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수배자 (2)
강안여자 수배자 6~10
6.
"응, 그래. 그렇지."
하면서 허리를 들어올리던 조홍인이 곧 눈을 치켜뜨고 소리쳤다.
"된다! 된다! 된다!"
그 순간 조홍인이 번쩍 허리를 치켜 들었고 2초쯤 지났을 때 침대 위로 몸을 떨어뜨렸다.
끝난 것이다.
장미는 그대로 조홍인의 몸 위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감고 누운 조홍인이 거칠게 숨을 뱉었다.
간간이 앓는 소리까지 들린다.
이윽고 장미가 몸을 떼었을 때 조홍인이 아쉬운듯 낮게 신음했지만 주름진 얼굴에는
웃음기가 번져 있다.
"좋구나."
눈을 감은 채로 조홍인이 말했다.
그러나 기력이 다 빠져 나간 터라 온몸을 늘어뜨린 채 손끝하나 까닥하지 못한다.
침대에서 일어선 장미가 알몸으로 욕실로 들어가 물에 적신 타월을 들고 나왔다.
조홍인의 몸 뒷처리를 해주려는 것이다.
"으으음."
따뜻하게 적신 수건으로 몸을 닦자 조홍인이 다시 만족한 표정으로 신음했다.
벽시계가 밤 9시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로 별장 생활이 6일째. 조홍인은 매일밤 섹스를 요구했는데 시간은 2분도 안걸렸다.
그러나 물건의 작동 준비에 30분 정도 소요 되었으므로 뒷처리 시간까지 더하면 40분이 된다.
몸을 닦고 시트를 덮어 주었을 때 조홍인의 숨소리가 가라앉았다.
곧 잠이 들 것이다.
"저, 방에 가도 되죠?"
하고 장미가 낮고 부드럽게 묻자 조홍인이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오냐."
장미는 가운을 걸치고는 방을 나왔다.
지금부터 내일 아침 9시까지는 자유시간이다.
조홍인은 아침 7시에 일어나 근처 숲을 산책했는데 아침식사 시간까지 찾지 않는 것이다.
장미가 아래층 주방으로 내려왔을 때는 10분쯤 후였다.
"응. 왔어?"
주방 의자에 앉아 TV를 보고있던 나주댁이 웃음띤 얼굴로 장미를 보았다.
첫 인상은 뚝뚝했지만 사흘쯤 지나자 곧 친해졌다.
장미가 붙임성이 있는데다 나주댁도 겉보기와는 다르게 싹싹했다.
조홍인 앞에서는 아가씨로 존칭을 쓰지만 둘이 있을 때는 자연스럽게 반말을 한다.
"저녁 조금밖에 안먹던데. 내가 미역국에 밥 말아줄까?"
"네, 아줌마. 좀 배가 고파요."
식탁에 앉은 장미가 웃음띤 얼굴로 나주댁을 보았다.
"꼭 이 시간엔 배가 고프네요."
"시달리고 나오니까 그렇지."
밥을 푸면서 나주댁이 말했다. 등을 보이고 있어서 표정은 안보였다.
"영감님 제대로 하기는 하는거야?"
"아줌마도 참."
쓴웃음을 지은 장미가 리모컨으로 TV 화면을 바꾸다가 곧 꺼버렸다.
밥과 찬을 식탁에 늘어놓은 나주댁이 앞쪽에 앉았다.
"어서 먹어, 갓김치 맛이 괜찮아."
찬 그릇을 앞으로 밀며 나주댁이 말했다.
나주댁 음식 솜씨는 뛰어났다.
자칭 조홍인의 전속 주방장으로 15년동안 모셔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월급도 회사 이사급 대우를 받는다고 했다.
"저 영감님한테 얼마 받기로 했어?"
나주댁이 국을 떠먹는 장미한테 물었다.
장미의 시선을 받은 나주댁이 은근하게 웃었다.
"한달 예정으로 내가 여기 왔으니 기간은 한 달이겠고. 1억? 2억?"
밥을 떠 입에 넣은 장미가 머리만 젓자 나주댁이 정색했다.
"그럼 3억? 5억?"
씹던 것을 삼킨 장미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이참, 아줌마도 별걸 다."
"작년에 얄구진 계집애 하나하고 여기서 겨울 한 달을 지냈는데 그년이 얼마 받은지 알아?"
