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문학관

나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4

오늘의 쉼터 2011. 5. 2. 14:03

 

 

나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4

 

 

1부    길들지 않은 사랑은 힘이 세다

 

9  악녀를 비난할 수 없는 이유


김혜린의 (불의 검)을 보고
나는 만화를 좋아한다. 특히 김혜린 만화를 좋아한다.

김혜린의 만화는 어떤 소설보다도 구성이 치밀하고

어떤 장편소설보다도 사건의 전개가 흥미있다.
김혜린의 만화에서 모든 사건은 우연히 일어나지만

그 우연성은 사건을 만들고 역사를 만드는 자연스러움일 뿐

작가가 사건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해 방만히 흩어놓은 것은 아니다.
 

김혜린의 만화에는 색깔이 있다.

그 색깔은 아마도 등장인물 모두가 살아있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일 것이다.

김혜린은 등장인물 모두를 자식 혹은 형제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인물의 성격은 한결같이 다르지만 작가의 애정어린
시선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선한 인간도 인간사 고뇌에서 제외되지 않고

악한 사람으로 치부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인간미가 넘친다.

그의 만화의 울림은 거기서 나온다.

악할 이유가 없어서 착해빠진 사람,

악하기만 한 성격은 김혜린의 만화에서는 부각되지 않는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김혜린의 만화 (불의 검)도 그렇다.

(불의 검)에서 내가 사랑하는 인물은 소서노고 산마로 아사이며 아라지만

내가 관심을 갖는 인물은 마리한이고 수하이이며 카라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해서 보고 싶은 인물이 바로

검은 욕망의 화신이라고 불리우는 카라다

(불의 검)에서 카라는 독특한 인물이다.
 카라는 오빠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나라를 세우는 성공한 정치가다.
밟고 밟히는 세상에서 결국은 강자가 웃는다는 세속의 법칙을

몸으로 체득하면서 치밀하게 힘을 쌓아온 카라는 지략가 여성이다.
 

카라가 여성이라는 점은 강조되어야 한다.

그것은 그녀가 남성의 정기를 흡수하여

그 힘으로 살아가는 고대사회의 무서운 주술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밟혔고 그래서 강한 ‘남성’에 의해 왜곡된 약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강한 ‘남성’에게 배워 남성적 힘을 체득해낸

영리한 여자 카라는 더 이상 약하지 않다.

페미니스트로서 카라는 권력 지향적인 남성에게는

무자비할 만큼 가혹하고 쉽게 피를 본다.

하지만 여성의 어머니를 자처하는 그녀는 상대적으로 여성에게는 관대하다.

 

작가는 카라에 대해, 남성에 의해 생산 기능을 망친 불모의 여인,

여성으로서 취할 행복의 여지가 애초부터 없었던 여인이

인간미가 메마른 마녀가 되었다고 해서 동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동정하기에 카라는 몹시 강하고 카라로 인한 공포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카라는 자신에게 거역하는 남자를 쉽게 제거할 뿐 아니라

자신의 왕국을 넓히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인간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작가의 외교적인 말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분명히 악의 화신으로 나오긴 해도 세심하게 배려한

카라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카라도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우리의 자매라는 결론에 반대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네가 망친 여자의 인생이 몇 개인데
카라의 뒤에는 카르마키의 왕이 있다.

그러나 카라는 왕을 팔아 권력을 휘두르다가 왕과 함께 사라져가거나,

왕의 사랑이 끝나는 지점에서 비참하게 사라져가는 권력의 여자가 아니다.

그녀는 남의 권력으로 시작했으나 그것에서
자기 권력을 만들어낸 천부적 지략가다.

강하다는 이유로 짓밟는다는 생각도 없이 여자를 짓밟는 강한 남자들을

카라는 더 강해짐으로써 자신 앞에 무릎을 끓게 만드는 강한 여자다.

그녀는 남자의 눈물은‘ 눈물 단지에 모실 만큼’귀한 실존적 고뇌이고

여자의 눈물은 ‘약자의 교활한 무기’라고 읽어내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을 싫어한다.
 

많은 여자를 데리고 놀았던 야장 귀족 수하이가

진실해지고 싶은 여자 아라를 만나 사랑하고 싶었으나

결국 아라의 사랑을 얻어내지 못하고 방황하면서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할 때

카라는 균형감각 없는 강자의 속성을 질책한다.
카라는 통찰력이 있을뿐더러 그 통찰력으로 질책까지 할 수 있는 힘 있는 여자다.

 “탕아야, 네가 망친 여자의 인생이 몇 개인데 너는 한 번의 버림 받음으로 그리 울고 부느냐?

세상 여자들이 얼마나 밟히며 울고 사는지 너, 아느냐?”
 

여자를 사랑하는 그녀는 그러나 약자인 여자가

약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 때 철저하게 외면한다.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강자인 남자에게 기대어 눈물과 웃음을 파는 여자의 모습이다.

