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아하루전

<194> 33화 빌토르 (1)

오늘의 쉼터 2014. 6. 14. 10:17




<194>  33화 빌토르 (1)





이른 아침 빌토르 성의 문 앞은 엊그제의 격전과는 하등 상관없다는 듯이 


여전히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동편을 바라보며 여기 저기 옹기종기 모여서 


발을 동동구르고 있었다.

대부분이 가난한 순례자인 듯 그들의 옷차림은 헐렁하게 전신을 감싼 로브나 


허름한 옷차림이 고작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 사이에 상인들인 듯 커다란 짐마차 가득 물품을 실은 마차가 눈에 띄였다.

동편하늘로부터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태양이 아스라이 그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하자 


성문 앞에서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성문 앞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굳게 닫혀진 성문은 전혀 열릴기미조차 없었다.

해가 그 자태를 다 드러내고 이제 서서히 창공을 향해 높아져가는데도 불구하고 성문에서 


조금의 기미도 보이지 않자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개중에 성급한 자는 주먹이나 돌을 들어 성문을 두드리는 사람마저 있었다.

"이봐 문열어 문"

"도대체 언제까지 퍼질러 잘꺼냐구"

"문좀 열어주세요"

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웅성거림은 점차 다른 사람들에게로까지 퍼져나가기 시작하면서 


그 웅성거림은 더욱 커지고 급박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꿈쩍도 않는 성문에 지친 사람들은 급기야 마치 피난민이라도 된양 


성문 앞에서 고함과 욕을 내뱉기까지 했다.

"씨팔 문 안열어?"

"이런 뒤질놈의 새끼들 간밤에 술퍼마신거야? 앙? 문열란 말이다 문"

"어떤 새끼가 성문지기야? 내 당장 영주님께 고해바칠테다"

"문열어주세요. 제발"

거친 사내들의 고함소리와 쌍소리 그리고 여인들의 가냘픈 울음소리가 


성문 앞을 완전히 혼란 그자체로 만들었다. 


그런 사람들의 소동에 반응이라도 한걸까? 


성문 한쪽에 자그마한 구멍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려졌다.

"어떤 새끼야? 앙? 성문을 두드리거나 성문 앞에서 쫑알대면 바로 감빵이란거 몰라? 


씨팔 지금 당장 몇놈 잡아다 지하 빵에 보내줄까?"

성문의 작은 구멍 안에서 거칠고도 격한 욕지기와 함께 성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구멍안으로 매서운 눈빛마져 번뜩이는 듯 싶었다. 


그 소리에 성문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제각기 구멍 안의 사람과 마주치지 않으려 이리저리 딴청을 피워대었고 


성문이 마치 무슨 큰 저주라도 걸린양 다들 성문 근처에서 멀어지려고 안간힘을 써댔다.

"씨팔 한번만 더 좆같치 굴면 다 잡아처 넣어버리겠어 알겠어? 좆도 니기미"

구멍 안에서 그렇게 다시 한번 욕설이 퍼부어지고는 거칠게 작은 나무로 된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고 잠시 잠깐 사람들은 자신의 옆 사람 눈치를 보며 뭐라고 뭐라고 꿍얼거리기 


시작했지만 이전처럼 그렇게 큰 소리로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모든 것을 망각하는 힘이라도 발휘하는지 여전히 성문이 꿈쩍도 않자 


다시금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씨팔 누군 입이 없어서 말을 못하나?"

"제길 지가 무슨 신관이라도 돼? 고작해야 문지기에 불과한 주제에"

"에라이 좆같은 놈"

사람들의 거친 욕지기가 이곳저곳에서 튀어 나왔다. 


하지만 그래도 이전처럼 그렇게 고함치는 소리는 아니였다.

"씨팔 얼마나 더 있어야 하지?"

"젠장 저런 놈은 신관님께 말을해 당장 짤라 버려야되"

"짜르면 다행이게? 아예 볼기짝에서 피가나오도록 채찍질 해야 한다구"

사람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서 조용히 성문지기를 욕하며 


시간을 떼우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르자


 마침내 거대한 성문이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성문이 열린다."

