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도(巫女圖) /김동리(金東里)
뒤에 물러 누운 어둑어둑한 산,
앞으로 폭이 넓게 흐르는 검은 강물,
산마루로 들판으로 검은 강물 위로 모두 쏟아져 내릴 듯한 파아란 별들,
바야흐로 숨이 고비에 찬, 이슥한 밤중이다.
강가 모랫벌에 큰 차일을 치고,
차일 속엔 마을 여인들이 자욱이 앉아 무당의 시나위 가락에 취해 있다.
그녀들의 얼굴들은 분명히 슬픈 흥분과 새벽이 가까워 온 듯한 피곤에 젖어 있다.
무당은 바야흐로 청승에 자지러져 뼈도 살도 없는 혼령으로 화한 듯
가벼이 쾌잣자락을 날리며 돌아간다…….
이 그림이 그려진 것은 아버지가 장가를 들던 해라 하니,
나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기도 이전의 일이다.
우리 집은 옛날의 소위 유서 있는 가문으로,
재산과 문벌로도 떨쳤지만,
글 하는 선비란 것도 우글거렸고,
특히 진귀한 서화와 골동품으로서는 나라 안에서 손꼽힐 만큼 높이 일컬어졌었다.
그리고 이 서화와 골동품을 즐기는 취미는
아버지에서 다시 손자로 대대 가산과 함께 물려져 내려오는 가풍이기도 했다.
우리 집 살림이 탁방난 것은 아버지 때였으나,
그 즈음만 해도 아직 옛날과 다름없이 할아버지께서는 사랑에서 나그네를 겪으셨고,
그러자니 시인 묵객(詩人墨客)들이 끊일 새 없이 찾아들곤 하였다.
그 무렵이라 한다.
온종일 흙바람이 불어 뜰 앞엔 살구꽃이 터져 나오는 어느 봄날 어스름 때였다.
색다른 나그네가 대문 앞에 닿았다.
동저고리 바람에 패랭이를 쓰고 그 위에 명주 수건을 잘라맨,
나이 한 쉰 가까이 되어 뵈는,
체수도 조그만 사내가 나귀 고삐를 잡고서고,
나귀에는 열예닐곱쯤 나 뵈는,
낯빛이 몹시 파리한 소녀 하나가 안장 위에 앉아 있었다.
남자 하인과 그 상전의 따님 같아도 보였다.
그러나 이튿날 그 사내는,
“이 여아는 소인의 여식이옵는데, 그림 솜씨가 놀랍다 하기에 대감의 문전을 찾았삽내다.”
소녀는 흰 옷을 입었었고,
옷빛보다 더 새하얀 그녀의 얼굴엔 깊이 모를 슬픔이 서리어 있었다.
“아기의 이름은?”
“······.”
“나이는?”
“······.”
주인이 소녀에게 말을 건네 보았었으나,
소녀는 굵은 두 눈으로 한 번 그를 바라보았을 뿐 입을 떼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비가 대신 입을 열어,
“여식의 이름은 낭이(琅伊), 나이는 열일곱 살이옵고······.”
하더니, 목소리를 더 낮추며,
“여식은 가는귀가 좀 먹었습니다.”
했다.
주인도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사내를 보고, 며칠이든지 묵으며 소녀의 그림 솜씨를 보여 달라고 했다.
그들 아비 딸은 달포 동안이나 머물러 있으며,
그림도 그리고 자기네의 지난 이야기도 자세히 하소연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그들이 떠나는 날에,
이 불행한 아비 딸을 위하여 값진 비단과 충분한 노자를 아끼지 않았으나,
나귀 위에 앉은 가련한 소녀의 얼굴에는 올 때나 조금도 다름없는
처절한 슬픔이 서려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
······소녀가 남기고 간 그림―이것을 할아버지께서는 ‘무녀도’라 불렀지만―과 함께
내가 할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중략>
욱이가 돌아온 뒤부터 이 도깨비굴 속에는 조금씩 사람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부엌에 들어서기를 그렇게 싫어하던 낭이도 욱이를 위하여는 가끔 밥을 짓는 것이었다.
그리고 밤이면 오직 컴컴한 어둠과 별빛만이 차 있던 이 허물어져 가는 기와집 처마 끝에도
희부연 종이 등불이 고요히 걸려지곤 했다.
욱이는 모화가 아직 모화 마을에 살 때,
귀신이 지피기 전, 어떤 남자와의 사이에서 생긴 사생아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무척 총명하여 신동이란 소문까지 났으나,
근본이 워낙 미천하여 마을에서는 순조롭게 공부를 시킬 수가 없어,
그가 아홉 살 되었을 때 아는 사람의 주선으로 어느 절간에 보낸 뒤,
그 동안 한 십 년 간 까맣게 소식조차 묘연하다가 얼마 전 표연히 이 집에 나타난 것이었다.
낭이와는 말하자면 어미를 같이하는 오뉘뻘이었다.
낭이가 대여섯 살 되었을 때 그 때만 해도 아직 병으로 귀가 멀기 전이라
‘욱이,’ ‘욱이’하고 몹시 그를 따르곤 했었다.
