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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6 장 야곱의 싸움 - 1

오늘의 쉼터 2011. 5. 14. 23:49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6 장 야곱의 싸움 - 1


내가 그 이상한 음악가 피스토리우스로부터 들은
아프락사스에 관한 이야기는 간단히 되풀이될 수는 없는 성질의 것이다.
오히려 그에게서 배운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에로의 길을 한 발자국 내디딜 수 있던 일이다.
당시의 나는 열 여덟 살의 유난스런 젊은이였는데
오만 가지 일에 남달리 조숙해 있으면서도
또다른 오만 가지 일에는 아주 뒤떨어진 채 의젓하지가 못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해보면 어떤 때는
자기가 무척 잘난 것 같은 건방진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의기를 상실한 채 비굴한 심정이 들기도 했다.
때론 나는 나 자신을 천재라 여기기도 하다가는
때로는 내가 반쯤은 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기도 했다.
요컨대 나는 내 동년배들처럼 즐거움이나 생활을 함께 나눌 수가 없고
때로는 그들과의 사이에 절망적인 격리감을 느끼면서
내 생활이 폐쇄적이라는 것에 대한 깊은 가책과 걱정으로 초췌해지기도 하였다.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한 기이인 피스토리우스는
내게 자기 자신에 대한 용기와 존경을 간직하라고 가르쳐주었다.
나의 말 속에서, 나의 꿈 속에서, 나의 환상과 생각 속에서
그는 노상 가치있는 어떤 것을 찾아내서는 그것들을 적절하게 해석해주고,
진지하게 논했으며 내게 모범을 보여주었다.

”당신은 언젠가 내게” 그는 말했다.
“’도덕적이 아니기 때문에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소.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아니오.
하지만 당신 자신이 바로 그 도덕가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오!
다른 사람과 당신 자신을 비교하진 마시오.
가령 자연이 당신을 박쥐로 만들었다면 타조가 되려고 애쓰지 말란 말이오.
당신은 번번이 자기를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는
보통 사람과 다르다고 자신을 자책하고 있소.
그런 생각을 버리시오. 불을 들여다보고, 흘러가는 구름을 보시오.
그래서 어떤 예감이 당신을 찾아들고 당신의 영혼 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것들에게 당신의 몸을 맡기시오.
그것이 선생님이나 아버지, 혹은 어떤 흠모하는 신의 뜻과 합치되는지를,
그들의 마음에 드는지를 맨 먼저 묻지 마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망하는 거요.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안전한 땅 위를 걷게 되고
그러다가는 화석이되고 마는 거요.
이봐요, 싱클레어.
우리의 신은 아프락사스요. 그는 신인 동시에 악마지요.
그는 자신의 내부에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소.
아프락사스는 당신의 생각이나 꿈에 대해서 무슨 이의를 제기하진 않을 것이오.
그것을 결코 잊지 마시오.
그러나 만약 당신이 흠잡을 데 없이 모범적인 평범한 사람이 되어버리면
그는 당신을 버릴 것이오.
당신을 버리고는 자기의 사상을 요리하기 위한 새로운 그릇을 찾아가고 말 것이오.”

나의 모든 꿈들 중에서 그 어두운 사랑의 꿈이 가장 충실했다.
나는 매우 자주 그 꿈을 꾸고 문장의 새 밑을 지나 옛날 우리 집으로 들어갔으며
어머니를 포옹했는데 다시 보면 나는 어머니 대신
키가 크고 반은 남성이며 반은 여성인 어떤 사람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여자에게 일종의 두려움을 느끼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는 듯한 동경으로 그 여자에게 밀착되고자 애썼다.

나는 이 꿈에 대해서만은 피스토리우스에게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온갖 다른 이야기는 그에게 다 하면서도 그 이야기만은 남겨두었다.
그 꿈은 나의 은신처이며, 나의 비밀이며, 나의 피난처였다.
나는 심정이 착잡할 때는 으레 피스토리우스에게
옛날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를 연주해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어스름한 저녁의 교회 안에서 이상스럽게도 친밀하며
자기 자신의 내부에 침잠하여 자기 스스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 듯한
이 음악에 빠져 넋을 놓고 있었다.
그 음악은 항상 나에게 도움이 되었고
영혼의 소리에 정당성을 부여할 준비를 갖추게 해주었다.

