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전북무형문화재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판소리)

오늘의 쉼터 2011. 3. 10. 08:38

 

 

종 목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명 칭 판소리(판소리)
분 류무형유산 / 전통연행/ 음악/ 민속음악
수량/면적

개인

지정(등록)일 1984.09.20~?
해 제 일

0000.00.00

소 재 지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 4가 31-3 외
시 대대한민국
소유자(소유단체)

1.홍웅표(洪雄杓), 2.이옥희(李玉姬), 3.최난수(崔欄洙), 4.김유앵(金柳鶯),

5.최채선(崔采仙), 6.정병옥(鄭炳玉), 7.조소녀(曺小女), 8.성준숙(成俊淑),

9.강광례(姜光禮), 10.박복남(朴福南), 11.이순단(李順丹), 12.유영해(柳永海)

관리자(관리단체)판소리 협회
상 세 문 의 전라북도 전주시 전통문화시설과 063-281-2168

 

 

일반설명

 

판소리란 소리하는 사람 한 명과 북치는 사람 한 명, 그리고 판을 이루는 구경꾼으로 이루어지는 무대예술을 말한다. 소리하는 사람은 소리와 대사(아니리), 몸짓(발림)을 하며, 북치는 사람은 소리하는 사람의 가락에 따라 북을 쳐서 장단을 맞추며 신명난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

