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창녀의 죽음 2
7부
「이 골목에서요.
부산에 있다가 이쪽으로 온 지 얼마 안되나 봐요.
전 잘 몰라요. 말한 적도 없어요.
그렇지만…… 저 할아버지하고는 친했어요.
그 여자는…… 저기서 고구마를 잘 사먹었어요.
그리고…… 이 골목에서 제일 예뻤어요.」
오 형사는 다시 고구마 봉지를 소녀에게 안겨 보았다.
그녀는 이번만은 그것을 뿌리치지 않고 받았다.
「그 여자도 손님을 받았니?」
「네. 단골 손님이 금방 많아졌어요.」
「이름 아니?」
「몰라요.」
「그 여자를 마지막으로 본 건 언제니?」
「며칠 전에 본 적이 있어요.」
「그 뒤로는 못 보고?」
「네, 못 봤어요. 도망쳤다는 말만 들었는데…… 죽은 줄은 몰랐어요.」
「도망쳤다고?」
「네, 도망쳤대요, 어떤 남자하고…….」
오 형사는 노인이 일어서서 이쪽을 응시하는 것을 곁눈으로 의식할 수가 있었다.
「그 남자는 누구야?」
의외의 인물이 여자의 죽음에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바짝 긴장시켰다.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 여자가 살던 집은 어디야?」
「그건…….」
소녀는 거북스러운 듯이 고구마 봉지를 내려다보았다.
「제가 말했다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네?」
「그럼, 말할 리가 있나.」
소녀는 안심한 듯이 턱으로 방향을 잡아 보이면서 가만가만 말했다.
그녀가 가리킨 곳은 전봇대 옆의 쓰레기통, 그 맞은편 집이었다.
「아저씨, 저 잘 봐 주세요.」
그녀는 기대에 찬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물론이지. 자, 수고해.」
그는 소녀의 어깨를 두드려 준 다음 여전히 그를 향하고 서있는 노인에게 목례를 했다.
그러나 노인의 시선은 역시 엉뚱한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 형사는 쓰레기통 쪽으로 걸어가면서 자신이 사건의 핵심 속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을 느꼈다.
죽은 여자의 신원과 생전의 소재를 알아냈다는 것은 사건을 거의 해결했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쓰레기통 맞은편 집 앞에도 창녀가 하나 서 있었다.
「싸게 해 드릴게 놀다 가세요.」
입이 큰 여자는 애원조로 말했다.
어서 한푼이라도 벌지 않으면 굶어죽을 것 같은 매우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좀체로 팔리지 않을 만큼 나이가 들어 보였다.
오 형사는 창녀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기에는 육중한 한식 가옥이었지만 내부는 전혀 딴판으로 꾸며져 있었다.
마당을 중심으로 조그만 방들이 밀착되어 있었는데,
모두가 블록으로 급조된 것들이어서 그런지 그에게는 동물의 우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기척이 나자 방문이 일제히 열리면서 여자들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녀들은 새로 들어온 먹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별로 흥미도 없다는 듯이 도로 문을 닫았다.
늙은 창녀의 우리 안에서는 폐부를 찌르는 것 같은 고약한 냄새가 났다.
때문에 그는 호흡에 곤란을 느끼면서 갑자기 밀려든 어둠 속을 두리번거렸다.
여자는 서글픔을 감추면서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아니, 천만에. 그럴 필요는 없어요. 좀 쉬었다 갈 거니까.」
그는 여자가 이끄는 대로 방 아랫목에 천천히 몸을 꺾고 앉았다.
맞은편 벽 위에는 거대한 유방을 가진 서양 여자의 나체 사진이 하나 붙어 있었는데,
그것을 본 그는 처량하게도 그만 성욕을 느끼고 말았다.
「저어기…… 화대 좀 주시겠어요?」
여자는 미안한 듯이 두 손을 비비며 말했다.
「얼마요?」
「생각해서 주세요.」
「생각해서라니…… 난 돈 가진 게 얼마 없어요. 이거면 돼요?」
그는 들은 바가 있어서 5백 원권 한 장을 내보였다.
여자는 매우 감사해하며 그것을 받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아마 포주에게 즉시 신고하러 가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돌아오자 그는 물었다.
