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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창녀의 죽음 1 김성종

오늘의 쉼터 2011. 5. 4. 10:39

 

[추리소설]어느 창녀의 죽음 1 김성종

 

 

[이 이야기는 종로 사창가가 폐지되기 전에 일어났던 한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 것이다]

 

 

1부

1969년 1월은 유난히 추웠다.
그 겨울 어느 월요일 새벽이었다. 신문 배달 소년 하나가 돈화문 앞을 지나다가
가로수 밑에서 눈에 덮인 희끄무래한 무터기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사람의 형상을 닮은 그것은 소년을 섬뜩하게 했다.

 그러나 그 또래의 호기심에 끌려 놈은 그것을 한번 툭 걷어차 보았다.

쌓인 눈이 그의 발등에 부딪치며 흩어 졌다.
나타난 것은 양말도 없이 흰 고무신만을 신은 여자의 발이었다.

그것은 새벽의 눈빛 속에서 선명하게 굳어 있었다.

소년은 두세 걸음 뒤로 물러서다가 「아!」하고 소리치면서 온 길을 되돌아 재빨리 뛰기 시작했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거리에는 한참 간격으로 질주하는 차량만 있을 뿐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소년의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이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인의 시체를 일단 흔히 있을 수 있는

대수롭지 않은 변사체(變死體)로 보고, 간단하게 일건 서류를 작성했다.

그 가운데 신체상으로 나타난 것 중 중요한 것은 대강 다음과 같았다

① 연령 25세 정도.
② 사망 시간 7시간 전(6시50분 현재).
③ 음부(陰部)가 심히 헐어 있음.
④ 약물 중독으로 인한 사망으로 사료됨.

과장(課長) 옆에 다가서서 사건 서류를 잠깐 넘겨다본

오 형사(吳fIJ事)는 남은 담배꽁초에 불을 붙여 물고 밖으로 나왔다.

시계를 보니 7시40분이었다
밤새 야근을 한 탓인지 그의 몸은 축 늘어진 모습이었다.

요즈음 들어서 그는 갑자기 자신의 육체에 대해서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앉아 있을 때나 서 있을 때나 피로는 항상 그의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었다.

그는 경찰서 뒤뜰로 천천히 걸어갔다.

 뒤뜰에는 적어도 매일 한 구(具) 정도의 변사체가 운반되어 오곤 했는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그는 거기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버릇이 있었다.
시체가 들어와 간단한 조사와 검시가 끝나면 이윽고 그것은 시(市) 관리의 시체실로 옮겨져

며칠 동안 주인을 기다리다가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곧장 화장터로 가든가

아니면 대학병원에 염가로 팔려 실험대 위에 오르게 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시체를 다루는 사람들의 솜씨는 언제나 익숙해 보였다.

그리고 그 표정들은 메마를 대로 메말라 감정
이라곤 털끝만큼도 없는 것 같았다.

 

대개 이러한 일들은 아침 일찍 일어났고,

일이 끝나면 그들은 흡사 먼지를 털듯이 요란스럽게 해장국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시체는 가마니에 덮인 채 뒤뜰의 담 밑에 버려져 있었다.

가마니 끝으로 빠져 나온 여자의 조그만 두 발을 보자

그는 그것들을 쓰다듬어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두 발은 누가 양말이며 신발을 벗겨 가 버렸는지 모두 맨발이었다.
여기 들어오는 시체들은 언제 보아도 이렇게 하나같이 맨발이었다.

아마 시체를 나르는 인부들의 장난일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눈이 아직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가마니 위에는 벌써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신문팔이 소년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온 것은 두 시간쯤 전이었다.

그동안 검시의(檢屍醫)가 다녀갔고, 몇몇 동료가 화장실에 들렸다가
한 번씩 뒤뜰을 거쳐 나오면서 시체 주위에 침을 뱉고,

아침부터 기분을 잡쳤다는 투로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기름 바른 머리에 금빛 로이드 안경을 끼고 바쁜 듯이 나타나는 검시의라는 작자는

종로 사창가에 산부인과 성병(性病) 전문의 병원을 차리고 있는데,

 어떤 연유로 그자가 시체 1구당 5천 원의 검시료를 받는 전문 검시의로

천되었는지는 몰라도 벌써 오래 전부터 이 K경찰서에 출입하고있었다.

창녀를 상대로 해서 막대한 돈을 벌고 경찰서 간부들과 두터운 친분을 맺고 있는

그 검시의를 오 형사는 매우 싫어했다.