풍금 소리가이미 잦아든 뒤에도 우리는 잠시 교회 안에 머물며
희미한 저녁빛이 고딕식 창문을 통해 비치고 있다가
이윽고 사라져버리는 것을 바라보곤 하였다.

”내가 이전에는 신학자였고 하마터면 목사가 되려고까지 했다는 것은”
피스토리우스가 말했다.
“어쩌면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소.
하지만 그때의 일은 다만 형식에있어서의 착각에 불과한 것이었소.
목사가 된다는 것은 여전히 나의 천직이고 나의 목표요.
단지 나는 너무 일찍 만족했던 것이고
아프락사스를 알기도 전에 여호와에게 몸을 맡긴 거요.
모든 종교는 아름다운 거요. 종교는 바로 영혼인 것이오.
사람이 그리스도교의 만찬을 먹든, 메카로 순례를 가건 그것은 한가지인 것이오.”

”그렇다면 당신은” 내가 말했다.
“진정한 목사가 될 수 있을 텐데요.”
”아니, 싱클레어, 그렇지 않소.
그럼 나는 거짓말을 해야 했을 거요.
우리들의 종교는 마치 종교가 아닌 것처럼 행해지고 있소.
꼭 해야 한다면 나는 아마 가톨릭 교도는 될 수 있을 거요.
하지만 신교의 목사는---안 되지요. 얼마 안 되는 실제적인 신자는---
나는 그런 사람을 알고 있는데---
완강히 문자 그대로 믿고 있는 것이오.
그들에게 나는그리스도는 개인이 아니라 신인 동시에 인간이며,
신화이며, 인류가 자기 자신을 영원의 벽에다 그려놓았다고 생각하는
한 장의 거대한 영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거시오.
게다가 그밖의 사람들, 현명한 설교를 듣기 위해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무슨 일에든 태만하지 않으려는 등의 이유로
교회에 오는 사람들에게 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소?
그들을 개종시키라고 하고 싶소?
그렇지만 나는 그런 짓을하고 싶지 않은 거요.
목사란 개종시키려는 자는 아닌 것이오.
목사는 단지 신자들 사이에서, 자기와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며
그것으로써 우리가 신이라 여기는 감정들을 위한 지지를 표현하고자 할 따름인 거요.”

그는 말을 멈추었다. 잠시 숨을 돌리더니 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가 아프락사스라고 이름지은 우리의 새로운 믿음은 아름다운 것이오,
싱클레어.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믿음이오.
그러나 그것은 아직 갓난애에 불과하지요.
아직 날개도 돋지 않은 거요. 고독한 종교, 그건 아직 진짜가 못되는 거요.
종교란 공통적인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되며, 예배와 도취,
축제와 비법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되는 거요.”

그는 자기의 생각에 몰두해 들어갔다.
”그 비법은 단독적으로나 아니면 조그만 단체에서 행해질 수는 없나요?”
나는 주저하면서 물었다.

”그건 될 수가 있지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이미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소.
만약 그런 일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수년쯤은 감화원에 처박히게 될 그런 예배를 행해왔소.
그러나 나는 그것도 진짜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소.”

갑자기 그는 내 어깨를 쳤으므로 나는 놀라 몸을 움츠렸다.
“이봐요!” 그는 성급하게 소리쳤다.
“당신도 역시 비법을 갖고 있소.
당신은 분명히 나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꿈을 가지고 있을 것이오.
그것을 알려는 건 아니오.
그러나 분명히 말해두지만 당신은 그것을, 그 꿈을 갖고 살아가시오.
그것을 갖고 놀고 그것을 위한 제단을 마련해 주시오!
완전하진 않지만 그러는 것도 하나의 길일 수 있는 거요.
우리들이, 당신과 나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이 세계를 개선할 수 있을지는 장차 알게 되겠지요.
그렇지만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내부에서
그것을 매일같이 개선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존재는 의미가 없는 것이오.
생각해보시오. 싱클레어, 당신은 이제 열 여덟 살이오.
당신은 매춘부의 뒤를 따라가지는 않을 것이오.
그러고 보면 당신은 아마 사랑의 꿈이나 사랑의 소원을 갖고 있을 것이 분명하오.
아마도 당신은 그것에 대해 공폴르 느끼고 있겠지. 두려워하지 마시오.
그것이 바로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서 최상의 것일 테니 말이오!
당신은 나를 믿어도 좋소.
나는 당신과 같은 나이 때 나의 사랑의 꿈을 너무 억눌렀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소.
그래서는 안 되는 거요.
아프락사스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 이상 그래서는 안 되는 거요.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영혼이 우리의 내부에서 소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금지되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거요.”