분명 카라는 강하지 못해 당하면서 당하기 때문에

당당해지지 못하는 삶의 악순환에서 헤쳐나오지 못하는 여자를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카라는 약자의 삶의 모습에 동정을 보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카라가 약자의 악순환적인 삶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그와 같은 삶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그녀의 자구책인지도 모른다.

자기가 난 아들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 왕의 후궁이 한 손에 뇌물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눈물을 닦을 때 그녀는 말한다.
 

 “도대체 여자의 힘이란 것이 매음의 웃음 아니면 구걸의 눈물뿐이더냐?

세상 원망이나 하면서 질질 끌려다닌 인생이 무슨 자랑이더냐?

나는 너 같은 여자를 보면 짜증이 난다.”


선의 편에 서 있진 않아도 카라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위인지 정확하게 가려내는 사람이다.

약육강식의 세상 논리로 잡히지 않는 여주인공 아라나,

아라의 건강한 연인인 산마로에게 그녀만큼 끌려하는 사람도 드물다.

그러나 카라는 약육강식의 논리로 굴러가는 세상에서 지지 않기 위해

자신이 먼 옛날에 잃어버렸거나 아니면 가져본 기억이 없는,

그러나 자신을 끌기는 하는 매력의 소유자들과 운명 같은 겨누기를 할 뿐,

원래 ‘검다’는 의미의 그녀의 이름에서 그녀는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하긴 어렵지만

무시할 수  없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천석꾼을 질투하면서 만석꾼에게는 아부한다
사람들은 그녀를 삐뚤어진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그렇게 부르기가 싫다.

분명 그녀는 마음이 비틀렸고 냉정하고 무자비하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그녀가 간과하고 있는 점을.

그녀는 여인의 왕국을 꿈꾸면서 여전히 남성적인 힘의 논리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녀가 왕이 되었을 때 그녀는

이름만 카르마키의 모신이며 어머니이지 여전히 군림하는 독재자다.

남성적 힘과 싸우는 그녀는 여전히 남성적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해방자가 아니라 비틀린 권력자다. 

그러나 과연 그녀가 강자 앞에서 주눅 들어 강자의 요구나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그녀가 극복하고 싶어했던 약자보다 더 비틀렸는가?

과연 그녀는 체계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남성 우월주의를 관철시켜 온 가부장제보다 더 무자비한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게임을 하는 태양과 바람의 신화는 종종 인용된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데 있어 누가 더 강한가? 분명히 태양이 더 강하다.
당신도 태양은 부드러웠고 바람은 무자비했기 때문에 태양이 더 강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고 강조할 것인가?
틀린 생각은 아닐지 모르지만 너무 쉬운 생각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가?

태양은 더 강했기 때문에 자발성을 불러냈다고.
그리고 그 자발성은 그 자연스러움 때문에 부드러움으로 인식되었다고.
백석꾼을 시기하고 천석꾼을 질투하는 사람들도 만석꾼에게는 아부하지 않던가! 

 

카라에게 돌을 던질수 없는 이유
그녀는 무자비하다.

그러나 그녀가 무자비한 것은 밟히지 않기 위한 그녀의 생존방식이지

그녀가 본래적으로 악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지는 못한다.

그녀가 한순간 냉정을 잃고 회한에 빠져

잠시 치밀한 머리 굴리기를 중단했을 때 그녀는 치명상을 입는다.

독재자 오빠를 제거하고 쿠데타를 성공시키는 순간에
그 독재자가 “널 사랑한다”고 달랠 때 그녀는 계산이 아닌 감정에 빠져 극도로 흥분한다.
 

 “날 사랑해? 가증스러워, 사랑이 그따위 것이라면

난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을 죽여버릴 거야”

쓰린 세월을 절규로 달래다가 방심한 그녀가 죽어가는 왕에게서 치명상을 입을 때

나는 분리주의가 호소력을 갖는 지점을 생각한다.

사실, 카라를 분리주위의 전형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분리주의의 극단적인 형태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남성에게 더 이상 희망은 없다고 분리주의자들은 선언한다.

태양의 기득권을 가지고 시작하는 남성들은 자연스럽게 그 권력을 관철시키고 있기 때문에

절대 여성들과의 평등한 문화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분리주의자들은 여성들은 가족,노동,성 등

사회문화 전반에 여성들만의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성들이 권력을 가진 자리에서 여성의 세계를 세우려 할 때는

모든 방식을 뒤집는 혁명만이 가능하다.

혁명이라고 부를 수 없는 카라의 성공(그것은 분명히 쿠데타다)은 역설적이게도

남성적 권력이 스크럼을 짜고 도처에 편재한 곳에서 남녀평등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

얼마나 희망 없는 일인가를 증명하기에는 충분하다.
 

사실 상당히 극단적인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분리주의가 많은 여성학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남성 중심 사회의 모순이 너무나 극명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대로 여성의 권세는 치맛바람이 되며 여성의 정열은 드셈이 되고

여성의 비판은 건방짐이며 여성의 노여움은 발끈함이고

여성의 지적 욕구는 허영심인 세상이다.

그런 세계에서 카라를 생각하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다.
 

