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백두대간

8. 국모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다

오늘의 쉼터 2012. 12. 26. 00:51

 

8. 국모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다  


 이 당시 시위대 연대장은 현홍택이었다 경복궁의 지리에 밝은 사무라이(낭인) 아사리를 선두로 마치 먹이를 추격하는 뱀처럼, 전각들 사이로 요리조리 피해 일본군 수비대보다 먼저 건청궁에 도달했다. 오기하라 경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작전이 성공하겠다는 암시였다.

"좋소." 

 오카모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낭인들은 건청궁을 둘러싼 담장을 따라 이동했다. 조선군 시위대 병사들은 한사람도보이지 않았다. 정적이 감돌았다.

이때 느닷없이 일본도를 꺼내들고 열을 지어 따라오고 있는 낭인들을 보고 궁녀들이 나지막하게 비명을 질렀다. 궁녀들은 생전 처음 이런 무례한 작자들을 보고 놀란 것이다.

오카모토 일행은 아사리를 선두로 건청궁 중문을 넘어 들어갔다.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두 개의 문을 더 통과하자 건청궁 앞마당이 트였다. 이때 다시 만난 노상궁의 호령이 있었다. 궁궐 예도에 몸이 밴 노 상궁이 소리쳤다.

"이놈들아! 무엄하구나!"

그러나 오카모토 일행은 노 상궁과 궁녀들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나와 마루 아래로 내던져 떨어뜨리고 발로 걷어찼다. 법도는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 낭인들은 낭인들의 명령만 따르면 되었다. 순간, 오카모토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저물어 가는 왕국의 궁궐이라지만 이렇게 무방비일 수가 있는가. 조선인 군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저항이 있어야 점령군의 기분도 내키는 법이다

오카모토는 다소 싱거운 생각이 들었다. 마치 쉽사리 복권에 당첨된 심경이었다. 국왕의 주위에는 고작 열 명 안팎의 늙은 상궁과 내시들만이 있었다. 낭인들의 눈에는 우습게 비칠 뿐이었다.

"임금을 잡아라!"

무엄한 소리였다. 일개 거렁뱅이들이 임금을 잡으라니 낭인 가운데 볼따구니에 유달리 긴 칼자국이 선 자였다. 조장인 듯 했다. 낭인들은 국왕의 곁으로 다가갔다.

"무엄하도다!"

 "법도를 지키라!"

"국왕 전하이시다!" 

 그러나 이런 말이 그들에겐 통할 리 없었다.

내관들은 국왕의 신변을 몸으로 감쌌다.

낭인들의 무례한 행동이 국왕에 미칠 화를 예견해서였다.

 "비켜서라! 모두 베어버린다!"

낭인 조장이 소리쳤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말인지,

왜놈의 나라에서 시정잡배들에게나 통할 상놈의 말이었다.

그걸 알 리 없었다.

낭인 조장이 국왕의 곁에서 바위처럼 버티고 있는 내관에게 쏜살같이 달려가,

잘 다듬어진 일본도로 그의 손을 끊어 버렸다.

피가 튀었다.

 

내관이 쓰러지자 낭인들은 내관의 목을 밟았다.

그리고 그 기세로 국왕을 에워싸 포위를 했다.

국왕은 낭인들 틈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낭인들은 국왕에게 난폭하게 굴었다.

의대를 잡아끄는가 하면, 상투를 잡아채기도 했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낄낄대며 웃었다.

참으로 무례한 놈들이었다.

아무리 약소국의 국왕이라 할지라도 이런 자들이

세상천지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다.

낭인들에게 인격을 기대할 수 없겠지만

이런 짐승만도 못한 자들에게 유린을 당하는 조선의 국왕,

그것은 국왕의 문제가 아니었다. 조선인들 전체를 능멸하는 행위였다.

"국왕을 죽여 버리겠다."

낭인들은 지옥도에나 나올 나찰 같은 얼굴을 하고 설쳐댔다.

오카모토는 팔짱을 낀 채 이를 즐겼다.

낭인들 중 한 명이 붓과 벼루를 국왕에게 쥐어 주었다.

"어서 써라! 당장에 왕비를 폐한다고, 빨리 써라!"

국왕은 아무 말도 못했다. 바위처럼 서 있다가 한숨을 쉬었다.

국왕은 그들이 강제로 쥐어 준 붓과 벼루를 떨어뜨렸다.

짐승 같은 그들을 어전까지 들어오게 한 나라의 형편이 그저 통탄스러울 뿐이었다.

그들은 국왕의 용안을 때리고 정강이를 차는 등, 마치 시정잡배들처럼 눈뜨고 보지 못할 행패를 저질렀다.

국왕은 이들에게 맞은 매가 아파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이 민족의 백성을 위해서, 상놈들보다 더 못된 낭인들에게 유린당할 앞으로의 조선 민중을 위해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 시각 대전의 방 안에 있던 왕세자는 더 심한 모멸을 당하고 있었다.

낭인들은 왕세자에게 강제로 무릎을 꿇어앉히게 하고 이마와 귀를 마구 후려갈겼다 왕세자를 감싸고 있던 늙은 상궁들이 기를 쓰고 저지했지만 낭인들의 발길에

채여 나 뒹굴어질 뿐 세상은 아수라장이었다.

그들에겐 법도도 없었고,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도 행방불명이었다. 짐승의 세계에서도 아래위가 있다던데, 이것은 무법, 그것이었다.

"이 불한당의 상놈들아! 네 놈들의 나라에는 법도도 없다더냐!"

늙은 상궁이 입에 거품을 물고, 허우적거리며 간신히 외쳤다.

"저 늙은 년은 뭐냐! 당장 베어 버려라!"

조장이 노상궁의 머리를 뱄다.