결국 그런 의식을 가진 자들이 잘먹고 잘산다는 사실에 이르러서는 증오감마저 일곤 했다.
그는 가마니 끝을 들어올리고 죽은 여자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얼굴을 반쯤 덮은 숱이 많은 그녀의 머리칼은 죽은 사람 같지 않게 그 결이 곱고 부드러워 보였다.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가라앉은 얼굴은 머리칼에 덮인 탓인지 인형처럼 단순하고 작은 모습이었다. 콧등과 뺨 위에 뿌려져 있는 몇 개의 주근깨가 불현듯 그에게 서글픈 친근감을 안겨주었다.

온 얼굴에 흡사 해진 피부처럼 늘어붙은 값싼 화장기만 없었더라도 이러한 감정은 좀 덜했을

것이다.

화장은 눈 주위, 특히 눈두덩 위에 가장 많이 몰려 있어서,

얼른 보기엔 진보랏빛의 부스럼 딱지 같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것은 잘못된 눈 수술을 가리기 위하여 거기에 유난히 정성을 들인 것이었다.

그 두터운 화장기 밑에는 양쪽 모두 성형수술의 부작용이 가져온 상처가 그대로 굳어 있었다.

아마 소녀는 쌍꺼풀 수술을 했던 것 같았다.

그는 가마니를 더 젖혀 보았다.

소녀는 빨간 털 셔츠에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소녀의 몸은 얼굴에 비해서 전체적으로 큰 편이었으나 몹시 말라 있었다.

늙은이처럼 앙상한 손이 배 위에 놓여있었는데 흰 눈 때문인지 다섯 개의 긴 손톱에 칠해진

매니큐어 빛이 유난히 빨갛게 돋아 보였다.

그것은 죽은 후에 칠해진 것처럼 매우 생경해 보였고,

한편으로는 죽은 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최후의 감정,

끝없이 굴러 떨어져 버린 고독과 주검의 찌꺼기 같기도 했다.

그가 가마니를 막 덮었을 때 검은 가죽잠바의 청년 하나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뭘 그렇게 열심히 들여다보세요?」

청년은 기분 좋게 웃으면서 구두 끝으로 가마니를 휙 젖혔다.

청년은 서(暑)에서 필요할 때마다 부르고 있는 카메라맨이었다.

「하, 요건 제법 예쁜데…… 자살입니까?」

「아직 몰라.」

오 형사가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청년은 더 묻지 않고 카메라를 시체의 얼굴 위로 가까이 가져갔다.

그는 시체를 여러 각도에서 찍었다.

「오늘 오전 중으로 뽑아 줄 수 있겠어?」

「그렇게는 안됩니다. 일이 밀려서요…….」

청년은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엄살 떨지 말고 빨리 좀 뽑도록 해. 급한 거니까…… 열한시에 내가 그 쪽으로 가지.」

뒤뜰을 돌아 나오면서 오 형사는 죽은 소녀와 친해져 보고 싶은 막연한 기분을 느꼈다.

오늘이 마침 비번(非番)이었기 때문에 그로서는

그녀의 신원을 조사해 볼 수 있는 시간도 좀 있었다.

수사과의 말단 형사로서 언제나 일선 수사에 임하고 있는

그에게는 종종 가슴을 치게 하는 살인사건들이 걸려들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 그는 사건 속에 깊이 파고 들어가서 들개처럼

그것을 갈가리 물어뜯어 놓는 버릇이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죽은 사람을 어느 누구보다도 충실히 이해하려 들었고,

그러는 동안 어느새 그와 피살자는 하나의 두터운 묵계 속에서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한 덩어리가 되어 움직이곤 했다.

오 형사는 경찰서를 나오는 길로 곧장 해장국집으로 갔다.

작년 봄에 아내를 잃은 그는 현재 잠자리와 먹는 것이 퍽 불안정했다.

때문에 그를 딱하게 여긴 주위 사람들이 재혼을 권하기도 했지만,

그는 아직 그럴 마음이 나지 않았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그는 죽은 아내에게 미안했던 것이다.

첫아이를 낳다가 핏덩이와 함께 죽은 아내인 만큼 가엾고 불쌍한 생각이

좀체로 가셔지지가 않았다.

 

그래서인지 방안에는 아직도 아내의 향기와 목소리가 진하게 남아 있었다.

 

 



2부

 

 

그러나 저러나 35세의 사나이가 홀로 자취를 한다는 사실은,

그리고 그러한 상태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정말 고적(孤寂)하고 불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해장국집에서 대강 식사를 마친 그는 경찰서로 돌아와 죽은 여자에 대한 서류를

다시 한 번 자세히 검토했다.

음부가 심히 헐어 있고 손톱에 짙은 매니큐어를 했다는 점,

그리고 약물 중독에 의한 사망이라는 사실 등이

그에게 수사범위를 어느 정도 좁혀 주는 것 같았다.

전혀 엉뚱한 경우도 더러 있긴 하지만 대부분

그 차림만으로 변사체의 신분은 밝혀지기 마련이다.