「당신은 그 돈에서 얼마 먹는 거요?」
「2백 원 먹어요.」
「그러면 주인이 3백 원이나 떼먹나?」
「네…… 할 수 없어요.」
「죽일 놈들이군.」
그는 화가 나는 것을 어금니로 짓눌렀다.
손을 대야 할 악(惡)들은 실로 많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들은 흡사 전염병처럼 무서운 기세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정말 여자의 말처럼 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8부
「옷 벗으세요.」
여자는 어느새 슈미즈 차림이었다
붉은 조명 때문인지 앙상하게 튀어나온 목뼈와 팔다리가 음울한 빛을 던져 주고 있었다.
메마른 허벅지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낡고 해진 옷자락을 보자
그는 비참한 생각마저 들었다.
「난 이대로가 좋으니까 옷 입어요.」
그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네?」
여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옷 벗지 않아도 좋다구요.」
「제가 싫으면 딴 여자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가 난처한 얼굴을 하자 여자는 아무래도 모르겠다는 듯이
그대로 엉거주춤 앉아 있었다.
「옛날에 손님 같은 분이 한 사람 있긴 했어요.
화대만 내고…… 놀지도 않고 가곤 했지요.
가끔씩 오곤 했는데 손님처럼 젊지는 않았어요.
지금은 늙어서 죽었을 거예요.」
「여기에 들어온지 얼마나 됐지요? 」
「한…… 5, 6년 되나 봐요?」
「지금 나이가 몇이에요?」
「그런 건 왜 묻지요?」
여자의 반문에 그는 잠시 말이 막혔다.
「남자들은 그런거 묻기를 좋아하데요. 저, 몇 살로 보여요?」
「잘 모르겠는데.」
「마흔 하나예요. 늙었지요?」
오 형사는 대답 대신 맞은편 벽 위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마흔 한 살의 창부라면 아마 아무런 희망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가 입을 다물고 있자 여자는 그의 눈치를 살피면서 아주 느린 솜씨로 옷을 입기 시작했다.
「전 죽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편하게 죽을 수 있을까요?」
「치마를 뒤집어쓰고 한강에 뛰어드시오.」
「그건 너무 추워요. 따뜻하게. 잠자는 것처럼 죽는 방법 말이에요.」
여자는 빠르게 말했다.
그가 얼른 보니 그녀의 얼굴이 온통 주름으로 덮이는 것 같았다.
「글쎄. 그건…… 차차 생각해 봅시다.
하나 물어 볼게 있는데.
여기…… 얼굴이 예쁘고 좀 마른 아가씨가 하나 있죠?」
「얼굴 예쁜 애가 한둘인가요. 이름이 뭐예요.」
여자의 시선이 팽팽해지는 것을 그는 의식했다.
「글쎄. 이름은 잊어먹었는데…… 얼굴이 길고 갸름한 편이죠.
머리숱이 많고. 그렇지. 부산에서 온 지 얼마 안 된다고 하던데.」
「춘이 말이군요.」
여자는 갑자기 떨어지는 목소리로 힘없이 말했다.
「네. 바로…… 그 애 말입니다. 지금 있을까요?」
그는 되도록 긴장감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춘이 단골 손님이군요.」
여자는 입술 한 쪽을 일그러뜨리면서 기묘하게 소리도 없이 웃었다.
「단골은 아니고…… 며칠 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죠.」
「담배 가지신 거 있어요?」
창부의 요구에 그는 얼른 담배를 꺼내 주었다.
그녀는 벽에 기대어 앉으면서 집어삼킬 듯이 담배를 빨았다.
담배 연기가 붉은 조명을 가리면서 천장 쪽으로 뿌옇게 퍼져 올라갔다.
여자는 그렇게 몇 번 연기를 뿜고 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춘이 생각이 나서 왔나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그 애 찾는 손님들이 많아요. 하지만…… 손님은 너무 늦게 왔어요. 그 앤 지금 여기 없어요.」
「저런. 아주 가 버렸나요?」
그는 좀 큰소리로 물었다.
「네. 아마 다시는 오지 않을 거예요. 그 애한테 반했군요.」
「없다니까 더 보고 싶은데요. 이런데 있기에는 참 아까운 아가씨던데…….」
「그래요. 참 좋은 아이였어요. 예쁘기도 했지요.
