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세상사는이야기

물망초

오늘의 쉼터 2011. 6. 6. 21:23

    물망초 한반도가 잿빛이 되던 그날은 1950년 6월 25일 새벽녘쯤이었다. 한반도를 지나는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이북을 점유하고 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선인민군이 38도선을 넘어 이남의 대한민국을 남침하면서 발발한 6.25전쟁은 현재까지 같은 형제들이 선 하나를 경계로 하여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는 사태를 만들었다. 작년은 6.25가 일어난 후 60년이 흐른 해라고 한다. 하지만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에 뒷전이 되어버려 전쟁의 참상과 나라를 위해 순국하신 많은 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상기시키지는 못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60년 전 슬픈 이야기는 이제 우리 기억 속에 흐릿해 지는 것일까? 작년, 우리학교는 현충원으로 체험학습을 갔다. 매년 하는 행사이고 한 시간이 넘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야 하는 것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국립묘지에 도착한 후 묘지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는 것이 오늘의 활동이었지만 우리는 매의 눈인 담임선생님을 피해 요리 조리 꾀를 부리며 그늘에 앉아 쉬기도 하고 친구와 수다 삼매경에 빠지기도 했다. 우리 반이 맡은 곳은 6.25전쟁 때 학도병을 지원하여 전쟁에 참가한 소년병들의 안식처였다. 뜨겁다 못해 날카로운 여름 볕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봉사활동을 하는 등 마는 등 꾀를 부렸고, 주변의 친구들도 한명 씩 나무 그늘을 찾아 왔다. 끝까지 땀을 흘리며 비석을 닦던 우리 반 친구 하나가 조용히 비석을 향에 대화를 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부채질을 하며 땀을 닦아내던 그때였다. 비석을 정성스레 닦으며 이야기를 하는 친구를 보면서 ‘오바 하는 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입 밖으로 내색은 안했지만 같은 반 친구들도 여럿 웃음끼가 배어있는 입술을 하고 그 친구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옆 반의 한 친구가 비석을 닦다가 눈물을 보였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나도 모르게 코웃음을 치기도 했다. 체험활동을 갔다 오고 이튿날 한문시간에 선생님께서 6.25전쟁의 참혹했던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수업시간에 교실에서 눈물을 보이는 선생님을 보면서 우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나는 따라 울었다. 현충원을 갔다 온 그날, 나는 71명의 학도병들이 전선의 최남방이 되어버린 포항을 지켜내야 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눈물과 함께 가슴에서 찌릇찌릇하게 올라오는 것은 안타까움과 고마움이었다. 펜 대신 총을 든 소년병들은 나와 같은 또래거나 나의 두 살 어린 남동생보다 더 적은 나이의 학생들이었다. 한문 선생님을 눈물짓게 한 것은 그 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르는 것이었고, 내 눈물은 전쟁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세대로서 전쟁이라고 하는 실체를 알지 못한다는 핑계로 그들을 잊은 나를 꾸짓는 것이었다. 60여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의 아픈 상처는 이제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의 상처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6월에 피는 물망초는 작고 연약해 보인다. 하지만 절벽과 같은 바위 틈 사이에서도 잘 자란다고 하니 보이는 것만큼 연약하지는 않는가 보다. 시린 아픔을 간직한 것 같은 푸른색의 꽃을 보면서 지옥과 같은 전쟁터에서 굴하지 않았던 숭고한 정신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마세요’라고 한다. 나는 잊고 있었고, 우리는 잊고 있었지만, 잊지 말아야한다. 그들을 잊지 말아야한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학도병 이우근의 어머니께 보네는 편지中 (당시 그의 나이 16살) <수필가/ 명일여고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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