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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7장 에바 부인 4.

오늘의 쉼터 2011. 5. 15. 09:34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7장 에바 부인 4. 


얼마 동안 나는 마치 우리들이 나눈 일상 대화의 복제와도 같은 꿈을 꾸었다.
온 세계가 혼란에 빠지고 나 혼자서나 아니면
데미안과 함께 긴장하여 위대한 운명을 기다리는 꿈을 꾼 것이었다.
운명은 가리워진 채로 있었지만 어딘지 에바 부인의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에 의해서 선택되거나 혹은 배척당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운명이었던 것이다.
여러 차례 그녀는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당신의 꿈은 완전하지가 않아요. 싱클레어, 당신은 제일 좋은 것을 잊어버리셨어요. ---“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그 잊어버린 부분이 생각이 났고
나는 어쩌면 그것을 잊을 수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때때로 나는 불만을 느끼고 어떤 욕구로 고민하곤 했다.
그녀를 팔에 끌어안지도 못하면서
그녀를 가까이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도 곧 그것을 알아차렸다.
한 번은 내가 여러 날 동안이나 찾아가지 않았다가
아직도 어지러운 마음으로 다시 그녀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나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당신이 믿지도 않는 소원에 정신을 잃어서는 안 돼요.
당신이 무엇을 소원하고 있는지 나는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은 이 소원을 버러거나 아니면 완전하고 올바르게 바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약 당신이 그 소원의 성취를 마음속에서 완전히 확신하게 되도록 소원할 수 있다면
그때엔 그 소원을 성취할 수 있게 될 거예요.
그러나 지금 당신은 소원을 하면서도 다시 후회하기도 하고 동시에 두려워하고 있는 거예요.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내가 전설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께요.”

그녀는 별에 반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바닷가에 서서 손을 뻗치고 별에 예배했고 별의 꿈을 꾸고 자기의 생각을 별에게 보냈다.
그렇지만 별을 사람이 끌어안을 수야 없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거나
또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충족될 희망도 없이 별을 사랑하는 것이 자기의 운명이라고 생각했고,
이 생각에서 체념과 그리고 자기를 개선시키고 정화시켜줄
무언의 충실한 고민을 읊은 한 편의 완전한 생명의 시를 지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모두 별을 찾아갔다.
그는 어느 날 밤 다시 바닷가의 높은 벼랑 위에 서서 별을 쳐다보고 별에의 사랑을 불태웠다.
그리하여 동경이 절정에 달한 순간 그는 별을 향해서 허공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 도약의 순간에 다시 한 번 번개처럼 생각했다.
정말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다! 라고.
그는 바닷가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는 사랑하는 법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그가 뛰어올랐던 그 순간에 단단하고 확실하게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정신력을 가졌었다면
그는 하늘로 날아올라가서 별과 일체가 될 수 있었을 터였다.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녀는 진지하게 말했다
. “또 요구해서도 안 되지요.
사랑은 자기의 내부에서 확신에 이를 수 있는 힘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끌려오는 것이 아니라 끌어당기게 되는 거지요.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나에 의해서 끌리고 있어요.
당신이 나를 끌게 되면 나는 가겠어요.
나는 아무런 선물도 드리고 싶지 않아요.
나는 당신에게 획득 당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나 다음번에는 나에게 다른 이야기를 해주었다.
희망도 없이 사랑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자기의 영혼 속에 완전히 침잠하여 사랑하는 나머지 타 없어질 것 같다고 느꼈다.
그에게는 이 세계가 사라져버렸으며 더 이상 푸른 하늘도 파릇한 숲도 보이지 않았고
시냇물도 그에게는 졸졸거리지 않았고 하프도 그에게는 울리지 않았다.
모든 것은 사라져버리고 그는 가난하고 비참해졌다.
그러나 그이 사랑은 나날이 자라서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소유할 수 없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고, 파멸해버리고 싶은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때 그는 사랑이 자기의 내부에 있는 모든 것을 불태워버렸음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의 사랑은 자꾸만 강력해져서 그녀를 끌어당겼고,
그 아름다운 여자는 마침내 그를 따라오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녀가 왔고, 그는 그녀를 끌어당기기 위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서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 여자가 그의 앞에 와서 서자
그녀는 아주 달라져 버렸고 그는 자기가 잃어버린 온 세계를
자기에게로 끌어당겼음을 깊은 전율을 느끼며 알게 되었고 그 세계를 바라보았다.

그 세계는 그의 앞에 서서 그에게 몸을 맡겨왔다.
하늘과 숲과 시내, 이 모든 것들이 새로운 빛을 띠고 생생하고도 화창하게
그에게 다가와서는 그의 것이 되었고 그의 말을 속삭이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단순한 한 사람의 여인을 얻는 대신 온 세계를 그의 마음속에 지니게 되었다.

 

하늘의 모든 별들은 그의 내부에서 타올랐고
그의 영혼을 뚫고 지나가며 환희의 불꽃을 퉁겼다---
그는 사랑을 하였다. 자기 자신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를 잃어 버리기위한 사랑을 하는 것이다.

