알고보니 형수님이였군요.

어째서 사형과 함께 방에 계시지 않고 이곳까지 행차를 하셨읍니까 ?"

 

척방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혼자 있고 싶어서지요.

하루종일 사형과 함께 있다보니 사형도 성질이 나빠졌어요.

나와서 산책도 하고 말상대를 찾아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정말 답답해 죽을 거예요."

 

오감은 이 말을 듣자 기다렸다는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사형은 정말 너무 행복에 겨워서 그런 것입니다.

당신처럼 꽃과 같이 아름다운 미인과 함께 있는데 성질을 부리다니요?

정말로 간호하기 어렵겠읍니다."

 

척방은 그의 몸 가까이 가서 난간에 기대어 연못속의 금붕어를 바라보며 말을 했다.

"이 형수는 늙은 할망구가 되었는데 무슨 아름다움이 있겠읍니까 ?

정말 다른 사람이 들으면 웃을 것입니다."

 

오감은 급히 말했다.

 

"아닙니다. 아룸다움이 어디 가겠읍니까?

처녀때는 처녀때의 아름다움이 있고 이렇게 작은 마님이 되시니

작은 마님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갖고 계십니다.

모두들 말하기를 형주성에 한떨기 꽃이 있는데 그 한떨기 꽃은 만씨집에 있다고 합니다."

 

척방은 킥킥 웃으면서 몸을 돌려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져오세요."

 

오감은 웃으면서 말했다.

 

"무엇을 가져 오라고 하십니까 ?"

 

척방은 말했다.

 

"그 해독약을 주세요."

 

오감은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무슨 해독약입니까? 만사형의 그 해독약 말입니까 ?"

 

척방은 말했다.

 

"바로 그래요. 반드시 당신이 가져 갔을 것입니다."

 

오감은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그 의사는 내가 모셔왔읍니다. 해독약은 내가 찾아낸 것이지요.

만사형은 한번 해독약을 바르셨으니 며칠동안 고통을 모르실 것입니다."

 

척방은 말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열번을 발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오감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는 지금 후회가 막심합니다. 후회가 막심해요."

 

척방은 말했다.

 

"무엇이 그렇게 후회가 되나요 ?"

 

오감은 말했다.

 

"내가 그 떠돌이 약장수 의사를 봤을 때 몰골이 지저분 한것이

마치 거지와 같아서 재주가 없으리라 생각되어 볍廚關 집에

데리고 왔던 것입니다.

그 사람을 데리고 집에 들어간 것은 당신을 한번 더 보고 싶은 핑계였읍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재수가 없으려니 그가 해독약을 내놓은 것입니다.

이건 내 본뜻과 너무나 다릅니다."

 

척방은 이 말을 듣자 너무나 화가 났다.

그러나 약은 이자의 손에 들어 있으므로 먼저 그 해독약을 손에 넣어야만 했다.

그러고나서 그와 끝장을 내야 한다고 생각해야 했다.

그녀는 화를 참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당신 말대로라면 당신의 사형이 당신께 감사를 드려야 됩니까?

그래야만 비로선 그 해독약을 내놓으시겟읍니까 ?"

 

오감은 탄식하더니 말했다.

 

"셋째 사형은 이미 몇년동안 염복을 누렸읍니다. 벌써 죽었어야 마땅하지요."

 

척방의 안색이 확 변했다.

그녀는 입술을 악다물며 아무말도하지 않았다.

오감은 말했다.

 

"그해 당신이 형주성에 오셨을때 우리 사형제 여덟사람은

당신의 모습을 보고 넋을 잃지 않은자가 하나도 없었읍니다.

그 멍청한 적운이라는 자가 하루종일 당신과 붙어 있으니

우리들은 모두 그꼴을 보고 화가 났지요.

그래서 모두가 합심해서 먼저 그 놈의 머리통을 부셔놓고... 굇榴牡..."

 

척방은 말했다.

 

"알고보니 당신들이 우리 사형을 때린 것은 순전히 저 때문이 군요."

 

오감은 말했다.

 

"그때 우리는 그 시골뜨기가 중간에 나서서 여통과 싸움을 하

만문의 체면을 깎았다고 핑계를 댔지만 다른 계획이 있었지요.

사실 모두의 마음은 모두 형수님 당신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에게 옷을 꿰매주고 다정하게 말을 나누고 있었지요.

이렇게 다정하고 정다운 꼴을 우리 사형제 여덟명은

도저히 눈뜨고 볼 수가 없었지요.

우리는 모두 식초항아리

(질투가 강한 사람이라는뜻으로 한문을 직역하면 식초항아리가 됨 - 빼긴이 주)

가 됐지요. "

 

척방은 암암리에 깜작 놀라며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나때문에 일어난 화인가?

그런데 남편은 어째서 지금까지 그런 말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

 

그녀는 태연한 얼굴을 지으려고 애쓰며 웃어보였다.

 

"오사제, 오사제께서는 정말 농담도 잘 하는군요.

그때 나는 시골처녀라 시골 냄새를 물씬 풍겼고

차림새도 꼴볼견이었는데 내가 그렇게 이뻤단 말인가요 ?"

