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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6 장 야곱의 싸움 - 2

오늘의 쉼터 2011. 5. 14. 23:51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6 장 야곱의 싸움 - 2


”아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
아,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밤이면 나는 내 자신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그런 꿈을 꾸곤 해,
그건 정말 무서운 일이야!”

나는 피스토리우스가 나에게 해준 이야기를 생각해내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아무리 옳은 말일지라도
그 이야기를 무작정 전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 자신의 체험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니면,
또 내 스스로가 그것을 준수해볼 수 있을 만큼 성숙한 다음이 아니면
함부로 충고를 해줄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말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게 필사적으로 도움을 구하고 있는데도
아무런 충고의 말조차 해줄 수 없다는 것에 깊은 굴욕감을 느꼈다.

”나는 온갖 실험을 다 해보았어!” 크나우어는 한탄하며 말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냉수욕도 해보고,
눈으로 몸을 비비기도 하고, 체조와 달리기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
매일 밤마다 나는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할 그런 꿈에서 잠을 깨는 거야.
더욱 두려운 일은 그런 꿈으로 인해 내가 정신적으로 배웠던
모든 것을 차츰차츰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야.
나는 더 이상은 마음을 집중시키거나 스스로 잠들 수도 없게 되어
어떤 때는 하룻밤을 꼬박 뜬눈으로 지새기도 해.
나는 더 이상 이 상태를 지탱하지 못하겠어.
내가 만약 이 싸움을 계속해나가지 못하거나 항복해버려 자기를 더럽히게 된다면
그때는 애당초 한 번도 싸움을 하지 않았던 사람드로다
더 나빠지는 결과가 되고 말 거야. 넌 그걸 이해할 수 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었지만 거기에대해서는 한 마디도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의 이야기가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의 깊은 고통과 절망이 나에겐 아무런 감동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웠다.
단지 그를 도울 수 없다는 사실만 깊이 인식될 뿐이었다.

”그럼 너는 내게 해줄 말이 한 마디도 없다는 거니?”
마침내 지친 그가 슬픈 듯이 말했다.
”전혀 아무것도 없어?
한 가지쯤은 있을 수도 있을 텐데! 대체 넌 어떻게 하고 있니?”

”난 너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어, 크나우어.
사람이란 이런 경우엔 서로 도울 수가 없어.
나도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은 적이 없거든.
자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
그리고는 네 본질에서 스스로 우러나오는대로 행하면 되는 거야.
다른 방법은 없어. 만일 네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를 찾을 수 없다면
넌 어떤 신령도 발견해낼 수 없으리라는 건 확실해.”
그는 깊은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하면서 말을 멈추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그는 갑자기 증오에 불타오르는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이마를 찌푸리며 난폭하게 외쳤다.
“쳇, 넌 정말 근사한 성인군자시군!
너도역시 악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난 알고 있어!
너는 현자인 척하면서 뒤에서는 남몰래 나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쓰레기에 매달려 있는 거야!
너도 역시 돼지야. 내 자신과 마찬가지로 돼지란 말이야.
우리들은 모두 돼지인 거야!”

나는 우두커니 서 있는 그를 내버려둔 채 그 자리를 떠났다.
그는 두서너 발자국쯤 나를 따라오더니 몸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뛰어 가버렸다.
나는 동정과 혐오가 뒤범벅이 된 심정으로 심한 구토증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와 조그만 내 방에서 두서너 장의 그림을 주위에 세워놓고
간절한 내심의 동경으로 내 자신의 꿈에 몸을 맡기기까지
이러한 심정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곧 나의 꿈이, 집의 문과 문장,
어머니와 낯선 여인에 관한 나의 꿈이 다시 나타났다.
나는 그 여인의 표정을 너무나 생생히 느끼고는
당자에 그 여인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십 오 분씩 꿈속에 잠겨서 무의식중에 시간을 보낸 후
그림을 그려나가 마침내 며칠 후 그 그림이 완성되자
나는 저녁 무렵 그것을 내 방의 벽에다 붙이고
탁상용 램프를 그 앞에 옮겨다 놓고는 생사를 결판낼 때까지
싸워야 할 유령에게 대적하는 심정으로 그 그림 앞에 다가섰다.
그 얼굴은 옛날의 초상과도 닮았고 나의 친구 데미안과도 닮았으며
몇몇 표정은 내 자신과도 닮아 있었다.
한쪽 눈은 표시가 날만큼 다른 눈보다 위쪽에 붙어 있었고
눈매는 숙명에 충만된 채 내 머리 너머를 골똘히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그 그림과 마주서자 내면적인 긴장으로 가슴속까지 써늘해져 왔다.
나는 그 그림을 향해 말을 걸었고, 비난했고,
어머니라 불렀고, 애인이라보 불렀으며
매춘부이며 천한 여자라고 불렀고 또 아프락사스라고도 불렀다.