남성의 동의를 얻어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성 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약자의 길을 포기하고 당당히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카라처럼 대립의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있을까?

대립의 길에서 슬쩍 비껴갈 때 그녀가 받았던 치명상은

대립이외에 길은 없다는 그녀의 확신을 더욱 강하게 할 것이다.

물론 분리주의에서 중요한 관점을 보기는 해도 나는 분리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내가 왜 분리주의자가 아닌지를 길게 늘어 놓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럴 경우 카라의 의미가 희석되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카라에게 다시 한번 돌을 던지고 싶지 않다.

비틀릴 대로 비틀린 그녀의 정신이 무릎 끓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하는 노력의 흔적일 때 그녀처럼 살지 않아도 무릎 끓을 일이 없는,

약자의 길을 가지 않아도 좋은 그녀 뒤의 인생들이 그녀를 욕할 수 있을까?

 

 

 

10.   엄마가 절망한 이유

나는 맏딸이다.

나를 낳고 아직 퇴원도 하기 전,

나의 할머니는 첫 아이를 낳고 까무라쳐 있다가 겨우 의식이 돌아온 며느리에게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단다.
 

“딸이란다. 다음에 아들을 낳으면 되지. 첫딸은 살림 밑천이 란다.”
 

자애로운 시어머니의 걱정스런 인사는 아들이 아니어서 어떡하니?

다음에 아들을 낳지 않으면...이라는 공손한 협박이어서

한번도 뱃속의 아이가 딸일까봐 걱정해 보지 않은 순진한 엄마는

서운하기도 했고 벽에 부딪친 느낌어었다고 했다.
 

‘살림 밑천이라니, 누굴 가정부로 키울까봐?’

엄마는 속으로나마 자신만만했고 자신의 사랑하는 딸이 세상에 태어나서 받은 첫인사가

‘공손한 푸대접’이었음을 잊지 않으면서 역전의 드라마가 펼쳐지기를 기원하셨다고 했다.
엄마의 두번째 절망은 내게 붙여진 성과 이름이었다.

엄마는 배가 산더미처럼 불러서 하늘이 노랗게 되는 고통을 지불하면서 아이를 낳았건만 아

이의 성과 이름을 붙여 주는 건 시아버지의 권리였다.

나는 할아버지의 성이 이씨여서 이씨가 된 아빠의 성을 따라서 이주향이 되었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가 되는 시작부터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남성문화에 편입되는 것이다.
 

엄마는 둘째도 딸을 낳았다.

참으로 건강한 여아였건만 ‘살림 밑천’이라는 위로도 되지 못한 둘째 딸의 탄생은

단지 대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한 불행을 확인시키는 사건일 뿐이었다.

시댁식구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수록 엄마는
“딸은 사람이 아닌가요”를 당차게 항변했다지만

그것은 기라성 같이 버티고 있는 아들 선호사상을 무너뜨릴 수 있는

설득력 있는 항의는 아니었다.

그저 더 이상은 초라해질 수 없는 인간의 최소한의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둘째때는 자신의 딸 이름 앞에서 자신이 성이 희석되는 일에

아무런 심리적 저항도 생기지 않았다고 했다.

사회화인 것이다.
자존심 강한 엄마는 사회화가 늦되었을 뿐 사회화가 안 된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엄마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더욱 빠르게 사회화되어 갔다.

엄마는 그 후에 아들을 낳았고 그제서야 비로서

“딸은 사람이 아닌가요”라는 항변에서 놓여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결혼해서 아니, 시집가서 아들을 낳지 못한 고모의 부러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까지 되었다. 무서운 사회화였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니까 30년의 세월은 많은 것을 아주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대학을 다닐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지고
가스불에 밥 짓고 동선이 짧은 집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이 차이인가?
좀더 나은 가전제품으로 시간을 벌어서 재미있는 텔레비전 프로와 비디오를 시청하고

좋아진 화장품으로 모델처럼 꾸밀 수 있게 된 것이 차이인가?
예전에는 아들 낳기 위해 7공주, 8공주까지 불사했다면

의학기술이 발전해 태아감별하고 딸이면 뱃속에서 쉽게 지워 버려

딸부잣집이 될 이유가 없어진 것이 차이인가?

 

가정의 주인이 여자라고?
여자이기에 취업이 어렵다.

기껏 일자리를 얻었어도 주변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결혼=평생직장’이라는 이상한 등식하에 시한부 직장에 걸맞게
주변적인 일만 하도록 되어 있고

그나마 결혼과 동시에 그 일에서조차 손뗄 것을 자연스럽게 요구받는다.

그녀가 하던 그 일은 자연스레 ‘젊고 생기발랄한 여성’에게 넘겨지지만

 ‘사무실의 꽃’이상의 의미가 되지 못하는 새로운 여직원의 운명은

시든 꽃으로 버려진 그 선배의 모습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것이 아직도 많은 직업여성의 운명이다.
 

아직도 여성이 편안히 누울 자리는 가정뿐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는가?

여성은 가정에서도 주인이 아니다. 주인은 남편이다.