 

오감은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진짜 미인은 화장을 할 필요가 없었지요.

당신이 만약 엽痢≥湧 마음을 빼앗지 않았다면....."

 

거기까지 말하고 말을 멈추고는 계속하지 않았다.

척방은 말했다.

 

"계속해 보세요."

 

오감은 말했다.

 

"우리들이 당신을 이 만씨집에 머물도록 하는데는

이 오감이 적지 않은 힘을 썼읍니다.

그러나 형수님께서는 평소 저를 보시고 웃지 않으시니

이것은 너무나 공평치 못한 일입니다."

 

척방은 ㅌ! 하고 침을 뱉더니 말했다.

 

"내가 이 만씨집안에 남아 있고 또 당신의 사형께 시집을 간것

내 스스로 기꺼이 원해서였읍니다.

당신이 무슨 힘을 썼읍니까 ?

그때 당신은 나엽“ 한마디도 하지 않았잖아요? 정말 그런 말은 마세요."

 

오감은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내가... 내거 어째서 힘을 쓰지 않았단 말입니까?

당신은 그런 말을 하지 마십시요."

 

척방은 더욱 놀랐으나 즉시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오사제, 당신은 나에게 말씀좀 해주세요.

당신이 어떤 힘을 썼는지 말이예요.

나는 절대로 당신의 호의를 잊지 않겠읍니다."

 

오감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흘러간 이야기인데 그 얘기를 꺼내면 뭐 하겠소.

당신이 알아봤자 아무런 쓸모가 없으니 우리는 다른 말이나 합시다."

 

척방은 말했다.

 

"좋읍니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그만 두세요.

발리 그 해독약이나 주시죠.

만약 사람들이 우리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본다면 그때는 좋지 않을거예요."

 

오감은 웃으면서 말했다.

 

"낮에는 보는 사람이 많지만 밤에는 이곳에 오는 사람이 없읍니다."

 

척방은 뒤로 한발자욱 물러서서 싸늘히 얼굴을 굳히고는 말했다.

 

"당신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지요 ?"

 

오감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만약 만사형의 상처를 낫게하고 싶으면 그건 어렵지 않죠.

오늘밤 삼경에 나는 저쪽 창고에서 당신을 기다라고 있겠소.

당신이 만약 내 뜻에 따른다면 나는 당신에게 한번 바를 약을 드리겠소."

 

척방은 입술을 깨물며 욕을 했다.

 

"개같은 자식! 네놈이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 담도 크구나."

 

오감은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나는 벌써 죽을 각오를 하고 있읍니다.

죽을놈이 무슨 짓을 못하겠읍니까?

만규라는 자는 나보다 한 곳이라도 나은 곳이 있읍니까 ?

단지 사부의 아들일뿐이고 팔자가 좋은 가문에 태어난 것 뿐이지요.

우리 모두가 힘을 썼는데 어째서 이 멍청한 놈 혼자서 복을 누려야 한단 말입눙歐 ?"

 

척방은 그가 연신 몇차례 힘을 썼다는 말을 하자 마암속에 의구심이 더욱 깊어졌다.

그러나 그가 말을 함부로 하자 계속듣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말했다.

 

"시아버님께서 돌아오시면 나는 사실대로 아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곱게 죽지 않을 것입니다."

 

오감은 말했다.

 

"나는 이곳을 지키고 떠나지 않겠읍니다.

사부가 나를 부르기만 한다면 나는 먼저 이 해독약을

이 연못에다가 뿌려 금붕어에게 먹이겠읍니다.

내가 그 떠돌이 의사에게 물어보니

그는 해독약은 오로지 한병뿐이고 다시 만들자릴 일 이년 내로는 만들수 없다고 합니다."

 

그는 한편으로 말을 하고 한편으로는 품속에서 해독약을 꺼내

병뚜껑을 열며 연못에다가 갖다 대었다.

손이 조금만 음직이여도 해독약은 금방 연못속에 뿌려 질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만규의 생명은 끝장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척방은 급히 말했다.

 

"보세요. 농담은 이제 그만 하시고 약을 빨리 거두세요.

우리는 천천히 상의해봐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오감은 웃으면서 말했다.

 

"무슨 상의할 것이 있읍니까?

당신이 남편의 생명을 구하고 싶다면 나의 말을 들어쓩 할 것입니다."

 

척방은 말했다.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나에게 오래전부터 마음이 있었고

또, 힘을 썼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나는 절대로 당신의 뜻에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오감은 크게 기뻐하면서 해독약의 병마개를 닫으면서 말했다.

 

"형수님, 내가 만약 진실을 말한다면 당신은 오늘밤에 나와 만나 주시겠읍니까 ?"

 

척방은 말했다.

 

"그건 당신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두고봐야 하겠지요.

사람을 속인다면 당신을 상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감은 말했다.

 

"정말 사실입니다.

어찌 조금의 거짓이라도 있을수 있겠읍니까?

그것은 침사제가 생각해낸 계략이었읍니다.

주사형과 복사형은 거짓으로 여자를 강한해서

적운이 도홍의 방에 들어와 사람을 구하도록 만들었고,

그동안 제가 그작자의 침대밑에 금붙이와 은그릇을 넣어 두었지요.

