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백두대간

7. 깨어진 혼담

오늘의 쉼터 2012. 12. 26. 00:35

7. 깨어진 혼담

 

 

 

 

  청계동을 향해 가던 도중, 김구는 사람들에게 고 선생에 관해 물었다.

  "고 선생요? 고능선 선생 말이시오?"

 

  "그렇소."

  행인은 안타까운 듯이 김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혀를 찼다.

 

  "고 선생 댁에 호열자(콜레라)가들어서 맏아들, 맏며느리가 일시에 죽었소.

딱한 일이오. 고 선생 댁뿐만이 아니오. 동네 사람들 반수 이상이 죽어 나갔소."

 

 김구는 슬픔을 가눌 수가 없었다.

1895년 을미년 5월에 전 국적으로 콜레라가 돌았다.

그해에 수천 명이 콜레라에 감염돼 죽었다.

고 선생 댁도 여기에 들었던 것이다.

 

  동네 입구에 들어선 김구는 먼저 고 선생 댁에 갔다.

고 선생은 태연하게 그를 반겼다.

겉으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별고 없으셨는지요?"

  김구가 묻자 고 선생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별고 없었네."


그러나 김구는 가슴이 답답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 선생의 아들 원명과 그 부인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김구가 집을 나서려 할 때 고 선생이 김구를 불렀다.

  "자네 나 좀 보게 ."

  "왜 그러신지요?"

  "곧 성례를 하도록 하세."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서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아버님이 말씀하였다.

 

  "네가 떠난 후 고 선생의 손녀(원명의 딸)와 약혼이 성립되었다."

  "예?"

 

그제야 김구는 고 선생의 말뜻을 알아듣게 되었다.

 

그의 아버님과 어머니는 약혼하게 된 경과를 설명했다.

 

"네가 집을 떠난 후 고 선생이 집에 찾아오셨다.

요새는 아들도 없고 매우 고적할 테니 내 사랑에 오셔서 이야기나 나눕시다.

하시기에 그 사랑에 가서 매일 놀았다.

고 선생은 네가 어렸을 때부터 행동해 온 것을 세밀히 묻더라."

 

  아버님의 이야기는 대략 이랬다.

고 선생이 묻기에,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으나

과거장에서 비관해 관상서를 보다가 낙심했던 일과,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동학에 입도했던 일,

 

그리고 동네 근처의 강씨, 이씨 등은 양반으로서 이들은 선조들의 양반 덕을 톡톡히

보는 죽은 양반들이지만 자신은 마음을 수양하고 몸으로 실행하여 살아 있는 양반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때 그의 어머니가 거들었다.


"어느 날, 고 선생이 우리 집에 친히 오셔서 네가 자주 하던 일을 물으시더라.

그래서 속임 없이 이야기를 해 드렸다.

강령 에서 칼을 몸속에 품고 신풍의 이 생원 댁 아이들을 죽이러 갔다가

칼도 뺏기고 매만 맞고 돌아왔던 일, 또 돈 스무 냥을 허리에 차고 엿 사먹으러 갔다가

제 아버지께 매 맞던 이야기, 내가 사둔 청, 홍 물감을 전부 가져다가 개천에 풀어 놀던 일,

고집이 세어서 아침에 울기 시작하면 하루 종일 그치지 않던 일등을 이야기해 드렸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끝나자 이번에는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하루는 고 선생 댁에 가서 노는데 선생이 '노형, 우리 집과 혼인하면 어떻겠소?' 했다.

 

나는 당장 무엇이라고 대답을 못했다.

선생은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청계동에 와서 상당히 많은 청년들을 살펴보았지만 당신 아들만한 사람을 보지 못했소.

 

 불행히도 내 자부(아들과 며느리)가 세상을 떠나고 본 즉

내 노구를 의탁할 만한 사람을 생각했소.

노형 아들과 내 장 손녀와 혼인을 하고 나까지 창수에게 의탁하면 어떻소?' 하더구나."

 

  이번엔 김구가 물었다.

 

  "그래서요?"

 

  "나는 황공하여 선생께

'제 자식을 사랑하시는 것은 감사하나 반상(班常)의 덕행으로나

제 집의 형편으로나 과연 감당 할 수 있겠습니까? ‘ 했다. 

김구는 고 선생의 후의에 내심 감복했다.

 

아버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고 선생의 이야기인즉,

'내가 노형보다 좀더 알는지 모르겠소.

아들에게 너무 못생겼다

근심하지는 마시오.

아들 창수는 호상(虎相)이오.

인중이 짧은 것이라든가,

이마가 두툼한 것이라든가, 걸음걸이가. 장래 두고 보시오.

범의 냄새도 피우고, 범의 소리도 질러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지. 알겠소?'

하더구나 그래서 약혼을 승낙했단다."

 

김구는 속으로 다시 생각했다.

고 선생은 참으로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졌다.