에바 부인에 대한 사랑이 내게는 내 생활의 유일한 내용처럼 느껴졌다.
매일같이 그것의 모양은 달라졌다.
때때로 나는 확실하게 나의 본성이 나를 이끌어 도달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은
그 여자 개인이 아니라 나의 내심의 상징에 불과하며
그것은 나를 나의 내부로 더욱더 깊이 끌고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때론 나는 내 마음이 발하는 절박한 질문에 대하여
마치 내 속의 무의식적인 어떤 것이
대답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곤 했다.
또한 내가 그녀의 곁에서 관능적인 욕망에 불타올라
그녀가 만진 물건에 입맞추는 그런 순간도 있었다.
그리고 점차로 관능적인 사랑과 비관능적인 사랑이, 현실과 상징이 서로서로 겹쳐졌다.
내가 우리 집의 내 방에서 그녀를 조용한 마음으로 생각할 때면
그녀의 손을 나의 손 안에, 그녀의 입술을 내 입술 위에 느끼는 것처럼 생각되는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때는 그녀의 곁에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진정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때도 있었다.

어떻게 사랑을 지속적이고 불멸의 것으로 간직할 수 있는가를 나는 예감하기 시작했다.
어떤 책을 읽으며 나는 새로운 것을 느꼈는데
그것은 에바 부인의 입맞춤과 똑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나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주며 성속학 향기로운 따스한 미소를 내게 보내주었다.
나는 마치 내 자신의 내부에 무슨 진보라도 이룩한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내게 있어서 중요하고 운명적이었던 온갖 것들이 그녀의 모습을 지닐 수 있었다.
그녀는 나의 모든 사상으로 변신할 수 잇었고 나의 모든 사상은 그녀로 변신할 수 있었다.

이 주일 동안이나 에바 부인과 떨어져서 지내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이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라 생각하며 나는
부모님과 함께 지내야 할 성탄절의 휴갈르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고통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집에 있으면서 그녀를 생각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었다.

H시로 되돌아와서도 나는 이 안정감과 관능적인 그녀의 현재로부터의 독립감을 즐기기 위해
이틀 동안이나 그녀의 집을 방문하지 않았다.
또한 나는 그녀와의 결합이 새로운 비유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녀는 내가 용솟음치며 흘러들어가는 바다였다.
그녀는 별이었고, 나 자신도 별로서 그녀에고로 가고 있는 중이었으며
우리는 서로 만났고 서로 끌리고 있음을 느꼈으며 함께 있으면서
가깝고 쟁쟁히 울리는 원을 그리며 서로의 주위를 영원토록 행복하게 맴도는 것이었다.

내가 다시 그녀를 방문한 첫날 나는 이 꿈을 이야기해주었다.
”그 꿈은 참 아름답군요.” 그녀는 조용히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진실이 될 수 있게 하세요!”
이른 봄날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 있었다.
나는 거실에 들어섰다.
창문이 하나 열려 있어서 훈훈한 바람이 히아신드의 무거운 향기를 방안으로 휘몰아넣고 있었다.
아무도 없었으므로 나는 계단을 통해서 데미안의 서재로 갔다.
가볍게 문을 두드리고는 언제나처럼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방은 어두웠고 커튼은 모두 드리워져 있었다.
막스가 화학실험실로 꾸며놓은 조그만 옆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져 있었다.
그곳으로부터 먹구름 사이로 비치는 밝고 하얀 봄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나는 무심코 한쪽 커튼을 제쳤다.
바로 그때 나는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 가까이에 데미안이
이상스럽게 변한 채 걸상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번갯불처럼 언젠가 이런 일을 본 적이 있었다는 느낌이 나를 스쳐갔다.
그는 두 팔을 아무 움직임도 없이 내리뜨리고 두 손을 무릎 위에 놓은 채 앉아 있었다.
두 눈을 크게 뜬 채 다소 앞으로 숙이고 있는 그의 얼굴은 생기가 없고
무감각해 보였고 눈동자에는 조그맣게 반짝이는 빛의 반사가
마치 한 조각의 유리처럼 생기없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은 자기 가운데에 깊이 침잠해 있었으며
몸서리쳐지는 마비상태 이외에 다른 표정이라고는 아무것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사원의 현관에 있는 태고 적의 짐승의 가면처럼 느껴졌다.
그는 거의 숨을 쉬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되살아난 추억에 몸을 떨었다---
수년 전, 내가 아직도 조그만 소년이었을 때
나는 지금과 꼭같은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의 두 눈은 내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의 두 손은 생기없이 나란히 놓여 있었으며
파리가 한 마리 그의 얼굴 위를 기어다니고 있었다.
아마도 육 년 전인 그때에도 그는 꼭 이렇게 나이들어 보였고
이렇게 시간을 초월해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얼굴에 있는 주름살 하나도 오늘과 다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