판소리는 지역적 특성과 전승계보에 따라 전라도 동북지역의 <동편제>, 전라도 서남지역의 <서편제>, 경기도와 충청도의 <중고제>로 나뉜다. 원래는 열 두 마당이었으나 일제시대에 거의 사라졌고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의 다섯 마당만 현재까지 남아있다.
판소리에 쓰이는 장단에는 느린 장단인 진양, 보통 빠르기의 중모리, 조금 빠른 중중모리, 빠른 자진모리, 매우 빠른 휘모리 등 여러 장단이 있어 사설에 나타나는 긴박하거나 한가한 여러 극적 상황에 따라 가려 쓴다.
지금은 흔히 극장놀음이나 방안놀음으로 ‘판소리’가 벌어지지만, 옛날에는 판놀음으로 벌어졌다. '판놀음'이란 여러 패의 놀이꾼들이 너른 마당을 놀이판으로 삼고, '판을 짠다'하여, 순서대로 소리, 춤, 놀이 따위를 짜서 벌이는 것을 한데 묶어 일컫는 말이다. 판놀음으로 벌이는 놀음에는 '판'이란 말이 붙는다. 판놀음에서, 줄타기는 '판줄', 농악은 '판굿', 춤은 '판춤', 염불은 '판염불', 소고 놀음은 '판소고'라고 한다. 따라서 판놀음에서 하는 소리가 '판소리'이겠다. 그러면 '소리'는 무엇이며, '소리하기'란 무엇일까? "소리 한자리 해라", "소리를 잘한다"와 같은 예스러운 표현에서, 또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 김매기소리, ‘상여소리’와 같은 말에서 우리는 그것이 '노래' 또는 '노래하기'와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판소리라는 말은 이 나라의 토박이 말이다. 옛날에는 이를 ‘잡가’, ‘극가’, ‘창가’, ‘본사’가 따위의 한자말로 쓰기도 했으나 요즈음에는 그런 말들을 쓰지 않는다. 판소리하는 이를 옛날에는 ‘창우’, ‘가객’, ‘광대’ 또는 ‘소리꾼’이라고 불렀는데 오늘날에는 일정하게 쓰는 말이 없다. 북치는 이는 ‘고수’라고 부른다.
‘판소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소리한다’고 하는가 하면, 말하는 것을 ‘아니리한다’고 하고, 몸짓을 하는 것을 ‘발림한다’고 한다. ‘발림이 좋다’는 말은 ‘너름새가 좋다’ 또는 ‘사체가 좋다’라고도 한다. 그리고 북 치는 고수가 북을 치면서 알맞은 대목에서 “얼씨구, 좋다!” 또는 “으이, 좋지!” 따위의 말을 외치는 것을 ‘추임새 한다’고 이른다.
'아니리'는 소리가 아닌 말로 설명하는 부분이다. '소리'는 ‘일왈창(一曰唱)’이라는 말이 있듯이 판소리의 핵심이 되는 요소이다. 말 그대로 창(소리)으로 표현하는 부분이다. '발림'은 무용적인 동작을 말한다. 판소리는 한 사람이 등장 인물들이나 상황을 모두 표현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적절한 몸 동작을 곁들여 공연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인 표현을 유도하고 있다. '추임새'는 반주자인 고수뿐만 아니라 구경하는 관객도 함께 넣는다. 창자를 추어주는 일종의 조흥사의 구실을 하며 추임새를 통해 반주자와 창자 그리고 무대와 관객을 열린 구조 안에 하나로 만든다.
‘창자’는 전통적인 창옷(요즈음은 보통 소매가 넓은 양반용 두루마기를 무대용으로 개발한 것) 속에 바지 저고리를 입고 갓을 쓴다. 도상자료를 보면 예전에는 중갓을 썼으나 지금은 창이 넓은 양반갓을 쓴다. 오른손에는 합죽선을 들고, 왼손에는 수건을 든다. 합죽선은 창자의 땀을 식히기도 하고 장면을 설명하는 소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수건은 두루마기 소매 속에 넣어 두었다가 때때로 꺼내어 땀을 닦는다.
고수는 역시 바지 저고리에 두루마기를 걸치고 갓을 쓴다. 고수는 북채를 쥐고 소리북을 앞에 놓고 창자의 왼쪽에 비스듬히 창자를 바라보며 앉는다. 고수가 북을 잡고 앉는 집고 자세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오른발을 왼발 위로 올려 앉는 자세이며, 하나는 왼발이 오른발 위로 올라오는 보통 ‘양반다리’라고 일컫는 자세이다. 대개는 후자의 자세를 택한다. 고수는 창자의 소리를 주의 깊게 들어가며 소리에 부합하는 장단을 짚어갈 뿐만 아니라, 적절한 추임새를 넣어 창자와 관객의 흥을 돋구기도 한다. 또한 창자가 사설 내용을 잊어버렸으면 재치있게 이를 일러주기도 하고, 소리하는 속도를 조절해 주기도 한다.
관객들은 서양식 음악회처럼 숨소리를 죽여가며 조용히 앉아 감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연에 개입하며 무대 위의 창자 고수와 함께 적극적으로 판을 만들어간다.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 ‘추임새’이다.
전라북도는 대사습의 뿌리깊은 전통 아래 있는 전주시 등 곳곳이 판소리의 중요한 전승지로서 뛰어난 명창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배출되었다. 


<전승자 정보>

◎홍웅표(洪雄杓, 1921.12.17, <수궁가>)
홍정택으로 불리우는 홍웅표는 부안 출생이다. 소년시절부터 임방울, 전일도, 조몽실, 이화중선 등의 협률사를 따라 나서면서 판소리 수업을 했다. 이어 명창 이기곤에게 <춘향가>와 <심청가>를 지도받았다. 1943년부터 1944년까지 김연수창극단에서 활동하였다. 1967년 춘향제 명창경연대회에서 수상했고 1980년에는 전라북도문화상을 수상했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는 전라북도도립국악원 교수를 역임했다. 그의 제자로는 최승희, 조소녀, 전정민, 조영자, 윤소인 등의 중견 명창들이 두드러진 활동을 하고 있다.


이옥희(李玉姬, 1936.3.15, <심청가>)
이일주라고 불리우는 이옥희는 충남 부여 출생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부친 이기중에게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전주로 이사한 후 이기곤으로부터 5년 여 <심청가>, <춘향가> 등을 사사하고 27세 때 남원으로 출가 이후 박초월 문하에서 <흥보가>를 익혔다. 31세 때 김소희 문하에 들어가 <심청가>를 사사하고 40세가 되면서 오정숙에게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등을 배웠다. 김연수에게서는 <심청가>, <춘향가>, <수궁가>를 전수받았다. 1979년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명창부 장원을 수상했고, 1986년부터 2001년까지 전라북도도립국악원 교수를 역임했다. 2002년에는 국립극장에서 완창발표회를 가지기도 했다.