선혈이, 그 붉디붉은 선혈이 어전에 낭자했다.

그들은 국모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여우는 대전에 없는 것 같소."

오카모토는 그렇게 잠정 결론을 내렸다.

다시 국왕이 있는 대청으로 올라섰다.

이때 오카모토는 국왕을 능멸하고 있는 낭인들을 목격했다.

오카모토는 일말의 양심이 있었는지 낭인들에게 외쳤다.

"그만둬라!"

오카모토는 이들을 다시 소집해 의견을 물었다.

 "대전에 여우가 없다면 기미를 알고 빠져나갔다는 이야기이다."

오카모토는 궁녀를 몇 명 희생시키더라도 국모의 소재를 파악하고 싶었다.

그것이 작전이었다.

"아무나 잡아 와라! 반항하면 죽여라!"

오기하라 경부는 더욱 극성이었다.

이때 주력부대인 일본군수비대가 건청궁에 들어왔다.

.

  조선군의 마지막 저항자 현홍택은 이들에게 붙잡혀 질질 끌려왔다.

  "계급은?"

  "시위대 연대장 현홍택이다. 이놈들아! 하늘이 두렵지 않은가? 나는 죽어도 좋다. 역사가 반드시 너희 놈들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현홍택은 낭인들에게 몹쓸 짓을 너무 많이 당해 기력이 이미 쇠진해 있었다. 오기하라 경부는 현홍택을 끌고 내실로 들어왔다.

  "여우가 어디 있느냐?"

  일국의 국모를 낭인들과 그 우두머리들은 그렇게 불렀다. 현홍택이 정정해 주었다.

  "국모님이라고 불러라."

  현홍택은 끝까지 버텼다. 이미 죽기로 작정했다. 저승에서도 떳떳하게 대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침내 어전 앞으로 끌려간 현홍택, 만신창이가 된 시위대 연대장 현홍택을 본 국왕은 자신도 이들에게 능멸을 당했으면서도 현홍택을 붙잡아 일으켰다.

  "시위대 연대장, 모두가 부덕한 과인의 탓이오."

  국왕은 울었다. 굵은 눈물이 대청에 떨어졌다. 원래 국왕은 울지 않는 법이다. 국왕이 울면 백성의 눈물은 더하기 때문이다. 국왕이 의연해야 백성이 믿는 법이다. 그러나 상황이 달랐다.

  "전하, 성은이 망극 하옵니다."


  마침내 국모의 마지막 순간이 닥쳐왔다. 낭인들은 궁궐의 약도를 입수했다. 그들은 궁녀를 모두 끌어낸 후, 궁녀 셋을 끌어안은 채 엎드려 있는 어떤 선비를 발견했다. 궁내부대신 이경직이었다. 낭인들이 잘 아는 얼굴이었다.

  "이건 내시가 아닌가?"

  선비의 입에서 추상같은 호령이 떨어졌다.

  "무엄한 상놈이로구나."

  "누군가?"

  "네놈들에게 내 신분을 알리는 것이 수치스럽다. 물러 가거라."

  "벼슬아치로군. 조선의 벼슬아치란 것이 별것 있는가?"

  낭인 한 놈이 이경직 앞으로 거만하게 다가왔다. 이경직은 궁녀들을 붙든 채 꼼짝하지 않았다. 낭인 한 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 년 가운데 한 년이 분명하다."

  그러자 낭인들이 우르르 몰려와 이경직을 궁녀들로부터 떼어놓았다.

  "이놈들아! 차라리 나를 죽여라! 이분들은 안 된다."

  이경직은 끝까지 버텼다. 낭인 한 농이 외쳤다.

  "이년들 가운데 한 명이다!"

  이경직이 세 궁녀를 죽기 살기로 감싸고 있음을 본 낭인들은 곧 직감했다.

  방 안는 이경직과 세 궁녀, 그리고 일곱 놈의 낭인들이 서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살기로 가득 찼다.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데라이치, 나카모토, 후지무라, 구시히로, 히라야마 등이 그 놈들이었다 그리고 조장으로 미야모토 소위, 마키 특무조장 등 왜놈들 수비대 장교들이었다.

이들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한 놈이 결단을 했다는 듯 일본도를 빼들었다. 히라야마였다. 그자는 그 칼을 마치 무술시합에서 그러하듯, 자세를 잡자마자 이경직의 부둥켜안은 양팔을 베어 두 동강이 내었다

  "윽!"

  이경직은 몸을 꿈틀했다.

  칼날이 배를 가르는 순간적인 아픔이 지나가자 감각이 없어 졌다.

  "비켜라!"

  이경직이 두 눈을 부릅떴다.

  "나는 이미 죽기로 작정했다. 야수보다 더 못한 네놈들에게 절대로 이분들을 맡겨서는 안 된다!"

  히라야마의 두 번째 칼날이 이경직의 폐부를 갈랐다. 그리고 세 번째, 미야모토 소위와 특무조장 마키는 권총을 빼 이경직의 꿈틀거리는 몸 위를 쏘았다.

  "탕! 탕! 탕!"

  그러나 그의 몸은 이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경직, 나이 54세 , 마지막 저항군이자 몸으로 버틴 들보, 그는 죽고 나서 영예를 되찾았다. 고종황제는 홍계훈과 이경직의 영정을 위로하기 위해 광무 4년(1900) 11월, 남소영 자리(지금의 신라호텔 자리)에다 사당인 장충단(奬忠壇)을 지었고, 매년 봄가을 그들의 충령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냈다. 어쨌든 바로 눈앞에서 궁내부 대신 이경직이 무참히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 국모는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방 안에서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낭인들을 헤치며 뛰쳐나갔다. 그러나 국모는 낭인들에게 곧 붙잡혔다. 낭인들의 입에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터져 나왔다.