여기 온지 두 달이 채 못됐지만 그 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만 보아도 알 수가 있어요.」
「혹시 어디로 갔는지 모르나요?」
여자가 흥미를 잃고 입을 다물어 버릴까봐 그는 주의해서 물었다.
「그 애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라요.
저하곤 누구보다도 친했었는데도 한 마디 말도 없이 가버렸으니까요.
생각하면 야속하기도 해요.」
「그렇겠군요. 혹시…… 다시 올지도 모르잖아요?」
9부
「짐까지 그대로 둔 채 맨몸으로 나갔으니까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제 생각엔 다시 올 것 같지 않아요
그까짓 거 몇 푼이나 나간다고 그것 때문에 다시 돌아오겠어요.」
「주인이 펄펄 뛰겠군요.」
「흥. 그럴 것도 없지요. 그렇게 착취해 먹으니 누군들 도망가지 않겠어요.」
「춘이도 도망친 건가요?」
「그럼요. 여기 있으면 하루하루 빛이 쌓여 가니까
도망치지 않고는 절대로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함부로 도망치다간 혼나겠군요.」
「너무 목소리가 커요.」
여자는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고 나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런 말을 하는게 아닌데…… 제가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 같네요.
아마 손님이 좋아졌나 보지요.」
여자는 쑥스럽게 웃었다.
그것을 보자 그도 따라 웃었다.
「여긴 깡패들이 꽉 쥐고 있어서 섣불리 도망치다가 붙들리면 맞아 죽어요.
불로 지지고 그래요. 춘이라고 맞아 죽지 말라는 법은 없지요.
이 골목 여자들이 어떻게 죽어 가는 줄 아세요? 맞아 죽거나 병들어 죽지요.」
「경찰에선 가만있나요?」
「경찰 말이에요? 차암. 손님 순진하시네요.
깡패들이 경찰과 짜고 노는데 어떻게 경찰을 믿을 수가 있어요.
제발 돈이나 뜯어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자는 담배를 다시 하나 피워 물었다.
「춘이가 죽었다면 큰일이군요.」
「아직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는 걸 보니까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에요.
어떤 남자하고 도망쳤다니까…… 어쩌면 별일 없을지도 몰라요.」
「남자라니. 누구 말입니까?」
「저도 잘 몰라요. 주인한테 그렇게 듣기만 했으니까요. 어쩌면 거짓말인지도 모르지요.」
「술 한 잔 하겠어요? 제가 살 테니…….」
「싫어요. 몇 년 전만 해도 곧잘 술을 마셨는데…… 이젠 몸도 좋지 않고 해서 못 마셔요.」
「안됐군요. 이런 데 있을수록 몸이 건강해야 할 텐데…….」
오 형사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말했다.
「춘이 년이 저를 많이 걱정해 줬어요.
사실은 자기가 더 불쌍한 몸인데도 말이에요.
그 앤 고아예요. 다섯 살 때부터 혼자 자랐다니까 오죽 했겠어요.」
「아. 그랬군요. 어쩌다가 그렇게 불행하게 태어났지요?」
그는 가슴이 젖어 드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여자는 초점 없이 허공을 응시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애는 저한테 와서 잘 울곤 했어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저도 함께 울곤 했지요.
그 애 말을 들으면…… 고향이 평안북도 의주인데,
두 살 때 엄마가 돌아가셨대요.
그리고 다섯 살 때 아버지와 오빠, 자기, 이렇게 셋이서 남하(南下)했대요.
오빠와는 아홉 살 차이라고 하던가…… 그런데 글쎄…… 도중에 가족을 잃어버렸다지 뭐예요.」
「춘이 혼자서요?」
「그렇지요. 그 뒤로 영영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혼자서 고생고생하면서 살아온 것이지요.
열두 살 때까지는 이곳 저곳 고아원을 찾아다니다가 그 뒤로는 식모살이, 껌팔이 같은
궂은일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살아온 모양이에요.
