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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인간의 대지 - 쌩 떽쥐뻬리

오늘의 쉼터 2011. 5. 18. 21:16

 

인간의 대지 - 쌩 떽쥐뻬리

 

[6] 사막에서

 
(7)
사람을 열 아홉 시간이면 말려버리는 서풍이 분다.

내 식도는 아직 막혀버리지는 않았지만 딱딱하고 아프다.

거기서 무엇이 긁어대는 듯한 느낌이다.

이제 사람들이 말해주기도 했고, 기다리고 있기도 한 그 기침이 시작될 것이다.
혀가 걸치적거린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대한 것은 벌써 눈에 어른거리는 반점들이다.

그것이 불꽃으로 변하게 되면 나는 드러누울 것이다.

우리는 급히 걷는다.

우리는 새벽의 시원함을 이용한다. 별이 내리쬐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말하듯이 우리는 더는 걷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안다. 대낮이 되면....

땀을 흘릴 권리도 우리에겐 없다. 기다릴 권리도 없다.

이 시원함은 습도 18퍼센트에 의한 시원함일 뿐이다.

이 부는 바람도 사막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거짓된 부드러운 애무 아래서 우리의 피는 증발돼 간다.

우리는 첫날에 포도를 몇 알 먹었다.

그리고는 사흘째 오렌지 반쪽과 스펀지 케이크 반 쪽뿐,

설령 먹을 것이 있다한들 무슨 침이 있어 씹겠는가?

그런데 전혀 배고프지가 않다. 그저 목이 마를 뿐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갈증 자체보다도 갈증에서 오는 결과를 더 느끼게 될 것이다.

이 굳어버린 목구멍. 석고와도 같은 혀.

이 깎아내는 것 같은 기분과 지독히도 쓴 맛.

이러한 감각들은 내게는 새로운 것이다.

아마도 물이 이것들을 고쳐 주겠지만,

이 물이라는 약을 이러한 감각과 결부시켜 줄만한 기억이 내게는 전혀 없다.

갈증은 점점 더 욕망 이상으로 하나의 병이 되어 간다.

샘물과 과실들도 이미 내게는 그다지 애절한 영상을 주지 않는 것처럼 생각된다.
나는 오렌지의 그 광채를 잊었다.

마치 내가 다정스러운 것들을 잊어버리고 만 느낌이 들 듯이,

어쩌면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앉아 있다. 그러나 다시 떠나야 한다.

우리는 단숨에 먼 길을 걷기를 포기했다.

5백 미터를 걷고 나면 우리는 피로로 주저앉는다.

그리고 드러눕는데 크나큰 기쁨을 맛본다. 그러나 다시 떠나야만 한다.

풍경이 바뀐다.

돌들이 점점 드물어진다.

지금 우리는 모래 위를 걷고 있다.
우리 앞 2킬로 미터쯤 되는 곳에 사구들이 있다.

그 사구들 뒤에 짤막한 식물의 얼룩점들이 있다

강철의 갑옷보다는 나는 모래가 좋다. 이것은 황금빛 사막이다.

이것은 사하라다. 나는 그것을 알아 볼 수 있다.
이제는 2백 미터에서 기진맥진한다.

"어쨌든 걸어야 해. 적어도 저 소관목 있는 데까지는...."

그것은 엄청난 한계였다.

여드레 후에 우리가 "시문호"를 찾기 위해

자동차로 우리의 발자국을 되밟아 갔을 때 확인한 일인데,

이 마지막 시도가 80킬로 미터나 됐다.
그러니까 이때 나는 2백 킬로 미터를 걸어갔던 셈이다.

어떻게 그 이상 걸을 수 있겠는가?

어제 나는 희망도 없이 걸었었다.

오늘은 그런 말조차 그 뜻을 잃어 버렸다.

오늘 우리는 걸으니까 걷고 있다.

아마 소들이 밭을 갈 때도 이럴 테지.

어제 나는 오렌지 숲의 낙원을 꿈꾸었었다.