시부모는 모시고 살 수 있어도

친정어머니, 친정아버지는 모시기 힘들다는 것이 중요한 증거 중의 하나다.
친정어머니는 일해 주기 위해 딸과 함께 살 수는 있지만 대접받기 위해 함께 살 수는 없다.

여성은 가정에서도 결코 편하지 않다.
 

가정을 지키는 일은 아내 몫이란 말이 여전히 힘을 가지는가?

그러나 그 말은 우리가 오해하듯 가정만은 아내의 권리로 남아 있다는 말은 아니다.

더 이상 쫓겨갈 곳 없는 여성에게 ‘가정’이란 최후의 보루이기에

가정을 지키는 일은 그녀의 생존과 결부되어 있는 절실한 의무란 말이다.

그 말은 억울해도 참으라는 억울한 말이다.

거기에서 실패하면 그녀는 사회적으로 폐기처분되기 때문에

아무리 부당하고 굴욕적이더라도 남편의 보금자리인 가정을 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 속에서 주변인인 여성은 가정에서도 결코 주인일 수 없다.

 

남편의 이름과 나란히 아내의 문패를
이제 그 상황에 대한 인식이 천천히 무르익고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일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진짜 주인으로서 살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나는 작은 일부터 실천할 것을 권한다. 
대문에 남편의 이름과 나란히 아내의 이름이 새겨진 문패를 달자.

‘누구 아내’의 그늘에 가려 잊혀진 자기 이름을 떳떳히 사용하자.

“저 박문수의 집사람이에요”라는 말이 겸손이던 시대는 지나갔다.

“저는 이미선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자.
 

아빠에게 존댓말을 하는 아들, 딸이 엄마에게 반말을 한다면

친근함의 표현이려니 이해하지 말고 언어를 일관성 있게 사용하도록 가르치자.
혹시 딸이라고 여성스러워야 한다면 고운 옷 입기,

식사예절, 설거지 돕기, 자기 방 정돈을 특별히 교육하고

아들이라고 그런 일상에서 해방되게 키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자.

딸이라고 유난히 치장시키지 말고

아들이라고 인간의 공격본능, 파괴본능만을 유난스럽게 키워주지 말자.

물장난하는 딸을 못하게 하지 말고 인형을 좋아하는 아들을 야단치지 말자.

아이들에게 아이들로서의 자연스러움이 살아날 수 있도록 아이들의 자연을 돌려주자.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시댁 식구들에게 기죽지 말자.

부부가 이룬 가정을 친정식구들이 침입할 권리가 없다면

마찬가지로 시댁식구들이 침입할 권리도 없다.

물론 남편의 식구들이기 때문에 존중하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아내의 식구들도 동일하게 존중받을 권리가 있음을 잊지 말자

 

 

 

11. 인연이 혈연보다 강한 이유

출가외인이라는 말이 있다.

처갓집은 멀수록 좋다는 말도 있다.

결혼한 여자에게 혈연은 결혼으로 맺어진 인연을 통해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인연이 혈연보다 강한지는 알 수 없지만 결혼한 여성에게

결혼 관계 이전의 혈연 관계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에서도 발견했다.

시댁 귀신이라는 말이 있듯이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는

결혼한 여성에게 인연은 혈연보다 강한 것임을 주지시켰다.
우리 어머니는 맏딸이고 맏며느리다.

맏며느리로서 어머니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좋은 며느리다.

나는 내 어머니가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물론

삼촌, 고모 등 많은 시댁 식구들의 생일이나,

얼굴도 보지 못했을 시댁 조상들의 기일을 잊는 것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아버지는 어머니가 기억을 상기시켜 주기 전에는

당신의 생일조차 기억하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자 소리를 듣는 운 좋은 남자였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맏며느리인 우리 어머니는 좋은 맏딸은 되지 못했다.

그 말은 우리 어머니가 전쟁중에 홀로 되신

외할머니의 걱정을 끼치고 사는 그런 딸이라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사실, 일 년에 한두 번, 그것도 출가한 딸네집이라고 이틀이상을 머무르시지 않던

외할머니를 가끔 볼 때 나는 외할머니가 어머니를 믿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믿음은 자신의 딸은 시집살이를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믿음이었을 뿐 할머니의 삶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을

의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오는 믿음직스러움은 아니었다.

그것은 외삼촌의 몫이었다.
 

사실 시집 식구들의 온갖 잡일까지 기억하고 선물을 보내거나

이런 저런 행사를 준비하는 어머니는 친정 식구들의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번은 막내 삼촌의 아들의 백일과 외할머니의 73회째 생신이 겹친 적이 있었다.

물론 어머니가 선택한 것은 삼촌 아들의 백일 잔치였다.