나주댁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장미를 보았다.
"2억5천이야, 2억5천."
"……."
"그 기집애에 비하면 거기는 두 배는 받아야 돼, 그럼 5억이 되지."
밥맛이 달아난 장미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7.
나주댁이 커피를 끓여 내왔으므로 장미는 커피잔을 들고 아래층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별장 안은 조용했다. 도시의 정적이란 표현은 맞지 않는다.
아니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저 전보다 조용해졌을 뿐이지 귀 밝은 사람들에게는 끊임없이 소음이 울린다.
그러나 이곳은 밤이 되면 귀가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는 바람소리,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뿐이었다.
나주댁이 앞자리에 앉더니 힐끗 위쪽을 보았다.
"저 영감님은 10시면 누가 떠메어가도 모르지."
벽시계가 딱 10시 정각이 되어 있었다.
TV도 꺼놓았으므로 거실에 앉은 둘의 숨소리까지 들렸다.
창 밖은 짙은 어둠에 덮여 있어서 숲의 윤곽만 희미하게 드러났다.
어느 쪽에도 불빛 한 점 보이지 않는다.
한 모금 커피를 삼킨 나주댁이 혼잣소리처럼 말을 이었다.
"도대체 저 영감님은 몇 살까지 사실건가? 지금 여든 둘이니까 3년? 5년?"
장미의 시선을 받은 나주댁이 히죽 웃었다.
"지금도 힘 좋아?"
"아주머니도 참."
"산삼 녹용을 몇 천만원어치씩 고아 먹으니 그 나이의 노인보단 낫겠지."
"……."
"하지만 저렇게 밝히다간 몇 년 못가."
"답답해서 그래. 좀 화가 나기도 하고."
"화가 나다뇨?"
정색한 장미가 나주댁을 보았다.
커피잔을 내려놓은 나주댁도 정색했다.
"나도 10년쯤 전에는 저 영감님 수청을 들었거든."
"……."
"그래, 수청이지. 임금님 수청."
그리고는 풀썩 웃은 나주댁이 소파에 등을 붙였다.
"난 음식 솜씨도 좋고 몸도 나긋나긋하다면서 한 반 년 수청을 들도록 했어."
"……."
"그땐 본댁 마나님이 돌아가신지 얼마 안되어서 영감님이 홀가분했을 때니까."
"……."
"나야 혼자 살고 있었으니 걸릴게 없었지. 영감님한테 찍힌 것이 솔직히 좋기도 했고."
"반 년 살고 1억5천 받아서 자식 둘 분가시키는데 요긴하게 썼지."
"……."
"그리고는 계속 따라다니면서 주방장 겸 별장지기, 여자 뒤치닥거리를 하고 있는거야."
그러더니 장미에게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해는 하지마. 내 팔자 타령을 하는 중이니까."
"오해는요."
나주댁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장미한테 물었다.
"산삼 넣은 술이 있는데 마실거야? 진짜 산삼인지는 모르지만 맛은 좋아."
"전 그냥."
장미가 잠깐 망설이다 말했다.
"소주 주세요."
"그래, 소주도 있어. 그럼 소주 마시지."
나주댁이 금방 술과 안주를 쟁반에 차려들고 오더니 웃었다.
"지난번 그 기집애는 어린 것이 아주 거만해서 나한테 말도 안했지. 싸가지가 없는 년야."
나주댁이 잔에 술을 채우더니 먼저 한 모금에 삼켰다.
"지금은 TV 드라마에서 가끔 뜨더구만. 뭐라더라? 윤리지?"
얼굴은 알았지만 관심없는 화제여서 장미는 잠자코 소주잔을 입에 댔다.
그러자 나주댁이 말을 이었다.
"저 영감이 자식들한테 무시를 당하지 않는 이유가 뭔지 알아?
아직도 재산을 꽉 틀어쥐고 있기 때문야."
제 잔에 술을 따른 나주댁이 힐끗 이층에 시선을 주었다.
"주식 지분도 아직 배분해주지 않았고 현금도 다 쥐고 있어."
그리고는 나주댁이 목소리를 낮췄다.
"이 별장 금고에도 수십 억 현금이 있어. 그건 나만 알지."
"윤리지?"