그러나 오늘은 내게 이미 낙원은 없다.
나는 이제 오렌지가 있다는 것조차 믿지 않는다.


나는 이제 마음이 굉장히 말라 빠졌다는 느낌밖에는 내게서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다.

나는 당장 쓰러질 것 같고, 절망조차 모르겠다.

괴로움도 없다. 나는 그것이 유감이다.

고통이 내게는 물처럼 다정하게 여겨질 텐데.

사람은 자기 자신을 연민하고, 또 친구처럼 자신을 동정한다.

그러나 나는 이제 세상에 친구가 없다.

사람들이 두 눈이 바싹 타버린 나를 발견하면 아마 내가 굉장히 소리쳐 부르고,

몹시 고통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발버둥도, 후회도, 애증의 고통도 아직은 재화이다.

그런데 내게는 이미 그런 재화도 없다.

순결한 소녀들은 첫사랑의 저녁에 괴로움을 알고 눈물짓는다.

이 괴로움은 생명의 떨림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내게는 이제 괴로움도 없다.

사막, 그것은 바로 나다.

나는 이제 침도 나오지 않지만,

또한 내가 그것을 향해 울부짖었을 그리운 영상들도 그려낼 수가 없다

태양이 내 속에서 눈물의 샘을 말려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무엇을 보았던가?

희망의 숨결이 바다 위의 돌풍처럼 내 위를 지나갔다.

내 의식을 두드리기 전에 이제 막 내 본능에 알려준 이 신호는 무엇일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 모래의 식탁보며, 이 언덕들,

그리고 저 아련한 초록의 널빤지는 이미 풍경이 아니고 무대를 이룩한다.

아직은 텅 비어 있지만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무대,

나는 쁘레보를 쳐다본다.

그도 나와 똑같은 놀라움을 느끼고 있지만

그는 자기가 느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정녕 무엇이 일어나려 하는 게 틀림없다.
사막이 생기를 띠어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정말이지 이 부채, 이 고요가 갑자기 광장의 소란함보다도 더 감동적이었다.
우리는 살아났다. 모래에 발자국들이 있지 않은가!

아아! 우리는 인류의 발자국을 잃어버리고, 부족들로부터 떨어져나와,

세계의 움직임으로부터도 잊혀져 이 세상에서 외톨이가 되어 있었던 것이나,

이제야 우리는 모래에 찍혀진 인간의 기적적인 발자국을 발견한 것이다.

"여기서, 쁘레보. 두 사람이 갈라져 갔어."
"여기선 낙타가 꿇어앉아 있었구...."
"여기선...."

그런데 아직은 우리가 구조된 것이 아니다.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몇 시간만 지나면 사람들이 우리를 구해낼 수 없게 된다.

한 번 기침이 시작되기만 하면 갈증의 진행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다.

그런데 우리의 목구멍이 더욱....

그러나 나는 이 대상을 믿는다.

사막의 어디쯤에서 어정대고 있을 이 대상을....
그래서 우리는 다시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닭 우는 소리를 들었다.

기요메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마지막 판에 나는 안데스 산맥 속에서 수탉 울음 소리를 들었어.

또 기차 소리도...."

닭이 운 바로 그 순간에 나는 그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혼잣말을 한다.

"처음에 내 눈이 나를 속였다.

그것은 틀림없이 갈증 탓일 거다.

귀가 더 버티어 온 셈이지...."

그런데 쁘레보가 내 팔을 붙든다.
"들었어요?"
"뭘?"
"수탉 말이요!"
"그래 그렇다면...."

그렇다면 틀림없다.

이 바보야, 이젠 살았어...
나는 마지막 환각에 사로잡혔다.

서로 쫓고 쫓기는 3마리의 개를. 쁘레보도 쳐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아랍인 쪽으로 팔을 내민 것은 둘이 함께였다.

그쪽을 향해 모든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것도 우리 둘이였다.

이 기쁨에 웃고 있는 것도 우리 둘이였다!

그러나 우리의 목소리는 30미터도 채 못간다.