나는 깜짝 놀라 그의 말에 반박했다.
“하지만 마음에 떠오르는 이리라고 해서 무엇이든지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닐 텐데요!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요.”

그는 내게 다가섰다.
”형편에 따라서는 그것도 허용될 수 있소. 대개는 착각에 불과하지만,
내 말 역시 당신의 뇌리에 떠오르는 일이라고
무엇이든지 간단하게 해치워버리라는 건 아니오.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당신의 마음에 떠오른 그 자체의 좋은 의의를 가진 어떤 일을 배척한다든가,
그것에 대해 도덕적인 평가를 제시함으로써 그것을 망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요.
자기나 다른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는 대신
엄숙한 생각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희생의 비법에 대해 생각해볼 수도 있는 거지요.
물론 그런 행위를 하지 않고서도 자기의 충동과 유혹을
존경과 사랑으로 취급할 수도 있긴 할 거요.
그것들은 자기의 뜻을 나타낼 거요.
그것들은 다 뜻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혹시 당신에게정말로 미친 생각이나 죄를 범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싱클레어, 혹시 당신이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진다거나
얼토당토 않은 추잡한 일을 저지르고 싶으면 잠깐 동안이라도
아프락사스가당신의 내부에서 그렇게 공상하고 있다고 생가해보시오!
당신이 죽이고 싶은 어떤 사람은 실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은 그의 형상 속에서
우리들 자신의 내부에 숨어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그것을 미워하는 것이오.
우리들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진정으로 우리를 흥분시키지는 못하는 법이니까 말이오!”

피스토리우스가 이토록 나의 내심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나를 가장 강하게, 또는 가장 기묘하게 감동시킨 것은
이 충고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내 마음속에 지니고 있던
데미안의 말과 똑같은 음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피차 서로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지만
그들은 내게 똑같은 소리를 한 것이다.

”우리가 보는 사물이라” 피스토리우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들의 내부에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이오.
우리가 우리의 내부에 갖고 있는 것 이외의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오.
그들은 단지 외부의 형상만을 현실이라 여기고
자기의 내부에 들어 있는 그들만의 독자적인 세계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고 있는 거요.
그렇게 한다면 행복할 수는 있는 거요.
내가 만일 일단 다른 길을 발견하게 된다면
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다라가지는 않을 거요.
싱클레어, 대다수가 가는 길은 편하지만 우리들의 길은 힘든 거요.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갑시다.”

 

며칠 후 두 차례의 기다림이 헛되이 지나간 후
나는 그가 혼자서 술에 만취된 채 차가운 저녁 바람을 맞으며
비틀거리며 거리모퉁이를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를 부르고 싶지가 않았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내 곁을 지나쳤는데
마치 미지의 것으로부터 자기를 부르는 어두운 소리를 뒤따라가는 것처럼
불타는 고독한 시선으로 앞쪽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얼마쯤 뒤쳐져 그를 따라 갔다.
그는 마치 유령처럼, 광신적이지만 다소 흐트러진 걸음걸이로
철사줄에 끌려 가는 것처럼 가고 있었다.

처연한 심정이 되어 나는 집으로, 구원을 얻지 못한 꿈의 세계로 되돌아왔다.
”저렇게 해서 지금 그는 자신의 내부에서 세계를 개선하고 있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 생각은 저속하고도 도덕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의 꿈에 대해서 대체 내가 알고 있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그렇게 취한 속에서도 내가 불안스럽게 나의 길을 가는 것보다는
훨씬 확실히 그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리라.