최난수(崔欄洙, 1931.2.12, <춘향가>)
전라북도 임실 태생이다. 1940년부터 1950년까지 이기권에게 판소리를 사사했으며 1951년부터 1974년까지 조통달, 김수연, 남해성 등과 함께 박초월 문하에서 <춘향가>, <수궁가>, <흥보가>를 익혔다. 1979년 전주대사습놀이 명창부 장원을 수상했으며 1982년과 1983년에 각각 <수궁가>와 <흥보가>를 완창했다. 2002년부터 군산에서 후학을 양성 중이다.


김유앵(金柳鶯, 1931.8.24, <춘향가>)
익산에서 출생하였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 김대성에게 판소리 기초를 배우다 13세 때 이기곤에게서 <춘향가>를 배우기 시작하여 17세가 되어 완창하였고 현금(弦琴)과 민속무용도 익혔다. 1947년부터 1950년까지 선일창극단과 고려창극단 등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18세 때 김연수 문하에 들어가 <춘향가>와 <열사가>를 사사. 그 후 이재호로부터 <시조>, <가곡> 등도 사사했다. 1970년 춘향제 전국명창대회에서 1등을 수상했으며 1979년에는 전주시립민속예술단에서 판소리와 민요를 가르쳤고 1986년부터 1997년까지 전라북도도립국악원의 민요교수를 역임했다.


최채선(崔采仙, 1937.2.15. 生, <춘향가>)
전라북도 익산에서 출생한 최채선은 ‘승희’라는 예명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1970년 홍정택, 박초월, 김여란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1980년에는 남원 춘향제 판소리 부문의 장원을 수상했다. 또 1981년에는 전주대사습 명창부 판소리 장원을 했으며 1985년부터 1992년까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등을 완창했다. 1989년부터 1998년까지 전라북도도립국악원 교수를 역임했다.


정병옥(鄭炳玉, 1928.5.10, <적벽가>)
예명이 정미옥인 정병옥은 15세 때 오수암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박영실, 김연수에게서 사사하고 이후 1963년 박봉술로부터 <적벽가>를 사사했다. 1979년 전국국악연구회에서 창악 강사로 지냈으며 1984년부터 1985년까지 전주대사습 일반부의 심사를 맡았다. 1987년에 <적벽가>를 완창했다.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적벽가>는 동편제의 대표적인 소리로서 주로 ‘박봉술제’로 전해온다. 현재 이 바디를 전승, 보유하고 있는 여창으로는 유일하다


조소녀(曺小女, 1941.7.28, <춘향가>)
충청남도 온양에서 출생했다. 1960년 박초월에게 판소리를 사사하면서 판소리에 입문하여 이후 홍정택 문하에서 수학했고, 이일주로부터 <심청가>, 오정숙에게서 <춘향가>를 사사했다. 1984년에는 대한민국국악제에 출연하였고, 1985년에는 <심청가> 완창 발표회를 갖기도 했다. 1991년 한국전통예술진흥회 전라북도 지부장을 역임했으며 1995년부터는 여러 대학의 강사로 활동하였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조소녀판소리연구소를 개원해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조소녀 소리의 특징은 극적 성격이 뚜렷하다는 점과 부침새와 기교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볼거리와 들을거리를 풍성하게 제공함으로 청중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요소로 조소녀의 음악적 역량을 돋보이게 한다.