조재일이 눈을 가늘게 뜨고 강한을 보았다.
가는 눈이 더 가늘어진 조재일의 눈은 그야말로 실날 같았다.
눈동자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체격은 크다.
둥근 어깨에 주먹은 작은 냄비만 했다.
조재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너 그 일 누구한테 받은거야?"
"유경."
강한이 말하자 조재일은 혀를 찼다.
"얀마, 잊어."
"잊다니?"
"우리가 먹었어."
그러자 술잔을 내려놓은 강한이 조재일을 노려보았다.
"대신 받아 먹었다는거냐?"
북창동 골목의 포장마찻집 안이다.
말이 포장마차지 번듯한 음식점 이름이 그렇다.
둥근 드럼통 위에 알루미늄 받침을 올려놓고 테이블을 만들었는데
곱창과 삼겹살만 파는데도 넓은 홀 안은 손님으로 꽉 찼다.
강한은 구석자리에서 조재일과 둘이 마시는 중이었다.
KK단 행동대 간부 조재일이 강한의 시선을 받더니 먼저 곱창 한 점을 씹었다.
조재일과 강한은 친구 사이였지만 아무도 모른다. 친구가 된 지는 일년쯤 되었다.
"인마, 우리도 윤리지가 유경금융에 채무가 걸려 있는거 알아."
조재일이 곱창을 씹으며 말했다.
"유경이 받아내려고 개지랄을 한 것도 다 알고, 그러나 몇 놈 다쳤지."
KK단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디가드도 KK에서 보낸 놈들이다.
곱창이 질긴지 씹다가 땅바닥에 뱉어버린 조재일이 말을 이었다.
"아마 5억쯤 되었지?"
"5억5천."
"또 늘어났군, 도둑놈들."
"내가 받아낼거야."
"그러다 너 죽어."
이번에는 좀 연하게 보이는 곱창을 젓가락으로 집은 조재일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대놓고 우리한테 까불래?"
"아니, 모르게."
그러자 조재일이 정색했다.
눈이 다시 가늘어졌다.
입 끝에 고깃점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었으므로 강한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얀마, 어떻게 모르게 한다는겨?"
조재일이 묻자 강한은 한 모금 소주를 삼켰다.
"잠깐 데리고 있으면 되겠지."
"납치?"
눈을 치켜뜬 조재일이 코웃음을 쳤다.
"이 새끼 죽으려고."
"한 시간만 데리고 있으면 돼, 양평에서."
"양평?"
"그 기집애 양평 별장에 한 달에 두 번씩 가더구만, 너도 알지?"
그러자 조재일이 잇사이로 말했다.
"너, 이 새끼. 나한테 그 말 하는 이유가 뭐냐?"
"네가 조금만 도와주면 돼."
"내가 미쳤다고."
그러자 강한이 눈을 치켜떴다.
"그 기집애한테 당연히 받아낼 돈이야,
그리고 그 기집애 한테는 5억5천이 지금은 푼돈이 되었지, 왜냐하면."
강한이 조재일에게 바짝 얼굴을 붙였다.
"이광그룹 한 회장을 물고 있으니까 말야.
겉으로는 그게 아예 숫처녀 흉내를 다 내고 있더구만."
"얀마, 안돼."
정색한 조재일이 머리를 저었을 때 강한은 술잔을 들었다.
"넌 윤리지가 양평에 가는 날만 알려주면 돼,
그것들이 아주 007처럼 철저하게 연막을 치더라니까."
"양평 건은 어떻게 알게 되었는데?"
"거기까지는 정보망이 있지."
그리고는 강한이 조재일에게는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정보값으로 2천을 낼게."
"개자식."
안주는 놔두고 다시 술을 한 모금에 삼킨 조재일이 다시 눈을 가늘게 떴다.
어느덧 입끝의 고깃점은 떨어져 있었다.
"3천 내, 새꺄."
9.
윤리지. 언제나 이름 앞에 톱, 또는 수퍼라는 타이틀이 붙는 탤런트.
그러나 2년 전만해도 윤리지는 단역도 아쉬워하는 무명이었다.
2년 전. 윤리지가 '사랑의 종말'이라는 그렇고 그런 내용의 드라마에서
암에 걸려 죽는 역할을 맡고나서 주가는 급상승했다.
