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백두대간

11. 김구의 재판 

오늘의 쉼터 2012. 12. 26. 09:34

11. 김구의 재판

 

 

  김구는 간수의 등에 업혀 나갔다.

간수의 등에 업혀 있으면서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살폈다.

생각한 것과는 달리 어머니의 얼굴빛은 밝아 보였다.

아들이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재판장에게 대드는 품이 여간 대견스럽지 않다고

여겼던 탓이리라.

"당신은 안심하셔도 좋소. 이 아이를 사형시키지는 않을 것이오,

그런데 어쩌면 당신은 이런 용맹스런 아이를 낳았소?"

간수는 김구의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간수 역시 김구가 비록 죄인이지만 일인을 죽인 그 의분과 김구의 태도에

반한 것이었다.

김구는 다시 감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김구가 들어간 감방 안에 차꼬를 채워 두는데,

잡범 즉 절도범들과 함께 채워 두는 것에 크게 분노를 했다.

김구는 차꼬를 채우자 큰 소리를 질렀다.

"야, 이놈들아! 내가 이런 쓰레기 같은 농들과 함께 차꼬를 채우고 있어야

하느냐!

전에는 재판하기 전이라 가만있었다.

그러나 내가 모든 진상을 알고 있지 않느냐!"'


김구의 목소리가 워낙 컸기 때문에 간수들이 들이 닥쳤다.

김구가 차꼬 구멍의 발목을 힘주어 찼기 때문에, 함께 차꼬를 찬 아홉 명의

죄수들이 고통을 받았다.

차꼬란 긴 널빤지에 발목이 들어갈 만큼의 구멍을 뚫어 한 발목씩 집어넣고

열쇠를 채우는 형구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이 요동을 치면 다른 사람들의 발목이 함께 움직이면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죄수들은 김구를 지목하면서 ,

"이 사람 때문에 우리 여덟 사람의 발목이 모두 부러졌소."

하며 간수에게 항의를 했다.

이때 재판을 담당했던 김윤정이 소식을 듣고 감방으로 왔다.

그리고 간수에게 질책하며 분부를 내렸다.

"이 사람은 다른 도둑들과는 질이 다르다.

왜 다른 도둑들과 함께 수감하느냐? 또 이 사람은 큰 병에 걸려 있지 않느냐?"

김윤정의 지시에 따라 김구는 옆방으로 이감했고,

 거기서 그는 다른 죄수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위치에 있게 됐다

요즘 말하자면 감방장이 된 것이다.

  하루는 김구의 어머니가 면회를 왔다 그녀는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경무관이 돈 백오십 원을 보내고,

이 돈으로 네 보약을 지어 먹이라고 하더라."

  "고마운 일이죠."

  "또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집 주인 내외도 태도가 달라졌다.

나를 존경하면서 옥중의 네가 원하는 음식은 모두 넣어 주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김구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이 있었다. 그것은 이랬다.


  "얼마 전에 어떤 뚜쟁이 할멈이 찾아왔다

그 할멈이 이곳에서 고용살이 하는 것보다

   돈 많은 영감을 얻어 주겠다고 하더라."

  "그래서요?"

  "그래서 나는 남편이 있다고 했다."

김구는 하찮은 뚜쟁이 할멈에게 어머니가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모두가 제 잘못입니다. "

  한편 백범과 함께 불려간 음식점 주인 이화보는,

신문을 당할 때나 감옥 안에 있을 때 김구를 마치 신(神)처럼 이야기했다.

  이화보는 김구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죄,

요즘으로 말하자면 불고지죄에 해당됐다.

  "김구는 대단한 사람이오. 내가 똑똑히 보았소.

축지법을 써서 하루에 7백 리를 날아다니고,

한 끼에 일곱 사람 몫의 밥을 먹는장사요.

또 용기와 지혜를 겸비해서 아무도 그를 대적치 못하오."

  이화보는 자신이 본 것 이외의 이야기를 과장되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신기한(?) 사람과 상대했는가를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이화보는 자신의 식당에서 살인사건이 났는데도 얼른 신고하지 않았고,

살인 후에도 살인자와 맞상대하지 않고 은근히 그의 도피를 도와주었다는

죄목으로 붙들려 왔던 것이다.