하지만 이런 애들이 막판에 빠지는 길이란 뻔하지 않아요. 자기 몸이나 파는 게 고작이죠.」
「그럼, 어딘가에 가족들이 살고 있겠군요.」
「그럴 거예요. 아버지와 오빠가…… 죽지 않았으면 어디선가 살아 있겠지요.」
「혹시 그 가족들 이름을 알고 있습니까?」
「왜요? 찾아 주려구요?」
그녀는 비웃듯이 물었다.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그런 건 혼자 속에 품고 있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을 겁니다.」
「춘이한테 듣긴 들었는데 잊어먹었어요.」
「춘이란 이름은 진짠가요?」
「이런 데 있는 여자치고 진짜 이름 쓰는 사람 봤어요?」
「하긴 그렇겠군요.」
「손님은 남의 이야기 듣기를 퍽 좋아하는군요.」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러나 봅니다. 앞으로 종종 놀러 와도 되겠지요?」
그의 말에 여자는 놀란 듯이 몸을 움찔하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로서는 오랜만에 털어 내는 것처럼 웃음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나 같은 사람한테 와서 무슨 재미를 보려고…… 오늘처럼 또 춘이 이야기만 하려고요?
손님 이상한 사람이야.」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좋습니다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렇다고 공짜는 아니에요.」
여자는 그것을 확인하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물론, 물론이지요.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요. 여기 전화 있지요?」
「아무한테나 전화를 가르쳐 주지는 않는데…….」
10부
그녀는 오 형사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큰일을 결심한 듯이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전화로 저를 찾을 때는…… 진이 엄마 바꿔 달라고 그러세요.」
하고 일러 주기까지 했다.
그 말에 오 형사는 그녀가 자식까지 데리고 있는 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남의 신상에 대해서 더 이상 묻고 싶지가않았다.
도처에 병균처럼 침투해 있는 불쌍한 사람들의 숨가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는 이 세상의 뿌리처럼 되어 버린 가난과 고통에 대해서
일종의 불가사의한 힘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검시의의 진단에 따른다면 춘이가 타살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자살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어떤 자에 의한 압력 내지는 피치 못할
직접적인 원인이 개재해 있을 가능성이 많아졌다고 볼 수 있었다.
적어도 이러한 생각은 그가 어제 사창가의 진이 엄마를 만나 보고 났을 때
더욱 구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춘이와 함께 도망쳤다는 사내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다.
그자가 춘이의 죽음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일선 수사관으로서의
그의 입장에서 볼 때는 거의 당연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늦기 전에 그자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볼 필요를 느꼈다.
시간에 틈이 좀 난 것은 오후 늦게 였다.
그는 바로 어제의 그 창가(娼家)로 전화를 걸어 포주를 찾았다.
포주는 세 사람의 손을 거쳐서야 겨우 전화를 받았는데,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상대는 남자였다.
오 형사는 다시 사창가에 들어가기가 싫었으므로 포주에게 경찰서로 와 주도록 부탁했다.
그러자 포주는 무슨일 때문에 그러느냐고 하면서 몸이 불편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화가 난 오 형사는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반시간쯤 뒤에 포주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나타났다.
그는 땅딸막한 키에 살이 몹시 찐 사내였는데,
머리까지 훌렁 벗겨져 첫인상부터가 흉물스러워 보였다.
그는 들어서자마자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더러 악수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경찰과는 꽤 관계가 깊은 모양이었다.
오 형사는.
여자들에게 매음을 시켜 그것으로 치부(致富)까지 하고 있는
자가 이렇게 버젓이 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 기분이 상했다.
그는 사내를 데리고 이층의 취조실로 올라갔다.
실내는 몹시 추웠다.
피의자에게 위축감을 주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경찰 자체의 권위 의식 내지는 속성 때문인지
한겨울에도 취조실에만은 불을 피우지 않았다.
포주는 실내 중앙에 놓여 있는 나무 의자 위에 앉자 가볍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 형사는 그가 이런 곳에는 이미 익숙해져있다는 듯이 행동하려 들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다른 것은 묻지 않겠어. 그 대신 내가 지금부터 묻는 말만은…….」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그럽니까?」
포주가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가만 앉아 있어!」
그는 신경질적으로 큰소리를 질렀다.
포주는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것 같았다.
그러나 오 형사는 매음업을 하는 자에게는 조금도 존대어를 쓰고 싶지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오히려 몇 대 갈겨 주고 싶었다.