형수님, 만약 우리가 그렇게 교묘한 방법을 쓰자 않았다면 어떻게 당신을

이 만씨집에 머무르게 할수 있었겠읍니까 ?"

 

척방은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져옴을 느꼈다.

오감의 말 한마디는 예리하게 자기의 심장을 한조각 한조각씩 도려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망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제가... 제가 당신을 잘못 보았읍니다.

당신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었읍니다."

 

그녀의 몸은 기우뚱거리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손을 내밀어 난간을 꼭 잡으며 절규했다.

 

"나는 믿지 않아요!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예요?

이것은 당신이 거짓으로 꾸며낸 말에 지나지 않아요!"

 

"당신은 믿지 않읍니까? 좋읍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물어 볼 수가 없으니 도홍에게 물어 보십시요.

그녀는 그날이후 뒷마당의 사당에 살고 있으니 물어보십시요.

우리 형제들은 이 일을 말을 안하기로 모두 맹세했읍니다.

만약 당신이 아니였다면 나는 절대로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나는 무슨일든 할 수 있읍니다."

 

척방은 큰소리로 외치며 뛰어 나갔다.

화원의 뒷문을 밀치고 바깥으로 미친듯 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금방이라도 찢어 질 것 같았다.

뒷문을 달려 나온 후 몇개의 채소밭을 지났다.

그제서야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북쪽의 낡은 사당을 바라보았다.

빗장이 헐렁하게 채워져 있어서 손으로 밀자 문은 그냥 열렸다.

땅바닥은 먼지투성이였고 탁자와 의자들은 심히 낡았고 부서져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시아버지의 첩인 시도홍이 어째서 이런 곳에 살고 있을까?

감이 사람을 속인 것일까?

혹시...혹시.. 이놈이 사람을 속여내어 이곳에서 나쁜짓을 하려는 것이 아닐까?

아무래도 빨리 돌아가야겠다.'

그때 느린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내당에서 한명의 여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는데 중년정도 돼어 보이는 여자거지였다.

거지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자 깜작 놀라

몸을 돌려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내당으로 들어가더니 얼굴을 돌려 다시 한번 척방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척방의 모습을 확실히 본듯했다.

그래서인지 돌연 악! 하는 괴성을 질렀다.

그녀는 뒤로 두발자욱 물러 나더니 갑자기 무릎을 끓고는 말했다.

 

"마님, 마님, 절대로 말슴하지 마세요. 제가 여기 있다고요."

 

척방은 크게 놀라 물었다.

 

"당신은 누구지요 ?"

 

그 거지부인은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말을 하면서 몸을 일으키더니 빠른 걸음으로 내당 안으로 사라졌다.

이어 급한 발자욱 소리가 들리더니

거지부인이 빠른 걸음으로 뒷문으로 잽싸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척방은 의문 투성이였다.

'이 여자는 어째서 나를 발견하고, 그리도 무서워했을까?

아!생각났다. 그녀는... 그녀는 바로 도홍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척방은 어느샌가 사당의 대문을 나가 깨어진 기와를 밟으며

뒷문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녀는 비수를 허리에서 뽑아들고 외쳤다.

 

"도홍! 너는 이곳에서 음흉하게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

 

그 거지는 정말 도홍이였다.

척방이 자기 이름을 부르자 크게 당황한데다가

척방이 손에 날이 시퍼렇게 선 비수를 들고있자

욱 무서워하며 온몸을 덜덜 떨며 땅에 무릎을 끓고 고개를 연신 조아렸다.

 

"마님, 마님! 한번만 살려주십시요!"

 

척방은 만씨집에서 몇번인가 도홍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부터 그녀가 보이지 않았었다.

적운이 이 여자와 눈이 도망치려고 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그녀는 마치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으며

그 때문에 이 여자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에게도 묻지 않았었다.

그것은 척방에게 있어서는 기억하기조차 싫은 과거였다.

그런데 어째서 그녀가 이런 곳에 숨어 있는 것일까?

이 사당은 만씨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척방은 만씨집에 들어와 마님이 된 이후에는 모든 일을 조심했고

처녀때와는 사뭇 다르게 밖으로 돌아다니지도 않았으며

여러차례 이 사당 앞을 지나다니면서도 이 사당의 낡은 문만을 보았지

들어와 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도홍의 지금 모습은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얼굴에는 때가 더덕더덕 붙어 있어서

몇년동안 보지 못한 사이에 마치 이십녀은 더 늙은 것 같았다.

만약 도홍이 아무일도 없는듯 척방의 눈앞을 천천히 지나갔더라면

척방은 절대 그녀가 도홍이라는 사실을 알아 챌수가 없었을 것이다.

척방은 비수를 치켜들며 싸늘한 어조로 물었다.

"너는 이곳에 숨어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빨리 이실직고 하지 않겠느냐 ?"

 

도홍은 말했다.

 

"전... 전 아무짓도 하지 않았읍니다.

마님, 어르신께서 저를 ㅉ아내시면서

내가 이 형주에 있는 것을 보기만 하면 저를 잡아 죽이겠다고 하셨읍니다.