지금도 윤리지의 팬클럽 이름이 암에 걸려 죽은 여주인공 '오희선'이다.
윤리지가 응접실로 나왔을 때는 오후 2시 반.
오늘은 양평 별장에서 자고 가는 날이었으므로 오전 11시 반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고 잠깐 낮잠까지 잔 것이다.
"커피 드릴까요?"
뒤쪽에서 낮은 목소리로 김씨 아줌마가 물었다.
100평도 넘는 2층 별장에는 지금 김씨 아줌마와 윤리지 둘뿐이다.
100m쯤 앞쪽 정문 옆에 별장지기 노부부가 살고 있을 뿐,
양평 산속 별장은 언제나 조용하고 평화롭다.
"네, 아줌마."
윤리지가 웃음띤 얼굴로 대답했다.
50대 중반쯤의 김씨 아줌마는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았다.
묻는 말에만 대답했고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는다.
그래서 윤리지는 이광그룹 회장 한창수가 부르는 대로 김씨 아줌마라고만 했지
그 외는 아무것도 모른다.
베란다 유리창 밖으로 아래쪽 강과 들판이 보였다.
시야가 탁 트였어도 건물이나 도로, 인적마저 보이지 않는다.
별장이 외진 곳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부 시선을 차단하려고
아래쪽 마을 방향은 숲으로 막아 놓았다.
김씨가 소리없이 다가와 커피잔을 내려놓고 사라졌다.
소파에 등을 붙이고 앉은 윤리지는 두 다리를 길게 뻗었다.
그러자 만족감으로 가슴이 편안해졌으며 입가에 저절로 웃음기가 떠올랐다.
내일 아침에 떠날 때면 한창수는 한 달분 용돈 5000만원을 줄 것이다.
한 달에 두 번 별장에서 자고가는 대가였다.
가운 주머니에 넣은 핸드폰이 진동을 했으므로 윤리지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발신자는 매니저 최강문이다.
"오빠. 왜?"
전화기를 귀에 붙인 윤리지가 대뜸 묻자 최강문의 쉰 목소리가 울렸다.
목소리가 꼭 철판을 긁는 소리같다.
"저기, 너 내일 저녁 때 양 사장 만날래? 저녁 먹고 술 한잔 같이 하자는데."
"둘이서?"
윤리지가 낮게 물었을 때 최강문이 끽끽 웃었다.
"그럼 셋이냐? 그 자식 변태 아냐, 정상이라구."
"……."
"하룻밤에 1000만원 낸단다. 어때?"
"싫어."
다시 소파에 등을 붙인 윤리지가 차갑게 말을 잘랐다.
"그리고 오빠, 앞으론 그런 일 맡지마."
"그게 무슨 말야?"
최강문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런 일 맡지 말라니?"
"나, 싸구려 아냐."
이번에는 최강문이 입을 다물었고 윤리지가 말을 이었다.
"그 자식도 싫고."
양 사장은 미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교포였는데 프로덕션에서 알게된 사이였다.
윤리지하고는 미국에 CF 촬영을 갔을 때 스태프들하고 두번 같이 밥 먹은 인연뿐이었다.
40대 초반으로 이혼남이며 돈자랑을 끊임없이 해대는 바람에 윤리지는 구역질이 났었다.
신장은 1m70도 안되었고 머리에 가발을 심은 것 같았으며 배가 나왔다.
그런 놈은 정말 싫다.
"알았어."
기운빠진 목소리로 말한 최강문이 생각났다는듯이 서둘러 물었다.
"참, 내일 몇 시에 데리러 갈까?"
"그건 모르겠어. 아직 회장님이 안오셔서 말야."
"오늘이 월급날이지?"
최강문이 묻자 윤리지는 가만 있었다.
알고 있는 사실을 묻는건 제 몫을 분명하게 챙기겠다는 표시였다.
5000만원에서 절반을 떼어가는 것이다.
하긴 한창수한테 다리를 놓아준 것도 최강문이었으니 할 말은 없다.
계약도 그렇게 했으니까.
10.
"참, 여기 있다."
한창수가 잊었다는 듯이 탁자 밑에서 가방을 집어들고 내밀었다.
돈가방. 1만원권 뭉치가 가득 든 가방은 무겁게 보였다.
"고맙습니다."