누군가가 그렇게 외치자 


다시금 사람들이 아우성을 질러대며 성문쪽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씨팔 비켜 비켜 문열어야 될거 아냐? 이 개같은 잡년놈들아."

"줄 안서? 이씨발놈들아. 줄 안서는 놈들은 맨 뒤에 들어갈줄 알아라"

성문을 열면서 문지기들이 있는대로 고함치고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문쪽으로 더욱 더 밀려들 뿐이었다.

하지만 문지기들은 고집스럽게 창대로 밀려들어 오는 사람들을 휘갈기며 


끝끝내 사람들을 막아섰다. 


그리고 그런 문지기들의 노력이 어느정도 결실을 보아서인지 


아니면 무식하게 휘두르는 문지기들의 창대에 위협을 느껴서인지 


사람들이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

"씨팔 줄서 줄. 계속 이러면 다시 문 닫아 걸어버린다?"

문지기들 뒤쪽에서 병사하나가 고래고래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러대었다. 


그러는 가운데 천천히 두 줄로 사람들이 문 앞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문 양쪽에 세워둔 검문소에서 간단한 취조와 질문을 받고는 


문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끝없이 몰려들어 조금도 줄지 않을 것 같던 인파가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그 인파가 서서히나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름 그리고 일행이야?"

문 앞 한쪽에서 작은 테이블 옆의 병사가 눈을 부라리며 


방금 자신의 앞쪽에 선 사람을 향해 거칠게 물었다.

"저는 물레방아간 제이슨 입니다요. 


저쪽은 구두장이 미첼, 그리구 큰집 작은 할머니네 루야, 


가슴작은 샘 근처의 미팀 야 미팀 손들어 얼른"

"아아 됐어 모두 몇 명이야?"

병사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한 없이 길어질 것 같은 사내의 말을 끊었다.

"예예 가만히 있자 그러니까설라무네 예 한나요 둘이요."

"됐어 됐어. 이봐 자네가 직접 세봐"

병사가 일일이 손가락을 꼽아대는 사내를 보고는 진절머리를 내며 곁에 잇던 


다른 병사를 향해 말했다.


곁에 잇던 다른 병사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차 근처로 가서는 마차에서 


여기저기 걸터앉아 삐죽이 고게를 내밀고 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세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엄지 하나와 검지와 중지를 폈다.

"보자 저기잇는게 일곱 그리고 이놈까지 여덟인가? 


많이도 왔군 그래. 그래 다같은 일행인가?"

"그럼이굽쇼. 세상에 어딴놈이 마차에 딴 놈팽이를 태우겠습니까요?"

"거짓말 아니지?"

병사가 제법 위협하듯 노려보자 사내가 찔끔거렸다.

"절대 아닙니다요. 아크레온님도 다 알고 계실겁니다요"

병사의 기세에 주늑들었음인지 사내가 허리를 굽신거리며 손을 비벼댔다. 


병사가 잠시 사내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곁의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자 잠시 무료한 듯 멍하니 있던 테이블에 앉은 


머리가 벗겨진 로브를 입은 자그마한 체구의 사내가 고개도 들지 않고는 


기다란 두루마리 양피지에 뭔가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출신지"

병사가 다시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슈만의 데코야에서 왔는뎁쇼?"

"목적"

"예?"

사내가 못알아 들은 듯 반문하자 병사가 다시금 눈을 부라렸다.

"귀가 먹었어? 뭐하러 왔냐구"

"아, 예예, 죄송합니다요. 그저 시골 촌놈이 뭐 알아야지요."

"씨팔 목적이나 말해"

병사가 손을 휘저으며 위협하듯 창대를 들었다. 


그 모습에 사내가 찔끔한 표정이더니 


황급히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입을 열었다.