  김구는 죄수들뿐만 아니라 감옥 내의 관리들에게까지 신비스런 인물로

비춰지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튿날부터 김구의 얼굴을 보려고 찾아드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감옥 안의 관리들은 김구를 화제로 삼기를 즐겼다.

  "제물포가 개항된 지 9년 만에 참으로 희귀한 인물이 들어왔다.

우리 같은 사람은 감히 상대하지 못할 인물이다."

  항구 내의 권력자들은 물론이고 노무자들까지 김구의 얼굴을 보기 위해 재판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김구의 2차 신문일이 되었다. 신문은 감리서의 마당에서 하게 되었는데, 바깥의 높은 나무에 올라가면 신문광경이 보였다.

  그날도 김구는 간수의 등에 업혀 옥문 밖을 나섰다.

그의 병세가 호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구가 사방을 살펴보니,

바깥의 길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나무 위에는 하얀 꽃이 만발하듯 흰옷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차,

금방이라도 나뭇가지가 부러질 것 같았다.

  경무청 안에는 각 관청의 관리와 항구의 유력자들이 모두 모였다.

  마침내 법정 안에 들어서니, 김윤정이 김구에게 귓속말을 했다.

  "오늘도 왜놈이 입정했으니, 그놈에게 들으라고 큰 소리로 호통을 치시오,"

  김윤정에게도 민족적인 감정이 통했던 모양이다.

  대부분의 관리란 자들은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 권력자에게 아부를 하게 마련이다.

김윤정이 경성부의 참여관 노릇을 하는 것을 보면 근본적으로 민족의식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간혹 양심의 세력이 물밀듯 몰아닥칠 때는 의분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의협심이란 것이 금방 사라지게 마련이다. 원래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자들은 약한 자에게 때론 동정을 하나, 강한 자가 한 마디 하면 금방 강한 자의 편에 서서 양손을 허리에 대고 눈알을 부라리는 습성이 있게 마련이다.

  재판장이 엄숙하게 물었다. 사실심리였다.

  "지난번에 모두 이야기했소.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소."

  김구는 이번에도 일인 관리 와타나베를 향해 언성을 높였다.

  "이 왜놈아! 너희들의 나라에는 법도도 없느냐!"

  그러자 와타나베는 다시 겁에 질려 꽁무니를 뺐다.

  김구는 다시 감옥으로 돌아왔다.

  김구가 감옥으로 들어간 후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면회가 이뤄졌다.

당시만 해도 면회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었고, 그 숫자도 제한되지 않았다.

  김구는 이때쯤 제물포에서 사귀고 싶은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다.

  김구를 면회 온 사람들은, 김구를 면회했던 일을 큰 자랑으로 알고 친지들에게 과장되게 이야기했다.

김구와 친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또 김구와 같은 영웅(?)과 친하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신분상승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면회 올 때는 좋은 음식을 한 상씩 차려 오거나, 돈 같은 것을 슬쩍 찔러주기도 했다

당시의 감옥제도는 죄수들에게 음식물을 규칙적으로 매일 나눠 주는 것이 아니라,

죄수들이 감방 내의 작업장에서 짚신을 삼으면 짚신을 갖고 간수가 죄수들을 인솔해 시장에 나가 팔아서 죽이나 쑤어 먹는 형편이었다.

요즘과 같은 관식이라는 것이 없었다. 김구에게 가져다주는 음식을 그는 죄수들에게 나눠 주었다 따라서 그 양도 무척 많았다.

이렇게 되자 김구는 동료 죄수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김구의 3차 신문은 감리서에서 했다. 그날도 제물포 항내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날은 이재정이 친히 신문을 했다. 일인 관리는 혹시 김구로부터 무슨 봉변을 받을지 모른 다고 생각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감리가 친절하게 김구에게 몇 마디 물었다. 그리고 신문서를 작성한 것을

보여 주었다.

  "이렇게 하면 되겠소?"

김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맨 끝에 이의가 없다고 날인을 했다.

1896년 9월 10일(음력 8월 4일)의 일이었다.

며칠 후 일인들이 죄수의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김구는 다시 간수의 등에 업혀 경무청으로 나왔다.

이때도 어떻게 알았는지 김구의 얼굴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김윤정이 김구의 귓속에 가만히 이야기했다.

  "김창수, 저 일인들이 창수의 얼굴을 박으러 왔으니 그들에게 기개를 보이기 위해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부릅뜬 채 사진 을 박으시오."