  "이년이!"

  특무조장 마키 놈이었다.

  그는 데라이치 , 후지무라, 나카모토, 구시히로, 미야모토 등이 뒤따라오자 그들을 위해 국모 곁에서 한 발짝 옆으로 비켜났다.

  "여우다!"

  미야모토란 놈이 소리쳤다.

  "왕비가 맞지?"

  "맞아."

  이번에는 데라이치란 놈이 손을 내뻗어 국모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국모는 손을 뿌리쳤다.

  "무엄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뿐이었다. 이런 인간 같지 않은 자들에게 ‘무엄하다.’ 라는 말이 통할 것인가. 국모는 이것이 꿈인가, 아니면 현실인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순간적인 단상이 뇌리를 스쳐갈 뿐 행동은 없었다. 그 시각, 시간은 정지돼 있었다. 악마의 놀이만이 있을 뿐이었다.

  조선의 백성들은 침묵할 뿐이었다. 의병도 없었고, 협객도 없었다. 왜놈들의 더러운 놀이장으로 변한 궁궐 안은 지옥도 그것이었다.

  데라이치는 그의 잡근력(雜筋力)에 힘을 주었다. 그것이 이곳에서는 힘이었다. 씨름판에서나 쓰일 근력을 그놈은 다듬고 있었다. 머리채가 붙잡힌 국모는 그가 잡아채는 방향으로 몸을 비틀대다가 쓰러 졌다.

  "왕비가 맞지?"


  국모는 입을 다물었다.

  데라이치는 일본도를 높이 쳐들었다.

  "왕비가 맞다고 해라!"

국모의 온몸은 떨렸다. 서늘한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갔다. 국모는 이것이 최후의 순간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최후에 의연한자세로 임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낭인들은 국모의 품위를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신사도가, 아니면 인간적인 생각이 솜털만이라도 있었다면 국모를 국모답게 죽도록 하는 것이 순리였다. 그러나 상대는 왜놈들이다. 땅 바닥에 내동댕이쳐 가슴이 세 번이나 내리 짓밟힌 국모는 한숨도 쉬지 못했다. 번쩍하는 기분 나쁜 일본도의 섬광이 빛을 발하고, 그 빛은 국모의 면부(얼굴)를 갈라놓았다. 옆에 있던 세 명의 궁녀도 난폭하게 휘두르는 일본도에 무참히 쓰러지고 말았다. 나카모토도 뒤따라왔다. 데라이치와 나카모토는 마치 짐승을 도살하듯 그렇게 국모와 세 명의 궁녀를 베어 버린 것이다. 이어서 쓰러진 국모에게 달려가는 놈이 있었다. 확인살해였다. 후지무라였다.

  상대방 국가의 국모를 한 번 더 찌르는 것이 그들의 국가의 공적에 기록되는지, 놈도 국모를 향해 일본도를 휘둘렀다 한 번 두 번.

  "방 안의 것들도 모두 없애라!"

  특무조장 미야모토의 명령을 받고 이들은 살아 있는 궁녀들을 찾으러 다녔다.

   "이 방이다!"

                     

  옥호루 안으로 뛰어 들어간 특무조장과 그의 부하들은, 궁내부대신 이경직의 시신이 그대로 방치된 방에서 두 궁녀를 발견했다. 궁녀들은 낭인 놈들을 피해 국모 주위로 몰려갔다. 가까스로 잠시 의식을 회복한 국모는 멀리서 이들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손으로 뭔가를 찾고 있었다. 국모가 찾던 것은 세자 척(拓)이었다. 척은 선왕인 고종의 양위를 받아 마지막 임금이 된 순종이었다.

  "세자야! 내 아들아!"

  마키란 놈이 불같이 화를 냈다.

  "세자 좋아 하네 ! 이 나라에 세자가 뭐 필요한가?"

  "이번에는 우리가 해치우겠소."

  나카모토가 국모의 가슴에 더러운 발을 얹고 있었다. 거의 동시에 마키가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그들의 일본도가 국모의 가슴을 도륙질 했다.

  이렇게 해서 국모는 숨을 거두었다. 국모는 갔지만 혼자만 간 것이 아니다 조선민족의 자존심마저 모두 가지고 간 것이다. 그들은 국모의 시신을 들고 화장하기 좋은 장소로 갔다. 거기는 곤령합 동쪽인 녹산(鹿山)의 숲 속이었다. 국모의 시신을 짓밟던 홑이불이 벗겨지고 시신이 드러났다. 이놈들은 국모에게 차마 못할 짓을 마지막까지 자행했다. 화장하기 전, 이놈들은 짐승보다 못한 말을 지껄이고 능멸하고, 그리고 마구 짓밟았다. 석유를 뿌린 시간은 새벽녘, 시신에 불을 붙이자 새벽의 어둠이 불로 밝혀졌다.

  낭인들은 이 모습을 보면서 천황폐하 만세를 외쳐댔다.



   김구는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치를 떨었다. 원래 왜인들이란 그 성품이 간악하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아무 짓이나 하는 민족이었다. 강한 자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약한 자에겐 함부로 짓밟는 종족, 그것이 섬 근성이요, 왜인들이었다.

  

  김구는 이자가 위장한 낭인 패거리라고 단정했다. 낭인 패거리가 아니더라도 낭인과 접선하는 자가 분명하다고 여겼다.

  '내가 저 한 놈을 죽여서 국가의 치욕을 다소나마 씻어 준다면 내 한 몸이 죽는 건 결코 아깝지 않다.'

  김구는 이렇게 작정했다. 그는 먼저 주위의 환경을 유심히 살폈다. 방이 3칸이었는데 손님들은 약 40여 명 정도 되었다. 그 가운데 그자의 패거리가 몇 명이 있을는지 알 수가 없었다.