「당신 집에 춘이라는 여자가 있었지?」
오 형사는 선 채로 포주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포주는 책상 위에 모아 잡고 있던 두 손을 밑으로 재빨리 끌어내렸다.
「그렇지 않아도 그 애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찾고 있다니, 어떻게 된 건데?」
「그 년이 도망쳤습니다. 빛이 십만 원이나 있는데 갚지도 않고…….」
「그 년이라니…… 당신이 그 여자를 그렇게 부를 권리라도 있어?」
오 형사는 포주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그렇지만 빛도 안 갚고 도망쳤으니 까 도둑 년 아닙니까.」
「이치가 정신이 있나. 그럼. 여자를 가둬 놓고 등쳐먹는 놈은 뭐야?
그런 놈은 도둑놈이 아니고 신산가?」
오 형사가 이렇게 윽박지르자 포주는 책상 위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두고 보자는 듯이 이를 악물고 있었다.
「도둑놈이 따로 있는 게 아니야.
연약한 여자들 피나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놈들이야 말로 진짜 도둑이야.」
그는 생수를 퍼마시는 듯한 기분으로 말을 쏟아 낸 다음 창가로 걸어갔다.
낡은 마룻장이 그의 발 밑에서 삐걱거렸다.
가로수의 앙상한 가지들이 비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길 건너 벽 위에 붙은 지 얼마 안되는 벽보가 길게 찢어져 펄럭거리고 있었는데,
마침 안경 낀 청년 하나가 그 곁을 지나치면서 그것을 홱 나꿔채 가는 것이 보였다.
오 형사는 그 벽보 내용을 며칠 전에 읽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서울 시장(市長) 명의로 발표된 것으로서,
종로 3가 일대의 모든 사창가는 일체의 불법적인 매음행위를 중지하고 1개월 이내에
완전 철수하라는, 매우 강력한 내용의 공고문이었다.
오 형사는 돌아서서 사내를 바라보았다.
포주는 턱을 괸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춘이가 도망쳤다고 어떻게 단정할 수가 있어?」
사내는 그를 흘끗 보고 나서 말했다.
「그건 분명해요.」
「그렇다면 춘이는 죽으려고 도망친 건가?」
오 형사는 사내 쪽으로 다가가 책상 위에 사진을 내던졌다.
사진을 들여다본 포주는 움찔하고 놀라는 기색이었다.
「이게 춘이 사진입니까?」
「그래, 잘 보라구. 춘이 시체니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사내는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말했다.
11부
「몰라서 묻는 거야?」
「제가 어떻게 압니까?」
「시치미 떼지마!」
오 형사는 소리를 질렀다.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사내는 갑자기 위축되면서 완강히 말했다.
「당신은 춘이를 데리고 있었으니까
누구보다도 그 애를 잘 알고 있어.
쉽게 이야기하는 게 서로를 위해서 좋으니까 바른대로 말해,
춘이는 어떻게 해서 죽었지?」
「그럼…… 제가 춘이를 죽였다는 말입니까?」
「그랬을지도 모르지. 사람이란 알 수 없는 거니까.」
「생사람 잡지 마십시오!」
포주는 벌떡 일어서면서 외쳤다.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눈은 크게 치떠 있었다.
이마에 나타난 핏줄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오 형사는 사내의 가슴을 밀어젖혔다.
「이 새끼가 어디서 큰소리야? 앉지 못해?」
「억울합니다. 어떻게 알고 그러시는 줄은 모르지만…….」
「그러니까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라고 그러지 않아. 어떻게 해서 춘이가 죽었는지 말이야.」
「전 정말 모릅니다. 춘이는 갑자기 없어졌으니까요.」
「그때가 언제야?」
「지난 일요일 밤이었습니다.」
「도망쳤다면서?」
「네. 그러니까 그 날 밤 춘이가 손님을 한 사람 받았었는데 바로 그 남자하고 도망쳤습니다.」
「도망치는 걸 봤나?」
「보지는 않았지만. 그 손님이 나간 뒤에 바로 없어졌으니까 함께 도망친 게 분명합니다.」
「그런 엉터리 같은 말이 어디 있어 도대체 함께 도망쳤다는 걸 뭘로 증명해?」
오 형사는 책상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는 빨리 핵심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증명할 수가 있습니다. 춘이는 그놈한테서 화대를 받지 않았거든요.」
「왜 받지 않았어?」
「아마 그놈한테 단단히 반했던 모양입니다.