그러는 동안 피스토리우스의 말이---
혹은 데미안의 말이었던가? 언뜻 생각났다.
언제한 말인지는 기억해낼 수가 없지만
지금 이 순간 그것을 다시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야곱과 신의 천사 사이의 싸움에 관한 말로서
“그대 나를 축복치 않는다면 내 그대를 놓아주지 않으리로다”라는 것이었다.

그림 속의 얼굴은 램프의 불빛을 받으며 내가 부를 적마다 변화했다.
그것은 환하게 빛나기도 하고, 검고 어둡게 변하기도 했다.
생기없는 눈으로 창백한 눈꺼풀을 감았다가는 다시 뜨고,
그러다가는 타는 듯한 광채로 눈을 빛내기도 했다.
그 얼굴은 여자였고 동시에 남자였으며 소녀였고 조그만 아이였고 짐승이었다.
몽롱하게 반점처럼 보이다가는 다시 크고 분명하게 되기도 했다.
마지막에 나는 강력한 내부의 부름에 따라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 그림이 나의 내부에서 한결 더
강하고 힘찬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 앞에 무릎을 꿇으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자신의 내부에 너무나도 깊이 들어 있었으므로
마치 그것이 온통 내 자신이 되어버리기라도 한 것 같아서
그것을 나에게서 분리해낼 수가 없었다.

그러자 봄의 폭풍과도 같이 어둡고 무겁게 들끓는 소리가 들려왔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과 새로운 체험의 감동에 몸이 떨려왔다.
별들이 내 앞에서 명멸해갔고 잊어버린 유년 시절의, 아니,
존재 이전의 시기와 생성의 초기적 단계에까지 이르는 추억이
나의 곁을 밀치고 또 밀치면서 스쳐갔다.
내 생활의 모든 것은,
가장 은밀한 비밀에 이르기까지도 되풀이되는 것처럼 보이던 추억은,
어제와 오늘로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욱 앞선 미래를 반영하고
오늘로부터 나를 분리시켜 더 새로운 생활의 형식으로 나를 이끌어갔다.
그 형식의 형상은 굉장히 맑고 눈 부실 정도였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정확히 기억해낼 수 없었다.
깊은 잠에서 깨어보니 나는 옷을 입은 채 침대 위에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불을 켜고 중요한 걸 생각해내야 한다고 느꼈지만
몇 시간 전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나는 더듬거리며 그림을 찾았지만
그것은 이미 벽에도 걸려 있지 않았고 책상 위에도 없었다.
희미하게나마 그것을 내가 태워버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났다.
그것은 내 손바닥 위에서 태워 그 재를 먹어버린 것은 혹시 꿈이었을까?
크고 쑤시는 듯한 불안이 나를 몰아세웠다.
나는 모자를 쓰고 집과 골목 사이를
무엇엔가에 강요당하고 있는 것처럼 걸어갔다.
폭풍에 휘몰리기라도 한 것처럼
거리를 지나고 광장을 가로질러 달리고 또 달렸다.

피스토리우스의 그 음침한 교회 앞에서 귀를 기울이다가
무엇을 찾는지조차도 모르면서
어두운 충동을 감당할 길이 없어 다만 찾고 또 찾았다.
나는 매춘부들의 집이 모여 있는 교외를 통과했다.
그곳에는 아직도 여기저기 불빛이 남아 있었다.
멀리 외곽으로는 신축 가옥과 벽돌더미가 군데군데 잿빛의 눈에 뒤덮여 있었다.
마치 몽유병자처럼 낯선 압박감에 몰려 이 황량한 곳을 헤매면서
나는 문득 고향의 신축 가옥이 생각났다.
그곳은 언젠가 한 번 나의 착취자 크로머가
최초의 거래를 하기 위해 나를 끌고 들어간 곳이었다.