김구는 다시 다짐했다.

  '이것은 결코 내가 순간적으로 생각한 객기가 아니다.'

  이때 그자의 곁에서 17, 8세 되는 머리를 길게 땋은 총각이 무슨 말을 걸고 있었다.

김구는 자신의 역량을 생각해 보았다. 섣불리 손을 썼다가는 저놈의 칼 아래 이슬이 될 것이고, 또 내 시신은 훗날 도둑의 누명을 쓰게 되는 것이 아닌가, 만일 저놈을 단번에 죽이지 못하고, 방 안의 손님들이 만류하는 틈을 타 저놈의 칼이 먼저 들어온다면 나는 결코 살아날 수가 없다. 왜놈들의 칼솜씨는 알아주지 않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갈등을 하다가 문득 고능선 선생의 교훈이 들어왔다.

 

  가지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나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것이 장부로다


  즉, 결단을 내릴 때 내리는 것이 장부라는 것이다.

  김구는 자신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대답해 보았다. 자문자답이었다.


  "네가 보기에 저 왜인을 죽여 국모보수(國母報警)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너는 어릴 때부터 마음이 좋은 사람이 되길 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그러나 지금은 왜놈을 죽이려다가 성공 못하고 도리어 죽게 된다면, 한낱 도둑의 시체로 남겨질까 봐 그것이 걱정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때까지 마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다는 것은 모두 거짓이고, 사실은 이롭고 이름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려는 소원만 가졌던 것이 아닌가."

자신이 죽을 결심을 하게 된 것이 결론이다.

  이렇게 결론지으니 마음이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마음이 결정됐으니 이번에는 계책이 문제였다.

  우선 방 안에 있는40여 명의 손님을 안심시키기로 했다. 그 왜놈이 만약 조금이라도 불안한 느낌을 갖게 되면 그 왜놈도 계책이 있을 테니, 일단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안심을 시키고 연극을 꾸미기로 했다.

  식당이 있는 아랫방으로 내려간 손님이 밥을 떴다. 그러나 아침밥이 목구멍에 넘어갈리 없었다. 삼분의 일도 못 넘기고 있을 때 김구가 가서 밥을 마구 퍼먹었다. 그리고 주인을 불렀다. 주인은 외양이 준수한 40세 미만이었다.

· "어느 손님이오?"

  "내가 청했소. 내가 오늘 7백여 리나 되는 산길을 걸어야 하는데, 이 밥 갖고서는 안 되겠소. 밥 일곱 사람 분을 더 가져오시오.


  주인은 김구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일곱 사람 몫을 먹겠다니 이상한 친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국이 어수선하니 실성한 놈들이 가끔 있군."

  주인은 손님들이 듣건 말건 안방으로 들어갔다. 김구는 한쪽에 길게 드러누워서 방 안사람들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방 안에서는 주인의 조금 전 이야기가 화제가 되어 두 편으로 갈려 논쟁을 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사리가 분명하게 보이는 유식꾼들은 김구를 미친놈이라고 아예 단정했다.

  "별 미친 놈 다 보겠네. 글쎄, 한 놈이 일곱 사람 밥을 모두 먹겠다니 그게 말이나 되나. 제가 임꺽정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러나 긴 담뱃대를 물고 찬찬히 연기를 뿜고 있는 노인들은 이 청년을 나무랐다.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네. 지금 세상이 어수선한데, 이럴 때 이인(異人)이 나타나지 말란 법이 있나. 옛날에도 그랬네."

  "물론 이인이 없을 수 없지만, 저 친구 생긴 얼굴을 보세요. 무슨 이인이 저렇습니까?"

  김구는 이 사람들의 심경 변화를 무심히 넘겼다. 이때 김구가 지목한 왜인은 식사를 마치고 중문 밖 기둥에 서서 문기둥 을 한 손으로 잡고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총각 아이가 밥값 계산을 하고 있었다.

  김구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짜고짜로 왜인의 사타구니 께를 발길로 걷어차 한길이 넘는 계단 밑으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쫓아가 왜인의 목을 힘껏 밟았다. 세 칸 객방의 앞쪽 출입문이 한 짝 모두 합해서 네 짝의 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다투어 나왔다.


  "뭐야, 뭐야!"

  김구는 이들에게 기선을 잡고 한마디로 일갈했다.

  "누구든지 이 왜놈을 위해 내게 달려드는 자는 가차 없이 죽일 것이다!"

  김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왜인이 몸을 벌떡 일으켜 칼을 뽑아 들었다. 새벽 달빛에 섬광이 번쩍였다. 왜인은 칼을 마구 휘둘러 댔다. 익숙한 솜씨였다. 그의 번쩍이는 칼을 맞는다면 당장 숨통이 끊어지게 돼 있다. 김구는 얼굴로 겨냥되는 칼을 날렵하게 피해 발길로 왜인의 빈 공간을 걷어찼다.

  "어이쿠!"

  왜인이 칼을 떨어뜨리고 쓰러졌다. 다시 칼을 잡으려고 허둥대는 왜인의 손목을 발로 뭉갰다. 김구는 칼을 뺏어 들었다. 그리고 그 칼로 왜인을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난도질했다. 마치 궁궐 안에서 일본 낭인이 국모를 난자하듯이 그렇게 칼로 도륙을 했다. 2월이라 빙판이 여간 미끄럽지가 않았다. 김구는 왜인이 흘린 피를 두 손으로 움켜 마시고, 그 피를 얼굴에 발랐다. 그리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가서 손님들에게 외쳤다.

  "아까 왜놈을 위해 달려들려 하던 놈이 누구냐!"

