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수곡리 청송심씨 퇴휴당 종중 문서류 (咸安 藪谷里 靑松沈氏 退休堂 宗中 文書類) 일반설명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90호
명 칭
분 류
기록유산 / 문서류/ 문서류/ 문서류
수량/면적
2책,35점
지정(등록)일
2009.12.03
소 재 지
경남 함안군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청송심씨 퇴휴당 종중
관리자(관리단체)
청송심씨 퇴휴당 종중
상 세 문 의
경상남도 함안군 문화관광과 055-580-2321
1) 성책류
「敎官公實記」(1책, 20.5× 30cm) : 藪隱 沈明楫(1808-1883)의 실기. 필사본.
「揚武原從功臣錄券」(1책, 21.5× 32cm) : 영조 4년 戊申亂에서 공을 세운 공신들이 기록된 녹권이다. 서두에 ‘武閑良 沈太俊’이라 인쇄되어 있어 심태준에게 주어진 녹권임을 알 수 있다.
2) 문서류
「敎旨」(80× 67cm) : 光緖 17년(1891) 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 沈太俊에게 ‘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라는 증직을 내린 교지이다.
「敎旨」(65× 56cm) : 광서 17년 심태준의 처 淑夫人 徐氏에게 ‘貞夫人’이라는 직첩이 내려진 교지이다. 남편의 벼슬이 보다 높게 올라감에 따라 부인의 직계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敎旨」(80× 65cm) : 시기 미상. 효자 심명즙에게 朝奉大夫 童蒙敎官의 직을 수여한 문서이다. 연도 부분 및 위, 아래 부분이 탈락되어 있다. ꡔ敎官公實記ꡕ에 의하면, 교지가 내려진 시기는 고종 26년(1889)으로 추정된다.
「교지」(68× 56cm) : 연도미상. 심명즙의 처로서 夫職을 따라 慶州金氏에게 淑夫人의 직첩을 내린 문서이다. 직첩이 내려진 시기는 1889년일 것이다.
「告目」(78× 110cm) : 癸亥(1863) 정월 수곡 頭民·洞首가 里所에 보냄. 이명즙의 효행 실상을 보고하고, 邑과 營에 전달해 줄 것을 요구.
「通文」(42× 58cm) : 계해 2월 12일 山翼面 里會席게서 산족면 수곡동중에 보냄. 수곡동이 정장운동에 먼저 나설 것을 촉구.
「통문」(38× 38cm) : 계해 2월 20일 竹山面 慕老洞會中에서 山足面 藪谷洞中에 보냄. 수곡동에서 먼저 심명즙 효행 표창을 위한 呈狀운동에 참여할 것을 요구.
「통문」(41× 57.5cm) : 계해 2월 29일 安道面에서 산족면 수곡동에 보냄. 수곡동이 먼저 정장운동에 참여하기를 요구.
「통문」(42× 58cm) : 계해 ?월 20일 죽산면 모로동 會席에서 수곡동에 보냄. 심명즙 효행의 포창을 위해 정장운동에 나설 것을 촉구.
「통문」(59× 51cm) : 계해 2월 진주 東山 유학 李哲明, 진해 竹洞 유학 徐良輔 등이 수곡동에 보냄. 수곡동이 심명즙 효행의 표창에 나설 것을 촉구. 앞부분 탈락.
「통문」(39× 66cm) : 계해 3월 17일 大谷面會(趙光奎 등)에서 藪谷洞에 보냄. 심명즙 효행 표창을 수곡동이 먼저 發論할 것을 요구.
「上書」(62× 86cm) : 계해 3월 山足·安仁·山翼·南山·舊大谷·新大谷·大山·上里 등 고을 내 여러 면의 유림들이 수령에게 올림. 심명즙 효행을 표창해 줄 것을 요구.
「등장」(55.5× 92cm) : 계해 8월 산족면 대소민인이 수령에게 올림. 심명즙 효행을 감영에 알려 포창이 있도록 해 줄 것을 요구.
「稟報」(82× 101cm) : 계해 10월 산족면 里中에서 수령에게 올림. 심명즙 효행에 대해 우선 역을 면제시키는 조치라도 취해줄 것을 요구.
「聯名狀」(41× 62cm) : 시기미상. 趙聖鍊 등 상서 등 정장운동에 참여했던 인물의 명단. 어떤 정장에 붙어 있던 것인지 현재로는 알 수 없음.
「상서」(64.5× 102cm) : 甲子(1864) 3월 산족면 유학 趙匡植 등 여러 면의 유림들이 수령에게 올림. 신명즙 효행 천거.
「상서」(76× 90cm) : 乙丑(1865) 2월 경상도 유림들이 관찰사에게 올림. 심명즙 효행 표창 요구.
「等狀」(63× 105cm) : 을축 2월 산족면 수곡동 주민들이 수령에게 올림. 심명즙 효행 천거 요구.
「所志」(62× 100cm) : 을축 5월 상주 유학 姜裕永, 진주 유학 鄭宅壽 등이 함안 수령에게 올림. 심명즙의 효행 표창을 관찰사에게 요구하였으나 제사에 다시 採訪할 것을 지시. 읍에서의 포창은 어려운 것이 아닌데, 일반 평민과 같이 대우. 포창을 다시 요구.
「상서」(74× 106cm) : 을축 9월 함안·진주·합천·선산·의령·함양·삼가·성주·거창·산청·문경 등 경상도 유림들이 예조에 올림. 심명즙 효행에 대한 표창을 요구.