그는 그 여자를 술집 작부 쪽보다는 창녀 쪽으로 더 생각해 보고 싶었다.

사창가에서 창녀의 시체가 발견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사인(死因)이라는 것이 거의가 타살이 아니면 자살이었다.

창녀들이 자신의 신세와 성병에 견디다 못해 젊은 목숨을 끊어 버린다든가,

사창가의 기생충들, 이를테면 포주나 펨프(뚜쟁이),

또는 깡패들에게 얻어맞아 죽는 것 따위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가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사창가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그 산부인과와 성병 전문의 병원이었다.

금테 로이드 안경의 그 검시의는 오 형사를 보자,

「어이구, 웬일이십니까? 여길 다 오시구…….」

하고 호들갑을 떨면서 커피와 담배를 권했다.

그러나 그 안경 뒤에는 조그맣고 날카로운 눈초리가 이 불청객의

속셈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려는 듯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거기에는 바로 잘못 틈을 보이다가 의외로 많은 돈을 뜯길지도 모른다는,

그 구역질나는 경계의식이 잔뜩 깔려 있었다.

그것을 보자 오 형사는 검시의를 만나러 온 것을 후회했다.

「다름이 아니라…….」

입을 열면서 보니 검시의는 몸을 꼿꼿이 하고 있었다.

「수고스럽겠지만 검시를 다시 한 번 해 주셨으면 하고요.」

「아니, 왜, 어떻게 됐습니까?」

검시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이 친구가 진정으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어서 일부러 뚱딴지같은 수작을 거는 건지

얼른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는 투였다.

「어떻게 된 게 아니고…… 검시를 좀 자세히 해 주셨으면 하고요.」

오 형사의 조용하고 분명한 말씨에 상대는 갑자기 정신이 든 듯이 자리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안경을 벗어 가운 자락에 닦으며,

「어떻게 더 자세히 하라는 건가요? 뱃속에 들은 것까지 다 조사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하고 말했다.

「할 수 있다면 그런 것까지도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허 참. 그 정도의 검시가 필요하다면 연구소(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해 보시지 그래요.」

「네, 그게 가장 무난하겠지요. 하지만 여기서 해 볼 수 있는데 까지는 해 봐야지요.」

「저로서는 검시를 부탁받을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이상 더 어떻게 하라는 건지 이해가 잘 안되는데요. 잘 아시겠지만

   시체를 한 번씩 만지고 나면 하루 종일 밥맛이 떨어집니다.

   보기는 쉬운 것 같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돈이나 많이 받고 한다면 또 몰라도…….」

더 이상 부탁해 본들 소용없는 일이었다.

거듭 오 형사는 난처함을 느꼈다.

그는 조금 생각해 보다가 별로 기대하지도 않으면서 물었다.

「무리한 부탁이라면 그만두겠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오셨을 때 검시 결과에

   대해서 혹시 기록에서 빼먹거나 묵살해 버린 점이 없었는지,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그런 건 없었습니다.」

검시의는 살찐 턱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면서 잘라 말했다.

「음독 같다고 했는데…… 무슨 약을 먹었나요?」

「세코날입니다. 그런데 그 시체로부터 뭐 이상한 거라도 발견했나요?

   다른 땐 그렇지 않았는데 이번엔 유난히 관심을 보이시니…….」

사나이는 비꼬는 투로 말끝을 흐렸다.

「……직업이 그런 거니까요. 타살된 흔적은 조금도 없었나요?」

「없었어요. 음독자살이라니까요. 신중히 생각해 보는 건 좋지만,

   그 때문에 쓸데없이 헛수고를 한다면 우스운 일이죠.」

오 형사는 뜨거워 오는 숨결을 삼키면서 또 물었다.

「그 여자에게 성병 같은 것은 없었나요?」

이 질문에 검시의는 똑바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건 정밀한 검사가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거기가 다 헐어 있을 정도였으니까 남자 관계가 많았었던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까 성병이 있을 가능성도 있군요.」

「혹시 과거에…… 그 죽은 여자를 본 적은 없나요?」

「제가요?」

검시의는 놀라서 큰소리로 물었다.

「네, 바로…….」

「원,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제가 어떻게 그런 여자를 알 수가 있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제 말은 이 병원에서 성병을 전문으로 치료하니까

   혹시 환자로서 그 죽은 여자가 이곳을 찾아온 적이 없나 해서 그렇게

   물어 본 것이지 다른 뜻은 없어요. 여기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여자라면

   신분을 알아내기가 쉬우니까요. 그리고 이 근방에서 이 병원에 제일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니까.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보기와는 달리 단골 손님들 외에는 별로 손님이 없습니다.