  손님들은 김구의 피 묻은 끔찍한 얼굴을 보자 겁에 질렸다. 마치 지옥애서 나온 악귀와도 같았기 때문에 공포에 질렸다. 방 안은 공포 분위기로 변했다. 차가운 살기가 방 안 가득히 몰려들었다. 방 안에 있던 자들 가운데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한 몇 사람이 엎드려 빌었다.


  "죽을죄를 졌습니다. 나는 그놈이 왜인인 줄은 절대 몰랐습니다. 그냥 손님끼리 싸우는 줄 알고 말리려 한 것뿐입니다."

  또 다른 사람도 사색이 되어 빌었다.

  "저는 왜인을 모릅니다. 어제 배 위에서 장군님과 함께 빙산을 제거한 사람입니다. 왜놈과 같이 오지도 않았습니다."

  제일 겁을 집어먹는 것은 노인들이었다. 그러나 노인들은 조금 전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책망을 줬던 것을 자랑으로 이야기했다.

  "장군님, 저자들이 아직 지각이 없어서 그러니 용서하십시오.

  이때 주인인 이화보가 왔다. 이화보는 김구에게 무례한 말을 한 것이 어쩌면 생명과 관계되는 중대한 일이라 생각하여 방 바깥에서 엎드려 빌었다.

  "죽을죄를 졌습니다. 소인이 눈은 있지만 사리를 분별하는 눈이 없어서 순간적으로 장군님을 멸시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죄가 있다면 저 왜놈에게 밥을 판 죄 밖에 없습니다. 죽여주십시오."

  김구는 방 안에서 엎드려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일어나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 주인에게 물었다

  "그놈이 왜인인 줄 어떻게 알았나?"

  "소인이 나루터에서 객주(客主)를 하는 바람에, 진남포로 오가는 왜인들과 다소 친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자는 처음 보는 자입니다. 한복을 입고 오는 왜인은 처음입니다."

  김구는 재차 물었다.

  "이놈은 조선말을 쓰는데 어찌 왜인인 줄 알았나?"

  "몇 시간 전에 황주(黃州)로부터 목선(木船) 한 척이 포구에 왔는데, 뱃사람들의 말인즉 일본 영감 한 분을 태워 왔다고 해서 알았습니다."


  "그 목선이 아직 포구에 있는가?"

  "그렇습니다."

  김구는 그 몇 사람을 데려오게 했다.

  이화보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김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세면구를 가져다주고, 밥 일곱 상을 정렬해 놓았다. 다른 한 상에는 반찬을 차려 놓았다.

  "장군님 , 반찬이 변변치 않지만 많이 드십시오."

  그러나 밥그릇 일곱 사발이란, 일본인을 죽이기 위해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한 계책이었다. 조금 전 밥을 모두 먹었기 때문에 더 이상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거짓말로 알려져서는 재미없다고 생각하여, 큰 양푼 한 개를 청해 밥과 반찬을 한 군데에 붓고 비빔밥을 만들었다. 그리고 숟가락 한 개를 더 청했다. 숟가락 두 개를 포개, 밥 한 덩이를 크게 만들어 밥을 떠 넣었다. 김구는 계책을 꾸였다. 몇 숟가락을 떠먹다가 사람들에게 들으라고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국모를 죽인 원수의 피를 마셔서인지 더 이상 밥이 들어가지 않는구나."

하며 밥상을 물렸다.

  이때 즉은 왜놈을 싣고 온 뱃 꾼 7명이 문 앞에 엎드려 빌었다.

  "소인들은 뱃놈들인데, 왜놈을 싣고 진남포까지 뱃삯을 받고 실어다 준 죄밖에 없습니다."

  김구가 말했다.

  "왜놈의 소지품을 모두 가져오라."

소지품을 조사하자, 그 왜인은 쓰치다(土田讓亮)라는 자였다. 직위는 육군 중위, 가진 돈이 조선 돈 8백 냥이나 되었다. 그 돈으로 뱃삯을 지불하고 동장(洞長)을 불러오게 했다.

  그러자 주인 이화보가 말했다.

  "제가 명색이 동장이옵니다."

  "이 돈은 모두 동네의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게. 왜인이 조선 사람들에게 갈취한 돈이 분명 하네."

  "그럼 왜놈의 시체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김구는 이렇게 답변했다. 이화보에게 명분도 주고 증거인멸도 되도록 하였다.

  "자고로 왜놈들은 우리 조선 사람들의 원수다. 그놈들은 인간이 아니다. 모든 생물의 원수다. 그러니 바닷물에 띄워서 물고기 밥이 되게 하라. 물고기들이 포식하는 즐거움을 줘라."

  김구는 이화보에게 다시 분부했다.

  "필기구를 가져오라 "

  김구는 이화보가 가져온 종이에 왜놈을 죽인 이유를 썼다.



  '국모보수의 목적으로 이 왜인을 죽이노라. 해주 백운방 텃골 김창수.



  "자, 이것을 자네가 갖고 가서 행인들이 오가는 길목에 붙여 놔라.'

  그리고 다시 이화보에게 동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면케 해 주었다.

  "너는 이 동네의 동장이니만큼 안악군수에게 이 사건의 자초지종을 보고하라. 나는 내 집으로 돌아가서 하회(下回)를 기다리겠다. 기념으로 왜놈의 칼은 내가 가져가겠다."


  김구는 의연하게 이야기했다. 의외로 대담해졌다. 그것은 할 일을 했다는 어떤 자부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사람을 죽였지만 명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막상 출발하려고 하니 옷이 말이 아니었다. 왜놈의 피가 물들어 붉은 옷으로 변해있었다. 다행히 두루마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걸로 피 묻은 옷을 가렸다. 그리고 허리에 칼을 찼다.


