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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6 장 야곱의 싸움 - 3

오늘의 쉼터 2011. 5. 14. 23:54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6 장 야곱의 싸움 - 3


”피스토리우스!”
내가 듣기에도 의아스러울이만큼 놀랄 정도로
치밀어오르는 악의를 품은 어조로 나는 말했다.
“내게 다시 한번 당신이 꾼 꿈의 이야기를, 실제의 꿈 이야기를 해주시오.
당신이 말하는 것들은 모두---너무나 곰팡이 냄새가 난단 말이오!”

내가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그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말을 내뱉은 그 순간 나는 내가 쏘아 그의 심장에 명중시킨 그 화살이
바로 그의 무기창에서 얻어온 것임을---
그가 이따금 내게 하던 풍자적인 어조의 자기 비난을
지금 내가 더욱 날카롭게 갈아서 되던진 것임을
창피스러움과 놀라움이 뒤섞인 심정으로, 번갯불처럼 선명하게 느꼈다.

그 또한 그것을 순간적으로 느끼고는 곧 조용해졌다.
나는 불안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심정으로
그가 무섭도록 창백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오랜 무거운 침묵의 시간이 지난 후
그는 새 장작을 불에 던지며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아주 정당하오, 싱클레어.
당신은 정말 영리한 친구요.
난 다시금 그놈의 곰팡내나는 일을 갖고 당신을 괴롭히지 않겠소.”

그는 매우 침착하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입은 상처의 고통을 너무나도 잘 알 수가 있었다.
나는 무슨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용서를 빌고 나의 애정에 넘치는 감사를 다짐하려고 했다.
간절한 말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

그러나 나는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엎드린 채 불을 들여다 보고 아무 말 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그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그저 엎드린 채 불을 들여다 보고 아무 말 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그 역시 아무 말이 없었고, 그렇게 우리들은 엎드려 있기만 했다.
불은 다 타서 사위어들기 시작했고
불꽃이 사그라들 때마다 나는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무엇인가 아름답고 친밀한 것들이 식어가고 사라져감을 느꼈다.

”당신이 내 말을 오해하지나 않을지 걱정이 됩니다.”
나는 압박감으로 메마르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 어리석고 무의미한 말이 마치 신문소설을 낭독하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당신을 아주 정확히 이해하고 있소.”
피스토리우스는 나직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당신이 옳은 거요.” 그
는 말을 멈추고 잠시 기다리더니 다시 천천히 말을 계속했다.
“사람이 남에대해서 정당할 수 있는 한에 있어서 말이오.”

아니, 아니, 내가 틀렸어요! 하고 내 마음속에서는 맹렬히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단 한 마디의 말로 그의 본질적인 약점과 그의 난점과 상처를 건드렸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스스로도 믿고 싶어하지 않는 그런 부분을 건드린 것이었다.
그의 이념은 ‘곰팡내가 나고’ 그는 퇴보적인 탐구자였으며, 낭만주의자였다.
그러자 갑자기 피스토리우스가 나에 대해 존재하고,
그리고 나에게 가르쳐주었던 것들은
그 자신에게는 스스로 존재하지도 않고
스스로에게 줄 수도 없다는 사살이 뼈저리게 느껴져왔다.

그는 지도자인 그 자신마저를 넘어서고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길로 나를 인도했던 것이었다.
어떻게 내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조금도 나쁜 뜻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었고
파국에 대한 예감 같은 것을 느끼지도 않았었다.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그 순간조차도 전혀
스스로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지껄였던것이었다.
나는 단지 약간 재치있고 약간은 질이 나쁜 조그만 충동에 따랐을 뿐이건만,
그것이 운명적인 일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사소하고 부주의한 행동을 한 것인데
그로서는 그것이 심판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그가 성을 내고, 자기 변명을 하고
나를 나무라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을 나는 내 마음속에서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할 수만 있었다면 그는 미소라도 지었을 것이다.
그가 미소를 지을 수 없다는 것으로
내가 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준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었다.

피스토리우스가 나에 의해서,
이 주제넘고 배은망덕한 자기 제자에 의해서 받은 타격을
그렇듯 말없이 감수하고 나의 정당성을 승인하고,
나의 말을 운명으로 인정함으로써
그는 나로 하여금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에 빠지게 하고
나의 실책을 몇 천 배나 강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타격을 가할 때는 강하고
자기 방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없이 참을성 있게 묵묵히 항복해버린 무방비 상태의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꺼져가는 불 앞에 엎드린 채로 있었는데
불타는 모든 형상과 스스로 사그라드는 모든 재의 줄기가
나에게 행복하고 아름답고 풍부했던 시간을 되새기게 해주었고
피스토리우스에 대한 의무를 배신한 죄악감을 점점 증대시켜주었다.
나는 더 이상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일어서서 걸어나왔다. 한참 동안 나는 그의 방문 앞에 서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컴컴한 계단 위에서,
집 앞에서 행여라도 그가 나를 뒤따라오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로 그렇게 서 있었다.
마침내 그곳을 떠나서는 몇 시간이고 시내와 교외를,
공원과 숲을 저녁 때까지 헤매어 다녔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내 이마 위에서 카인의 표지를 느꼈다.