   그래서 손님들의 얼굴은 모두 기억하고 있는데 도대체 그런 여자는 본 적이 없어요.」

「그렇다면…… 잘 알겠는데…… 무슨 성형수술을 한 자리 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있었습니다. 눈에 수술을 했더군요.」




3부

 

 

「왜 그런 것은 검시 기록에서 뺐죠?」

「별로 쓸데없는 것들이라 그랬습니다.」

「아니죠. 그건 잘못 생각하신 건데요. 기록이란 건 자세할수록 도움이 되는 것이거든요.

   앞으론 검시하실 때 이점을 유의해주셔 야겠어요.」

오 형사가 말을 끊고 일어서려고 하자 검시의는 재빨리 봉투하나를 그의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이러지 마세요. 정말 싫습니다.」

그는 검시의의 손을 완강히 뿌리치면서 봉투를 도로 내놓았다.

어디를 가나 이렇게 돈이 든 봉투를 슬그머니 찔러 주는 것이 유행으로 되어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경찰직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일곤 했다.


눈이 그쳤다가 오후에 들어서면서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함박눈 때문인지 사람들은 갑자기 거리로 쏟아져 나온 듯이 보였다

그들은 유쾌하게 웃으면서 거리를 휩쓸고 있었다.

점심으로 국수 한 그릇을 들고 난 오 형사는 종로 3가 일대에서

성형(成形)과 성병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들을 찾아 하나하나 점검해 나갔다.

사진관에서 찾은 변시체의 사진은 모두 다섯 장이었는데,

제대로 선명하게 나온 것이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얼굴을 정면으로 찍은 것이라 해도 시체가 눈을 감고 있기 때문에

사진만 가지고 신원을 찾는다는 것은 쉬울 것 같지가 않았다.

아닌게 아니라 시체의 사진을 본 의사들은 터무니없는 짓 하지도 말라는 듯이

고개를 설설 내둘렀다.

장난기가 있는 어느 성병 전문의 의사는 이런 말까지 했다.

「우린 말입니다…… 환자들의 얼굴보다는 하복부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밑을 보면 누군지 알 수가 있어도 위에 붙은 얼굴을 보고는 좀체로 기억을 못해요. 미안합니다.」

망할 자식들 같으니라구.

오 형사는 홧김에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내친 걸음을 되돌리기가 거북스러웠다.

종로 3가 일대에서 성형과 성병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병원들은 상당수 되었다.

그러나 모두 훑어보았지만 조그만 단서 하나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기분만 잡치고 보니 그는 여간 허탈감이드는게 아니었다.

그는 양장점 앞을 지나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진열장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몰골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진열장 안에 걸려 있는 몹시 비싸 보이는 여자용 밤색 털 오버 속에는 부쩍 마른 사내 하나가

눈송이를 허옇게 뒤집어쓴 채 잔뜩 움츠리고 서 있었다.

턱 주위를 거무스레하게 감싸고 있는 수염과 앙상하게 튀어나온 광대뼈.

그리고 불안하게 치떠 있는 두 개의 큰 눈동자가 영락없이 사흘 굶은 실업자의 모습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눈이 아프고 하루 낮을 꼬박 잠으로 보내야만 겨우 피로가 풀리곤 하는데

그는 아직 낮잠을 한숨도 자지 못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3시가 지나 있었다

저녁 출근까지는 이제 겨우 두 시간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므로

변두리에 위치한 집에까지 가서 낮잠을 잘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바로 본서(本署)로 향했다.

 

연말 연시로 접어들면서 각종 범죄 사건이 우글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서 안은 흡사 장터처럼 붐비고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눈에 핏발을 세운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오 형사는 그 검은 제복, 검은 잠바, 검은 구두의 혼잡을 뚫고 숙직실로 들어갔다.

텅 빈 방안에는 낡은 담요 몇 장과 때묻은 베개들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누가 갖다 놓은 것인지 맞은편 벽에는 새해 달력이 하나 걸려 있었다.

달력에 눈요기로 박아놓은 수영복 차림의 아름다운 여배우 사진이 침침한 실내에

빛을 뿌리고 있었다.

오 형사는 여자의 육체를 생각하면서 달력을 바라보고 있다가 곧 잠이 들었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고, 갑자기 담요를 걷어차고, 휙 돌아눕고, 한숨을 깊이 내쉬고,

허리를 꺾어 깊이 웅크리고, 마침내 소리를 지르기까지 하면서 잠을 자고 있었다.

「이봐, 이봐, 무슨 잠을 그렇게 자는 거야?」

엉덩이를 걷어차이는 바람에 오 형사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방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창문은 어두웠다.

시계를 보니 여섯시가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자면서 헛소리를 하는 거 보니까 너도 죽을 때가 다 된 모양이구나.」

살이 쪄서 헛배까지 나오기 시작한 동료 김 형사가 그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내가 헛소리를?」

오 형사는 괜히 놀란 체하며 물었다.