"예예 대신전에서 아크레온님의 가호나 조금 받을까 싶어서 왔습죠."

"그거 뿐이야? 저건 뭐야?"

병사가 사내의 뒤쪽에 비루먹은 듯 형편없이 말라붙어 갈비뼈가 앙상하게 보이는 


검정말이 끌고 있는 커다란 통이 가득 실린 마차를 가리키며 물었다. 


사내가 다시 머리를 굽신거리며 헤픈 웃음을 지었다.

"헤헤 그리고 여기 축제가 제법 짭짤하다고 들어설라무네 헤헤, 


조금 뭐 벌어가기도 하려굽쇼. 


이래뵈도 저기있는 것들이 저희 지방에서 제법 유명한 술 인뎁쇼. 


그 맛이 아주 죽입니다요. 

물론 다 팔구 그냥가려는 것은 아니굽쇼. 


헤헤 이런데 장사하러 왔겠습니까요? 


그저 노자돈 정도만 조금 벌어설라무네... 


아 물론 장사가 잘되면 아크레온 신전에 기부도 좀 하굽쇼"

"이봐 이봐 번지수가 틀린게 아냐? 그럴려면 소데온 신전에 기부해야지."

"예?"

사내가 뭔말인지 모르는 듯 어정쩡하게 있자 병사가 짜증을 내었다.

"순례가 목적이야? 장사가 목적이야? 


장사를 하려면 행운과 재물의 신인 소데온에게 빌어야 하는거 아냐?"

"그게 뭔말인가요? 그게..?"

"아아 됐어 됐어"

병사가 사내의 뒤쪽에 기다리고 서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사내를 향해 다시금 짐짓 눈을 부라렸다.

"그런데 저거 진짜 술 맞아? 혹시 다른게 섞여 있는거 아냐?"

"무슨 그런 천벌을 받을 말씀이신가요? 


진짜 술 맞아요. 저희 지방 특산 머루주 인뎁쇼? 


어이 이봐 거기 아무거나 한통 가져와 봐"

사내가 뒤쪽 마차에 있는 사람에게 부르자 마차에 있던 사내가 얼른 내려서 


마차에 있는 커다란 통 하나를 끌고 나왔다.

"헤헤 저희도 알건 다 알고 있습죠. 제법 잘 익었습죠."

"뭐야?알긴 뭘 안다는거야? 이런거 불법인거 몰라?"

병사가 다시 한번 눈을 부라렸다. 


사내가 얼른 다시금 굽신거렸다.

"아이구 참말로 뭐가 불법일랑가요? 


그저 고생하시는 병사 나으리께 수고하신다는 의미로 드리는 자그마한 선물인데요"

"흠흠"

병사가 호들갑 떠는 사내를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아이구 참말입니다요. 


내가 딴마음이 있다면 아크레온님께서 화를 내실겁니다요"

"이그 그건 폴리온이시지 천공과 질서의 신이신 폴리온. 


아 그건 그렇구 알았어 저 뒤쪽으로 갔다놔. 그리고 통행증은 있지?"

병사가 성문 바로 옆쪽에 있는 작은 초소같은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구 이를 말씀입니까?"

사내가 얼른 품 안에서 조심스럽게 자그마한 나뭇조각을 꺼내들었다. 


병사가 사내의 손에서 그 나뭇조각을 빼앗아 들고는 잠시 ?어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내에게 다시 건넸다.

"알았어 가봐. 그리고 내 한가지 귀띰하건데 서편 광장쪽에 보면 


작은 분수대가 있을거야 그쪽이 몫이 좋으니깐 그쪽을 재빨리 차지하라구, 


그리고 자리 주인한테는 동문의 칼미치가 보냈다구 해"

"자리주인이요?"

"가봐 가보면 알거야 다음 사람"

병사가 다음 사람을 호명하자 사내가 채 궁금증을 다 풀지도 못하고 떠밀리듯 자리를 떠야했다. 