점차 나는 그때의 일을 되새겨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생각은 오로지 나의 잘못을 책하고 피스토리우스를 옹호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엇다.
그러나 매번 모든 것은 반대의 결과로 끝났다.
천 번 만 번 나는 나의 경솔한 말을 후회했고, 그것을 철회할 용의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은 진실이었다.
이제서야 비로소 나는 피스토리우스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의 모든 꿈을 내 앞에 내세우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그의 꿈은 목사가 되는 것이었고 새로운 종교를 선포하는 것이었으며
영혼의 앙양과 사랑과 예배의 새로운 형식을 부여하고 새로운 상징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역량과 사명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너무나도 열심히 이미 존재했던 일에 몰두했고
너무나도 정확히 과거의 사실들을 알고 있었고,
너무나 많이 이집트나 인도, 미트라스나 아프락사스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사랑은 이 세상이 이미 보아온 형상에 결부된 것이었는데도
그가 마음속 깊이에서 원했던 것은 전혀 새롭고 색다른 것이었으며
그것은 신선한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것이지
박물관의 수집품이나 도서관 같은 데서
창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의 역할은 나에게 그러했듯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데 있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을,
새로운 신을 주는 일은 그의 사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또한 누구에게나 ‘사명’은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스스로 선택하고 해석하고
임의로 관리할 수 있는 사명은 없다라는 깨달음이
날카로운 불꽃처럼 나를 불태웠다.
새로운 신을 원한다는 것은 잘못이었고
이 세계에 무엇인가를 주려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이었다!
각성된 인간에서 부여된 의무란 단 한 가지,
자신을 찾고 자신의 내부에서 견고하게 되어 그 길이 어디에 닿아 있건간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길을 더듬어 나가는 일 이외의 다른 의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깊이 나를 사로잡았고,
이 생각이야말로 내가 이번의 체험에서 얻은 열매였다.

때때로 나는 미래의 형상과 함께 놀았고,
혹은 시인으로서 혹은 예언자 혹은 화가로서 혹은 다른 어떤 것으로서
나에게 부여되었을 역할에 대해 꿈꾸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시를 짓기 위해서, 설교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도 그것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은 모두 부차적으로 일어날 수 있을 뿐인 것이었다.
각자를 위한 진정한 천직이란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단 한가지뿐이다.
그가 설령 시인이나 미치광이나 예언자나 심지어 범죄자로 일생을 마친다 해도 좋다
---그것은 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결국 그리 중대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임의의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는 것이며,
그 운명을 자신의 내부에서 송두리째, 그리고 온전하게 끝까지 지켜내는 일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일부일 뿐이며, 도피하려는 노력이고,
대중의 이상 속에 숨으려는 재도피이며,
순응이고 자기 자신의 마음에 대한 두려움인 것이다.

