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세상사는이야기

제 4의 푸른 물결

오늘의 쉼터 2011. 5. 24. 12:53

 

    제 4의 푸른 물결 일본 열도가 강진과 쓰나미 그리고 방사능 유출로 큰 몸살을 앓고 있다. 연일 보도되는 동영상은 믿기 어려울 만큼 거센 파도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동북지방을 뒤흔들어 놓은 지진이 채 진정되기도 전에 쓰나미는 마치 굶주린 사자가 먹잇감을 낚아채듯이, 순식간에 집과 사람들을 덮쳤고, 후꾸시마 원자력발전소는 폭발 징후를 보였다. 계속되는 여진과 더불어 사람들은 패닉상태가 되어버렸고 지진멀미 또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폐허가 되어버린 피해지역의 처참한 광경을 보고, 평소 일본을 좋아하던 싫어하던 간에 사람들은 측은지심이 생기기도 했는데, 다행한 것은 저들을 돕자는 분위기가 일고 있음이라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저들을 용서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잊을 수는 없다. 우리들의 하나뿐인 아름다운 지구야! 우리 인간들도 서로 사이좋게 지내며 너를 괴롭히지 않을게, 그러니 제발 기지개를 심하게 켜거나 가슴속의 화를 토해내지 말아다오 그리고 속이 상한다고 복장을 치지 말아다오.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생존을 위해 지구촌 도처에서 우리 한국 땅을 밟는 사람들이 탄 돛단배가 희망의 해안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쓰나미가 아닌 “제 4의 푸른 물결”을 보내어다오. “Don`t call me mom” 밤늦게 낯선 전화가 울렸다. 잠잘 시간이라 받아야 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mom, it`s me” 방글라데시에서 걸려온, 반가워하는 수몬의 전화를 받자마자, 내가 퉁명스럽게 한말이다. 방글라데시에 사는 칠순의 어머니가 손수 만든 dress와, 예쁜 부인이 만든 나무 조각품, 하나뿐인 딸아이가 만든 전통 인형과 감사의 편지를 함께 오늘 아침, 내게 보냈다는 것이다. 너무 기쁜 나머지 그 소식을 빨리 알리고 싶어서 전화를 했다지만, 40이 다된 남자가 또 날 더러 “어머니”라니… 난 순간적으로 40이 다된 저 외국인노동자의 눈에는 내가 그렇게도 늙어 보이는 걸까? 생각을 하면서기분이 언짢아져 옴을 감출수가 없었다. 2개월 전 평소 존경하던 대학 동창의사가 한 남자를 내게 보냈다. 작고 새까만 유난히 치아가 흰 그는 한국말을 잘 못했지만 다행히 “영어”를 할 수가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 이주 사무소장이 우리병원외래에 데려온 그는 “숨이 막히고, 물도 안 넘어가며 통증으로 죽을 것만 같다”면서 “O, doctor! please, save my life!” 두 손을 모아서 기도하듯이 간절히 부탁을 했다. 그리고는 절대 일을 할 수 없다는 얘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말아 달라고 덧 부쳤다. 이유인즉 방글라데시에 사는 그의 홀어머니와 사랑하는 아내, 하나뿐인 어린 딸아이는, 자신이 돈을 벌지 않으면 모두 굶어 죽는다는 것이다. 갑자기 우리들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불과 3-4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때가 있었다. 가난에 굶주린 사람들은 미국으로, 브라질로, 볼리비아로 이민을 떠났고, 때론 불법이민으로 일을 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20여 년 전 내가 미국에서 있을 때만 하더라도, 나이아가라 폭포에 불법이민자들이 한국에서 온 친지에게 여행 가이드를 하다가, 경찰의 불심 패스포드 검문에 적발되어 한국으로 바로 이송되어버리기도 했던 것이다. 미국 유학생들의 생활 중에서 가장 힘들 때가 몸이 아플 때이다. 병원비가 엄청나게 비싼 미국에서 ‘의료보험’도 없이 지내던 많은 유학생들에게, 무료진료를 알선 하던 중, 난 한 여자 의사를 만났다.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 내게, 그녀는 자기 대신 그 고마움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라며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비법을 내게 가르쳤다. 내가 힘들어 울고 있을 때 그녀는 내게 아이스크림을 사줬고, 문화적 괴리와 cultural shock에 빠져 허덕이고 있을 때는 정신과의사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사실 나도 비록 수몬처럼 엄마라 부르진 못했지만, 그녀를 “미국의 어머니”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기억하곤 한다. 내일은 몽골에서 온 ‘보호’가 오는 날이다. 27살의 나이로 벌써 간경화가 온 그도 가족을 몽골에 두고 왔지만, 한국에 살고 싶단다. 의료보험은 물론 비자도 없는 불법이민이기에 밤에만 일을 하는 그를 생각하면, 가슴속 한구석이 답답해오는 것을 느낀다. 난 모든 인간적 욕심과 명예를 버리고 봉사를 하는 슈바이처 같은 삶을 살아가려고 다짐하면서도, 내마음속 깊은 곳엔 아직 버리지 못한 작은 여심(女心)이 도사리고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 수몬은 내게 그 가식적인 본능을 깨뜨리고, 진짜 내가 앞으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쳐 준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평생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것이 나의 어린 시절부터의 화두였는데, 벵글라데시에서 온 수몬이 그 큰 진리를 내게 깨닫게 해준 것이다. 아름답고 예쁜 여인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픔을 이해 해주고, 아무라도, 아무 때라도 기대고, 무슨 병이라도 치료해줄 수 있는 의사, 내가 진짜 어머니 같은 의사가 되어야한다고 일깨워줬다. 이세상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바다처럼 포용하고 편해질 수 있는 사람, 나도 이제 작은 한 여인이 아닌 세상의 어머니가 되어야겠다. 하지만 “제4의 물결”을 따라 몰려오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은 없을까? “Don`t call me mom!” 냉정하게 말하는 내게 눈물을 글썽이며, “어릴 적 제게 약을 주고, 고통을 들어 주던 분은 언제나 어머니셨거든요.” 방글라데시에서 온 그 환자는 지금도 진료를 받으면서 계속 나를 "mom"이라고 부르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어느 날 팩스를 보낸 그의 어머니는 ‘이슬람교도’지만 한국인의 따뜻한 사랑에 감동했다며 진정한 종교는 ‘사랑’이 아니겠느냐며 날 ‘Maria’라고 불렀다. 그의 딸아이는 나중에 나처럼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자신도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싶다고 했을 때, 난 갑자기 나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꼈다. 당연히 우리 모두가 해야 할일인 것을…. 우리 주위의 수많은 또 다른 수몬에게, 아니 외로운 누군가를 위해 서로가 "mommy" (엄마)가 되어주지 않으실래요? 하여 세상을 포근하게 하고, 살맛나게 하는 아름다운 동행을 하지 않으실래요? <소화기내과 전문의 박언휘 종합내과 원장>

'종합상식 > 세상사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망초  (0) 2011.06.06
立言의 眞理  (0) 2011.05.27
수류거隨流去  (0) 2011.05.21
천붕지통(天崩之痛)  (0) 2011.05.21
남이섬에서  (0) 2011.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