우리의 성대는 이미 말라붙었다.
우리는 서로 꺼져가는 소리로 말했고, 또 그것을 알아듣지도 못했다!

그런데 언덕 뒤에서 막 모습을 드러낸

저 아랍인과 낙타가 지금 천천히 멀어져 가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그는 혼자인지도 모른다.

잔인한 악마가 그의 모습만 보여주고 다시 끌고 가는 것인가.
그런데도 우리는 더 이상 달릴 수가 없다!

또 하나의 아랍인의 옆 얼굴이 그 사구 위에 나타난다.

우리는 울부짖는다. 그러나 너무나 낮은 소리다.

그래서 우리는 팔을 휘저었는데,

온 하늘이 거대한 신호들도 가득 차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아랍인은 여전히 오른쪽만 바라보고 있다.

마침내 그는 천천히 몸을 45도 가량 돌리기 시작한다.

그가 앞 얼굴을 보일 그 순간에 모든 것은 끝마쳐질 것이다.

그가 우리 쪽을 바라볼 그 순간에 그는 이미 우리에게서

목마름과, 죽음과, 온갖 환영을 지워 줄 것이다.

그는 45도를 돌기 시작했고, 그것은 벌써 세계를 바꾸어 놓는다.

그의 상반신의 움직임 하나,

그의 시선의 움직임 하나로 그는 생명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는 신과 같이 보이는 것이다.
이건 기적이다.

그는 바다 위를 걷는 신처럼 모래 위를 우리를 향해 걸어온다.
아랍인은 그저 우리를 바라보기만 한다.

그는 두 손으로 우리 어깨를 눌렀다.
그래서 우리는 복종했다. 우리는 누웠다.

여기에는 이미 종족도, 언어도, 차별도 없다.

우리 어깨에 천사장의 손을 얹은 이 초라한 유목민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마를 모래 속에 박고 기다렸다.

그리고 지금은 배를 깔고 엎드려 송아지처럼

냄비 속에 머리를 처박고 마시고 있다.

아랍인은 겁이 나서 번번이 우리를 중지시키려 든다.

그러나 그가 늦춰주기가 무섭게 우리는 다시 얼굴을 물 속에 처박는 것이었다.

"아아, 물!"
물이여, 너는 맛도, 색깔도, 향기도 없어 너를 정의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너를 알지도 못하면서 다만 마신다.

너는 생명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생명 그 자체다.

너는 감각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을 우리에게 불어 넣어 준다.

너와 함께 우리가 단념했던 모든 힘이 되 돌아온다.

너의 은총으로 우리 가슴 속의 말라붙었던 모든 샘물이 다시 솟는다.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보물이며,

또 가장 섬세하여 대지의 뱃속에서 그렇게도 순결하다.

산화마그네슘이 섞인 샘물 위에서는 사람이 죽는 수가 있다.

짠 호수 바로 옆에서 죽는 수도 있다.

약간의 분리 염분을 함유한 2리터의 이슬만으로도 사람은 죽을 수가 있다.

너는 어떠한 혼합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어떠한 변질도 용납하지 않는 꽤 까다로운 여신이다.
그러나 너는 무한히 단순한 행복을 우리들에게 부어 준다.
우리를 구해준 그대 리비아의 유목민이여,

그렇지만 당신은 나의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져 버릴 것이다.

그 얼굴도 영영 생각나지 않게 되리라. 당신은 "인간"이다.

그래서 당신은 모든 사람들의 얼굴과 함께 내게 나타난다.

당신은 우리를 눈 여겨 바라본 적도 없었지만 벌써 우리를 알아보았다.

당신은 가장 사랑하는 형제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모든 사람들 속에서 당신을 알아볼 것이다.

당신은 숭고함과 친절에 싸여 있어,

내게는 물을 줄 권능을 가진 왕자로 보였다.

내 모든 친구와, 내 모든 적들이 당신을 통해서 내게로 걸어온다.

그러기에 이제 나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의 적도 없어지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