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514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오늘의 쉼터 2011. 8. 7. 23:51


종     목

사적  제535호

명     칭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昌寧 校洞과 松峴洞 古墳群)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고분군

수량/면적

460,011㎡

지 정 일

2011.07.28

소 재 지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리 129 등
시     대

삼국시대

소 유 자

국유,공유,사유

관 리 자

창녕군

일반설명

창녕 교리 고분군은 창녕읍 동쪽 목마산 부근 송현리 구릉에서 북쪽 교리에 걸쳐 있는 가야 무덤들로, 1918년 일본사람들이 일부 발굴하여 보고서도 없고 유물도 잃어버렸다. 창녕은 《三國史記》에 나오는 진한(辰韓)의 불사국(不斯國)으로, 고분군은 읍의 동쪽 목마산(牧馬山)의 산록 송현리(松峴里) 구릉에서부터 읍의 북쪽 교리(校里)에 이르기까지 대소 70여기의 고분들이 분포되어 있다. 1993년에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목마산 기슭 무덤 5기를 발굴조사하였다. 내부시설은 모두 앞트기식돌방무덤(횡구식석실묘)이다. 1호와 4호에는 추가하여 주검을 매장한 흔적이 있고 1호와 3호 무덤에서는 딸려묻기(순장)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유물은 여러 토기류와 금·은제 장신구, 무기류, 마구류 및 철제 농기구 등이 출토되었다. 무덤의 형태와 출토유물로 보아 5세기 전반에서 후반까지 만들어진 창녕지역 지배자의 무덤으로 보여지며, 신라와 밀접한 관계를 보이고 있어 5세기경에 창녕지역이 신라 영역권에 포함되었음을 알려주는 유적이다. 창녕 송현리 고분군은 창녕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진한의 12개 나라 중 하나인 불사국(不斯國)으로, 비사벌(比斯伐)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송현리 무덤들은 크게 2개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1지역은 목마산 기슭에서 서쪽으로 80여기의 무덤이 있던 큰 무덤들이었으나, 지금은 16기 정도만이 남아 있다. 2지역은 송현동 석불이 있는 부근에 20여 기 정도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논으로 변하여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무덤은 겨우 몇 기 정도이다. 근처의 교동무덤들과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무덤의 구조와 유물의 성격이 거의 같다고 여겨진다. 교동무덤과 함께 89·91호 무덤이 1918년에 발굴되어 많은 양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유물 중 일부는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것도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무덤이 도굴되었고 주변이 논으로 변하였기 때문에 이 무덤의 성격을 확실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교리 무덤과 같은 성격의 무덤이라고 한다면 5세기 전반에서 후반에 걸쳐 만들어진 무덤들이라고 할 수 있다.




창녕 교동 고분군

창녕교동고분군전경

창녕송현동고분군

창녕송현동고분군전경

고분 근경1

고분 근경2

고분 근경3

고분 근경4

고분 근경5

고분 내려가는길

고분 올라가는길

고분 전경1

고분 전경2

고분 전경3

고분 전경4

고분 전경5

고분 전경6

발굴중인 고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