다가간 윤리지가 웃음띤 얼굴로 가방을 두 손으로 받았다. 무겁다.
그러나 돈가방이 무거울수록 액수가 많은 것 아니겠는가?
한창수는 무슨 연유인지 매번 현금이 든 돈가방을 주었고 윤리지는 무거워서
싫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돈가방을 힘들게 들고 현관을 나서자
기다리고 서있던 최강문이 먼저 돈가방부터 받았다.
최강문은 별장 안으로 들어온 적이 없는 것이다.
윤리지는 밴에 오르고나서 별장을 보았다. 밴의 유리창은 모두 짙게 썬팅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
그 순간 주방쪽 창가에 서 있는 김씨를 보았다.
김씨는 열심히 이쪽을 보는 중이었는데 윤리지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김씨가 저렇게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는 모습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정문을 나온 밴은 1차선 도로를 천천히 달려 내려갔다.
별장을 오갈 때는 언제나 이렇게 단 둘이다.
비밀을 공유하는 식구가 많을 수록 지출이 늘어나고 위험한 것이다.
오후 5시 반이 되어가고 있어서 산길에는 벌써 그림자가 덮여졌다.
다른 때는 한창수가 오후 2시면 보내 주었는데 오늘은 점심을 먹고나더니
윤리지를 침실로 끌어들여 한낮에 다시 질펀한 정사를 치러야만 했다.
"어?"
하고 운전을 하던 최강문이 낮게 외쳤으므로 눈을 감고 누워있던 윤리지가 머리를 들었다.
그 순간 밴이 멈춰 섰고 최강문이 투덜거렸다.
"이런 지기미. 웬?"
윤리지는 최강문의 어깨 너머로 길 위에 떨어진 바위를 보았다.
옆쪽 벼랑에서 굴러 떨어진 것 같았다.
최강문이 투덜거리면서 밖으로 나가더니 몸을 굽히고 바위를 들었다.
그때였다.
윤리지는 반대쪽 숲에서 나타난 사내 한 명을 보았다.
장신이다.
사내가 거침없이 다가왔지만 바위를 치우는데 집중한 최강문은 아직 모르고 있다.
"오빠!"
위기감을 느낀 윤리지가 차 안에서 와락 소리쳤을 때 최강문이 머리를 돌려 옆에 다가선
사내를 보았다.
놀란 최강문이 허리를 편 순간이었다.
윤리지는 사내의 발끝이 정확하게 최강문의 턱에 맞는 것을 보았다.
찍힌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박혔다가 떨어졌다.
그 한번의 발길질에 최강문이 뒤로 반듯이 넘어졌고 사내가 달려들었다.
놀란 윤리지가 밴 안에서 아우성을 쳤다.
"사람 살려!"
그때 사내가 허리를 펴더니 곧장 밴으로 다가와 운전석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뒷자석의 윤리지를 쏘아보며 말했다.
"찍소리 말고 그대로 있어."
굵고 낮았지만 섬뜩한 목소리였다.
숨을 멈춘 윤리지에게 사내가 덮어 씌우듯이 말을 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여기서 악을 써도 소용없다."
그러더니 손을 펴고 내밀었다.
"자, 그 핸드폰을 이리 주실까?"
아아, 핸드폰. 그때서야 윤리지는 핸드폰이 떠올랐지만 이미 늦었다.
사내의 시선을 받은 윤리지는 주머니에 든 핸드폰을 꺼내 내밀었다.
"왜, 이러는 거죠?"
겨우 그렇게 물었지만 사내는 밴의 키를 뽑아 주머니에 넣더니 잠자코 문을 닫았다.
윤리지는 사내가 이제 겨우 머리를 들어 올리고 있는 최강문에게 다가선 순간
다시 발길로 옆구리를 차 올리는 것을 보았다.
최강문의 몸이 새우처럼 굽혀졌다.
그러자 사내가 주머니에서 테이프를 꺼내 최강문의 손발을 익숙하게 감아 묶었다.
그러더니 꿈틀거리는 최강문의 허리를 두 손으로 움켜 쥐고는 가볍게 들어 올렸다.
윤리지는 눈만 치켜떴다.
그때 밴으로 다가온 사내가 뒤쪽 문을 열더니 최강문을 던져 넣었다.
최강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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