성준숙(成俊淑, 1944.3.4, <적벽가>)
민소완으로도 불리우는 성준숙은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출생했다. 12세 때 홍갑수 단체에서 임방울로부터 <수궁가>를 사사한 것을 시작으로 1970년부터 1972년 사이에 김동준, 강도근 밑에서 판소리를 익혔으며 1970년부터 1989년까지 이일주와 오정숙에게서 동초제 판소리를 사사했다. 1987년에는 <흥보가>, 1988년에 <수궁가>, 1991년에 <적벽가> 등 1985년부터 1991년까지 판소리 다섯 바탕 완창 발표회를 하였다. 1986년 전주대사습놀이 명창부 장원을 수상한 바 있으며 1999년에도 판소리 완창발표회를 가졌다. 성준숙은 김연수 바디 <적벽가>를 계승하고 있는데 김연수 바디 <적벽가>는 동편제 유성준 바디 <적벽가>를 기본으로 재창조된다. 성준숙 소리는 여류명창이 갖기 쉬운 애원성이 없고 통성으로 부르는 음악성이 압권이다. 창극보다는 완창발표회를 통해 그 음악성이 돋보이며 다양한 재능보다는 품격이 실려있다고 평가된다.


강광례(姜光禮, 1933.7.14, <흥보가>)
전라남도의 강진에서 태어났다. 1950년부터 1952년까지 별님창극단에서 활동하였으며 1955년 정광수에게 판소리를 사사했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최난수에게 <흥보가>와 <수궁가>를 익혔으며 1987년 <흥보가> 완창 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그가 부르는 <흥보가(興甫歌)>는, <춘향가(春香歌)>와 함께, 남원(南原)을 지리적 배경으로 하여 만들어진 판소리다. 강광례의 <흥보가>는 동편제, 박초월의 바디인데 송홍록→송광록→송우룡 →송만갑(재창조)→김정문으로 이어진 소리를, 박초월이 계승하여 재창조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똑같이 김정문의 소리를 계승하였으나 강도근의 <흥보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강광례는 1983년 이후 오랫동안 정읍국악원과 정읍사국악원에서 판소리를 가르쳐 많은 제자를 두었다.


박복남(朴福南, 1927.4.15, <수궁가>)
전라북도 순창에서 태어났다. 11세부터 유성준, 송만갑, 이동백에게 <수궁가>, <흥보가>, <심청가> 등을 판소리 사사받았다. 1940년 박봉술 판소리를 사사했고 1960년부터 1980년 사이에 정읍, 여수, 부안국악원장을 역임하였다. 특히 1996년 9월 16일 제3회 서울전국명창경연대회에서 판소리 부분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전주대사습놀이에서도 명창부 장원을 수상하였다. 박복남(朴福男)은 판소리의 음색이 정아하고 독특하며 고성의 기량이 뛰어나고 송만갑 명창에게 사사받은 <흥보가>는 상, 하청이 분명하다. 지역의 판소리 발전을 위하여 순창국악원에서 판소리 강사로 활동하며 후배 양성에 앞장 서고 있다.


이순단(李順丹, 1948.8.18, <흥보가>)
전라북도 목포에서 출생했다. 1985년 오정숙에게 <춘향가>, <수궁가>를 사사했다. 1997년 목포 전국판소리경창대회에서 최우수상을, 1998년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장원을 수상하였다. 2002년 전북도립국악원 창악부 교수를 역임하였다. 남편 故은희진 명창과 함께 연기력과 소리를 고루 갖춘 예인으로 창극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유영해(柳永海, 1948.12.18, <심청가>)
전라남도 장흥 출생이다. 1961년 김삼룡, 한농선, 조상현 문하에서 판소리를 익혔다. 1986년 경주신라문화제에서 장원, 1988년 춘향제 전국판소리대회에서 장원을 수상했다. 1994년 <심청가>를 완창했고 2002년 국립민속국악원 지도위원을 지냈다.

 





 

 


판소리(적벽가 정병옥)


 



판소리(춘향가 조소녀)  

 



판소리(적벽가 성준숙)

 


판소리(흥보가 강광래)


 


판소리(수궁가 홍웅표)


 



판소리(심청가 이옥희)


 



판소리(흥보가 성점옥)


 



판소리(춘향가 김유앵)


 



판소리(춘향가 최승희)


 



판소리(춘향가 최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