「그래, 화장실에 가는데 여기서 괴상한 소리가 들려 오지 않아.

   여자가 애기 낳는 소리 같은 거 말이야. 그래서 들어와 보니까

   네가 혼자서 고생하고 있지 않겠나.」

「뭐라고 헛소리를 해?」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 뭐라더라…… 아, 살기 싫다, 그러던가…… 하하.」

경찰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고,

그래서 결국 그 뜻을 이루어 만족스러운 상태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김 형사는 이상할 정도로 몸을 흔들면서 웃었다.

「그만 웃고 담배나 하나 줘.」

오 형사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말했다.

숙면을 못한 탓인지 머리는 더욱 무겁기만 했다.

「이봐, 내가 살 테니까 저녁이나 먹으러 가지.」

김 형사가 담배를 내주면서 말했다.

오 형사는 수사과에 들어가 출근부에 도장을 찍은 다음 김 형사를 따라 나섰다.

경찰서 정문을 나오기 전에 그는 잠깐 뒤뜰로 돌아가 보았다.

눈은 그쳐 있었지만 발목이 푹 빠질 정도로 쌓여 있었다.

여자의 시체는 아직 담 밑에 버려져 있었기 때문에 아침에 보았을 때와는 달리

이젠 손 닿을 수 없는 먼 곳으로 가버린 느낌이었다.

그는 눈을 헤치고 여자의 발끝이라도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다.

「하. 이 친구, 재수 없게 그건 왜 쳐다보고 있는 거야?」

김 형사가 뒤에서 어깨를 잡아 제쳤기 때문에 그는 몸을 돌이켰다.

그들은 경찰서 뒤쪽에 있는 한식집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경찰 동기생이었는데,

오 형사는 김 형사를 가까운 친구로 생각한 적이 없으면서도 곧잘 어울려 다녔다.

그것은 이를테면 일상생활의 잔 부스러기와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김 형사는 만족하게 웃으면서 돈 걱정은 하지말고 충분히 먹으라고 했지만.

오 형사는 식사를 반쯤 하다가 그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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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자신의 식욕이 언제나 이렇게 좋지 않기 때문에

그는 언젠가는 자신이 큰 병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왜 안 먹나? 술이나 마실까?」

김 형사의 얼굴에는 일부러 우정을 과시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오 형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술 마실 돈 있으면 네 마누라한테나 갖다 줘.」

「누가 몰라서 안 갖다 주나.」

「그림, 뭐야?」

「돈이 생길 때마다 제때 제때 상납하면 버릇만 나빠진단 말이야.」

「하하, 그럴지도 모르겠군.」

오 형사는 자신의 웃음이 허황하게 터지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김 형사가 무안했던지 조금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사실은 오늘 돈이 좀 생겼거든

   또 얻어 터질까봐 너한텐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사실 못 받을 돈도 아니었어.」

오 형사는 웃음을 거두고 식어빠진 국그릇을 젓가락으로 휘저었다.

 

 

그는 자기를 가까운 친구로 알고 부정(不正)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는 뜻으로 해명하려고 드는 동료 경찰관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백만 원 날치기를 해결해 주었어 그것 때문에 사흘이나 뛰었는데 수고료쯤…….」

「그만해둬.」

「듣기 싫을 거야. 돈 좀 빌려 줄까?」

「괜찮아.」

「넌 묘한 데가 있어. 이해를 못하겠거든, 알 것 같으면서도…….」

김 형사가 초조하게 그를 바라보았지만 오 형사는 대꾸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김 형사가 그를 건방진 놈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신통치 않다고 판단할 것이고,

 

결국 그에게서 멀어질 거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가급적이면 김 형사에게 그런 판단이 빨리 찾아들기를 그는 바라고 있었다.

 

비슷하게 생긴 얼굴들과 거듭 친교를 맺어 가며 산다는 것이 그에게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전혀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가 오히려 안정감이 더했다.

「여자 생각 안 나?」

김 형사는 고깃덩어리를 입 속에 넣으며 물었다.

「뭐. 별루…….」

「저 보라구. 혼자 살면서 여자 생각이 안 난다니 이상해.

   난…… 마누라가 있는데도 오입 안하곤 못 배기는데…….」

「넌 정력이 왕성하니까.」

「흐흐, 젊을 때 많이 해야지. 그런데…… 너 아까 왜 거기 가서 그걸 봤지?」

「뭐 말이야?」

오 형사는 기분이 언짢아지면서 물었다.

「죽은 여자 말이야.」

「아. 그건…… 궁금해서 가 본 거지.」

「궁금하다니?」

김 형사의 눈이 번쩍했다.

