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여자

4. 만남 (4)

오늘의 쉼터 2010. 10. 4. 19:30

 

   4. 만남 (4)

강안여자 만남16~20

 

 

 

16.

 

 

 "뭐라구?"

 

 눈을 가늘게 떴던 박용수가 곧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아이구, 이 병신."

 

 그러더니 손바닥으로 강한의 어깨를 툭 쳤다.

 

 "널 재워버린 그 놈이 난 놈이다. 과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구나."

 

 입맛만 다신 강한에게 박용수가 물었다.

 

 "당한 금액이 얼마냐?"

 

 "750인데요."

 

 "흠, 별로 많지는 않네. 사채업자 수금팀장 돈가방에 든 액수로는."

 

 "형님."

 

 "그래, 나한테 그놈 이야기를 한 건 정보를 얻으려는 것이겠지?

 

    경찰 손을 빌리지 않고 네가 직접 나서겠다는 거 아니냐?"

 

 "예, 형님."

 

 강남 경찰서의 식당 안이다.

 

오전 11시경이어서 식당 안에는 그들 둘뿐이었는데 매점도 겸하고 있는터라

 

둘은 음료수병을 쥐었다.

 

박용수는 강남서 강력반 형사로 강한의 고등학교 5년 선배가 된다.

 

고등학교 시절에 태권도 대표 선수였던 강한을 파트타임 코치로 지도했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박용수가 둥근 얼굴을 들고 강한을 보았다.

 

이제는 정색한 표정이다.

 

 "얀마, 이런 일은 법에 어긋난다는 거 알고 있지?"

 

 "압니다. 형님."

 

 "너, 대학 때 성적도 괜찮았겠다.

 

    다른 직장 알아보는 게 어때? 차라리 경찰 시험을 보든지."

 

 "괜찮습니다, 형님."

 

 "내가 답답해서 그래, 인마."

 

 "미안합니다, 형님."

 

 "에이."

 

 그러더니 박용수가 주머니에서 펜과 수첩을 꺼내 들었다.

 

 "자, 그놈 인상착의를 말해 봐라. 자료가 있을라 나 모르겠다."

 

 "그 놈이 아니라 그 년입니다. 형님."

 

 "여자야?"

 

 "예, 그것도 20대의 괜찮게 생긴 여잔데. 키가 1m70쯤 되구요."

 

 "……."

 

 "몸매도 잘 빠졌습니다.

   

    얼굴은 좀 이지적으로 생겼다고 해야 하나? 입술이 얇고 단정하고…."

 

 "벼엉신."

 

 갑자기 박용수가 불쑥 말했으므로 강한은 말을 멈췄다.

  

   입맛을 다신 박용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기집애한테 홰까닥 넘어갔구만. 박카스 마시기도 전에 말야."

 

 "형님, 그것이."

 

 "이 자식이 순 물렁이네?"

 

 "형님."

 

 강한이 눈을 치켜뜨자 박용수는 펜을 고쳐 쥐었다.

 

 "가명을 썼겠지만 이름이 뭐라 그래?"

 

 "이장미라고."

 

 그리고는 강한이 주머니에서 장미한테서 받은 명함을 앞에다 내려놓았다.

 

 "흥, 삼승전자?"

 

 쓴웃음을 지은 박용수가 명함을 보고는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쭉 빠진 몸매에다 뭐? 단정한 미모?

 

   거기에 삼승전자 명함이니 강한이가 완전히 뻑이 갔구만."

 

 "……."

 

 "인상 특징을 다시 말해봐."

 

 "눈매가 날카롭고 눈동자가 검었습니다. 콧날도 곧구요."

 

 "시발, 탤런트네."

 

 그러더니 시선을 들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것만 가지고는 안돼, 하지만 이런 사고 신고가 여러 개 들어왔다면

 

   정보를 종합해서 분석 해 봐야지."

 

 "부탁합니다, 형님."

 

 "750 당했으니 회사에선 뭐라고 안해?"

 

 "뭐, 그냥."

 

 그러자 입맛을 다신 박용수가 수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찾아보고 연락해주마. 하지만 기대는 크게 갖지 마." <계속

 

 

 

17.

 

 

 

 김희선은 62세의 나이였지만 40대 후반쯤으로 보였다.

 

바로 며칠 전에도 목의 주름 제거 수술을 받아서 피부가 매끄러웠다.

 

그러나 장미의 눈에는 그것이 마치 광약 바르고 윤을 낸 것처럼 느껴졌다.

 

자연산 피부하고 다른 것이다.

 

 "갑자기 웬일이냐?"

 

 장미가 앞에 앉았을 때 김희선이 물었다.

 

오전 11시 반. 서초동의 블루빌라 80평형은 마치 궁전같았다.

 

TV의 장면에도 이렇게 고급스런 분위기가 나타나지 않는다.

 

 벽에는 수 억대의 진품 산수화가 걸려있고 구석에 이조백자가 놓여 있다.

 

김희선의 시선을 받은 장미가 눈웃음을 쳤다.

 

 "어머니. 저, 열흘쯤 시간낼 수 있어요."