그 날 밤 그놈이 나간 뒤에 제 방에서 춘이를 기다렸는데 오지 않더란 말입니다.」
「왜 춘이를 기다렸지?」
「그건…… 손님한테서 화대를 받으면 누구든지 제 방으로 와서 방세를
내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알겠어. 자세히 말해 봐.」
「그래서…… 춘이 방으로 가 봤지요.
그랬더니 막 울고 있더군요.
방세를 내라고 했더니 뭐, 그놈한테 외상으로 줬기 때문에 돈이 없다나요.
화가 나서 몇 대 때리려다가 그만뒀지요.
세상에 외상으로 몸을 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튼 외상으로 몸을 줄 정도였으니까
그놈한테 반해도 여간 반했던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춘이는 왜 울고 있었나?」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놈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결국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니까,
그렇게 울지 않았나 생각합니다만…….」
포주의 이마는 진땀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불기 하나 없는 실내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면
그자는 꽤나 놀라고 있는 것 같았다.
오 형사는 두 손을 비비다가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당신 정말 춘이를 때리지 않았나?」
「때리지는 않았습니다. 울고 있는 그 애한테 손을 댈 수가 있어야죠.」
「춘이는 큰소리로 울었나?」
「그 애는 원래가 조용한 애가 돼 놔서 별로 소리를 내는 일이 없어요.
아주 서럽게 울긴 했지만.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기를 쓰더군요.」
「춘이가 외상으로 몸을 주었다고 해서 그 남자한테 반했다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함께 도망쳤다는 건 말도 안 돼.」
「잘 모르니까 그러시는데…… 창녀들은 웬만한 사이가 아니곤 절대로
외상 거래를 하지 않습니다.」
「춘이가 없어진 건 바로 그 뒤였나?」
「네. 제가 그 애 방에서 나온 뒤 얼마 안 있다가 없어졌어요.
틀림없이 그놈을 만나러 나갔을 겁니다.
아마 둘이서 만날 약속을 미리 해 놓고.
그놈이 먼저 나가 춘이를 기다리고 있었을 겁니 다. 틀림없이…….」
「그 남자를 봤나?」
「처음 춘이가 데리고 들어올 때 얼핏 보긴 했습니다.」
「어떻게 생겼던가?」
「키가 크고…… 미남으로 보였습니다.」
「나이는?」
「한…… 서른 두셋 되었을까요. 확실히 보지는 못했지만…….」
「그전에도 그 남자를 본 적이 있나?」
「처음 본 것 같습니다.」
12부
「그렇다면 그 사람이 단골인지 어쩐지 모르겠군」
「네, 거기까지는…….」
포주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전에도 춘이가 외상 거래를 한 적이 있나?」
「없었습니다.」
오 형사는 혼란을 느꼈다.
사실 알고 보면 간단한 사건이라 할지라도 수사 단계에서는 이처럼 혼란을 느끼는 일이 많았다.
포주의 말을 그대로 전부 믿는다는 것도 우스웠다.
「그러니까 당신 생각은 그 남자가 춘이를 데리고 나가서 죽였다, 이건가?」
「아니. 그렇게 말한 건 아닙니다. 춘이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그놈이 제일 의심스럽습니다.」
「직접 보지 않은 이상 누구를 의심한다는 건 금물이야. 당신 혹시 전과 없나?」
오 형사의 질문에 포주는 어깨를 웅크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전과가 없을 리가 있나. 조사해 보면 다 알 수 있겠지.
그건 그렇고…… 춘이는 자기 짐을 가지고 나갔나?」
「짐이래야 뭐가 있어야죠.」
「가지고 나갔느냐 말이야!」
「그건…… 그대로 있습니다.」
「당신도 낫살이나 먹은 사람이 다른 직업을 생각해 봐야지……
그런 더러운 일에만 빠져 있으면 되겠어.」
「그렇지 않아도 종3도 폐지되고 하니까 그만둘까 합니다.」
사내는 얼굴을 찌푸리며 참회하는 빛을 보였다.