그분은 자신의 약점에 대해 이를 개의치 않고 후한 점수를 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김구의 아버님은 자신의 약점, 즉 상인(常人)이라는 것에 상당한 열등의식을 가졌었다.

그러나 고 선생의 사람을 보는 안목은 상인을 아예 무시해 버린 것이다.

 

 김구는 고 선생의 손녀가 상당한 교육을 받은 규수란 점에 대해 흡족해했다.

그러나 책임감이 무거워졌다.

 

그 후로 김구가 고 선생 댁을 가면 안채에서도 인정하는 태도가 역력했고,

예닐곱 살 된 둘째 손녀 아이는 김구에게 아저씨라고 부르며 재롱을 떨었다.

 

김구는 피붙이가 된 느낌에 마음이 흡족했다.

원명 부부의 장례도 김구가 앞장서서 지냈다.

 

김구는 고 선생에게 청나라를 떠돌던 이야기를 자세히 보고했다.

 

"만주 벌판의 비옥한 땅은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

 

서옥생의 아들과 의형제를 맺기도 했고,

김이언과의 의병 실패는 여간 실망스럽지 않았습니다. "

 

묵묵히 듣고 있던 고 선생은,

"사람을 사귀는 일에 신중을 기하게. 사람이란 원래 그릇이 있네.

김이언이란 인물은 용맹은 있지만 덕과 지 (智)가 없네."

했다.


그때 단발령 (斷髮令)이 내려졌다

단발령이란 일종의 정부개혁 조치로서 상투를 잘라 버리라는 명령이었다.

 

상투는 성인의 표시이자 양반의 상징이었는데,

이 단발령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 때로는 자결을 하기까지 했다

고종황제는 스스로 단발을 해서 시범을 보이기까지 했다.

 

 

국모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다

 

 

그 후 마음도 달랠 겸 김구는 청국의 금주에 있는 서옥생의 집으로 갈 예정이었다.

서옥생의 아들과 의형제를 맺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청국에 가서 큰일을 도모해 보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김형진은 자기 고향으로 가게 됐다고 해서 만류하지 않았다.

김구는 혼자 출발했다.

김구가 평양역에 도착해 보니 관찰사를 비롯해 관리들이 모두 단발을 하고 있었고,

길목을 막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들어 강제로 머리를 깎고 있었다.

 

 단발령을 피하기 위해 백성들은 시골이나 산속으로 숨어들어 갔다.

역사 이래 상투를 틀고 살아온 백성들의 관행을 편리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단발을 시키는 처사에 김구는 분노했다.

 

  안주(安州)에 도착했을 때,

문득 게시판을 보니 '단발정지령'이 내려졌다는 방이 붙어 있었다.

행인들의 이야기인즉,

서울의 종로 일대에서 사람들에게 단발을 시켰다가 큰 소동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단발을 부추긴 일인들의 가옥을 때려 부수고,

일인을 때려죽이는 등 변란이 났다는 이야기이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니

나라에 단발령 때문에 더 큰 변란이 일어 날 징조가 보인다고 했다.


  1895년 11월 친일 김홍집 내각이 국상 중에도 불구하고 단발령을 선포했다.

전국 각지에서 몸을 지키자는 보형(保形)의 병이 일어났다.

 

'신체발부는 부모수지' 즉, 신체에 난 터럭 모두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인데,

이를 함부로 다룬다는 것은 부모에게 불효라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에

단발령은 크게 위배되었던 것이다.

 

고종은 러시아 영사관으로 피신(俄館播遷)했고,

김홍집 ·어윤중 등은 성난 백성에게 살해됐다.

이어서 갑오내각은 붕괴됐다

 

  뒤이어 이범진, 이완용, 윤치호 등을 중심으로 한 친러 내각이 등장, 단발령을 철회했다.

김구는  국내의 정세를 감안해 볼 때 굳이 청나라로 갈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용강군에서 안악군 치하포로 배를 타고 건너갈 때가 그의 나이 21세 2월 하순이었다.

 

이때는 일본 낭인들의 국모살해로 온 나라가 벌집 쑤셔 놓은 듯 어수선했고, 국상 중이었다.

 

  김구가 탄 배는 빙산이 떠다니는 바람에 이 빙산에 꼼짝없이 갇히게 되었다

선객들은 물론 물길에 익숙한 뱃사공까지 당황해했다.

 

 김구는 해마다 얼음이 얼었다가 풀리는 해빙기가 되면,

종종 이런 나루터에서 빙산에 포위되어 물귀신이 된다는 것을 들어 익히 알고 있었다.

 

  이날 김구가 탄 배는 이런 경우를 당하고 만 것이다

  "사람 살려 ! 사람 살려 !"

  "어이구 하느님 ! 살려 주십시오!"

  "어머니! 살려 주세요!"

 

  위급한 지경에 몰렸을 때 목숨을 구걸하는 소리는 가지각색이었다.

예수도 믿지 않는 자가 하느님을 찾고,

평소에는 불효막심한 자가 죽을 위험에서 구출해 달라고 어머니를 찾는다.


