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세상사는이야기

보일러 수리공

오늘의 쉼터 2011. 5. 17. 17:21

    보일러 수리공 내가 잘 아는 보일러공이 있다. 그의 나이 일흔 여섯, 일생동안 보일러 하나만을 만지며 살아왔기에 말씨는 투박하고 어눌하다. 그리고 손가락이나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박혀 거칠게 느껴지지만 그는 그 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 손이 이래뵈도 내 일생을 책임졌단 말이야, 앞으로도 이 손이 아니면 난 살아가기 힘들지” 그의 말은 자랑과 자긍심이 찬 힘 있는 말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었다. 보일러공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이 아니면 우리들은 겨울을 날 수 없다. 추운 겨울에 보일러가 고장 났다면 우리들은 허겁지겁 수리공을 모셔 와야 한다. 만약 그들이 다른 일로 금방 오지 못한다면 추위를 견디기 어렵다. 보일러가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것은 70년 대, 한참 연탄으로 난방을 할 때, 좀 잘사는 집이면 보일러를 가설했다. 보일러에 때는 연탄도 일반 아궁이에 때는 것보다 컸다. 그 큰 연탄을 여섯 장 쯤 넣고 불을 붙이면 온 집안에 있는 방이 설설 끓었다. 그때는 참으로 편리한 시설이었고 없어서는 안 될 난방 기구였다. 방마다 깔려있는 파이프를 통하여 더운 물이 돌아가면 아랫목과 윗목의 구별 없이 방이 따뜻했다. 우리들은 그 따뜻한 방에서 큰 대자로 누워 등을 지지고 허리를 펴기도 했다. 변변하게 옷을 입지 못한 때였기에 언제나 어깨가 굽어 있었던 기억을 더듬으면 보일러로 난방한 따뜻한 방을 잊을 수 없다. 이 때의 보일러 수선공들은 동네 어귀 큰 길가에 한 두 집은 꼭 있었고 개털 모자를 눌러 쓴 늙수그레한 수리공들이 한 두 사람은 가게에 꼭 대기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보일러 수리공을 골목안에서 찾아 볼 수 없다. 그 뒤, 기름을 때는 보일러가 각 가정에 시공된 뒤부터는 보일러 수선공들이 골목에서 자취를 감추었으니 이것도 사라진 세시풍속도 중의 하나가 된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한 20년이 지난 뒤) 옛날 살던 동네에 갔다가 내가 아는 보일러 수리공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요즘은 어떻게 사시나요”란 말을 한 게 그 사람의 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말도 마십시오. 옛날이 좋았습니다. 70년 대만 해도 아침, 저녁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영 안됩니다. 저희 같은 사람이야 그렇지만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우리야 밤낮 그 타령이죠, 뭐 변한거 있겠습니까.” 시큰둥한 나의 대답에 “알만합니다. 내 그 때 한참 잘 나갈 때 당한 이야기입니다만 보일러를 고치고도 수리비를 주지 않아 못 받는 게 부지기수입니다. 추위에 떨지 않게 만들어 주었는데도 차일피일 돈을 안주다가 얼마 지나면 아주 피해버립니다. 그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죠. 한 동네에 살면서 어쩝니까, 그러다 2~3년 지나면 아주 떼이는 것이죠. 그 뒤는 아예 말도 못했습니다.” 참으로 놀랄만한 이야기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현장에 나가 따뜻하게 난방이 되도록 고쳐 주었다면 고맙기 이를 데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살기 어려워도 따뜻하게 추위를 나게 만들었다면 그것부터 갚아야 하는게 사람의 도리가 아닐까? 나는 보일러 수리공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추위를 잊게 해준 것은 은혜가 된다. 당장 돈이 없어도 빨리 마련하여 갚아야 한다. 그런데도 그 돈마저 떼먹는 사회가 된다면 살맛나는 세상은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차디찬 세상이요, 살맛나는 세상이 아니다. 고마움과 은혜를 알고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일러 수리공의 이야기를 듣고 새삼 느낀다. 신세를 지고 은혜를 입고도 돈까지 떼먹는다면 어찌 사람 노릇을 하는 일인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문학박사 성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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