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전라북도 기념물 제124호 (순창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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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옥천부원군조원길묘및묘표(옥천부원군조원길묘및묘표) |
분 류 | 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봉토묘 |
수량/면적 | 2기 |
지정(등록)일 | 2005.12.16 |
소 재 지 | 전북 순창군 유등면 건곡리 산86-14 |
시 대 | |
소유자(소유단체) | 옥천조씨대종회 |
관리자(관리단체) | 옥천조씨대종회 |
상 세 문 의 | 전라북도 순창군 문화관광과 063-650-1224 |
일반설명
○ 길이 약 200cm, 너비 약 50cm, 두께 약 30cm의 화강암 비석으로 면을 다듬지 않은 거친 상태에서 상층부 절반 부분에 문자를 음각하였음
묘지의 성격에 축문의 성격을 가미한 특이한 문장형식이다. 이는 기존의 금석문에서 볼 수 없는 형식을 갖추고 있음
정확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어느 때부터 축대의 장대석으로 사용되었음
○ 고려 말 충신인 조원길은 본관이 옥천이고, 자는 성중(聖中)이며 호는 농은(農隱)이다. 시중 장(璋)의 증손으로 부원군 전(佺)의 아들이다. 공민왕 18년(1369)에 문과에 급제하여 檢校, 侍中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옹립하는데 공을 세워 일등 공신에 서훈되어 “推忠奮義 翼戴弼成 克復三重 壁上功臣”의 칭호를 받으면서 옥천부원군에 봉해졌다. 조선개국 후 사람들은 고려왕조에 끝까지 충절을 지킨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 등 삼은(三隱)과 도은 이숭인, 농은 조원길을 합하여 오은(五隱)이라 칭하였다.
묘의 앞에는 후손 趙命臣이 1735년에 세운 비와 면암 최익현이 비명을 짓고, 승지 이재윤이 글씨를 쓰고, 도사 송병순이 頭篆을 쓴 神道碑가 세워져 있다.
조선 개국 후 묘소 앞에 묻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최근에 이 말과 부합되는 碑가 도유사 조종휴씨에 의해 발견되었다. 축대의 장대석으로 놓여있던 비를 정밀탁본하여 판독한 결과 42자의 글자를 판독하였다.
洪武卄四年 辛未辛丑朔 三十日壬午 典工判書趙元吉玉川郡夫人趙氏兩主 同葬之墓 孝子前副正趙瑜 라고 쓰여 있다. 내용은 “홍무24년(1391) 신미년 신축 삭 삼십일 임오에 전공판서 조원길 옥천군부인 조씨 두 분을 함께 장사한 묘소이다. 효자 전부정 조유”이다. 부원군을 예장하면서 둘째 아들인 조유가 세운 묘표석인데 이때 효자(孝子)는 돌아가신 부모의 비석을 새길 때 아들의 이름 위에 쓰는 표현으로 부모의 상중에 자신을 일컫는 일인칭 대명사이다.
그가 사망한 해를 족보에 홍무 23년이라 하였으니 1년 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고려 2대 혜종의 諱 가 武 이기 때문에 그 글자를 그대로 쓸 수 없어 避諱하기 위하여 1획을 뺏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경기도 수원에 있는 "창성사진각국사 대각원조탑비"라든가 경기도 벽제의 최원직 묘표에도 간지에서는 武자가 감획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전라북도에서 발견된 고려비는 금산사의 혜덕왕사비 뿐이므로 조원길의 묘표는 고려시대 비문의 형태와 서체 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학술적 ․ 역사적 사료라고 할 수 있다. 옥천부원군조원길묘및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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