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웅표(洪雄杓, 1921.12.17, <수궁가>) 홍정택으로 불리우는 홍웅표는 부안 출생이다. 소년시절부터 임방울, 전일도, 조몽실, 이화중선 등의 협률사를 따라 나서면서 판소리 수업을 했다. 이어 명창 이기곤에게 <춘향가>와 <심청가>를 지도받았다. 1943년부터 1944년까지 김연수창극단에서 활동하였다. 1967년 춘향제 명창경연대회에서 수상했고 1980년에는 전라북도문화상을 수상했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는 전라북도도립국악원 교수를 역임했다. 그의 제자로는 최승희, 조소녀, 전정민, 조영자, 윤소인 등의 중견 명창들이 두드러진 활동을 하고 있다. ◎이옥희(李玉姬, 1936.3.15, <심청가>) 이일주라고 불리우는 이옥희는 충남 부여 출생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부친 이기중에게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전주로 이사한 후 이기곤으로부터 5년 여 <심청가>, <춘향가> 등을 사사하고 27세 때 남원으로 출가 이후 박초월 문하에서 <흥보가>를 익혔다. 31세 때 김소희 문하에 들어가 <심청가>를 사사하고 40세가 되면서 오정숙에게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등을 배웠다. 김연수에게서는 <심청가>, <춘향가>, <수궁가>를 전수받았다. 1979년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명창부 장원을 수상했고, 1986년부터 2001년까지 전라북도도립국악원 교수를 역임했다. 2002년에는 국립극장에서 완창발표회를 가지기도 했다.
◎최난수(崔欄洙, 1931.2.12, <춘향가>) 전라북도 임실 태생이다. 1940년부터 1950년까지 이기권에게 판소리를 사사했으며 1951년부터 1974년까지 조통달, 김수연, 남해성 등과 함께 박초월 문하에서 <춘향가>, <수궁가>, <흥보가>를 익혔다. 1979년 전주대사습놀이 명창부 장원을 수상했으며 1982년과 1983년에 각각 <수궁가>와 <흥보가>를 완창했다. 2002년부터 군산에서 후학을 양성 중이다.
◎김유앵(金柳鶯, 1931.8.24, <춘향가>) 익산에서 출생하였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 김대성에게 판소리 기초를 배우다 13세 때 이기곤에게서 <춘향가>를 배우기 시작하여 17세가 되어 완창하였고 현금(弦琴)과 민속무용도 익혔다. 1947년부터 1950년까지 선일창극단과 고려창극단 등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18세 때 김연수 문하에 들어가 <춘향가>와 <열사가>를 사사. 그 후 이재호로부터 <시조>, <가곡> 등도 사사했다. 1970년 춘향제 전국명창대회에서 1등을 수상했으며 1979년에는 전주시립민속예술단에서 판소리와 민요를 가르쳤고 1986년부터 1997년까지 전라북도도립국악원의 민요교수를 역임했다.
◎최채선(崔采仙, 1937.2.15. 生, <춘향가>) 전라북도 익산에서 출생한 최채선은 ‘승희’라는 예명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1970년 홍정택, 박초월, 김여란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1980년에는 남원 춘향제 판소리 부문의 장원을 수상했다. 또 1981년에는 전주대사습 명창부 판소리 장원을 했으며 1985년부터 1992년까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등을 완창했다. 1989년부터 1998년까지 전라북도도립국악원 교수를 역임했다.
◎정병옥(鄭炳玉, 1928.5.10, <적벽가>) 예명이 정미옥인 정병옥은 15세 때 오수암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박영실, 김연수에게서 사사하고 이후 1963년 박봉술로부터 <적벽가>를 사사했다. 1979년 전국국악연구회에서 창악 강사로 지냈으며 1984년부터 1985년까지 전주대사습 일반부의 심사를 맡았다. 1987년에 <적벽가>를 완창했다.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적벽가>는 동편제의 대표적인 소리로서 주로 ‘박봉술제’로 전해온다. 현재 이 바디를 전승, 보유하고 있는 여창으로는 유일하다
◎조소녀(曺小女, 1941.7.28, <춘향가>) 충청남도 온양에서 출생했다. 1960년 박초월에게 판소리를 사사하면서 판소리에 입문하여 이후 홍정택 문하에서 수학했고, 이일주로부터 <심청가>, 오정숙에게서 <춘향가>를 사사했다. 1984년에는 대한민국국악제에 출연하였고, 1985년에는 <심청가> 완창 발표회를 갖기도 했다. 1991년 한국전통예술진흥회 전라북도 지부장을 역임했으며 1995년부터는 여러 대학의 강사로 활동하였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조소녀판소리연구소를 개원해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조소녀 소리의 특징은 극적 성격이 뚜렷하다는 점과 부침새와 기교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볼거리와 들을거리를 풍성하게 제공함으로 청중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요소로 조소녀의 음악적 역량을 돋보이게 한다.