김구는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아날 방도가 있다고 믿고

살아갈 궁리를 해보았다.

배 안에는 식량이 바닥이 났다.

 

그래서 얼어 죽는 것보다 먼저 굶어 죽을 판이었다.

다행히 나귀가 한 마리 있었다.

빙산의 포위가 오래 계속될 경우,

사람의 도리로서 안됐지만 나귀를 잡아 허기진 생명을 보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김구는 선객들에게,

  "지금의 위기는 사공들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오. 우리가 모두 힘을 합쳐야 하오!"

하며 힘을 다해서 빙산을 밀어내자고 했다.

이미 생명을 포기 한 채 마냥 울고 있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두터운 빙산이 상앗대로 밀어낸다고 해서 금방 물러갈 것 같진 않았다.

김구는 뱃전에서 몸을 날려 빙산으로 내려가 얼음의 형태를 살펴보았다.

 

 큰 얼음덩이에서 우선 작은 얼음덩이를 젖혀 멀리 보냈다.

그러던 중 마침내 살길이 생겼다.

멀리 치하포에는 닿지 못하고 5 리 밖에 있는 강기슭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저산에 지는 달이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치하포에 도착해 여관을 겸하고 있는 나루터 주인의 집으로 갔다.

풍랑으로 인해 여관에 묵는 손님들이 방마다 가득 찼다.

조금 있다가 아랫방에서부터 아침식사가 시작되었다.

 

이때 가운데 방에 단발을 한 채 한복을 한 사람이 앞의 나그네와 수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유심히 들으니 성은 정(鄭)씨라 했고,

장연에 산다고 하는데 말투는 경성 말이었다.

 

김구가 그 사람의 언행을 유심히 살피니,

분명 그는 조선인이 아니라 일인(日人)이었다 흰 두루마기 아래 칼집이 보였다.


  "어디로 가시오?"

  "진남포로 갑니다."

  김구는 그자의 행색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이곳은 진남포의 맞은편 기슭이었으므로 매일 여러 명의 일인들이

본래 차림대로 통과를 한다.

그런데 이자는 복장을 위장하고 조선사람 말을 흉내 내고 있으니,

반드시 무슨 연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혹시 저자가 국모를 시해한 미우라(三浦梧樓)가 아닐까?

경성에서 있었던 사건 후 또 다른 만행을 계획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우라가 아니더라도 미우라와 공범이 아닐까?

 

  '칼을 차고 숨어 다니는 왜인은 우리 민족의 원수이다.

이자들은 반드시 민족을 해치려는 의도가 있는 자들이다. '

 

  이때 문득 김구는 여러 사람에게 들은 국모시해 때의 일을 그려 보았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치를 떨었다.

"지금의 위기는 사공들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오. 우리가 모두 힘을 합쳐야 하오!"
하며 힘을 다해서 빙산을 밀어내자고 했다.

 이미 생명을 포기 한 채 마냥 울고 있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두터운 빙산이 상앗대로 밀어낸다고 해서 금방 물러갈 것 같진 않았다.
김구는 뱃전에서 몸을 날려 빙산으로 내려가 얼음의 형태를 살펴보았다.

큰 얼음덩이에서 우선 작은 얼음덩이를 젖혀 멀리 보냈다.

그러던 중 마침내 살길이 생겼다.
멀리 치하포에는 닿지 못하고 5 리 밖에 있는 강기슭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저산에 지는 달이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치하포에 도착해 여관을 겸하고 있는 나루터 주인의 집으로 갔다.

풍랑으로 인해 여관에 묵는 손님들이
방마다 가득 찼다.조금 있다가 아랫방에서부터 아침식사가 시작되었다.

이때 가운데 방에 단발을 한 채 한복을 한 사람이 앞의 나그네와 수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유심히 들으니 성은 정(鄭)씨라 했고,

장연에 산다고 하는데 말투는 경성 말이었다.

김구가 그 사람의 언행을 유심히 살피니,

분명 그는 조선인이 아니라 일인(日人)이었다
흰 두루마기 아래 칼집이 보였다.

"어디로 가시오?"
"진남포로 갑니다."
김구는 그자의 행색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이곳은 진남포의 맞은편 기슭이었으므로 매일 여러 명의 일인들이

본래 차림대로 통과를 한다.
그런데 이자는 복장을 위장하고 조선사람 말을 흉내 내고 있으니,

반드시 무슨 연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혹시 저자가 국모를 시해한 미우라(三浦梧樓)가 아닐까?

경성에서 있었던 사건 후 또 다른 만행을 계획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우라가 아니더라도 미우라와 공범이 아닐까?
'칼을 차고 숨어 다니는 왜인은 우리 민족의 원수이다.

이자들은 반드시 민족을 해치려는 의도가 있는 자들이다. '
이때 문득 김구는 여러 사람에게 들은 국모시해 때의 일을 그려 보았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치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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