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인천기념물

시도기념물 제59호 (서구) 반남박씨대종중 묘역 (潘南朴氏大宗中 墓域 )

오늘의 쉼터 2010. 10. 14. 19:48

 

종 목 시도기념물  제59호 (서구)
명 칭 반남박씨대종중 묘역 (潘南朴氏大宗中 墓域 )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봉토묘
수량/면적 1,903㎡(영향검토구역 14,825㎡)
지정(등록)일 2010.04.27
소 재 지 인천 서구  대곡동 산151-1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 반남박씨대종중
관리자 반남박씨 대종중
상 세 문 의 인천광역시 서구 문화공보실 032-560-4343
 
일반설명
 
반남박씨(潘南朴氏)  대종중 묘역은 반남박씨(潘南朴氏) 8세부터 14세까지의 열 분이 계신 선영이다 그들은 사직공 박병문(秉文), 상주공 박임종(林宗), 교리공 박억년(億年), 정랑공 박조년(兆年), 유사공 박집(緝), 도정공 박응인(應寅), 사마공 박동기(東紀), 호군공 박동위(東緯), 좌참찬 박동선(東善)과 그 아들 박정(炡)이다. 박(朴炡)께서는 인조반정때 정사공신으로 금주군(錦洲君)의 훈호를 받았다. 본 묘역의 문화재, 서포공 박동선(朴東善)의 신도비문은 논산의 명현 명재(明齋) 윤증(尹拯)이 1707년에 짓고 글씨는 이렴(李濂)이 썼으며, 금주군 박정(朴炡)의 신도비문은 병자호란 인조임금의 <삼전도의 굴욕>때 충신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이 1712년에 짓고 글씨는 박필기(朴弼基)가 썼다. 반남박씨(潘南朴氏)는 고려 고종때 나주 반남현의 호장 박응주(朴應珠)를 시조로하여, 조선초 좌의정 평도공(平度公) 박은(朴訔)을 비롯하여 인종비 인성왕후(仁聖王后), 선조비 의인왕후(懿仁王后), 순조의 모친 현목유비와 의빈(부마) 5분 재상 7분 문과급제 202분, 사마시 합격자 460분과 동국명현 명신 5분, 문묘(성균관) 배향위 박세채(朴世采), 실학의 선구자 박세당(朴世堂), 열하일기의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개화사상의 선각자 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 첫 주미 공사인 총리대신 박정양(朴定陽), 태극기를 처음 사용한 금릉도위 박영효(朴泳孝)와 독립운동가 박찬익(朴贊翊), 박영준朴英俊) 부자 등이 계신 명문이다. 묘 주위에는 문인석, 상석, 동자석, 문인석 등도 부분적이나마 잘 남아 있어 조선시대 후기 사대부 묘역으로서의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어 조선후기의 사대부 묘제 및 석조미술을 연구하는 자료가 된다.

 

 

 

반남박씨 대종중 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