◎성준숙(成俊淑, 1944.3.4, <적벽가>) 민소완으로도 불리우는 성준숙은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출생했다. 12세 때 홍갑수 단체에서 임방울로부터 <수궁가>를 사사한 것을 시작으로 1970년부터 1972년 사이에 김동준, 강도근 밑에서 판소리를 익혔으며 1970년부터 1989년까지 이일주와 오정숙에게서 동초제 판소리를 사사했다. 1987년에는 <흥보가>, 1988년에 <수궁가>, 1991년에 <적벽가> 등 1985년부터 1991년까지 판소리 다섯 바탕 완창 발표회를 하였다. 1986년 전주대사습놀이 명창부 장원을 수상한 바 있으며 1999년에도 판소리 완창발표회를 가졌다. 성준숙은 김연수 바디 <적벽가>를 계승하고 있는데 김연수 바디 <적벽가>는 동편제 유성준 바디 <적벽가>를 기본으로 재창조된다. 성준숙 소리는 여류명창이 갖기 쉬운 애원성이 없고 통성으로 부르는 음악성이 압권이다. 창극보다는 완창발표회를 통해 그 음악성이 돋보이며 다양한 재능보다는 품격이 실려있다고 평가된다.
◎강광례(姜光禮, 1933.7.14, <흥보가>) 전라남도의 강진에서 태어났다. 1950년부터 1952년까지 별님창극단에서 활동하였으며 1955년 정광수에게 판소리를 사사했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최난수에게 <흥보가>와 <수궁가>를 익혔으며 1987년 <흥보가> 완창 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그가 부르는 <흥보가(興甫歌)>는, <춘향가(春香歌)>와 함께, 남원(南原)을 지리적 배경으로 하여 만들어진 판소리다. 강광례의 <흥보가>는 동편제, 박초월의 바디인데 송홍록→송광록→송우룡 →송만갑(재창조)→김정문으로 이어진 소리를, 박초월이 계승하여 재창조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똑같이 김정문의 소리를 계승하였으나 강도근의 <흥보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강광례는 1983년 이후 오랫동안 정읍국악원과 정읍사국악원에서 판소리를 가르쳐 많은 제자를 두었다.
◎박복남(朴福南, 1927.4.15, <수궁가>) 전라북도 순창에서 태어났다. 11세부터 유성준, 송만갑, 이동백에게 <수궁가>, <흥보가>, <심청가> 등을 판소리 사사받았다. 1940년 박봉술 판소리를 사사했고 1960년부터 1980년 사이에 정읍, 여수, 부안국악원장을 역임하였다. 특히 1996년 9월 16일 제3회 서울전국명창경연대회에서 판소리 부분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전주대사습놀이에서도 명창부 장원을 수상하였다. 박복남(朴福男)은 판소리의 음색이 정아하고 독특하며 고성의 기량이 뛰어나고 송만갑 명창에게 사사받은 <흥보가>는 상, 하청이 분명하다. 지역의 판소리 발전을 위하여 순창국악원에서 판소리 강사로 활동하며 후배 양성에 앞장 서고 있다.
◎이순단(李順丹, 1948.8.18, <흥보가>) 전라북도 목포에서 출생했다. 1985년 오정숙에게 <춘향가>, <수궁가>를 사사했다. 1997년 목포 전국판소리경창대회에서 최우수상을, 1998년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장원을 수상하였다. 2002년 전북도립국악원 창악부 교수를 역임하였다. 남편 故은희진 명창과 함께 연기력과 소리를 고루 갖춘 예인으로 창극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유영해(柳永海, 1948.12.18, <심청가>) 전라남도 장흥 출생이다. 1961년 김삼룡, 한농선, 조상현 문하에서 판소리를 익혔다. 1986년 경주신라문화제에서 장원, 1988년 춘향제 전국판소리대회에서 장원을 수상했다. 1994년 <심청가>를 완창했고 2002년 국립민속국악원 지도위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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