그러던 것이 욱이가 절간으로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낭이는 자리에 눕게 되어
꼭 삼 년 동안을 시름시름 앓고 나더니,
그 길로 귀가 멀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귀가 어느 정도로 먹은지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 두 번 그의 어미를 향해 어눌하나마,
“우, 욱이 어디 가아서?”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절에 공부하러 갔다.”
“어어디, 절에?”
“지림사, 큰 절에······”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모화 자신도 사실인즉 욱이가 어느 절에 가 있는지 통 모르고 있었고,
다만 모른다고 하기가 싫어서 이렇게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대답했을 뿐이었다.
모화는 장에서 돌아와 처음 욱이를 보았을 때,
그 푸른 얼굴에 난데없는 공포의 빛이 서리며,
곧 어디로 달아날 것같이 한참 동안 어깨를 뒤틀고 허둥거리다가 말고
별안간 그 후리후리한 키에 긴 두 팔을 벌려,
흡사 무슨 큰 새가 저희 새끼를 품듯 달려들어 욱이를 안았다.
“이게 누고, 이게 누고? 아이고······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모화는 갑자기 목을 놓고 울었다.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늬가 왔나, 늬가 왔나?”
모화는 앞뒤도 살피지 않고 온 얼굴을 눈물로 씻었다.
“오마니, 오마니.”
욱이도 어미의 한 쪽 어깨에 볼을 대고 오래도록 울었다.
어미을 닮아 허리가 날씬하고 목이 가는 이 열아홉 살 난 청년은
그 동안 절간으로 어디로 외롭게 유랑해 다닌 사람 같지도 않게,
품위가 있고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낭이도 그 때에야 이 청년이 욱이인 것을 진정으로 깨닫는 모양이었다.
처음 혼자 방에 있는데,
어떤 낯선 청년이 와서 방문을 열기에 너무도 놀라고 간이 뛰어
말―표정으로도―한 마디도 못 하고 방구석에 서서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낭이는 그 어머니가 욱이를 얼싸안고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며 우는 것을 보고 어쩌면 저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낭이는 그 어머니에게도 이렇게 인정이 있다는 것을 보자
형언할 수 없는 즐거움을 깨달았다.
그러나 욱이는 며칠을 가지 않아 모화와 낭이에게 알 수 없는
이상한 수수께끼와 같은 것이 되었다.
그는 음식을 받아 놓고나, 밤에 잠을 자려고 할 때나,
또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반드시 한참 동안씩 주문(呪文) 같은 것을 외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틈틈이 품속에서 조그만 책 한 권을 꺼내어 읽곤 하는 것이었다.
낭이가 그것을 수상스레 보고 있으려니까 욱이는 그 아름다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너도 이 책을 읽어라.”
하고 그 조그만 책을 낭이 앞에 펴 보이곤 했다.
낭이는 지금까지 <심청전>이란 책을 여러 차례 두고 읽어서 국문쯤은 간신히 읽을 수 있었으므로,
욱이가 내놓은 그 조그만 책을 들여다보니,
맨 처음 껍데기에 큰 글자로 <신약 전서>란, 넉자가 똑똑히 씌어져 있었다.
<신약전서>란 생전 처음 보는 이름이다.
낭이가 알 수 없다는 듯이 욱이를 바라보자,
욱이는 또 만면에 미소를 띠며,
“너 사람을 누가 만들어낸지 아니?”
하였다.
그러나 낭이에게는 이 말이 들리지도 않았을 뿐더러,
욱이의 손짓과 얼굴 표정을 통해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이건 지금까지 생각도 해 보지 못한 어려운 말이었다.
“그럼 너 사람이 죽어서 어떻게 되는 줄은 아니?”
“······.”
“이 책에는 그런 것들이 모두 씌어져 있다.”
그러고는 손으로 몇 번이나 하늘을 가리켰다.
그리하여 낭이가 알아 들은 말이라고는 겨우 한 마디 ‘하나님’이었다.
“우리 사람을 만든 것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뿐 아니라 천지 만물을 다 만들어내셨다.
우리가 죽어서 돌아가는 곳도 하나님 전이다.”
이러한 욱이의 ‘하나님’은 며칠 지나지 않아 곧 모화의 의혹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욱이가 온 지 사흘째 되던 날,
아침밥을 받아 놓고 그가 기도를 드리려니까,
모화는,
“너 불도에도 그런 법이 있나?”
이렇게 물었다.
모화는 욱이가 그 동안 절간에 가 있다 온 줄만 믿고 있었으므로,
그가 하는 짓은 모두 불도(佛道)에 관한 일인 줄로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중략>
욱이의 몸은 머리와 목덜미와 등허리에 세 군데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욱이의 병은 이 세 군데 칼로 맞은 상처만이 아니었다.
그는 날이 갈수록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고 두 눈자위가 패어 들기 시작했다.
모화는 욱이의 병 간호에 남은 힘을 다하여
그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낮과 밤을 헤아리지 않고 뛰어갔다.
가끔 욱이를 일으켜 앉히어서 자기의 품에 안아도 주었다.
물론, 약도 쓰고 굿도 하고 주문도 외웠다.