그러나... 그러나... 저는 아무래도 갈 곳이 없고 해서 별수없이

이곳에 숨어서 밥을 얻어 먹고 살았읍니다.

마님, 형주성을 제외하고는 나는 아무데도 아는 곳이 없읍니다.

저보고 어디로 가라고 하십니까 ?

마님... 마님, 절대로 어르신께 말씀하지 말아주십시요."

 

척방은 그녀의 말을 듣자 퍽이나 가련함을 느끼면서 비수를 거두며 말했다.

 

"어르신께서는 왜 그대를 ㅉ아 내셨지? 어째서 내가 모르고 있었는가 ?"

 

도홍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했다.

 

"저도 어르신께서 왜 저를 싫어 하셨는지 모르겠읍니다.

그 호남의... 적씨성을 가진자의 일은 내 잘못이 아닙니다.

아이고! 제가 그런말을 하면 안되는데..."

 

척방은 말했다.

 

"좋다, 네가 말하기 싫다면 나와 함께 어르신을 만나러 가자."

 

손을 내밀어 그녀의 멱살을 단숨에 움켜 잡았다.

척방은 원래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도홍의 옷자락은 온통 때가 묻어 있어서 손으로 잡자

손끝이 미끌미끌 한 것이 극히 기분이 안좋았다.

그러나 그녀는 적운이 억울하게 누명을 쓴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이것보다 천배 백배 더 지저분한 것이라도 만졌을 것이다.

도홍은 온몸을 떨며 급히 말했다.

 

"제가 말하지요. 제가말하겠어요. 마님, 제가 무슨 말을 하기를 바라십니까 ?"

 

척방은 말했다.

 

"적씨성을 가진 자와의 일이 어찌 된 영문인지 말해라!

너는 왜 그와 도망치려 했느냐 !"

 

도홍은 놀라도 당황한 나머지 눈을 크게 뜨고 말을 하지 못했다.

척방은 멍하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마음속으로 느끼는 두려움은

도홍이 느끼는 두려움보다 천배 백배 더했다. 그녀는 정

말 도홍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만약 그 당시 적운이 그녀를 꾀어서 도망치려 했다는 말이 나올까봐

두려웠던것이다.

이때 척방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해 있었고 심장은 금방 이라도 튀어 나올것 같았다.

도홍은 천천히 말했다.

 

"이건... 이건... 저의 탓이 아닙니다. 도련님이 강제로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켰읍니다.

내게 호남에서 온 적씨성을 가진자와 꼭 껴안고 있으면서 적씨성을 가진자가 도망을

자가 꾀었다고 하라고 시켰읍니다.

저는 어르신께서 그말을 했지만 어르신은  그말을 믿지 않으셨읍니다.

단지 저에게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시며 옷과 패물을 주셨지요.

그런데... 그런데 내가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어르신께서는 나를 ㅉ아내셨읍니다."

 

척방은 기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그녀는 이루 형용할 없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사형, 사형. 내가 나쁜년입니다.

나는 애당초 당신의 진심을 알았어야 했읍니다.

정말 당신은 억울합니다. 당신은 너무나 많은 고생을 하셨읍니다.'

 

이때 그녀는 도홍이 밉지 않았고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자기가 풀지못한 마음속의 매듭을 풀어주었던 것이다.

심지어 오감에게까지 감격을 하였다.

그가 진상을 폭로하고 자기에게 이 사당에 와서 도홍을 찾아보라고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상심이 되고 처량한가운데 쓸쓸하고 달콤한 느낌이 들었다.

만규에게 시집을 갔지만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은

적사형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적운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때 조차도

그분 만이 척방이 탄식과 눈물을 흘릴때 생각났던 유일한 사람이다.

여러가지 고민과 미움이 일시에 자책으로 변했다.

 

'만약 내가 벌써 알았더라면 나는 설령 몸이 가루가 되는데 한이 있었다고 해도

그이를 구해냈을텐데... 그분이 이렇게 많은고초를 당했는데 그 사람은...

그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 ?'

 

도홍은 척방의 안색을 홈쳐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님, 고맙읍니다. 저를 놓아주세요. 저는 형주성을 떠나 영원히 돌아오지 않겠읍니다."

 

척방은 탄식하며 말했다.

 

"어르신께서는 왜 당신을 ㅉ아 냈나요?

내가 그일을 알까봐 두려워서 그랬었나요?

아, 오늘에야 나는 모든 것을 확실히 알았어요."

 

말을 하는 그녀는 도홍에게 옷을 지어주고 돈이라도 쥐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나오는 바람에 몸에는 아무런 재물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도홍은 척방이 자기를 풀어주자 마음이 변할까봐 염려되어

급히 뒷걸음치며 중얼거렸다.

 

"어르신께선 저녁에 귀신을 보고나서 담을 높이 쌓으라고 하셨는데

어째서 그게 내 탓이란 말인가? 또... 나는 그 일을 말하지 않았는데..."

 

척방은 ㅉ아가며 물었다.

 

"귀신을 보고 담을 쌓는다는 것은 무슨 뜻이죠 ?"

 

도홍은 자기가 말을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급히 말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르신께서는 밤에 늘 귀신을 보시고 한밤중에 일어나셔서 담을 쌓으셨읍니다."