무섭고 경건하게 그 새로운 생각이 내 앞에 솟아올랐다.
그것은 이미 몇 백 번이나 예감되어왔고,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된 적이 있었을 것이었지만
나는 이제서야 겨우 그것을 확실하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 나는 자연의 투척이다.
미지의 것에의, 어떤 새로운 것, 아마도 허무에의 투척일 것이었고,
이 투척으로 하여금 본연의 깊이에서 작용하게 하고 그 의지를 나의 내부에서 느끼고
송두리째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만이 나의 천직인 것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나는 이미 많은 고독감을 맛보았다.
이제 내 앞에는 보다 더 깊은 고독이 펼쳐져 있었고
그것을 피할 도리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피스토리우스를 달래려고 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친구였지만 우리의 관계는 달라졌다.
우리는 그 일에 관해서 단 한 번 다시 이야기를 했다.
어쩌면 그 말을 한 것은 피스토리우스뿐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는 말했다
. “나는 당신도 알다시피 목사가 되려는 소원을 갖고 있소.
나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렇게도 많은 예감을 품고 있는
새로운 종교의 목사가 되고 싶은 거요.
하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될 수는 없을 것이다---하는 걸 잘 알고 있소.
감히 입 밖에 내어 이야기한 적은 없었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거요.
나는 결국 다른 목사적인 봉사를 하게 되겠지요.
풍금을 통해서나 혹은 다른 방법을 통해서 말이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가 아름답고 신성하다고 느끼는 무엇인가에 의해,
다시 말하면 풍금 연주의 비법,
상징과 신화 같은 것에 의해 둘러싸여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거요.
나는 그것을 간절히 필요로 하고 그것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은 거요
---그것이 내 약점이지요.
나는 때때로 싱클레어,
그러한 것을 원해서는 안 되고 그것은 사치이고 내 약점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으니까 말이요.
만약 내가 아주 단순하게 아무런 요구나 주장도 없이
운명에 자신을 맡긴다면 더 위대하고 더 정당하겠지요.
하지만 난 그럴 수가 없다오.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없는 유일한 일인 거요.
그것은 정말 어렵소.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정말로 어려운 일인 거요.
나는 때때로 그것을 꿈꾸지만 한 번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소.
나는 몸서리가 나오.
이렇듯 완전하게 벌거숭이가 되어 고독하게 서 있을 수만은 없는 거요.
나도 별 수 없이 다소의 따뜻함과 먹을 것이 필요하오,

이따금씩은 자기 동류의 체온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어하는
한 마리의 불쌍하고 연약한 개에 불과한 거요.
자기의 운명 이외에는 전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미 동류란 없는 거요.
그는 아주 고독하고, 주변에는 싸늘한 세계의 공간밖에는 없는 거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그리스도가 그러했던 거요.
흔연히 십자가에 못박히는 순교자도 있긴 했지만
그들 역시 영웅이 아니었고 자유롭지도 못했었소.
그들 역시 자기들에게 친밀하고 다정스런 무언가를 웒ㅆ던 거요.
그들에겐 모범이 있었고, 그들에겐 이상이 있었던 거요.
그저 운명만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모범도 이상도 없는 거니까.
그들에겐 아무런 사랑도, 아무런 위안거리도 있을 수 없소.
그런데도 사람은 이런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오.
나나 당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진정으로 고독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서로 피차라는 것을 갖고 있소.
우리들은 뭔가 남다르고 반항하고 특이한 것을 추구하는 데서
남모르는 만족을 느끼긴 하지만 만약 온전하게 그 길을 가고자 한다면
그것까지도 단념해야 하는 것이오.
또 우리는 혁명가도 이상가도 순교자도 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거요.
그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인 거요.”

그렇다. 그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꿈꿀 수도 있었으며, 미리 느끼고 예감할 수는 있는 일이었다.
몇 번인가 아주 조용한 시간에 나는 그것을 조금쯤은 느껴본 적이 있었다.
그런 때에 나는 내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았고
내 운명의 모습의 그 강하게 부릅뜬 두 눈을 들여다보곤 하였다.
그 눈은 예지에 충만해 있는 때도 있었고 미친 듯한 열기에 충혈되어 있는 때도 있었고
애정에 빛나거나 깊은 악의에 차 있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것이건 다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것 하나라도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무엇 하나 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단지 자기 자신만을 원하고 자신의 운명만을 원할 수 있을 뿐이었다.
피스토리우스는 지도자로서 내가 이 길을 제법 멀리까지 나갈 수 있게 도움을 주었던 것이었다.

그 시절, 나는 천지를 모르는 것처럼 돌아다녔다.
마음속에선 언제나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고, 발걸음마다 위험에 차 있었다.
나는 이제까지 내가 걸어온 길이 모두 그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아득한 심연이 내 앞에 펼쳐져 있는 것 외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에서 데미아과 닮은,
그 두 눈에는 나의 운명이 깃든 지도자의 모습을 보았다.
나는 한 장의 종이에다 이렇게 썼다.
“지도자가 날르 버렸다. 나는 아주 캄캄한 어둠 속에 혼자 서 있다.
나는 혼자의 힘으로는 한 발자국도 걸어나갈 수가 없다. 오, 나를 도와주오!”

나는 그 쪽지를 데미안에게 보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게 하려고 할 때마다 어리석고 무의미한 일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짤막한 기도문을 외고 있으면서 때때로 혼자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곤 하였다.
그 기도는 언제 어디서나 나를 따라다녔다.
기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나의 학창 시절은 끝났다.
나는 휴가 여행을 떠나기로 했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제안이셨다.
여행이 끝나면 나는 대학에 가야 했는데 무슨 학부에 가야 할지를 정할 수가 없었다.
한 학기 동안 철학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다른 어떤 학과일지라도 만족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