 

 

그것을 보자 오 형사는 자신이 아침부터 한 사건에 빠져 있었음을 깨달았다.

「사람이 죽었으니까…… 궁금한 거지.」

「죽었으면 그것으로 끝난 거지, 궁금하긴 젠장.」

김 형사는 다시 고깃덩어리를 하나 입 속에 집어넣었다.

「참, 이 사진인데…… 본 적 있나?」

오 형사는 호주머니에서 죽은 여자의 사진을 꺼내어 김 형사에게 보였다.

김 형사는 사진을 한 장 한 장 훑어보고 나서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겠는걸. 왜, 무슨 냄새라도 맡았나? 지시 사항인가? 타살이야?」

김 형사는 턱을 내밀면서 한꺼번에 물어 왔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지시 받은 것도 아니고……

 

 

   검시의의 보고로는 타살도 아닌 것 같아.

 

 

   그렇지만 아직 모르지. 단정은 금물이니까.」

「거 어쩌자고 시키지도 않은 일을 억지로 만들어 가지고 그러는 거야?」

「이유는 없어. 물론 그대로 내버려두면 시체야 규정대로 처리되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너무 억울해.」

「뭐가 억울해?」

「그렇게 연고자도 없이 죽어 간 사람들 말이야.」

「이런, 제길…… 죽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그렇게 따지다간 한정이 없어.

 

 

   살인사건도 처리 못해서 밀리는 판에 그런 데까지 일일이 신경을 쓰다간 모두 미치고 말 거야.」
 


「하긴 그래. 모른체 해버리면 사실 모든게 별것 아니지

   그렇지만 가끔 가다 무시하기 힘든 것들이 있어.

   오늘 들어온 여자 시체가 그래. 할말이 많은 여자였던 것 같아.」

오 형사는 자신의 말이 허황하게 들리는 것을 느꼈다.

아닌게 아니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김 형사는 숨가쁘게 웃어 제꼈다.

 

 

그는 한참 후에 헐떡거리면서 말했다.

「역시 넌 다른 데가 있어.

   너 같은 친구가 경찰관이 되었다는 게 이상한 일이야.

   내 생각엔 넌 학교 선생이나 하면 좋을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입을 다물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5부

 


불자동차가 사이렌을 울리면서 미아리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함께 그것을 바라보다가 동시에 서로 마주보았다.

오 형사가 사진을 내밀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부탁이 있어. 담당 구역이니까

   창녀들 중에 이런 여자가 있었는지 알아봐 줘.

   일부러 시간을 낼 필요는 없고…….」

「그 여자가 창녀 출신이라는 건 어떻게 알아?」

김 형사가 의아한 시선을 던져 왔다.

쇼 윈도의 불빛을 받은 탓인지 그의 얼굴은 좀 상기되어 있었다.

「창녀 출신이라고 단정하는 게 아니고,

검시 보고서를 보니까 그럴 가능성이 많아서 그러는 거야,

거기가 헐 정도로 남자 관계가 많았던 여자니까 하는 말이야.」

「부탁하는 거니까 알아보긴 하겠지만 기대하지는 마.

신경 쓸 일도 아닌데 자꾸 그러면 몸에 해롭다구.」

돌아서 가는 김 형사의 뒷모습을 그는 씁쓸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길게 이어진 담뱃재가 입술 끝에서 꺾어지면서 그의 턱 밑으로 부서져 내렸다.

어둠과 빛 사이로 문득문득 출몰하는 행인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모두 걸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 형사는 그들과 부딪칠 것이 두려워서 한 쪽 벽에 붙어 서서 경찰서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이튿날은 김 형사로부터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오 형사 자신도 그것을 크게 기대한 바도 아니었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무거운 기분으로나마 어제 있었던 일로부터 관심을 돌릴 수가 있었다.

사실 그는 일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에 김 형사의 말대로 상관의 지시도 받은 바 없이

 변시체의 신원 따위나 조사하고 다닐 만큼 그렇게 한가한 입장이 못되었다.

오후 늦게 그가 창문으로 넘겨다보니 뒤뜰의 그 여자 시체는 이미 치워지고 없었고,

대신 그 자리에는 형체가 큰 남자 시체 하나가 새로 놓여 있었다.

3일째 되는 날, 그러니까 수요일 아침,

오 형사는 커피를 한잔 마시기 위하여 본서 서원들이 단골로 출입하고 있는 부근 다방에 나갔다.

갑자기 밀어닥친 한파(峯波)로 눈이 얼어붙는 바람에 길이 아주 미끄러웠다.

다방 안으로 막 들어서자 마침 레지 하나를 붙잡고 노닥거리고 있던 김 형사가

이쪽으로 손을 번쩍 쳐들어 보였다

그가 다가가서 앉자 김 형사는,

「왜 면도도 하진 않고 그 꼴이야.」

하고 말했다.