오 형사는 그 얼굴에 붙어 있는 가면을 벗겨 버리고 싶었다.
「지금 당신 집에 가서 춘이 소지품을 조사해 봐야겠어, 아직 처분하지 않고 그대로 있겠지?」
「네, 그대로 있습니다.」
오 형사는 앞장서 취조실을 나갔다.
추운 데 오래 있었기 때문에 그는 뱃살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춘이의 소지품은 낡은 비닐 백 하나뿐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 속에는 입을 만한 옷가지도 없었고, 그녀를 말해 줄 만한 물건도 하나 없었다.
오 형사는 흔적도 없이.
마치 이슬처럼 스러져 버린 한 창녀의 영혼을 가슴에 품은 채 불안한 밤을 보냈다.
밤새에 그는 여러 가지 꿈을 꾸었는데,
그중에 가로등도 없고 어둡고 추운 거리에서 거지가 되어 오들오들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몹시 추워 한밤중에 눈을 뜬 그는 연탄불이 꺼진 것을 알고는 갑자기 외로움을 느꼈었는데,
아침이 되어도 그 기분은 사라지지가 않았다.
열시가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지만 그는 출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전에도 그는 아무 이유 없이 결근하는 일이 종종 있곤 했다.
그는 드러누운 채 한참 동안 조간 신문을 읽다가 배가 고파서 일어났다.
밥통에는 어제 해 놓은 밥이 한 그릇쯤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그대로 먹을 것인가.
아니면 버릴 것인가 하는 문제로 망설이다가 아까운 생각이 들어 먹기로 했다.
주인집 연탄불을 얻어 뜨거운 물을 끓이고 겨우 식사를 끝마친 것은 열두시가 지나서였다.
밖은 어제처럼 흐려 있었는데.
추위가 조금 가신 것이 곧 눈이올 것 같았다.
오 형사는 검정색 코트를 걸치고 시내로 나갔다.
그는 출근하는 것을 아예 단념하고 우선 다방부터 들러 커피를 마셨다.
춘이의 소지품 중에서 그가 가져온 것은 다섯 장의 명함이었다.
그것은 춘이를 찾은 손님들 중 솔직하거나 아니면 바보 같은 자들이
남기고 간 것들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들 중에 춘이의 죽음과 관계 있는 자가 있다면 매우 다행한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는 춘이에 대해서 더 이상 추적해 보는 것을 단념해 버릴 수밖에 별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다섯 장의 명함을 검토하던 오 형사는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그만큼. 명함에 박혀 있는 그들의 직업은 모두가 가지각색이었다.
그는 우선 접촉하기 쉬운 사람부터 만나 보기로 했다.
그가 명함을 가지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어느 수도 사업소(水道事業所)였다.
그 과장이란 자는 사십대의 사내였는데.
오 형사가 신분을 밝히면서 용건을 말하자
무조건 그를 다방으로 데리고 가서는 돈부터 집어 주었다.
「여편네가 임신을 하는 바람에…… 앞으론 조심하겠습니다.」
사내는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종3에 마지막으로 갔을 때가 언젭니까?」
「한…… 한 달쯤 됐습니다.」
오 형사는 뇌물이라고 집어 준 돈을 돌려주었다.
수도 사업소 직원은 사창가 출입 단속에 걸린 줄 알고
거의 울상이 되어 그에게 매달렸다.
「잘 봐 주십시오.」
「그런 데 있는 여자들한테 명함을 주면 안돼요.」
오 형사는 탁자 위에 그자의 명함을 던져 놓고 일어섰다.
그가 두 번째로 찾아간 사람은 이마가 벗겨진 오십대의 식당주인이었는데,
명함에는 사장(社長) 아무개라고 되어 있었다.
사장 역시 수도 사업소 직원처럼 돈을 내밀고 잘 봐 달라고 부탁했다.
포주의 말대로 키가 크고 미남인 청년은 세 번째, 네 번째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세 번째는 구청 직원으로 작은 키에 안경을 낀, 역시 중년의 사내였다.
네 번째 사내는 은행원이었는데 동료직원의 말에 의하면 죽은 지가 열흘이 넘었다고 했다.
「친구 되시는가요?」
하고 그 직원은 이쪽 신분을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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