그러나 욱이의 병은 낫지 않았다.
모화는 욱이의 병 간호에 열중한 뒤부터 굿에는 그만큼 신명이 풀린 듯하였다.
누가 굿을 청하러 와도 아들의 병을 핑계로 대개 거절을 했다.
그러자 모화의 굿이나 푸념의 반응이 이전과 같이
신령하지 않다고들 하는 사람이 하나둘씩 생기기도 했다.
이러한 즈음에, 이 고을에도 조그만 교회당이 서고 선교사가 들어왔다.
그리하여 그것은 바람에 불처럼 온 고을에 뻗쳤다.
읍내의 교회에서는 마을마다 전도대를 내보냈다.
그리하여 이 모화의 마을에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다.
<중략>
혼백이 건져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화랑이들과 작은 무당들이 몇 번이나 초망자(招亡者) 줄에 밥그릇을 달아 물 속에 던져도
밥그릇 속에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이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김씨가 초혼에 응하질 않는 모양이라 하였다.
작은 무당 하나가 초조한 낯빛으로 모화의 귀에 입을 바짝 대며,
“여태 혼백을 못 건져서 어떡해?”
하였다.
모화는 조금도 서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손수 넋대를 잡고 물가로 들어섰다.
초망자 줄을 잡은 화랑이는 넋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리저리 초혼 그릇을 물속에 굴렸다.
“일어나소 일어나소,
서른 세 살 월성 김씨 대주 부인,
방성으로 태어날 때 칠성에 복을 빌어.”
모화는 넋대로 물을 휘저으며 진정 목이 멘 소리로 혼백을 불렀다.
“꽃같이 피난 몸이 옥같이 자란 몸이,
양친 부모도 생존이요, 어린 자식 뉘어 두고,
검은 물에 뛰어들 제 용신님도 외면이라,
치마폭이 봉긋 떠서 연화대를 타단 말가,
삼단머리 흐트러져 물귀신이 되단 말가.”
모화는 넋대를 따라 점점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갔다.
옷이 물에 젖어 한 자락 몸에 휘감기고,
한 자락 물에 떠서 나부꼈다.
검은 물은 그녀의 허리를 잠그고,
가슴을 잠그고, 점점 부풀어 오른다······.
그녀는 차츰 목소리가 멀어지며 넋두리도 허황해지기 시작했다.
“가자시라 가자시라 이수중분 백로주로,
불러 주소 불러 주소 우리 성님 불러 주소,
봄철이라 이 강변에 복숭아 꽃이 피그덜랑,
소복 단장 낭이 따님 이내 소식 물어 주소,
첫 가지에 안부 묻고, 둘째 가······.”
할 즈음, 모화의 몸은 그 넋두리와 함께 물 속에 아주 잠겨 버렸다.
처음엔 쾌잣자락이 보이더니 그것마저 잠겨 버리고,
넋대만 물 위에 빙빙 돌다가 흘러내렸다.
열흘쯤 지난 뒤다.
동해변 어느 길목에서 해물 가게를 보고 있다던 체수 조그만 사내가 나귀 한 마리를 몰고 왔을 때,
그 때까지 아직 몸이 완쾌하지 못한 낭이가 퀭한 눈으로 자리에 누워 있었다.
사내는 낭이에게 흰죽을 먹이기 시작했다.
“아버으이.”
낭이는 그 아버지를 보자 이렇게 소리를 내어 불렀다.
모화의 마지막 굿이(떠돌던 예언대로) 영검을 나타냈는지
그녀의 말소리는 전에 없이 알아들을 만도 했다.
다시 열흘이 지났다.
“여기 타라.”
사내는 손으로 나귀를 가리켰다.
“······.”
낭이는 잠자코 그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나귀 위에 올라 앉았다.
그네들이 떠난 뒤엔 아무도 그 집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고,
밤이면 그 무성한 잡풀 속에서 모기들만이 떼를 지어 울었다.
-끝-
줄거리
서화와 골동품을 좋아하던 '나'의 할아버지 생존시, '나'의 집에 나그네로 들렀던 벙어리 소녀와
그녀의 아버지가 남기고 간 '무녀도'라는 그림에 담긴 내력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것에 귀신이 들어 있다고 믿으며 귀신만을 섬기는 무당인 모화는
그림을 그리는 딸 낭이와 함께 경주 집성촌의 퇴락한 집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어려서 집을 나갔던 아들 욱이가 이 집에 돌아오면서부터 모화의 삶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욱이가 신봉하는 기독교와 모화가 받드는 무속 사이에 갈등이 벌어진 것이다.
그들은 모자간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신관과 가치관 때문에 상호 용납하지 못하며,
각각 기도와 주문으로 대결하다가 마침내 모화가 성경을 불태우고,
이를 저지하려던 욱이가 칼에 찔림으로써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 뒤 마을에는 예배당이 서고,
힘을 잃게 된 모화는 예기소에서 죽은 여인의 넋을 건지는 마지막 굿판을 벌인다.
모화는 드디어 무열의 상태에서 춤을 추다가 물 속에 잠기고,
낭이는 그를 데리러 온 아버지를 따라 어디론가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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