 

척방은 그녀의 말이 앞 뒤가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아무래도 도홍은 시아버지에게 ㅉ겨난 후 생활이 너무 어려워진 나머지

리까지 돈 모양이라고 생각되었다.

시아버지가 왜 한밤중에 일어나 담을 쌓겠는가?

그녀는 지금껏 시아버지가 담을 쌓는 것은 보지 못했다.

도홍은 그녀가 믿지 않을까봐 염려되어 말했다.

 

"그것은 가짜 담입니다.

어르신께서... 어르신께서는 한밤중에 벽돌을 쌓는 사람이 되기를 좋아하셨지요.

내가 몇마디 그에게 어르신께서 크게 화를 내며 나를 죽도록 때리고 나를 ㅉ아 냈지요.

만약 내가 그 어르신의 눈 앞에 나타나기만 한다면 저를 때려 죽이겠다고 하셨읍니다..."

 

그녀는 중얼중얼 계속해 말을 하면서 이윽고는 뒷걸음질쳐 도망쳤다.

척방은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그녀는 아무리 많아도 나보다 열살 위일텐데 이러한 몰골로 변하더니,

시아버지는 어째서 그녀를 집밖으로 내ㅉ았을까?

무슨 귀신을 보고 담을 쌓았다는 말인가?

이 여자는 미친걸까? 아닐까?

이 바보같은 여자때문에 사형은 평생 고초를 당하고 계시는 구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고

중에는 아예 큰소리를 내며 엉엉울어버렸다.

 

그녀는 한구르의 오동나무에 기대어서 한바탕 울었다.

울고 나니 마음이 약간 풀어져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후원의 문을 피하여 동쪽의 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윗층으로 올라갔다.

만규는 그녀가 오는 발걸음 소리를 듣자 초조해져 급히 물었다.

 

"해독약은 찾았어 ?"

 

척방은 방안으로 걸어들어왔다.

만규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안색은 심히 초췌하였으며

전갈에게 쏘인 한쪽 손에서는 검은피가 천천히 흘러나와서

침대밑의 대야에 떨어지고 있었다.

어린딸은 아버지의 다리 밑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다.

척방은 오감과 도홍으로부터 말을 들었으므로 만규가 한없이 미웠으며

비굴한 수법으로 적운을 해쳤기 때문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몰골을 보자 몇년동안 나누었던 정과 사랑이 솟아나

그녀의 마음은 조금 누그러졌다.

그녀는 생각했다.

 

'결국 나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형을 모함했던거야.

그가 사용한 수단은 악랄했지만 사형에게 고초를 안겨준것은 모두 나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만규는 다시 물었다.

 

"해독약은 찾았어 ?"

 

척방은 일시적으로 오감의 말을 사실대로 남편에게 말해야 될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말했다.

 

"그 떠돌이 의사를 찾았읍니다. 그에게 돈을 주고 다시

그 약제를 구해다가 약을 만들라고 청했지요."

 

만규는 안도의 함숨을 내쉬며 웃음을 지었다.

 

"나의 생명은 당신이 찾아준것이나 다름없구려."

 

척방은 억지로 웃어보였다.

대야에 담긴 피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녀는 도자기그릇을 가져와 바꾸어 놓고 그 대야는 밖으로 가지고 나갔다.

몇발자국을 걸어가는데 피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울지경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 전갈의 독은 이렇게도 무섭구나.'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가 그 대야를 탁자 아래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품속에서 수건을 꺼내 코를 막은 다음 그 피를 쏟아 버리려고 했다.

그녀의 손이 품속에 들어가자

그 당시 선집의 책이 손에 잡혔다.

더듬어 헌책을 꺼내어서 그 탁장에 앉아 한장 한장을 뒤적였다.

그녀는 분명하게 기억할수 있었다.

그날 헌옷을 뒤집어내다가 상자 밑바닥에 있던 헌옷가지 사이에서

이 책을 발견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리 유식한 편이 못되었으므로 어째서 이 책을 가져 왔는지가 사뭇 궁금했다.

그녀는 마침 두개의 소놓은 문양을 오렸기 때문에 그 책속에 문양을 끼워넣고

그날 오후 적운과 함께 산동굴에 갔고 그 이후에는 계속 그 동굴속에 남겨두었던 것이다.

어째서 여기까지 왔을까?

적사형이 그 떠돌이 의사에게 이것을 가져다 주라고 했을까?

 

'이 떠돌이 의사는 ... 혹시... 혹시... 그의 우측손의 다섯 손가락은 오가놈이 잘라 버렸는데

이 떠돌이 의사는... 이 의사는 어째서 그의 우측손을 내밀지 않았을까 ?'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그 떠돌이 의사가 딸아이를 부축했을 때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또, 그가 약상자를 열고 약을 꺼내고 약병을 열고 약가루를 따랐을때의 정경을 회상해 보았다.

그가 척방이 따라준 술잔을 입에 갔다대고 마셨을 때를 생각해 보았다.

이 모든 일들을 모두 왼손으로 한것 같았다.

하지만, 그당시에는 유의하지 않아서 확실히 기억할 수 없었다.