  당시의 용어는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박는다'는 것이었다.

물체를 들어다가 종이에 박아 넣는다는 뜻이었다.

왜인들은 김구가 죄인이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 증거로 만들어

놓기를 원했다.

왜인은,

"김창수에게 수갑을 채우든지 포승으로 얽어 죄인 된 표를 만들어 주시오."

하고 김윤정에게 사정했다.


김윤정은 이들의 말에 단호히 거절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김창수는 계하죄인(階下罪人) (임금의 재가를 받은 죄인)이오.

 따라서 임금의 허락 없이 형구를 댈 수가 없소."

  패인이 질문했다.

  "정부의 명령 , 그것이 군주의 명령 아니겠소."

  "갑오경장 이후 형구는 모두 폐했소."

왜인이 머리를 갸우뚱했다.

왜인은 어떻게 하든지 자국의 국민을 살해한 김구를 중죄인으로 만들려 했다.

  "이 나라의 죄수들 모두가 쇠사슬과 칼을 쓴 것을 내가 목격했소."

  이 말에 김윤정이 불같이 화를 냈다.

  "죄수들의 얼굴을 박아 두는 조약은 체결되지 않았소.

   당신들이 하는 짓은 내정 간섭이오."

  이를 본 구경꾼들은 김윤정이 명판관이라고 칭찬했다.

마침내 김구는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었다.

왜놈의 간청에 의한 것이었다.

왜인은 김구의 곁에 앉아 포승을 놓아두고 마치 자신이 증인이 된 듯

함께 사진을 찍었다.

  김구는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

그러자 더욱 용기가 치솟았다.

자신이 한 행동에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고, 밋밋하다고 느껴

재판정에서도 오히려 당당했다.

김구는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왜놈들이 우리의 국모를 시해했소이다.

이것은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치욕이오.

지금 이 나라를 요절내려는 왜놈들의 음모는 대궐 안에서 그치지 않소.

여러분들의 아들딸들이 필경 왜놈들의 마수에 걸려 모두 죽어갈 것이오.

내 말을 명심하시오!"


  곁에 있던 와타나베가 다소 신경질적인 어조로 김구의 말을 가로막았다.

  "당신이 그토록 나라에 대한 걱정이 있을진대 왜 그 하찮은 벼슬도 못하오?"

  김구가 말했다.

  "나는 원래 천민이다. 그래서 작은 놈밖에 죽이지 못했다.

그러나 나 말고도 또 다른 벼슬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너희들이 떠받드는

천황인가 하는 자를 죽일 것이다."

  김윤정이 끼어들었다.

와타나베는 사법부 소속이 아니었다.

일개 일본의 관리에 불과해 참관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김윤정이 와타나베를 향해 핀잔을 주었다.

  "당신들은 일본인이오.

아무리 일본인의 세력이 막강 하다고 하지만 이 죄수의 소관은 우리 조선인이오. 그러니 당장 나가시오."

  그러자 와타나베는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조선인에게 모욕을 당했다는 분노가 얼굴에 역력히 그려져 있었다.

와타나베는 뭔가 한 마디 하려 했으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그대로 자리를 떴다.

김구는 김윤정에게 이화보의 무죄함을 이야기했다.

  "사실 이화보는 아무런 죄가 없소. 그는 음식점 주인일 뿐이오.

내기세가 등등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내 말에 따랐을 뿐 이오.

'그러니 당장 석방시켜 주시오."

  김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창수의 곧은 마음 잘 알겠소."

  김윤정은 비록 김구가 살인범일망정 이웃의 억울함을 생각 하는

그 마음이 갸륵하다고 느꼈다.


  김구가 감옥에 돌아올 때쯤 이화보는 간수에게 석방 지시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옥문 밖에서 김구를 찾았다.

  "정말 당신은 영웅이요, 남자요. 평생 동안 이 은혜를 잊지 않겠소."

  "아니오. 무고한 당신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소.

이다음 좋은 세상에서 만납시다."


  이화보는 김구의 두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사실 이화보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김구와의 만남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이었다.

그런 이화보를 볼 때마다 김구는 내심 미안한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화보가 석방이 됐으니 한결 짐을 벗어 놓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김구는 길고 긴 감옥 생활로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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