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세상사는이야기

남이섬에서

오늘의 쉼터 2011. 5. 21. 10:08

    남이섬에서 춘천에 있는 남이섬을 찾았다. 선착장에서 곧게 뻗은 길을 따라 섬으로 들어가니 섬 이름이 유래된 남이장군의 묘소가 입구에 있었다. 남이장군이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두만강가 희령에 진을 치고 강을 쳐다보면서 읊은 「북정가(北征歌)」로 전해지는 시비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 돌은 칼갈아 다 없애고 豆滿江水飮馬無 (두만강수음마무) 두만강 물은 말먹여 없애리 男兒二十未平國 (남아이십미평국) 남아 이십세에 나라 평정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 (후세수칭대장부) 뒷날에 누가 대장부라 부르랴 젊은 장군의 기개가 넘쳐 오르는 이 詩는 훗날 ‘男兒二十未平國’을 ‘男兒二十未得國’으로 개시(改詩)되어 숙청을 당하게 되고 죽음을 맞게 된다. 남이는 17세에 무과에 급제하고 세조(世祖)의 친척이라는 후광과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28세의 젊은 나이에 병조판서가 되었으나 벼락출세와 오만 방자한 성격 탓으로 세조 주변의 원로대신들의 견제를 받게 된다. 북정가를 트집 잡아 모반의 위험성이 있는 것으로 은연중 퍼뜨리고 세조에게 남이장군을 경계할 인물로 아뢰자 의심을 한 세조는 남이를 면직시켰다. 이시애의 반란이 있은 다음 해에 세조가 죽고 둘째 아들 예종이 18세에 임금이 되었다. 젊은 왕은 남이가 무슨 변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을 항상 갖고 있던 차 예종이 즉위하던 그해에 혜성이 나타났다. 당시 사람들은 혜성이 나타나면 세상이 바뀐다고 믿었었다. 남이는 젊은 혈기에 무심코 당돌한 말 한마디를 하였다. ‘옛것은 다 없애고 새로운 것이 날 징조이구나.’ 이 말을 옆에서 들은 유자광이 남이가 역적모의를 한다고 왕에게 밀고 하였다. 그렇잖아도 남이가 역모를 꾀할까봐 불안하던 차에 좋은 기회라 생각한 예종은 즉시 남이를 잡아들여 친국을 시작하였다. 다리가 분질러지는 심한 매질에 견디다 못한 남이는 엉뚱하게도 예종 옆에 근엄한 자세로 앉아있는 영의정 강순과 같이 모의했다고 거짓 자백을 하기에 이르렀다. 나이80의 영의정 강순은 기가 막혀 극구 부인했으나 고문에 견디다 못해 허위자백하고 남이와 역모의 죄로 나란히 처형장에 끌려 나가게 되었다. 강순은 너무나 억울하여 남이를 노려보면서 ‘너 이놈 이 젊은 놈아! 너는 나와 평소 무슨 원한이 있길래 무고하느냐.’고 내뱉자 남이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너 이 늙은 놈아! 너나 나나 원통하기는 매 일반이다. 내가 죄 없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영의정의 자리에 앉아 한마디도 구원해 주지 않는 그 죄로 내가 끌어넣었다.’ 시비를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말과 처신을 함부로 하여 남이장군이 죽게 된 배경을 스스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젊은 나이에 병조판서의 직분을 수행함에 있어 겸손하지 않고 안하무인의 난폭한 성격에다 항상 위험스러운 말을 함부로 하였다. 백두산에 칼을 갈고 두만강 물을 말에 먹이는 것까지는 좋은데 스무살 어린나이에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면 대장부가 아니라고 한 것은 젊은이의 기상으로서는 좋으나 그 당시 여건을 감안하지 않은 위험한 일이었다. 세조가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올랐고 사 육신을 위시한 쿠데타의 기억이 생생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남이장군은 태종의 외손으로 왕가에 속하기 때문에 모반을 할 가능성이 배제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영의정 강순은 남이장군의 역모사실이 허위임을 명백히 알고 있었고 국정의 최고위직인 영의정직에 있으면서도 진실을 외면하다 남이장군의 괘씸죄(?)를 적용한 물귀신 작전에 말려들어 비참한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뚜렷한 역사적 교훈을 찾게 된다. 지역적 감정을 이용하여 정권을 타도하려던 이시애의 난과 이를 평정한 남이장군의 숙청, 그리고 정의를 외면하다 끝내 죽음을 당한 영의정 강순의 이야기는 전설과 신화가 아니다. 비록 시대와 사회적 환경이 다르다 해도 역사적 교훈으로 오늘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지도자는 항상 겸손할 줄 알아야 되고 정의의 편에 서야 한다. 그러면서 항상 언행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므로 말과 처신에 신중을 기해야 하고 적당한 시기에 물러설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본다. 비명에 간 남이장군의 일생에서 ‘질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온다.’는 동양의 격언을 떠올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묵념을 올리며 남이섬 관광에 나선다.  <시인/수필가 차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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