 

'설마 그가 사형일까? 어째서 모습은 하나도 닮지 않았을까 ?'

 

그녀는 번민에 휩싸였다.

슬품이 자기도 모르게 가슴에서 우러나왔고

눈물이 한방울씩 손에 들고 있던 그 책위에 떨어졌다.

눈물은 점점 많아 떨어졌고 그 책종이를 오린 두마리의 나비위에도 떨어졌다.

이 나비는 바로 양산백과 축영대였다.

그들은 죽어서 비로서 못다한 정을 누리고 있을까?...

이때 만규가 옆방에서 말했다.

 

"여보, 가슴이 답답해요. 일어나 좀 걷고 싶소."

 

그러나 척방은 회상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그녀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날 적사형이 한마리의 나비를 죽였지.

정다운 두마리를 헤어지게 했다고 천지신명이 그에게 이런 고통을 내리셨을까 ?'

 

갑자기 뒷쪽에서 놀랜 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은... 이것은 연성검보이다."

 

척방은 깜작 놀랐다.

고개를 돌려보니 만규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방배, 방배! 당신은 어디서 이 책을 가지고 왔소 ? 보시오!

 

아, 알고보니 이렇구나. 바로 이거야!"

 

그는 두손으로 당시선집이라는 책을 움켜 쥐었다.

성과사라는 한수의 시 제목 옆에 삼십삼(三十三)이라는 담황색의 글자가 나타나 있었다.

이 몇글자위에 척방의 눈물이 묻어 있었다.

만규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아픈것 조차도 잊어 버렸다.

 

"비밀은 여기에 있구나! 물에 젖으니 비로서 글자의 흔적이 나타나는구나!

묘하다! 장밀 묘해! 틀림없이 이 책일 것이다! 공심채, 공심채야!"

 

어린아는 대답을 하고 나갔다.

만규는 그 시집을 품에 안고 고통도 잊은채 소리쳤다.

 

"틀림없을 것이다! 틀림없어! 아버지는 그 검보가 당시선집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들은 이 책의 비밀을 아나내지 못했어.

알고보니 이 책은 물에 담궈야만 비밀이 나타느는 것이였어!"

 

그가 이렇게 기뻐하며 펄쩍 뛰며 외치고 있을 때 척방 역시 놀라고 있었다.

 

'그럼 아버지와 시아버지가 다툴때 말하던 연성검보란 말인가?

그렇다면 원래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색종이나 오려서 넣어두곤 했으니

아버지께선 이 책이 보이지 않았는데 어째서 찾지 않으셨을까?

음, 틀림없이 ㅊ으셨을것이다.

여기저기 찾다가 찾지 못하자 사백이 홈쳐갔다고 여기셨겠지.

왜 나에게 물어보시지 않으셨을가? 정말 이상하다.'

 

만약 적운이라면 이때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알고 있었다.

척장발이라는 사람은 예측할수 없는 모사꾼이므로 살령 딸 앞에서도

저래도 그런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을 것이고 책이 보이지 않자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찾았을 것이다.

찾지 못하자 아미일도 없는 척 가장하고 암암히에 살펴보며 이곳저곳을 살폈을 것이다.

적운이 홈쳐갔을까? 그렇지 않으면 딸이 홈쳐 갔을까?

척방은 홈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떳떳했으므로 자연히 척장발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만진산은 이때 거리에서 돌아와 마침 간식을 먹고 있다가 손녀딸의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한그릇의 국수도 다 먹지 못하고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손녀를 껴안았다.

그리고는 큰걸음으로 아들이 거처하는 방으로 왔다.

층대에 올라서자 마자 아들이 기쁜 어조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원 세상에 이렇게 교묘한 일이 있겠는가?

여보, 당신은 어떻게 이 책에다가 물을 묻히게 되었소?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뜻이요! 하늘이 뜻이오!"

 

만진산은 큰 걸음을 떼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만규는 당시선집을 들고 기쁜 음성으로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 이것좀 보세요. 이것이 무엇입니까 ?"

 

만진산은 그 노란 종이의 책을 보자 큰 충격을 받은것 같았다.

급히 손녀를 내려놓고 아들이 건네주는 책을 받았다.

마음이 방망이질하듯 마구 뛰었다.

온갖 심혈을 기울여 십몇년간을 찾던 연성검보가 결국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틀림없다! 바로 이책이다.

그와 언달평, 척장발이 사부를 죽인 것도 바로 이 책때문이었다.

세사람은 객주 집에서 한개의 이 검보를 샅샅이 넘겨 보았다.

그러니 이 책은 평범하고 이상한 것이 없어 책방에서 파는

 당시선집과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똑 같았다.

그들 사부가 그들에게 가르쳐준 당시검보는 당시의 싯귀로 검초를 딴 것인데

이런 싯귀들은 이책에 다 수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해내려오는 연성검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였었다.

사형과 사제 세사람은 이 책을 가지고 태양빛 아래에서 한장 한장 비추면서

그 책속에 무슨 비밀이 있는가를 살펴보았고 또 이 책속에 있는 몇십 수의 시를

똑바로 읽어보기도 하고 꺼구로 읽어도 보고 한자한자 뛰어서 읽어보기도 했다.