나는 그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 외할머닌 생신이신데 백일 잔치하러 꼭 가야 돼? 반지만 보내면 되잖아요.”
  "외할머니 생신은 내년에 또 돌아오지만 백일은 한 번뿐이잖니?“
 

어른이 되어갈수록 나는 어머니 같은 여자가 가슴 저미도록 끔찍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데 어머니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효부라는 이름에 가려진 한 여자의 인생이 애달팠고,

그런 것에 대해 믿음직스러워 하고 당연해 할 뿐

아무런 배려를 해주지 않는 아버지의 이기심, 남자들의 이기심에 섬뜩했다.
백일 잔치에서도 어머니는 편한 얼굴이 아니었다.

고모들이 어디 아프냐고 물었을 때도

어머니는 그저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해 그런 것 같다고만 대답했다.
그런 상황을 통해 내가 확인한 것은 어머니의 마음은 원주 외가댁에 가 있다는 거였다.
 

나중에야 확인한 것이지만 더욱 기막힌 일은

아버지는 그날이 외할머니의 생신이었다는 것도 몰랐다는 것이다.

다음 날 식탁에서 내가 외할머니 생신이었다고 아버지에게 말하자

아버지는 멋적게 웃으면서 그랬니, 난 몰랐구나  하는 것이었다.

물론 아버지의 미안한 미소는 미필적 고의인 자신의 무심함에 대한 반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두 가지 사실에 화가 났다.

하나는 어머니가 할머니의 생신을 아버지에게조차 말하지 않을 만큼 사소하게 여긴 것이었고

또 하나는 단지 몰랐다, 잊었다는 것으로

편안하게 무죄임을 입증하려 드는 아버지의 무관심이었다.

사실 아버지는 집안 일에 대해서는 건망증을 생활화하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건망증을 키우고 부추긴 것은 바로 어머니의 끝 없는 인내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충실한 비서였기 때문에 아버지는 친척들의 경조사를

전혀 기억하지 않고도 낯을 낼 수 있었고,

낯을 내지 않고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불필요한 것들은

가정의 충실한 비서인 어머니가 알아서 통제했다.

물론 대부분의 불필요한 일이란 어머니 친정 식구들의 일이었다.

어머니의 생신 대신에 남편 동생 아들의 백일을 챙기는 것이 마음 편하다는 어머니,

자기의 막내동생 결혼식엔 10만 원 부조하는 것조차 눈치를 보면서

남편의 막내동생 결혼식엔 3백만 원을 낼 수밖에 없는 어머니,

가정일은 잊고 사는 것이 편안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는 아버지,

그런 상황에서 내가 본 것은 여자의 혈연은 결혼으로 맺어진 인연보다 약하다는 것이었다.

 

건망증이 특권인 사람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아버지의 건망증은 특권이고

어머니의 기억력은 특정한 권리와 상관없이

인내로 치러내야 하는 의무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우리 아버지와 같은 남자의 건망증이란 어머니에게는 부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에게는 잊어버릴 자유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어머니가 가질 수 있는 자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에게는 자유는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혈연에 대해 무관심해도 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을 낳고 기른 부모에게는 편안히 무관심할 자유를 갖고 있었지만

남편의 식구들에 대해서는 사돈의 팔촌까지 신경을 썼다.

물론 그 결과는 어머니에게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효자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에게 돌아갔다.

충실한 비서를 둔 사장이 하루의 일정을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아버지들이 마음 편하게 잊어버릴 수 있는 공간에는

반드시 그런 사건들을 잊어버릴 수 없는 사람들,

기억과 그 기억에 따른 행위를 존재 이유로 살아가야 하는 어머니들이 존재한다.

이런 여성들에게 인연은 혈연보다 강한 것일까?
 

언젠가 나는 아버지에게 따지듯 물었다.

도대체 아버지가 어머니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게 뭐냐고.

빙긋이 웃으면서 화두처럼 던지는 아버지의 말,
“어머니는 행복한 사람이란다.”

그말이 왜 내게는 부드러운 폭력처럼 들렸을까?
 

내가 들어본 적은 없지만 분명 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믿었을 것이고
그래서 인내하면서 아버지의 가정을 지켰을 것이다.

사랑은 인내하게 한다고 믿으면서.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인내도 인내일까?
사랑은 인내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내로서 사랑을 확인하려 든다면 그것은 가학이다.

사실, 자신의 딸이 결혼해서 어머니처럼 친정일을 모른 척하고
시집일에만 매달려 산다면 제일 끔찍하게 여길 사람이 분명 아버지다.

그런데도 아내에 대해 무심한 횡포에 대해서는 저토록 장님일 수 있을까?
 

물론 나는 안다.

그와 같은 것은 아버지 개인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단지 가부장적 사회에 편재된 가부장적 힘에 의해

아버지가 누리고 있는 특권일 뿐일지도 모른다.

결혼한 여성의 삶에서 인연이 혈연보다 강하다는 명제
(일상적으로 이 말은 여자는 시집가면 남이다 라는 말로 떠돈다)가

우리 사회에서 참이 될수 있었던 건 가부장제라는 힘의 원리가 그 토대다.
힘의 원리는 일방을 억압하는 쪽으로, 다른 일방을 억압당하는 쪽으로 만든다.
그리고 억압된 것은 분출구를 찾게 마련이다.