「만사가 귀찮다. 아가씨, 커피나 한 잔 가져와.」

오 형사는 스커트 밑으로 드러난 레지의 허벅지를 황홀한 듯이 바라보았다.

「네 눈초리를 보니까 꼭 굶주린 늑대 같다. 야.」

「정말 요즘은 괴롭다.」

오 형사는 엉덩이를 흔들면서 주방 쪽으로 가고 있는 레지를 다시 멀거니 바라보았다.

「새장가를 가면 되지 않아?」

「싫어.」

「왜?」

김 형사가 허리를 앞으로 굽혀 왔다.

「그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자신이 있어야 돼 난 말이야, 자신도 없고…….」

그의 말에 김 형사는 실내가 떠나가도록 웃었다.

오 형사는 커피를 마시면서 자기의 말이 사실 엉터리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거, 부탁한 거 말이야…….」

김 형사는 웃다가 흘러내린 콧물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말했다.

「알아 봤어?」

오 형사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알아 봤는데 신통치가 않아.

   단성사 골목으로 쑥 들어가다 보면 군고구마 장사를 하는 늙은이가 하나 있는데…….」

「늙은이라니 무슨 말투가 그래.」

「아, 그런가. 그 노인한테 사진을 보였더니

   아는 체를 하는데 정확한 말은 피하더군

   바빠서 더 이상 못 알아봤는데 거기 가서 다시 한 번 물어 봐.」

「수고 많았어. 차 값은 내가 내지.」

오 형사는 김 형사가 내주는 사진을 받아들고 벌떡 일어섰다.

「아니, 이 양반이 돌았나?  벌써 가는 거야?」

김 형사가 앉은 채로 눈이 휘둥그래져서 그를 바라보았다.

다방을 나온 오 형사는 곧장 단성사 쪽으로 걸어갔다.

종로 일대를 몇 년 동안 돌아다닌 그였지만 종3의 사창가만은

언제나 그에게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그곳 출입을 꺼려했고, 

그래서 그 지역이 그의 담당 구역으로 배정될 때면 가능한 한 변경 신청을 내곤 했었다.

아직 미혼이었던 몇 년 전. 그러니까

그가 경찰관이 된 직후 그는 종3의 사창가를 지나다가 남자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관계를 맺은 적이 있었다.

창녀가 우왁스럽게 움켜쥐고 끌어당기는 바람에 방안에까지

멍청하게 끌려들어간 그는 당당하게 체위(體位)를 갖춘 그녀가 손수

그를 끌어내려 배 위에 태울 때까지도 부끄럽고 죄스럽고 무서울 뿐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을 치르고 밖으로 헐레벌떡 뛰어나온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소름끼치는 구토와 허탈뿐이었다.

그는 창녀의 얼굴을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 대신 그의 머리에는 머리 가죽이 드러나 보일 만큼 숱이 적은 머리칼과

나병 환자처럼 거칠고 반점이 있는 피부,

그리고 검게 썩은 늪 속으로 돌연 그의 남근을 집어삼키던 보랏빛의 혓바닥만이

생생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는 즉시 임질에 걸려 몇 달 동안이나 병원 출입을 해야 했고,

그로 인한 고통은 치료 후에도 오랫동안 그를 괴롭혀 주었다.

무엇보다도 치료 기간 동안 지출된 그 많은 비용이 모두 빛을 얻어 쓴 것이었으므로

그것을 갚느라고 그는 그의 박봉을 꼬박꼬박 털어놓아야 했던 것이다.

 이유라고 친다면 좀 어설프겠지만. 아무튼 이런 과오로 해서 사창가에 대한

그의 감상은 지긋지긋하다는 것 외에는 달리 할말이 없었다.

그러니 그가 그 일대를 꺼려한 것은 당연했다.

오 형사는 어깨에 힘을 주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6부

 

 

폭 4미터 정도의 골목에는 입구부터 각종 장사꾼들이 판을 벌여 놓고 있어서

몹시 비좁아 보였고, 생존의 구차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골목은 직선으로 뻗으면서 도중에 왼쪽으로 여러 갈래씩 뻗어 나가고 있었다.

 전주 주변마다 누우런 오줌이 얼어붙어 있는 것을 보고 오 형사는 자신도

그 자유스러움에 참가하여한 번쯤 실컷 소변을 보고 싶었다.
아침인데도 여자 하나가 그의 팔을 끌었다.

「놀다 가세요.」

하고 창녀는 말했다.

껍질처럼 붙어 있는 흰 화장기와 피곤에 절은 두 눈빛이 핏빛 입술과 함께

그의 앞길을 완강하게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으스스 추위를 느끼면서 얼떨결에 여자를 밀어 버렸다.

