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대안리 고분군은 나주시 반남면 대안리에 있는 삼국시대 무덤들이다. 자미산 서쪽에 있는 낮은 언덕 위에 12기의 무덤이 있었으나 현재 6기만 남아있다.
현재까지 4·8·9호에 대한 발굴조사만 이루어진 상황이다. 4호 무덤은 단면사각형의 납작천장(평천정)을 한 백제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으로 긴목항아리, 붉은색단지를 비롯 여러 유물이 발견되었다. 8호와 9호 무덤은 도랑을 사이에 두고 함께 있다. 8호 무덤은 4기의 독무덤(옹관묘)로 구성되어 있으며 출토유물은 단지, 뚜껑, 대접을 비롯한 토기류와 유리옥 제품 등 이다. 9호 무덤은 길이 45m내외, 너비 35m내외로 대안리 무덤 중 가장 큰 무덤이다. 시대가 다른 9기의 독무덤 안에서 금반지, 큰칼, 토기류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하나의 무덤에 시대가 다른 독무덤이 함께 나오는 것은 가족이 함께 사용한 가족무덤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의 형태와 출토유물로 보아 4호 무덤은 7세기 백제의 무덤이며, 8·9호 무덤은 백제가 이 지역에 진출하기 전인 5세기 마한세력의 지배층 무덤으로 볼 수 있다.
1992년 무덤정비과정에서 1·2·3호 무덤 무덤주변에 도랑(주구)이 둘러져 있음이 확인되어 나머지 무덤에도 도랑이 있을 것이라 추정된다. 나주 신촌리 고분군은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 자미산 북쪽에 위치한 마한시대의 무덤들이다. 모두 9기의 무덤이 있는데, 6·7·9호 무덤은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내용의 일부가 알려져 있다. 7·8호 무덤은 현재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이다. 6호 무덤은 5기의 독널(옹관)과 유리구슬, 토기류가 발견되었다. 봉분의 형태가 일본의 전방후원분을 닮아서 학계의 주목을 받는 무덤이다.
1997년 정비복원작업 때 일본의 전방후 원분과의 비교 조사에서 형성과정이나 구조, 내부시설 면에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7호 무덤에서는 3기의 독널과 함께 약간의 토기류, 유리구슬이 발견되었다. 길이 33m, 높이 6m의 9호 무덤에서는 12기의 독널과 함께 금동관, 금동신발, 금반지, 용봉무늬 고리자루큰칼(용봉문환두대도, 龍鳳文環頭大刀), 삼엽문환두대도(三葉文環頭大刀)을 비롯 많은 토기류가 발견되었다. 이러한 유물들로 보아 이 지역에 있는 독자적인 지배자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발굴이 안된 다른 무덤 역시 여러 개의 독널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9호 무덤의 경우 5세기말로 추정되지만 대부분의 다른 무덤은 5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백제가 이 지역에 진출하기 전 이곳에 자리잡은 마한세력자의 무덤으로 이 시기까지 백제의 세력이 남쪽지역에 미치지 못하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나주 덕산리 고분군은 나주시 반남면 덕산리 일대에 모여있는 삼국시대의 무덤들이다. 자미산에서 동남쪽으로 돌아 동북쪽으로 이어지는 언덕위에 10기가 있었는데, 6·7·8호 무덤은 현재 무덤의 형태가 남아 있지 않고 1·2·3·4·5호 무덤만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이들 무덤은 삼국시대의 독무덤(옹관묘)으로서 하나의 봉분 안에서 여러 개의 독무덤이 발견되며, 2∼3개의 큰 항아리를 맞붙여 관을 만들었다. 철촉·은방울·유리구슬·구리팔찌·금제품 등의 유물이 함께 발견되었다. 무덤의 주위를 둘러싸는 도랑(주구)이 발견되어, 무덤의 형태를 잃은 6·7·8호 무덤도 도랑이 남아 있다면 무덤의 평면형태와 규모가 확인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독무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무덤들은, 6세기 중엽 만들어진 반 지하식 돌방무덤(석실분)인 10호 무덤을 제외하고 5세기 말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백제가 이 지역으로 진출하기 이전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마한의 세력자 무덤으로 추정되며, 10호 무덤과 같은 석실분은 백제의 세력이 이 지역까지 확장하여 영향력을 발휘하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중앙고분
나주대안리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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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대안리고분군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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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신촌리3,4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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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신촌리고분군(출토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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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덕산리3호분정비상태
나주덕산리고분군
나주덕산리고분군
나주덕산리고분군전경
나주덕산리고분군전경
서쪽고분
우측고분
정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