  김구는 태연한 자세로 행인들 사이를 거쳐, 수백 명이 자신을 주시하는 가운데로 천천히 빠져나갔다. 아무도 김구를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곁으로는 태연자약했으나 마음속은 그게 아니었다. 만약 동리 사람들이 앞을 가로막으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조바심이 들었고, 왜놈들이 이 사실을 전달받고 달려오면 꼼짝없이 죽게 돼 있었다. 김구는 자신에게 물었다.

  "이것은 정당한 일이다. 하늘을 대신해서 내가 원수를 갚았다.  그러나 또 한편 김구의 행위에 동리 사람이 길을 막고 '우리는 알 바 아니다. 너는 살인자이기 때문에 그냥 놔둘 수 없다.'고 일을 벌이면 신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럴수록 의연해야겠다고 생각한 김구는 일부러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치하 포 산꼭대기에 이르러 밑을 내려다보니, 사람들이 모여서 김구의 이야기를 하며 저들대로 떠들고 있었다.

  아침 해가 솟았다. 조금 전까지의 피비린내를 아침 해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온 누리에 빛을 발하고 있었다.

김구는 고개를 넘자마자 걸음에 가속을 붙였다. 그날은 신천읍 장날이었다. 시장 터를 기웃거리는 김구의 귀에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오늘 새벽 치하포 나루에 장사가 나타나 일본군 중위를 맨주먹으로 때려 죽였다던데‥‥‥‥"

  "나도 들었네. 그 장사하고 같이 용강에서 배를 타고 온 사람이 말하기를 장사 나이가 겨우 스무 살이더라고 하더군.  배 옆으로 빙산이 몰려와 다 죽게 됐는데, 그 소년 장사가 빙산을 몰아서 모두 살렸다더군."

  그리고 또 있었다.

  밥 일곱 그릇을 단번에 먹어 치웠다는 이야기도 곁들여졌다. 장터 소문은 점점 불어나게 마련이다. 김구는 이곳 장터에서 일약 영웅이 돼 있었다.

  김구는 신천 서부(西部)에 사는 동학당의 친구 유해순을 찾아갔다. 유해순은 김구의 행색이 심상치 않았는지 아래위를 훑어보다가 물었다

  "형의 몸에서 피비린내가 나고 있소."

하더니 이번에는 두루마기 안의 의복을 살폈다. 안쪽의 의복에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보자 다시 물었다

  "웬 피가 이렇게 많이 묻었소?"

  김구는 대강 둘러댔다.

  "길에 오다가 허기가 져서 백로 한 마리를 잡아먹었소."

  유씨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웬 칼이오?"

  김구는 웃으며 둘러댔다.

  "노형이 동학접주로 있을 때 남의 돈을 많이 강탈하지 않았소. 그래서 내가 그것을 뺏으러 왔소,"

  그러나 유씨는 김구의 이야기를 믿으려 들지 않았다.

  "농담은 그만 하시고 사실대로 이야기하시오."


  김구는 유해순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믿고, 그 동안의 이야기를 보태지 않고 말했다.

  김구의 이야기를 들은 유해순과 유해각 두 형제는 크게 놀랐다. 그리고 김구의 손을 굳게 잡았다.

  "역시 노형은 쾌남아요. 놀랐소."

하며 김구에게 방도를 일러 주었다.

  "본가(本家)로 가지 마시오. 다른 곳에 가서 일시적으로 피신해 계시오."

  그러나 김구는 이 말에 반대했다.

  "대저 사나이란 목숨에 연연하지 않는 법이오. 사람의 할 일을 하고 나서야 목숨의 가치가 있지 않겠소. 나는 떳떳하기 때문에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소."


  김구는 유해순 형제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버님께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부모님은 놀라서,

  "네가 한 일은 잘 했지만 여기 있어서는 안 된다."

했다. 김구는 아버님에게,

  "제가 왜놈을 죽인 것은 사사로운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국가적인 수치를 다소나마 씻기 위해서였습니다."

하고 정정당당하게 대처하겠다고 했다.

  "피신할 마음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자연히 법사(法司)에서 무슨 조치가 있겠습니다만, 그에 따르겠습니다. 이 한 몸 희생하여 왜놈들에게 교훈을 준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김구의 아버님은 이런 아들이 자랑스러웠으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알았다. 내 집이 망하든 흥하든 네가 알아서 하거라."

하며 체념을 해버렸다.


  김구는 이 사건이 있은 후 계속 집에서 칩거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김구의 대담함을 엿볼 수가 있다. 범인(凡人)이라면 수 없이 많이 깔려 있는 일본 헌병들의 눈을 피해 도피하는 것이 상례이겠으나 김구는 그렇지 않았다. 떳떳한 일, 대의 (大義)를 위해 한 몸을 버린다는 걸 그는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의 얼굴에는 조금도 초조한 빛이 감돌지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독서를 하고 부모님에게 문안을 드리는 일상적인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로부터 석 달 후, 병신년 5월 11일이었다.

  어머니가 사랑문을 열고 들어와, 새벽 잠자리에 누워 있는 김구에게 말했다.

  "얘야 집 앞뒤에 수상한사람들이 수없이 둘러서 있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의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거한(巨漢) 수십 명이 쇠 채찍과 쇠몽둥이를 들고 들이닥쳤다. 그들 중의 두목인 듯 험상궂게 생긴 사내가 김구에게 물었다.

  "김 창수가 너냐?"

  그는 대뜸 반말 지꺼리였다.

  "그렇소만, 그대들은 대체 누구기에 신분도 밝히지 않고 무례하게 남의 인가(人家)에 침입하는가?"

  두목이 내무부령을 인쇄한 체포장을 보여 주었다. 구속영장이었다.

  "너를 체포하겠다."