「稟報」(71× 88cm) : 을축 12월 산족면 里中에서 수령에게 올림. 수곡에 거주하는 심명즙의 효행 실상과 전후 呈狀 상황 보고.
「상서」(63× 85cm) : 戊辰(1868) 8월 고을 내 여러 면 유림들이 暗行御史에게 올림. 심명즙 효행을 왕에게 보고하여 표창의 은전이 내려지게 해 줄 것을 요구.
「상서」(61× 88cm) : 庚午(1870) 12월 산족면 유학 趙聖鍊·李承燁·趙澐祥 등이 수령에게 올림. 여러 번 呈狀을 올렸지만, 아직도 은전의 조치가 없음. 상급기관에 轉報하여 포창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요구.
「상서」(66× 88cm) : 시기미상. 함안 산족면 유학 趙聖鍊 등이 암행어사에게 올림. 영읍에 여러 번 정장을 올림. 조치가 없음. 왕에게 보고하여 은전이 내려지도록 해 달라고 요구.
「상서」(62.5× 87.5cm) : 시기미상. 함안 산족면 유학 趙聖鍊·李承燁·趙澐祥 등이 암행어사에게 올림. 여러 번 정장을 올렸으나 조치가 없음. 은전이 베풀어지도록 해줄 것을 요구.
「상서」(75× 91cm) : 시기미상. 산족면 유학 趙聖鍊·李承燁·趙澐祥 등이 수령에게 올림. 심명즙 효행이 조정에 보고되도록 하여 은전이 베풀어지도록 해 줄 것을 요구.
「상서」(61× 98cm) : 시기미상. 산족면 유학 趙聖鍊 등이 암행어사에게 올림. 여러 번 정장을 올렸으나 조치가 없음.
「立案」(86×120cm) : 시기미상(1889?). 예조에서 발급한 효자정려 입안. 경상도 유학 韓鎭燁 등의 上言으로 심명즙 효행에 대한 정려를 결정하고 자손들에게 잡역도 면제하는 조처를 취한 문서.
「關文」(92× 32cm) : 시기미상(1889?). 禮曺가 慶尙道觀察使(?)에게 내림.(뒷부분 탈락) 경상도내 유학 韓鎭燁 등의 上言으로 인해 심명즙 효행에 대한 旌閭를 내리니 해당 고을에 지령하여 旌門 수립 때 필요한 材木이나 匠手 등은 관에서 조달할 것을 지시. 관찰사가 수령에게 보낸 관문도 찌 형태로 원래의 관문에 붙어 있다.(예조의 관문에 따라 거행하고 감영에 보고할 것을 지시.)
「沈孝子表情」(42× 57cm) : 갑자 元月 戚叔 琴湖 金廷宇가 심명즙의 효행의 실상을 기록하고 칭송한 글.
「祭文」(37× 46cm) : 癸亥 8월 함안 趙吉愚가 장인 靑松沈씨 小祥 때 그에 대해 애도한 제문.
「祭文」(36.5× 41.5cm) : 계해 8월 孫壻 趙熙濟가 청송심씨 소상 때 그에 대해 애도한 제문.
「簡札」(36× 40cm) : 壬戌(1862) 10월 李明楫이 종중에 보내 부모 산소문제를 해명한 편지. 종중에서 이를 수긍한다는 짤막한 글도 첨부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通文」(43× 37.5cm) : 丁巳(1857) 7월 藪谷 公員 金○와 유사 沈○이 慕老谷에 보냄. 모노곡 樵軍들이 작당하여 수곡에 사는 沈明楫의 선조 산소에 禁養되고 있던 松楸를 남벌하고 이를 막자 의관을 찟고 행패를 부린 것에 대해 항의.
「所志」(34.5× 53cm) : 丁卯(1867) 12월 山足面 藪谷에 거주하는 沈宜明이 수령에게 올림. 母山이 竹山 可簡洞에 있는데, 누군가가 부근에 偸葬. 부근 면 지역에 지령하여 무덤 주인을 찾아줄 것을 요청.
2. 조사자 의견
제출된 문헌은 성책류 2책, 고문서 35건이다. 고문서로는 敎旨 4건, 上書 10건, 所志 2건, 等狀 2건, 稟報 2건, 告目 1건, 立案 1건, 關文 1건, 通文 7건, 祭文 2건, 簡札 1건, 기타 2건 등이 있다. 문서는 모두 19세기 후반의 것이고 대부분의 문서들이 파손되어 있어서 자료적인 가치가 떨어진다고 할 수도 있지만(특히 시기 부분이 마모되어 시기를 알 수 없는 것이 적지 않음), 양도 적지 않고 내용 면에서도 주목되는 것이 있다.
내용면에서 볼 때, 주된 것은 무신란에 공훈을 세운 沈太俊(1690-1756)과 효행으로 정려를 받은 沈明楫(1808-1883, 심태준의 5대손)과 관련된 문헌이고 그 이외에도 山訟 관련 문서 등 몇 가지 문서가 포함되어 있다.
효행을 포창하기 위해 인근 유림들이 본격적인 정장운동을 전개하기 전에 고을 내 각 지역의 유림들이 통문을 돌려 서로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문서가 발견된 경우는 드물다. 여기에는 심명즙의 효행 포창운동을 위해 여러 면의 유림들이 해당 마을인 수곡동에 먼저 움직일 것을 촉구하는 통문들이 여러 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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