사내가 끌고왓던 병사의 뒤쪽에 잇는 작은 초소에서 통을 들고갔던 다른 사내가 


얼른 자리를 뜨고 있는 마차 위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비루먹은 듯 볼품없는 검정색 말이 끄는 마차는 천천히 성문 앞쪽으로 쭉 뻗어있는 


도로를 위태 위태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병사가 문득 고개를 들어 마차를 끄는 말을 잠시 바라보았다.

"쯧쯧, 종자는 좋은 것 같은데 어쩌다가 저런 촌놈들을 만나서 저런 고생이냐? 달라고해볼까?"

병사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내져었다. 


그리고는 땅에다 칵 침을 뱉고는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에라, 병에 걸린 것 같은데 괜히 죽기라도 하면 오히려 내가 경을치지"

병사가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자신 앞에 어정쩡하게 서있는 한무리의 사람에게로 눈을 돌렸다. 


한 눈에 보기에도 오랜기간동안 순례여행을 해왔던 듯 로브는 전부 헤지고 군데 군데 ㅈ기거나 


기운 자국마져 있었다. 


더욱이 뒤쪽의 사내가 안고 있는 어린아이는 뭔가 정신이 나간 듯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고 


角?눈을 하고 있어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제길 이번엔 왠 거지들이야?"

병사가 들으라는 듯 그렇게 중얼거리자 로브를 입은 일행중 젊은 사람이 발끈하며 


앞으로 나서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연장자인 듯 한 노인이 얼른 그를 가로막고 섰다. 


그리고는 웃는 얼굴로 천천히 자신의 품안에서 뭔가를 꺼내 병사에게 보였다.

"허허 거지라. 꼴을 보아하니 맞는 말일세 그려.


허허 미안하이 워낙 빈궁한지라 이런 옷차림이라네 그저 자네가 이해하게나"

노인이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지만 정작 노인의 말을 듣는 병사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병사의 눈은 더없이 크게 떠져있었다. 


심지어 병사의 손에 쥔 창이 병사의 손에서 떨어져 바닥을 구르는대도 


그것을 깨닳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한동안 정신 나간 듯 멍하니 있던 병사가 문득 정신을 차린 듯 


얼른 그 자리에서 그대로 땅에 엎드렸다.

"어이쿠 어르신을 몰라뵈서 죄송합니다요. 


미천한 놈의 눈이 망령이 들었나봅니다요. 


죽여주십시오"

병사의 갑작스런 태도에 근처에 잇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노인의 뒤쪽에 있던 젊은 순례자들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코를 흥흥 거렸지만 


오히려 노인은 그런 병사가 안쓰러운 듯 얼른 병사를 일으켜세웠다.

"자네가 잘못한게 뭐있겠나? 옷을 이렇게 입고 이곳에 온 우리도 잘못이지"

"아이쿠 갈파 어르신 소인을 죽여주십시요"

병사의 입에서 노인의 이름이 나오자 


그제서야 노인과 순례자들의 정체를 알게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순례자들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갈파?"

"갈파라면 그 아크레온님의 위대한 현자?"

"오오 현자시여"

"현자님 저희에게 축복을"

"현자님"

사람들이 노인의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하자 노인이 혀를 쯧즛 차기 시작했다. 


이런 소동이 자신때문임을 깨닳은 병사가 더욱 어쩔 줄 몰라하며 손으로 


자신의 입을 때리기 시작했다.

"아이쿠 이망할 주둥이 이 망할 주둥이"

병사가 재차 자신의 입을 손바닥으로 쳐대자 노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젖고는 병사를 잡아 일으켰다.

"휴~ 내 아직 진정한 신의 섭리도 깨닳지 못한주제에 현자는 무슨 놈의 현자... 


하지만 그렇다고 저 사람들을 그냥 놔둘수도 없는 노릇이니..."

노인은 그렇게 어두운 안색을 하다가 이내 천천히 안색을 고치고는 


밝은 웃음으로 자신에게 몰려드는 사람들을 일일이 응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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