  김구를 체포하기 위해 주위에 매복한 사람이 30여 명 ,순검과 사령들이었다. 김구의 몸은 마치 동물원에 끌려가는 맹수처럼 쇠 밧줄로 결박 지어졌다. 손에는 수갑이 채워졌고 두 팔목에는 쇠사슬로 동여 매여졌다. 한 동네 사람들 모두가 문중(門中)이었으나 이 모습이 두려워 누구 한 사람 나서지 못했다. 인근의 강씨와 이씨들, 양반 토호들은 이 일이 재미있게 됐다는 듯이 수군댔다. 김창수가 동학에 가담한 줄 알고 잡혀가는구나 하고 생각한 것이다

  김구는 이들에게 압송돼 이틀 만에 해주 옥에 수감되었다. 가족들 모두가, 모두라야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해주로 옮겨와 어머니는 밥 시중을, 아버지는 늘 그랬듯이 사령청, 영리청 계방 사람들에게 교섭, 잘 선처해 달라 주문했다. 사령청이나 영리청, 계방 사람들은 김구의 아버지와 친한 사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사정이 어려워지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일인을 죽였다는 것은 중대 범죄자이고, 이런 범죄자에게 그들의 힘이 먹혀들어 갈 수가 없었다. 한 달 만에 신문(訊間)이 시작되었다.

  김구는 옥에서 중죄인에게 채우던 대전목(大全木) 칼을 목에 걸고 선화당 뜰로 들어섰다.

  대전목 칼이란 널 판지에 구멍을 뚫어 죄인의 목에 거는 나무틀이었다.

  감리는 민영철이었다.

  우선 사실 신문부터 받았다.

  "안악 치하포에서 일본 사람을 죽이고 물건과 돈을 빼앗았다던데 그것이 사실인가?"

  "그런 일 없소."

  "여기 행적 조사가 있는데 부인을 하는가?"

  민영철이 옥리에게 명했다.

  "주리를 틀어라."

사령들이 김구의 두 발과 두 무릎을 찬찬히 동이고, 다리 사이에 붉은 몽둥이 두 개를 끼웠다. 한 놈이 몽둥이 한 개씩을 잡고 좌우를 힘껏 누르니, 살갗이 벗겨지고 피가 흐르면서 금방 하얀 뼈가 드러났다.

  김구의 왼쪽 정강이 밑의 상처는 그때 생긴 것이다.

  김구는 아픔을 꾹 참고 아무 말 없이 버티기만 했다. 결국 인내에도 한계가 있는 법, 그만 독한 고문에 기절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형리는 잠시 고문을 중지시켰다. 이어서 찬물을 가져 오더니 김구의 얼굴에 부었다. 차가운 물이 얼굴에서부터 속곳으로 흘러 들어가 잠시 깼다.

  김구는 감리 민영철에게 물었다.

  "내체포장을 보면 내무부 훈령 등인(等印)이라고 되어 있소. 본관찰부에서 처리할 수 없는 사건이 아니겠소. 어서 내무부에 보고만 해주시오."

  김구의 말을 듣고 감리는 아무 말도 없이 김구를 하옥 시켰다.

  두 달이 지났다. 7월 초 인천 감리영에서 순검(巡檢) 몇 명이 해주 옥에 갇혀 있는 김구를 데려갔다. 사태가 심각하게 되자 김구의 아버지는 고향의 집과 세간들을 모두처분해 아들이 있는 곳으로 따라가기로 작정, 고향으로 갔다.

  김구는 순검들과 함께 '연안읍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날 나진포로 갔다. 배를 타기 위해서였다. 가는 도중 연안읍에서 오 리쯤 되는 길가 무덤에서 순검들과 앉아 쉬게 되었다 그날따라 날씨가 무더워 순검들은 참외밭으로 참외를 사 갖고 와 앉아 저희들끼리 깎아 먹고 있었다. 그런데 무덤 곁의 비문(碑文)을 보니, '효자 이창매의 묘(孝子李昌梅之墓)'라고 음각되어 있었다.


비석 뒷면에 새겨진 글자를 보니, 이조시대 어느 임금이 이창매의 효성에 감읍해서 효자 정문(族門)을 내렸다고 적혀 있었다. 이창매의 곁에는 그 부친의 묘가 또 있었다. 근처 사람들 이 비문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 묘의 주인은 이창매란 사람인데, 그 부친이 죽었을 때 이창매는 사시장철, 비바람 눈보라를 맞으며 지성으로 산소를 모셨소. 어찌나 그 정성이 지극했던지 묘 앞의 신 벗은 자리에서부터 절하는 자리까지,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어갔던 자리와, 무릎을 꿇었던 자리, 그리고 향로와 향합을 놓았던 자리에 풀 이 나지 않았소, 만일 사람들이 움푹 패인 곳을 흙으로 메우면 즉시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내려 흙을 쓸어갔다는 이야기가 전하오."

  김구는 그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창매란 주인공에게 용서를 빌었다.

  이창매란 사람은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 죽은 후까지 저렇게 효도한 자취를 남겼는데, 자신은 살아서 마저 불효를 하니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진포에서 배를 타게 되었다.

  때는 병신년 7월 25일, 달빛마저 종적을 감추고 천지는 온통 어둠이었다. 간간이 물 흐르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강화도를 떠날 때쯤 순검들은 그 동안의 피로를 쉴 겸 잠을 청하고 있었다. 김구의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중얼 거렸다.

  "이제 가면 왜놈 손에 죽을 텐데, 맑은 물에 너와 내가 함께 빠져 죽어 귀신이 되어서라도 같이 있자."

  말을 마친 그의 어머니는 별안간 김구의 손을 잡아끌고 뱃전으로 갔다. 김구는 너무나도 비감에 젖어 어머니를 위로했다.