마침내 우리집에서도 어머니의 억압이 소리를 내는 사건이 일어났다.
 

어머니가 외할머니 생신에 가보지 못한 것은 우리집에서는 늘상 있는

아주 사소한 일이었으므로 우리 모두는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은 채

또다른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외할머니의 부음 소식이 날아왔고

그 전화를 받자마자 어머니는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인내로 살아온 어머니의 울음소리와 통곡하는 모습을 나는 처음 들었고 보았다.

어머니의 통곡을 삼오제까지 계속 되었다.
 

그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부음 앞에서 진지하고 예의바르게 장례식을 잘 치러내던

며느리로서의 어머니의 모습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다.
어머니는 평생을 모아 두었던 눈물을 쏟아내는 것처럼 홍수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하도 울어 눈물이 말랐을 때는 마른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는 눈물로 자신의 어머니의 모든 장례 절차를 대신했다.

확실히 혈연은 인연보다 강하다는 것을 가슴 아프게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다만 힘 없는 약자였기 때문에 인연이 혈연보다 강한 것처럼 행동했을 뿐이다.
 

여기서 나는 혈연이 인연보다 강하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주장하고 하는 것은 단지 소극적인 명제다.

결혼한 여자에게 인연은 혈연보다 강하다든지

결혼한 여자에게 인연은 혈연보다 강해야

가정이 편안하다든지 하는 것은 허위의식이라는 것이다.

나의 주장이 단지 소극적인 것은 허위의식의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는

제도적 장치가 배제된다고 해서 반드시 혈연이 인연보다 강하다는

명제가 지지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혈연을 뛰어넘는 인연과 인연에 먹힌 혈연
사실 혈연과 인연은 대립되는 개념은 아니다.

혈연은 넓은 의미의 인연에 포함된 개념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혈연과 인연을 대립시키는 것은 피로 맺어진 인연과

피로 맺어지지 않고 인위적으로 맺어진 인연을 구별하기 위함일 것이다.

더 좁게는 피로 맺어진 인연과 사랑으로 맺어진 인연,

혹은 결혼으로 맺어진 인연 사이의 대립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른 인연은 인연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누가 생각해도 혈연만큼 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혈연과 대립시켜 놓음으로써

대등한 가치가 보여 주는 팽팽한 긴장감을 살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긴장감은 때로는 문학의 좋은 소재가 되어 작품의 긴장미를 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널리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와 같은 상황의 전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혈연을 포기할 만큼 강한 인연의 표상이다.

물론 이《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우리가 읽어내는 것은

혈연은 인연보다 약하다는 명제가 아니라 혈연을 뛰어넘는 인연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혈연을 뛰어넘는 인연이란 우리 어머니와 같은

결혼 생활을 누리고 있는 자들이 보여 주는 ‘인연에 먹혀 사는 삶’과는 다른다.

인연에 먹혀 사는 삶이란 혈연까지 뛰어넘는 인연이라기 보다

특정한 혈연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또 다른 혈연관계를 무시하게 하는 제도적인 폭력일 뿐이다.

혈연까지 뛰어넘게 하는 인연에는 낭만이 있을 수 있지만

특정한 혈연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또 다른 혈연 관계를

무시하게 하는 제도엔 폭력과 억압이 사이좋게 공존할 뿐이다.
 

확실히 혈연은 중요한 인연이다.

중요한 인연이란 자기 삶의 핵심에 들어와 있는 인연을 말한다.

그러나 혈연 이외에도 중요한 인연, 혈연만큼 강한 인연은 존재한다.

그 인연은 때로는 혈연보다 강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마디로 혈연은 인연보다 강하다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인연은 혈연보다 강하다든지 하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단지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다음이다.

언제나 혈연이 인연보다 강한 것은 아니다.

 

 

 

12    눈빛만으로 알 수 없는 이유

눈빛만 봐도 알기 때문에 말이 필요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만큼 친숙한 관계를 가졌다는 뜻일 것이다.

이상하게 오래 산 부부보다 짧은 시간 밀도 있게 만난 연인들이 그런 말을 더 많이 한다.
그러나 눈빛의 진실성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에서조차 눈빛만으로는 살지 못한다.

눈빛에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눈빛의 힘은

생생한 삶의 원동력일 때에만 살아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눈빛에 대한 믿음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밋밋한 관계에 대한 정당화일 뿐이거나 눈빛만으로 살겠다는 야무진 결단이다.

물론 이때 야무진 것은 이기적인 것과도 통한다.
 

교사인 은영이는 별로 가진 것은 없지만 능력 있고 매력 있는 샐러리맨과 결혼했다.

결혼할 때부터 그들은 예단 같은 것은 생략하고 검소하게 결혼식을 올렸고

둘의 돈을 합쳐 30평짜리 아파트를 얻어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
맞벌이를 할 경우 보통은 한 사람 월급은 쓰고 한 사람 월급은 저축한다고 하지만

은영이 부부는 그러지 않았다.

월급에서 얼마씩 떼어 생활비로 내고 각자 돈을 관리하는 방식을 취했다.