수업 시간 사이의 쉬는 시간에 나는 한 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는 한 동급생이
나에게 접근하려고 애쓰는 것을 가끔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자그만하고 연약해 보이는 야윈 아이였는데
붉은 기가 도는 금발의 가는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다.
그의 시선과 태도에는 무언가 특이한 것이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가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자기 앞을 지나쳐버리게 내버려두고는 다시 나를 따라와서는
우리 집의 현관 앞에 멈춰서는 것이었다.
”내게 무슨 볼일이 있니?” 내가 먼저 물었다.
”난 그저 너와 한 번만이라도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그는 수줍은 듯이 말했다
. “조금만 함께 걸어줄 수 있겠니?”
나는 그를 따라걸었다.
그가 몹시 흥분한 상태로 기대에 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너는 강신술가지?” 그가 아주 당돌하게 물어왔다.”
”아니, 크나우어.”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절대로 아니야, 어떻게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됐니?”
’”아니면 접신술가니?”
”그것도 아니야.”
”제발 그렇게 말문을 닫아버리지 말아줘!
나는 네가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지니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
너의 시선을 보면 알 수 있어. 네가 신령과 접촉하고 있다고 나는 확신해.
호기심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절대 아니야. 싱클레어,
그런 게 아니야! 내 자신도 일종의 탐구자인걸.
그래서 이렇게 외로울 수밖에 없는 거야.”

”자세히 말해봐.” 나는 그를 격려해주었다.
“난 정말 신령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
난 단지 내 꿈속에서 살고 있을 뿐이야. 그 점을 네가 느낀 모양이구나.
다른 사람들도 역시 꿈속에서 살고 있긴 하지만
그들 자신의 꿈속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 나와의 차이점이야.”

”그래, 그럴지도 몰라.” 그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꿈이 무슨 종류의 꿈인가 하는 것만이 문제지.
---너는 선한 악마를 사용하는 마술에 관해 들은 적이 있니?”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런 건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우면 돼.
죽지 않게 될 수도 있고 마술을 부릴 줄도 알게 되지.
넌 한 번도 그런 연습을 해 본 적이 없니?”

이 연습에 대한 나의 호기심어린 질문에 그는
처음에는 대답을 안 할 듯하다가 내가 돌아서서 가버리려고 하자 비로소 이야기를 했다.
”나는 잠들려고 할때나 정신을 집중시키려고 할 때 그런 연습을 해.
나는 무엇인가를, 예를 들면 낱말 하나나
어떤 사람의 이름이나, 또는 기하의 도형을 상상하는 거야.
그러고 나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집중적으로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이 내 머리속에서 존재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내 머리속에다 그려보려고 애쓰는 거야.
그것이 목구명에까지 차오르도록,
그것에 의해 내가 완전히 충만되기까지 그렇게 하는 거야.
그러면 나는 아주 확고해지고 아무것도
나의 이 안정된 상태를 방해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나는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얼마쯤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다른 이야기들을 더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이상스러울이만치 흥분되어 있고 성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그가 질문을 보다 명확하게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러자 그는 곧 자신의 최대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너도 역시 절제하고 있지?” 그는 불안한 어조로 내게물었다.
”그건 무슨 뜻이니? 성적인 것을 말하는 거니?”
”그래, 그걸 뜻해. 나는 지금이 년째 절제하고 있어.
그 가르침을 알게 된 이후로 말야.
너도 이미 알다시피 그 전에는 나도 방탕한 짓을 하고 다녔지.
---넌 한 번도 여자 곁에 가본 적이 없니?”
”없어.” 나는 대답했다
. “내게 알맞은 여자를 발견하지 못했던 거야.”
”그러나 만약 네가 네마음에 드는 여자를 발견한다면
너는 그 여자와 함께 잘 수 있을 것 같니?”
”물론이야. ---만약 여자측에서도 이의가 없다면.”
나는 약간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아, 그렇다면 너는 잘못된 길을 가는 거야!
내적인 힘은 철저한 금욕 상태에서만 지속적으로 형성될 수 있는 거야.
나는 이 년쯤 금욕을 했어. 이 년하고도 일 개월이 좀 넘도록!
그건 매우 힘든 일이야. 번번이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곤 했지.”

”들어봐, 크나우어. 나는 금욕하는 것이
그렇게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곤 생각지 않아.”
”나도 알고 있어.” 그는 내 말을 가로막았다.
”모두들 그렇게 말하지.
그렇지만 너한테서까지 그런 말을 들으리라곤 기대하지 않았어.
보다 더 높은 정신적인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순결을 지켜야 하는 거야, 무조건 말이야!”
”그래, 그럼 그렇게 하렴!
하지만 나는 왜 자기의 성을 억제하는 사람이
그 어느 다른 사람보다 순결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어.
넌 성적인 것을 모든 생각과 꿈속에서 완전히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