그들은 온갓 방법을 다해 비밀을 알아내려 했으나 모든 일이 허사였다.

세사람은 각자 다른 두사람은 이 비밀을 발견하였는데 자기만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사람은 저녁에 잠을 잘때면 이 책을 쇠로 만든 상자속에 집어 넣고 쇠로 만든 상자를

다시 쇠사슬로 각각의 발목에 연결해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이책은 날개가 달린 듯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부터 십몇년동안 수많은 심혈를 바쳐 찾던 책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틀림없었다.

네번째 장 죄착 상단에 자그마한 조각이 떨어져나간 흔적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당시 암암리에 해놓은 표시였다.

언사제, 척사제가 똑같은 당시선집으로 바꾸어 치기 할까봐

그런 표시를 해놓은 것이다.

만진산은 또 열여섯번째장을 넘겨 보았다.

그 당시가 자기가 손톱으로 해논 표시가 나타났다.

이것은 진본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기쁜 표정을 억제하며 아들에게 말했다.

 

"바로 이책이다. 너는 어디서 이것을 가져온것이냐 ?"

 

만규는 척방을 바라보았다.

 

"방매는 이 책을 어디서 가져온 것이요 ?"

 

척방은 만규가 기뻐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디 가셨을까?

 이 불효한 딸이 그의 책을 산동굴에 가져다 놓아 그 어르신은 정말 한참 찾으셨을거야.

아버지에게는 이 책이 대단한 보물일텐데.

이책이 어떤 책이며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러나 이것은 나의 아버지가 가져 온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의 책이다.

절대로 시아버지에게 빼앗길수 없다.'

만약 이 일이 하루전에 적운이 모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때라면

남편의 위치가 아버지보다 더 소중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언제 돌아오시며 어디 계시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사정이 달랐다.

 

'절대로 아버지의 이 책을 그들의 수중에 넘길 수는 없다.

사형이 이 책을 가져다 내 손에 갖다 준 것은 아버님을 대신해서 보관하라고 그런 것이다.

절대로 그들에게 빼앗겨서는 안된다.

이것은 아버지를 위함이고 적사형을 위하는 길이다.'

 

만규가 그녀에게 어디서 났느냐고 물을때 그녀의 마음 속에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이 책을 다시 빼앗아 올수 있을까하는 생각 뿐이었다.

만진산의 무공은 탁월하고 남편은 옆에 있으므로 강제로 빼앗는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었다.

그녀의 생각은 아주 빠르게 음직였다.

그녀는 탁자 옆에 있는 놋쇠로 만든 대야를 내려다 보았다.

야에는 반대야가 넘게 핏물이 담겨져 있었다.

그것은 만규가 얼굴을 딱은 물이었는데 그의 손등 상처에서 흘러나온

독이 묻은 피가 떨어져 물은 검정색으로 변해 있었다.

만약 살며시 책을 이 핏물안에 집어 넣는다면 그들은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책은 젖어서 망가지겠지.

그러니 이런 기회를 틈타 손을 쓰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차라리 그 책이 망가질 지언정 그들의 마음대로 처치하게 놔둘수는 없다.

만씨부자는 척방을 뚫어지게 쳐다 보고 있었다.

만규가 다시 물었다.

 

"여보, 이책은 어디서 난 것이요 ?"

 

척방은 멈칫하면서 말했다.

 

"저도 모르겠읍니다. 조금전 나는 방에서 나오는데 이 책이 탁자 위에 놓여 있었읍니다.

이것은 당신 것이 아닙니까 ?"

 

만규는 자기도 어리둥절해 있었으므로 더 이상 따지려 들지 않았다.

 

"아버지, 보세요. 책장에 물이 묻자 글자의 흔적이 나왔읍니다."

 

그는 식지를 내밀어 성과사 라고 쓰여진 시 제목옆에 드러나 있는

담황색의 삼십삼이라는 글자를 가르켰다.

만약 그가 이것이 자기 아내의 눈물이고

또 그 눈물은 적운을 생각하여 흘린 눈물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는 마음속으로 어찌 생각을 했을까?

만진산은 손가락으로 그 시를 쓰다듬으면서 한글자 한글자 읽어 내려갔다.

 

"노자중봉상(路自中峯上), 반회출벽라(盤回出壁蘿), 도강오지진(到江吳地盡),

격반월산다(隔반越山多), 고목총청하(古木叢靑霞), 요천침백파(遙天浸白波),

하방성(下方城)..."

 

제 삼십삼번 글짜는 바로 성(城)이라는 글자였다.

만진산은 무릎을 탁 치면서 말했다.

 

"맞다! 바로 이 방법이야! 알고보니 비밀은 여기에 있었어!

야, 너는 참으로 똑똑하고 총명하구나! 다행히 네가 이런 이치를 생각해 냈구나!

물이 필요해! 맞아! 물로 해야한다. 우리는 그때  물을 써야 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척방은 그들 부자가 머리를 맞대고 그 책의 비밀을 알아내고 미치도록 좋아 날뛰자

즉시 딸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끌고 들어가 딸아이를 품속에 끌어 안으며 말했다.