여자의 돈은 생활비로 쓰고 남자의 돈은 저축해서

결국 모든 것이 남자의 것이 되는 게 싫었던 은영이는 그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결혼 초기에는 30만 원씩 내면 공동의 생활비로 쓸 수 있었다.

매달 들어오는 60만 원의 생활비는 은영이가 관리하였다.

아무래도 집안일은 여자가 많이 하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나자 전세금 5백만 원이 올랐다.

은영이가 남편에게 “2백50만 원 내야 겠네”라고 말하자

남편은 감미롭게 대꾸했다. “어쩌지, 적금 들어가 있어서 해약해야 되는데.”

물론 은영이도 적금을 해약해야 했지만 한 사람의 적금만 해약하면 됐지싶어 은영이가 냈다.
 

그후로 전세금 올려줄 때마다 남편은 돈내는 일을 감미로움으로 때웠고

모든 돈을 은영이가 책임졌다.

2년이 지나자 아이가 생겼다.

처음에는 친정어머니가 도와 주셨지만

친정어머니를 언제까지 붙들어 둘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파출부도 두어야 했고 아기용품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눈빛이 은근한’남편은 얼마 이상의 생활비를 내놓는 법이 없었다.

그는 항상 돈이 묶여 있다고 했고 그것은 거짓이 아닐 터였다.
사실 은영이는 남편이 월급을 얼마나 타고 보너스를 얼마나 타는지 알지 못했다.

어느 날은 화가 났다.
  “생활비 좀 올려 내야겠어. 당신이 낸 돈 가지고는 파출부도 쓸 수 없어.”
  그때 남편은 아주 그윽한 눈매로 슬픈 듯이 말했다.
  “당신, 이해는 되지만 내가 돈 안 내면 쫓겨나야 하는 하숙생이란 느낌이 드네.”

은영은 오히려 자기가 잘못한 것 같아 쩔쩔맸다.

감성적인 그 남자를 심하게 다룬 것 같아 용서를 구하기까지 했다.
 “미안해요.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그러자 그는 다정하게 은영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이 돈을 벌지 않으면 지금 묶여 있는 돈이라도 나는 내놓을 거야.

내 돈이 당신 돈이고 당신 돈이 내 돈인데 너무 돈돈 하지마.

당신이 생활의 때가 묻는 것 같아 내가 가슴이 아파서 그래.

여보, 내 눈을 봐, 사랑해!”
 

마음 약한 은영이는 번번히 넘어가는 행복(?)을 택하고 점점 더 생활의 때가 묻어 갔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

물론 세상에는 돈보다 중요한 게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눈빛일 것이다.

그러나 눈빛이 돈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지
돈을 아끼기 위해 혹은 돈을 내지 않기 위한 설교는 아닐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하고 가난해서 해주고 싶어도 못해 주는

어쩔 수 없는 마음은 파트너에게 전달된다.

왜 있지 않나?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쌀 한 되 살 돈밖에 벌지 못한 가난한 남편이 찬거리를 마련할 수 없어

밥과 간장종지를 올려놓은 후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라고 적어놓았을 때

그 애틋한 남편의 눈빛은 아내를 배부르게 할 것이다.
 

그런데 경제적 부담을 면하려고 엉뚱하게 눈빛을 운운하면 역겹다.

마음이 가는 곳에 물질이 가는데 물질을 아끼려고 마음을 들먹이면

마음은 서럽고 때로는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나는 생활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눈빛만 봐도 안다는 명제를 믿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그런 믿음은 생활을 함께하고 싶어하는 사랑에서 유래한다기보다
생활비를 절약하려는 얄팍한 계산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경우도 가끔은 있지만 돈을 쓰는 우선 순위는

돈을 쓰는 사람의 마음의 순위라는 말이 대체적으로는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남편의 섹시한 눈빛에 그만....
서경이는 1년 전 그 눈빛이 지겨워 이혼을 했다.

결혼한 지 5년째, 눈빛의 기만을 참을 수 없는 생활의 반란이었다.

5년 동안 그 남자는 아내 서경이 덕택에 박사 공부를 했다.

지방 소도시의 교사인 서경이는 남편을 위해 돈을 벌고,

남편은 아내를 위해(?) 월요일 아침에 서울로 와서

금요일 저녁까지 머물면서 박사 공부를 했다.

그리고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서 사랑한다는 말을 빼먹지 않는 아주 성실한 남자였다.
 

맏며느리인 서경은 시댁에 제사라도 있을라치면 남편의 조상을 위해 강원도에서

시댁이 있는 부산까지 내려가 다시 학교를 결근하지 않기 위해 새벽에 올라와야 했다.

그런 날에도 서울에서 위대한(?) 박사 공부를 하는 남편은

자기의 조상 섬기는 일을 아내에게 미루고

훗날 조상의 덕을 빛낼 수 있는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서경이 남편의 밑반찬을 위해 어쩌다가 서울에 올라오면 

서경이 올라오는 줄 알고 있으면서도 남편은 늘 서경이를 기다리게 하고

12시 근처가 되어서야 나타났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으응, 연구하느라고.”
  “그러면 전화라도 해주지. 내가 올라오는 줄 알고 있었으면서...”
  “도서관에서 어떻게 전화하나?”
 