여자는 힘없이 벽에 부딪히면서 쓰러질 듯하다가 가까스로 몸을 가누면서 그를 노려보았다.

「야. 이 개새끼야.」

여자는 숨을 가다듬은 다음 다시 소리를 질렀다.

「똥이나 퍼먹어라.」

오 형사는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걸어갔다.

왠지 창녀의 욕지거리가 허망하게 들릴 뿐 불쾌하지가 않았다.

그로서는 자신이 경찰관 냄새를 피우지 않는다는 것이 기분 좋게 여겨졌다.

사실 감추려고 하는데도 냄새가 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김 형사의 말대로 골목 중간쯤에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고구마를 굽고 있었다.

노인은 몹시 추운지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두 팔로 불이 들어 있는 드럼통을 껴안고 있었다.

좀체로 움직이기 싫은 듯이 그렇게 고정되어 있는 노인의 모습을 보자

어쩐지 그는 선뜻 다가서기가 민망스러웠다.

기척을 느끼고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엇갈린 시선이 표정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노인은 둥근 눈의 사팔뜨기였다.

그 위에 유난히 깊이 파인 두 개의 주름이 이마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고구마 하나 먹을까요?」

오 형사의 말에 노인은 묵묵히 드럼통 뚜껑을 열었다.

오 형사는 그 속에서 주먹만한 것을 집어내어 껍질을 벗겼다.
아직 아침 식사를 하지 않은 그는 오랜만에 그것을 맛있게 먹을 수가 있었다.

마침 나이 어린 창녀 하나가 맞은편에서 그의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 줄까 하고 생각하다가 그는 그대로 묵살해 버리고 두 번째 고구마를 입 속에 처넣었다.

그리고 다섯 개를 더 골라 낸 그는 노인에게 그것을 모두 봉투에 넣어 달라고 부탁했다.

노인은 잠깐 주춤하다가 역시 묵묵히 손을 움직였다.

크고 억세 보이는 노인의 턱은 좀체로 움직일 것 같지가 않았다.

봉투를 받아 든 오 형사는 노인에게 사진을 내밀었다.

「이런 여자 모르십니까?」

다섯 장을 모두 유심히 보고 난 노인은 초조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시선은 엉뚱한 방향으로 빗나가고 있었다.

「이런 여자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의 다그쳐 묻는 말에 노인은 여전히 대답이 없이 눈만 굴리고 있었다.

크고 두터운 입술이 움찔거리는 것을 오 형사는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노인은 생각해 보는 듯하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 킥킥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 왔다

오 형사는 담 벽에 기대어 서있는 어린 창녀를 쏘아보았다.

「벙어리예요.」

창녀는 킥킥거리며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오 형사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동시에 그에게 한 마디의 언질도 주지 않았던 김 형사의 처사가 고약스럽게 생각되었다.

그가 맥이 빠져 돌아서려고 하자

노인이 갑자기 그의 팔을 나꿔채면서 어린 창녀를 손으로 가리켰다.

오 형사는 노인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곧 창녀에게,「너 몇 살이니?」

소녀는 대답 대신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사람들이 그들 남녀를 힐끗힐끗 바라보며 지나가는 바람에 오 형사는 창피한 생각마저 들었다.

「제 방 따뜻해요. 놀다 가세요.」

어린 창녀가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몹시 추운지 솜털이 귀뿌리와 뺨에서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뿌리쳤다.

「까불지마. 나 경찰이야. 너 이 여자 알지?」

그는 어린 창녀에게 사진을 내밀었다.

그녀는 금방 겁먹은 시선으로 그를 찬찬히 바라보다가 머뭇거리며 사진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아, 이 여자, 죽었네요?」

창녀의 두 눈이 크게 확대되는 것을 오 형사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 여자 정말 죽었어요?」

어린 창녀는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죽었어. 잘 아는 사이야?」

「잘 몰라요.」

「그러지 말고 아는 대로 말해 봐. 자, 이거 먹으면서 잘 생각해봐.」

그는 소녀에게 고구마 봉지를 안겨 주며 부탁했다.

「싫어요.」

어린 소녀는 그것을 뿌리치면서 그를 흘겼다.

어느새 소녀의 큰 눈에는 눈물이 번지고 있었다.

오 형사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소녀가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스스로 말해 줄 때까지 그로서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눈치를 채고 모여든다면 정말 난처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행히 그녀가 입을 열어 주었다.

그녀는 몹시 어려운 것을 말하는 것처럼 감정을 누르면서 띄엄띄엄 소리를 내었다.

「그 여자 잘 몰라요. 잘 모르지만…… 몇 번 본 적이 있어요.」

「어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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