 

"공심채야, 저쪽의 대야가 보이지 ?"

 

계집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예, 보여요!"

 

척방은 말했다.

 

"조금있다 할어버지, 아버지, 엄마가 함께 달려 나가면

이 엄머가 할아버지 손에 들려 있는 저 책을 설합 속에 넣을거야.

는 가서 꺼낸 다음 저 대야속에 잠궈 물에 흠뻑 젖도록 해라.

대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알게 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못 찾도록 하자."

 

딸 아이는 기뻐했다.

어머니가 자기와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는 줄 알고 손뼉을 치며 웃었다.

 

"좋아요! 재미 있어요!"

 

척방은 말했다.

 

"절대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알게 해서는 안된다.

또 그들에게 말을 해서도 안된다."

 

딸아이는 말했다.

 

"이 공심채는 말하지 않을거예요. 공심채는 말하지 않아요!"

 

척방은 방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시아버님, 이 책이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으세요 ?"

 

만진산은 몸을 돌리며 물었다.

 

"무엇이 이상하단 말이냐 ?"

 

그는 내심 이 책이 갑자기 나타나고 너무 쉽게 손에 들어오자

 

암암리에 길조는 아니라고 염려하고 있었다.

며느리가 이렇게 말하자 더욱 의구심이 깊어졌다.

척방은 말했다.

 

"바로 여기예요."

 

말을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만진산은 책을 건네주었다.

척방은 책을 펼치더니 책속에 끼워져 있던 종이나비를 꺼내며 말했다.

 

"시아버님, 이 책속에는 애당초 이와 같은 나비가 있었나요 ?"

 

만진산은 두마리의 종이나비를 받아 자세히 살펴보고 말했다.

 

"없었지."

 

척방은 말했다.

 

"이게 무슨 덫입니까? 무림 중에 화호첩(花蝴첩)이라는 사람이 있는지요?

또 강호에 호첩방이라는 문파가 있는지 모르겠읍니다.

그들이 이 책을남겼다면 아마 좋은 뜻은 아닐 것입니다."

 

강호의 인물중에 이런 표적을 나타내어 경고를 나타내는 일은 상당히 빈번했다.

만진산은 평생 나쁜 일을 적지 않게 했으므로 원수들도 상당히 많았다.

척방의 말을 듣고 그 나비를 보니 매우 정교했다.

그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나와 원수를 맺은 사람들 가운데 화호첩이라는 사람이 있었는가?

또 호첩방이라는 패거리들이 있었나?'

 

그가 깊이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척방이 일갈했다.

 

"누구냐? 누구냐? 거기 숨어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

 

손을 내밀어 창 밖의 지붕위를 가르켰다.

만씨부자는 동시에 창밖을 쳐다보았다.

척방은 몸을 돌리더니 벽에서 두자루의 장검을 꺼내

한자루른 만진산에게 주고 한자루는 만규에게 주면서 외쳤다.

 

"지붕위에 사람이 있었읍니다."

 

민씨부자는 병기를 받아 들었다.

척방은 책상 설합을 열더니

당시선집을 설합속에 던지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적에게 빼앗겨서는 안되지요."

 

만씨 부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사람은 일제히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지붕위에 서서 사방을 살펴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만진산이 말했다.

 

"아래로 내려가서 살펴보자."

 

세명이 뒷뜰로 내려와서 살펴보자 벽에 한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만진산은 일갈했다.

 

"누구냐 ?"

 

몸을 날려 앞으로 가니

그 사람은 바로 여섯번째 제자인 오감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너눈 아무도 보지 못했느냐 ?"

 

오감은 사부와 만규, 척방이 검을 쥐고 오는 것을 보자

자기의 속셈이 폭로된 줄 알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사부가 이렇게 묻자 마음이 놓여 급히 말했다.

 

"어떤자가 이쪽으로 달려 갔읍니다.

그래서 제자가 재빨리 이쪽으로 와서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감추기 위해 척방의 거짓말을 도와준 셈이된 것이다.

네 사람은 곧장 뒷문으로 달려갔다.

오감은 연신 휘파람을 불어 노곤과 복원등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만진산과 만규는 연성검보가 걱정이 되어 노곤등에게 계속해서

적을 찾으라고 명령하고는 척방을 불러 이층 방으로 돌아왔다.

 만진산은 책상설합을 열었다.

설합에는 그 책이 없었다.

만씨부자는 깜작 놀랐다.

서재의 구석구석을 살펴 보았지만 찾을수 없었다.

어린 딸에게 물었다.

 

"사람이 들어온적이 있느냐?"

 

딸 아이는 말했다.

 

"아니요."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눈을 껌벅껌벅 거렸는데 매우 득의 양양한 표정이었다.

만씨부자는 틀림없이 척방이 그 책을 설합에 집어넣고 적을 추격하고 있을때

그녀가 자기들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으므로 그녀의 소행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틀림없이 적이 조호이산지계(調虎離山之計)의 방법을 써서 검보를 홈쳐간 것이다.

만씨부자는 서로 쳐다보았는데 매우 실망한 표정이었다.

반면 척방모녀는 서로 눈을 껌벅이면서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허공에 쌓는 벽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