화가 난 서경이 울적해 있으면 남편은 항상 똑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당신, 나 못 믿어? 내 마음은 당신뿐인 거 몰라?”

그 말에 서경이는 번번히 녹아내렸다.
착해 빠진 서경은 지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도대체 내가 남편에게 받은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결혼식 때 받는 18K 금반지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마음이 있었다. 언제나 울타리가 되어 주는 남편의 섹시한 눈빛이.
그런 생각이 들면 괜히 배실 배실 웃음이 나와

서경이는 남편을 원망했던 마음의 자락을 거두었다.

미안했다. 줄 게 없는 남편에게 바라는 게 미안했고

남편을 저울대에 올려놓고 계산해 본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면서

다시 남편을 위해 돈을 버는 생활인으로 돌아갔다.

전적으로 마음뿐인 남편의 사랑을 믿으려하면서.

 

  “당신은 가만히 있으면 돼잖아”
그러나 마음 운운은 남편의 아내 사랑 방식어었을 뿐

남편은 아내에게는 철저히 남편의 그늘에 몸이 묶인 생활인이 되도록 요구했다.

남편이 강원도에 있을 때 서경은 학교에서 회식이 있어도 피해야 했고

심지어는 당직도 바꿔야 했다.

남편은 교수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주말에 못 내려오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서경이 친정집에 무슨 일이 생겨 서울로 올라오는 주말에도

남편은 서경의 일정에 맞추어 주지 않았다.

남편은 장모생신 때나 얼굴을 내밀까 처제와 처남 일에는 무심했다.

그래도 착한 서경은 남편의 말대로 했다.

서울과 강원도를 왔다 갔다 하는 남편이 안됐어서 불평을 하지 않았고

그저 남편이 울타리인 것이 고마웠다.
 

그런데 아주 작은 사건을 계기로 그 울타리가 감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서경의 어머니가 풍에 걸린 것이었다.

누군가가 어머니 곁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서경의 남동생을 유학중이었고 여동생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남편에게 착한 서경은 당연히 친정일에 대해서도 착했다.

서경은 자기가 어머니를 모시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 때문에 두 달 남짓 남은 동생의 결혼식을 미룰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쨌든 남편과 상의해야 했다.
  “어머니를 우리가 모셨으면 하는데...”
  “어머니? 어머니가 전화했어?”
  남편은 부산에 사는 어머니를 생각했던 것이다.
  “아니, 우리 어머니. 병원에도 오래 계시지 못한대.”
  “뭐, 장모님을...아니, 왜 우리가!”
  “모실 사람이 없잖아!”
  “처남은 뭐하고?”
  “헌경이 공부하고 나올 때까지만 우리가 모시고 살아요.”
  “처남 박사 끝나려면 5년은 걸릴 텐데, 당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럼 공부하고 있는 헌경이더러 나오라고 해요?”
  “아니, 그럴 게 뭐 있어. 당신은 가만히 있으면 돼잖아.

   그러면 설마 장모님이 결혼한 당신더러 나 모시고 살라고 하겠어?“
  “당신 그걸 말이라고 해요?”
  “아니, 흥분하지마! 우리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자구.

이제 우리도 아이도 낳고 가정 같은 가정 꾸미고 살아야 할 텐데

환자가 집에 있으면 가정 분위기가 얼마나 망치는 줄 알아!

더구나 풍이라는 게 쉽게 낫는 병도, 쉽게 돌아가시는 병도 아닌데.”
 

서경은 캄캄했다.

내가 이런 사람과 살겠다고 근검 절약해가며 공부시키고
사람들과 약속 한번 제대로 못해 보고 지냈다니, 한심하게 살아왔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남편이 서경에게 감겨왔다.

 “여보, 당신은 내 사람이야. 나한테 당신밖에 없어.”
서경은 더 이상 그 감미로움에 취하지 않았다.

아니, 서경이 바보가 아닌 이상 감미로운 눈빛의 진실을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건 이기심이었다.
 

그후 1년이 걸려 서경은 어렵게 이혼을 하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서경은 나를 만나면  강조한다.

그 남자는 장모 때문에 이혼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절대 어머니 때문에 이혼한 것이 아니라고.

어머니 사건으로 그 사람과 자기 관계의 진면목이 드러났을 뿐이라고 말한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여태껏 아내로서 자기 해왔던 모든 일이 억울한 희생으로 느껴졌다.

이혼은 어려운 거였지만 그 남자와 함께 사는 것보다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확실히 눈빛의 힘은 생생한 삶의 원동력일 때만 살아 있는 힘이다.

사랑 없이, 삶을 함께 하는 자에 대한 책임감 없이 연출된 눈빛은

무거운 현실을 만나면 곧 실체로 드러낸다.
생활 속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눈빛, 연출된 눈빛은 거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