그와 비슷한 느낌의 집 한 채가 잿빛 어둠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문구멍이 나를 향해 꺼먼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나는 그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듯한 충격을 느꼈고
그것을 피하려다 모래와 자갈 더미에 걸려 비틀거렸다.
그러나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더 강렬했으므로
그 문을 들어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널빤지와 바스러진 벽돌을 넘어 내가 이 황막한 공간 속으로 휘청거리며 들어서자
축축한 냉기와 돌 냄새가 음산하게 코를 찔렀다.
모래 한 무더기가 마치 잿빛의 얼룩처럼 눈에 띄는 외에는
모든 것이 어둠에 묻혀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내 곁의 어둠 속에서
사람이 하나, 조그맣고 야윈 청년이 하나 유령처럼 일어섰다.
나는 그가 학교 친구인 크나우어임을 곧 알 수 있었지만
머리칼은 여전히 두려움에 곤두서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흥분한 나머지 정신이 산란해진 것 같은 어조로 그가 물었다.
“어떻게 나를 찾을 수 있었어?”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를 찾았던 게 아냐.” 나는 얼떨떨한 심정으로 말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몹시 힘들어 목소리는 생기가 없고
무거운, 얼어 붙은 것 같은 입술에서 간신히 새어나왔다.
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찾았던 게 아니라고?”
”그래, 끌려 들어온 거지. 네가 나를 불렀니? 틀림없이 네가 불렀을 거야.
도대체 넌 여기서 무얼 하는 거니? 지금은 한밤중인데.”
그는 야윈 두 팔로 나를 발작적으로 끌어안았다.
”그래, 밤이야. 곧 아침이 되겠지.
오, 싱클레어. 나를 잊고 있었던 게 아니었군! 나를 용서해줄 수 있겠지?”
’대체 무엇에 대해서?”
”아, 나는 정말 추악했었어.”

이제서야 겨우 우리가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그것이 네댓새 전이었던가?
내겐 그 일 이후에 벌써 한평생이 지난 것처럼 생각되었다.
지금에야 나는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뿐 아니라, 왜 내가 여기에 와 있는 것인지,
크나우어가 이런 위험스런 곳에서 무얼 하려고 하였는지도.
”너는 자살하려고 했었구나, 크나우어?”
그는 추위와 공포에 몸서리쳤다.
”그래, 그러려고 했어. 할 수 있었을는지는 모르지만
난 아침이 될 때까지 여기 있으려고 했어.”

나는 그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하루를 시작하려는 옅은 빛이 말할 수 없이 차갑고 냉랭하게
잿빛의 대기 속에서 희미하게 비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팔을 꼭 잡은 채 상당히 멀리까지 걸어나갔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젠 집으로 돌아가.
그리고 누구에게도 오늘 일을 말해선 안 돼!
나는 잘못 된 길을 걸었던 거야. 잘못된 길일 뿐이야!
우리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모두 돼지는 아니야.
우리들은 인간이야. 우리는 여러 신을 만들어내고
그들과 더불어 싸우고신은 우리를 축복해주는 거야.”

우리는 서로 아무 말이 없이 묵묵히 걷다가 헤어졌다.
집에 들어오자 날이 희뿌연히 새어왔다.
성○○시에서의 그 시절 동안 내가 가진 최선의 것은
피스토리우스와 함께 풍금 옆인 난로 앞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우리는 아프락사스에 관한 그리스어의 원서를 함께 읽었고,
그는 베다에서 번역된 몇 귀절을 내게 읽어주기도 했다.
나는 그에게 신성한 ‘옴’을 부르는 법도 배웠다.
그러나 그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나의 마음을 이끈 것은
그의 해박성이 아니라 그 반대의 것이었다.
나에게 유익했던 것은
내가 내 자신의 내부를 발견해내는 일이 현저히 발전된 것이었으며
내 자신의 꿈과 사상과 예감에 대한 믿음이 커진 것이었으며,
나의 내부에 어떤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일이었다.

 

피스토리우스와 나는 어떤 식으로든지 호흡이 잘 맞았다.
단지 강력하게 그를 생각하기만 하면,
언제나 그가 오거나 아니면 그의 안부가 전해지곤 했다.
나는 데미안에게 했던 것처럼
그가 내 곁에 없어도 무엇이건 그에게 물어볼 수가 있었다.
내 마음속에서 똑똑학 강렬한 사상으로 질문을 그에게 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질문에 집중되었던 내 영혼의 힘이
대답을 가지고 내 마음속으로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내가 마음속에 그렸던 것은
피스토리우스나 데미안이라는 어떤 특정 인물이 아니라,
내가 꿈에서 만나는, 내가 그렸던 그 초상이었으며
내가 강렬히 부르지 않을 수 없었던 내 영혼의 반은
남자이며 밤는 여자인 꿈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이미 단지 나의 꿈 속에서 존재하거나
종이 위에 그려진 초상으로서가 아니라
나의 내부에서 바라는 모습으로, 내 자신의 고양된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자살 미수자 크나우어는 내게 기이하고도 어떻게 보면 우스운 관계를 맺어놓았다.
내가 그에게로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그날 이후로
그는 충실한 하인이나 심지어는 개처럼 나에게 매달려서
자기의 인생을 나와 결부시키려고 애쓰면서 맹목적으로 나를 추종했다.
괴상한 질문이나 소원을 갖고 나를 찾아와서는
유령을 보여달라고 한다든가 카발라 비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내가 그러한 것에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그는 곧이듣지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내가 온갖 힘을 다 갖고 있다고 믿는 지경이었다.
한 가지 이상스런 일은 내가 내 마음속에서 엉켜져 있는 어떤 일을
풀지 않으면 안 될 때 그가 자주 나에게
기묘하고도 어리석은 질문을 가지고 찾아옴으로써
그의 변덕스런 생각이나 관심거리가
나의 문제의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때론 그가 몹시 귀찬아져서 위압적으로 쫓아버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에게 보내어진 사람이었고,
내가 그에게 준 것이 그의 마음속에서 갑절이 되어 내게 되돌아왔으며,
그 역시 내게 있어서 한 사람의 지도자이거나 길이라는 것이 깊이느껴졌다.
그가 내게 가져오는, 그가 그 속에서 자기 구제의 길을 찾는
얼빠진 책이나 저서도 당장데 깨달을 수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나에게 깨우쳐주었다.