  "어머니,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이 자식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하늘은 의로운 사람에게 죽음을 내리지 않습니다. 이번 일은 국가를 위해 제 한 몸을 던졌으니 운명을 하늘에 맡길 뿐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김구의 손을 자꾸만 끌어 잡아당겼다. 김구는 끌려가면서 어머니에게,

  "어머니, 왜 제 말을 믿지 않으세요."

하며 조금 큰 어조로 말했다. 그제야 어머니는 바닷물에 빠질 것을 단념한 채 말했다.

  "너의 아버지와도 이미 약속을 했다. 네가 죽는 날, 우리 모두 죽겠다고."

  김구는 이런 어머니의 마음을 돌리려고 무진 애를 썼다. 김구는 외아들이고, 집안에 손이 없어서 김구의 죽음은 가족 전체에 삶의 희망을 뺏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머니는 김구의 말을 어느 정도 믿으셨던지, 그제야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비비면서 기원을 했다.

  김구는 다시 인천옥(獄)으로 들어갔다. 김구가 인천옥으로 들어간 이유는 인천옥은 갑오경장 이후, 외국인 범죄와 관련된 피의자를 모두 그곳에 수용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특별 재판소가 있었다. 감옥에 들어가자 그는 절도범들이 주로 있는 차꼬(발목을 잡아 옭아매두는 구멍)에 몸이 결박 지어졌다. 이 기다란 차꼬는 아홉 명의 죄수들의 발을 읽어 두는 장곡(長裕)이란 것이었다.

  김구가 감옥에 들어가자 이미 한 달 전에 수감된 치하포의 식당주인 이화보가 반겼다.


  "장수님 , 여기서 또 뵙게 되는군요."

  이화보는 자신의 무죄증거를 김구가 밝혀 줄 것을 기대했다. 그의 집 벽에 김구가 써 붙였던 포고문을 왜놈들이 조사할 때 폐기처분하고 김구를 살인강도로 꾸며 놓았다고 했다.

  "부디 몸 성히 잘 지내거라."

  김구의 어머니는 옥문 앞까지 따라와 눈물을 흘리면서 망연자실 그대로 서 계셨다. 김구는 어쩌면 다시는 못 뵈올 어머니에 대해 송구스러워하며, 지난날을 회상해 보았다.

  김구의 어머니는 비록 농촌에서 아무런 배움 없이 자랐지만, 사물의 옳고 그름을 정확히 판단해 그른 것을 철저히 배척했다. 그리고 바느질에 능해, 어려운 살림살이에 한몫을 했다 김구의 어머니는 자식이 갇혀 있는 인천옥 근처 박영문(朴永文)이란 사람의 집에 들어가 밥 짓는 식모로 채용해 달라고 했다. 박영문은 인천항의 큰 물상객주라서 집안일이 상당히 많았다. 김구의 어머니는 월급은 받지 않고 다만 하루 세 끼 얻어먹고 김구의 감옥 뒷바라지하는 일, 요즘 말하자면 사식을 차입 시키는 세 끼 방을 갖다 주기로 하고 고용되었다.

  압뢰(간수)가 밥을 넣어 주면서 김구에게 말했다.

  "자네 모친은 의지할 곳이 생겼고, 자네도 세 끼 밥을 챙길 수 있으니 다행한 일이다."

  곁의 죄수들은 그런 처지의 김구를 마냥 부러워했다.

  김구는 밥을 받아먹으면서 감회에 젖었다.

  '부모님께서 나를 낳으시고 키우시느라고 고생 하셨다('시경' 소아편). 부모님은 나를 낳을 적에도 산고의 고통을 겪으셨고, 나를 세 끼 먹여 살리기에 천중만금의 고통을 겪으셨다. 불서(佛書)에 이르기를, 부모와 자녀는 천 번을 태어나고 백 겁이 지나도록 사랑과 은혜를 끼치며 사는 인연이란 말,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구나.'


  김구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해 여름, 감옥 안이 지저분하기가 짝이 없어 각종 질병들이 나돌았다. 이질, 설사, 장질부사 같은 병이 돌아 여기저기서 신음 소리가 들려 왔다.

  김구도 예외가 아니어서 장질부사에 걸렸다. 몸은 신열이 나고, 정신은 아득하고, 장래는 불투명하고 도저히 살아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자살을 결행하기로 했다. 몸이 괴롭고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죄수들이 잠든 틈에 그는 이마에 손톱으로 충(忠)자를 긁었다. 긁힌 자리에서 피가 솟았다. 그리고 허리띠로 목을 졸라 마침내 숨이 끊겼다. 이때 그의 앞에 나타난 몇 가지 영상(影緣)이 있었다.


  내가 죽어간 고향은 아름답기 짝이 없었다. 고향의 재종동생 창학이와 언덕을 올라 다니며 놀고 있었다. 죽어서 사람은 고향부터 찾는다더니 맞는 말이다.


  긴 시간이 지나서 김구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술회했다.

  '이봐! 이봐! 미쳤나!"

  곁의 죄수가 김구를 잡아 흔들었다. 목에 허리띠가 감겨 있고, 눈이 반쯤 돌아간 김구를 보고 겁이 났던 것이다. 문득 정 신을 차려 보니 감방의 적수들이 걱정스럽게 모여 있었다. 그들은 김구가 죽을까봐 걱정이 되어 그런 것이 아니고 김구가 몹시 요동을 치면서 몸을 비틀었기 때문에 겁이 나서 김구를 안정시킨 것이다.


  그 후부터 김구는 죄수들에게 요주의 인물로 통했다. 언제 또 자살 소동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에 김구를 예의 감시했다. 이 동안에 다행히도 고열이 내렸다. 장질부사는 고열에 시달리다가 자칫하면 생명을 잃는데, 고열이 내리면 다소 안심이 되는 병이다. 그러나 입맛이 없기 때문에 한동안은 사식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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