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악독한 신문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판관의 신문이 시작되었다 김구는 생각에 잠겼다
'일찍이 해주옥에서 다리뼈가 허옇게 드러나는 주리 형을 받고 죽기까지 이르렀으면서도
그들의 신문에 불응한 것은, 좀더 큰 기관에서(내무부)내 뜻을 똑똑히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병에 걸려 다 죽게 됐으니, 이곳에서라도 왜놈 죽인 이유를 떳떳이 말하겠다.'
김구는 간수의 등에 업혀 경무청으로 들어갔다.
경무청은 재판하는 곳이라서 분위기가 여간 살벌하지가 않았다.
감옥이 도둑만 수감하는 곳이라서 신문할 때도 도둑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기 위해
짐짓 살벌한 형벌 도구를 마련한 듯했다.
간수가 김구를 업어다가 문 밖에 놓자,
경무관으로 있던 김윤정 (金潤晶)이 김구의 흉측한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김윤정은 윤치호의 장인이 되는 사람이었다.
"저 죄수와 형용이 저리 볼썽사나운가?"
간수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꾸했다.
"열병을 심하게 앓아서 이리 되었습니다.
이번엔 김윤정이 김구에게 물었다.
"내 말에 똑바로 대답할 수가 있겠는가?
그 흉상 갖고서 정신이 올바로 나겠가?"
김구가 답변했다.
"정신은 말짱하나 성대가 말라붙었소. 물을 한 모금 주시오."
그러자 김윤정은 청지기에게 물을 떠오라고 말했다.
김윤정은 이어서 사실심리를 했다.
김구의 성명, 주소, 연령을 우선 물었다
"안악의 치하포에서 일본인을 살해한 사실이 있는가?"
"그렇소. 그날 그곳에서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놈 한명을 때려죽인 일이 있소."
김구의 태연자약한 대답에 배석한 관리들은 일순 침묵을 지켰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법정 안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일반 절도범이 아니라 일종의 국사범이었기 때문이었다.
김구의 옆자리에는 와타나베라고 하는 일인 순사가 앉아 있다가,
통역에게 법정 안이 조용해지는 이유를 물었다.
김구는 일인 순사를 보자 사력을 다해 외쳤다.
"이놈들! 소위 만국공법이니,
국제공법 어디에 국가 간의 통상화친조약을 체결한 후 그 나라 임금을 시해하라는 조문이 있느냐!
너희 왜놈들은 어찌하여 우리 국모를 시해했는가!
내가 명이 다해 죽으면 귀신이 되어,살아서는 몸으로 너희 왜놈 임금을 죽이고 왜놈들 씨를 말려
우리 국가의 치욕을 씻겠노라!"
김구의 서슬에 겁이 난 순사 와타나베는,
"축생이다! 축생!"
하면서 대청 뒤로 꽁무니를 뺐다.
더 이상 있다가는 화를 입을것 같아서였다.
법정 안의 공기가 심상치 않자, 관리가 와서 김윤정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감리 영감께서 직접 신문하시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사안이 보통 중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자 잠시 후 감리 이재정(李在正)이 들어왔다.
이재정은 김윤정으로부터 이때까지의 신문과정을 보고받았다.
이때 법정 안에서 참관하던 관리와 근무자들이 김구에게 찬물을 가져다주었다.
같은 한 국민으로서 일본인 군인을 살해했다는 데 따른 공통적인 의분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구가 말했다.
"나는 일개 천민이지만 국가의 수치를 당함에 있어 그대로 보아 넘길 수만은 없었소.
이 땅에 살면서 이런 수치를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왜구 한 명을 살해했소.
그러나 나는 아직 우리 동포가 왜구의 왕을 죽여 복수했다는 말을 듣지는 못했소.
지금 당신들은 몽백 (蒙白)을 하고 있소.
'춘추대의 (春秋大義)' 보면 나라님의 원수를 갚지 못하면 몽백을 하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소.
당신들은 어찌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국록을 도적질하는 마음으로 임금을 섬기시오?"
몽백이란 국상을 당하여서 흰 갓을 쓰고 소복을 입는 것인데,
당시는 명성황후가 시해를 당해 국상 중이었다.
김구의 말은, 자신은 비록 천민이지만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구를 죽였는데,
당신들은 국록을 먹으면서 어찌 마음의 슬픔도 없이 태연하게 재판정에 앉아 있느냐
하는 꾸짖음이었다.
김구의 말에 이재정과 김윤정을 비롯한 수십 명의 참석 관리들의 얼굴이 달아올라 붉게 물들었다.
일말의 양심의 빛이었다.
이재정이 김구에게 하소연하듯, 변명하듯 말을 꺼냈다.
"그대의 말을 들으니 그 충의가 대단한 걸 알았소. 오히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내가 부끄럽소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오. 내가 관리이기 때문에 상부에 보고할 의무가 있소.
그러니 그대는 사실을 상세하게 이야기해 주시오."
김윤정은 김구의 몸이 몹시 상해 있어서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지,
감리와 상의를 하더니 간수에게 하옥시키라고 명령했다.
김구의 어머니는 아들을 신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경무청 문 밖에서 서성거렸다.
"내 아들의 병이 위중한데, 저러다가 지레 죽지나 않을는지 모르겠소."
그녀는 지나는 사람들에게 김구의 신변에 대한 걱정을 털어 놓았다.
당시 김구의 재판은 이 고을에서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에서도 화젯거리였다.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고 국상 중에 왜구를 살해했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김구가 재판정에서도 의연하게 임한다는 데 따른 어떤 호기심 때문이었다.
더구나 범인이 스무 살밖에 안된 젊은이이고,
그 젊은이에게 민족의식이 배어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렸다.
"아직 어린아이인데 당돌하군."
"글쎄 말이야. 대단한 젊은이야."
"해주에 사는 창수라는 젊은이인데, 명성황후의 복수를 위해왜인을 죽였다지.
그리고 아까 창수가 오히려 감리사를 책망하는데, 그도 아무 소리 못하고 얼굴만 붉히더군."
이런 이야기는 곧 인근 마을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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