크나우어는 후일, 감회없이 나의 길에서 떨어져나갔다.
그와는 싸움이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피스토리우스와는 싸움이 필요했다.
성○○시에서의 내 학창 시절이 끝나갈 무렵
피스토리우스와 이상야릇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평생에 한 번이나 볓 번쯤은
독실과 감사와 미덕과 아울러 갈등에 빠져드는 것을 피할 수 없는 때가 있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은 아버지와 스승으로부터 떨어져나가는 걸음을
떼어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설사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참아낼 수가 없어서 이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 순간의 고독의 쓰라림을 조금쯤은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나의 경우, 아버지와 그들의 세계 즉 유년 시절의 ‘밝은 세계’로부터
나는 맹렬한 싸움을 하며 헤어져나온 것이 아니라
서서히 거의 눈치채이지 않게 떨어져나왔고 낯설게 되어갔었다.
나는 그것이 몹시 유감스러웠고 때로 고향에 돌아가면
아주 쓰라린 심정이 되곤 하였다.
그러나 그 심정은 아주 가슴속 깊이 뼈저린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참을 수 있는 정도의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인 습관에서가 아니라
독자적인 충동에서 애정과 공경심을 바쳤을 때,
우리가 독자적인 마음으로 귀의자나 친구가 되었을 때---
만약 어느 순간에 우리 마음의 큰 부분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떠나려 한다는 것을 깨닫는 일은 쓰라리고 무서운 일이다.
그런 때는 친구와 스승에게 반발하는 모든 사상이 독이 묻은 가시를 드러내며
우리 자신의 마음을 향해서 돌아오는 법이고,
그것을 막으려는 노력에서 오는 온갖 타격은
자기의 얼굴에 정통으로 명중하는 법이다.
그때에 적절한 도덕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온 사람은
‘배신’과 ‘배은망덕’이란 단어가
창피스런 부름이나 낙인처럼 의식에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놀란 마음은 근심스러워하면서
유년 시절의 미덕의 사랑스런 골짜기로 숨어들지만 곧 이것과도 단절되어버리며
이 유대조차도 갈기갈기 찢기어져나간다는 것을 애써 믿으려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나의 내부의 어떤 감정이
피스토리우스를 그렇듯 무조건 지도자로 인정하는 것에 대해 거역하기 시작했다.
나의 청춘 시절의 가장 중요했던 몇 달간의 체험은
그와의 우정, 그리고 충고, 그의 위로, 그와의 친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를 통해서 신은 나에게 이야기를 걸어 왔던 것이었다.
그의 입을 통해 나의 꿈은 다시 나에게 돌아왔고,
해석되었고, 그리고 그 본질을 드러내었다.
그는 내 자신의 용기를 내게 주었다.
---아, 그런데 나는 지금 그에게 서서히 반항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서 너무 많은 교훈적인 부분에 대해 반감을 가졌고
그가 단지 나의 일부분만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의 관계에서 싸움이나 사소할지라도 다툼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불화나 어떤 절교의 형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사이의 환상이
무늬진 파편으로 산산조각이 난 순간이 있었다.
벌써 얼마 동안 희미한 예감으로 나를 압박하던 어떤 감정이
어느 일요일 그의 낡은 서재에서 뚜렷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난로 앞의 방바닥에 누워서 그는 그가 연구하고 있으며 그
겻에 대해 명상하고 그것의 가능한 미래에 관한 기대로
심취해 있는 비법과 종교 형식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살아감에 있어서의 중대한 일이라기보다는
단지 기묘하고 흥미로운 호사거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고,
박식의 음향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고,
지난 시대의 폐허 아래서의 고달픈 탐구의 음향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불현듯 나는 이 모든 방법에 대해,
이 비법의 예배에 대해, 이 조상 전래의 종교 형식과
그것을 재조립해 내는 일에 대해 커다란 반감을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