 

 "열흘?"

 

 되물었던 김희선이 정색했다.

 

얼굴을 굳히면 성형수술한 눈꼬리가 땡기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손끝으로 양쪽 눈꼬리를 누른다.

 

그러자 눈이 일본 사극에 나오는 여자처럼 위쪽으로 치켜 올라갔다.

 

 "그게 무슨 말이야? 열흘 시간 내다니?"

 

 "저기, 어머니가 언젠가 말씀하셨지 않아요?

 

    백동그룹 조 회장님이 절 열흘간 데려가고 싶다고…."

 

 "아아."

 

 했다가 김희선이 잠깐 떼었던 눈꼬리를 다시 짚었다.

 

 "너, 진저리를 치더니? 몇 억을 줘도 싫다고 했지 않아?"

 

 "1억이 필요해요."

 

 "열흘에 1억은 안돼. 특급 탤런트 값이야. 그건."

 

 김희선이 장미의 눈치를 보더니 목소리를 부드럽게 했다.

 

 "내가 한번 말해보마. 그런데 기간은 한 달로하고 금액은 6000 쯤이 어떨까?

 

   그것도 최고가인데."

 

 "제가 꼭 1억이 필요해요. 어머니."

 

 1억에서 김희선에게 반타작을 해주면 5000이 손에 쥐어지는 것이다.

 

거기에다 1500을 합해야 인터넷 사기금액을 변상할 수가 있다.

 

그러자 김희선이 머리를 기울이며 장미를 보았다.

 

 "너, 갑자기 그 돈은 왜 필요해?"

 

 "어머니한테 드리려고."

 

 예상하고 있었던 터라 장미가 금방 대답했다.

 

김희선은 인터넷 사기는 물론이고 장미가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수배중인 입장이라는 것을 알면 어떤 결과가 될지 알 수 없다.

 

관계를 끊지는 않겠지만 철저하게 단속하려고 들 것이다.

 

그러자 김희선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나머지는 내가 빌려줄 수 있어.

 

우선 조 회장하고 흥정이 잘 되어야겠지만 말야. 너, 정말 해 볼테냐?"

 

 다짐하듯 김희선이 묻자 장미가 눈을 크게 떴다.

 

 "네, 어머니. 해 볼게요."

 

 백동그룹 조홍인 회장은 80대 노인이었지만 여자를 밝혔다.

 

그러나 목에서 가래가 끓고 지팡이에 의지해야 겨우 걷는 조홍인이다.

 

소문을 들으면 침실까지 경호원이 수행을 하고 바로 옆방에서 당직을 선다는 것이다.

 

장미는 김희선의 빌라에 들른 조홍인을 서너 번 보았고

 

그때마다 눈빛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었다.

 

그러나 조홍인이 김희선에게 몇번 청을 넣었지만 거절했다.

 

김희선도 장미의 주가를 올릴 생각이었는지 강요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럼 곧 내가 연락 해주마."

 

 그러더니 김희선이 문득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너, 요즘 어디를 자주 돌아다녀? 핸드폰도 꺼놓고."

 

 "운동을 자주 다녀요."

 

 그것도 예상하고 있었던 터라 장미가 바로 대답했다.

 

 "시간만 나면 몸 만들거든요."

 

 "그래야지."

 

 웃음띤 얼굴로 김희선이 머리를 끄덕였다.

 

 "넌 기술을 갖췄으니 몸만 맞춰주면 된다. 그럼 천하를 얻는거야."

 

 김희선의 눈빛이 강해졌다.

 

 "쫌만 더 기다려라. 우리 아주 큰 판을 벌이게 될 테니까 말야."  

 

 

 

 

18.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강한이 사무실 쪽에서 다가오는 김양희를 보았다.

 

  오후 2시반,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일과가 시작되는 때라 김양희는

 

  자판기 커피를 뽑으려고 나온 것 같았다.

 

  다가선 김양희가 눈을 올려뜨고 강한을 보았다.

 

 "저기요."

 

 복도에는 그들뿐이다.

 

  김양희는 오늘도 금방 눈주위가 붉어졌는데 시선을 한사코 떼지 않았다.

 

 "커피 한잔 하실래요?"

 

 "그러지 뭐."

 

  그리고는 강한이 빙긋 웃었다.

 

 그날, 그러니까 사흘 전의 재즈바에서 김양희는 폭탄주를 마시고 오바이트를 했다.

 

그래서 백용철하고 천상태가 번갈아 업고 집까지 데려다준 것이다.

 

그후부터 김양희는 창피한지 시선도 마주치지 않았다.

 

자판기로 다가간 김양희가 커피를 뽑더니 강한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옥상으로 가요."

 

 건물 옥상에는 벤치도 있다. 지금은 근무시간이라 한가하게 앉아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비상계단으로 옥상에 올라간 둘은 구석 쪽 벤치에 앉았다.

 

  예상했던대로 옥상에는 그들 둘뿐이었다.

 

 벤치에 앉은 강한이 웃음띤 얼굴로 김양희를 보았다.

 

 "웬일이래? 무섭지도 않아? 내가 확 덮치면 어떻게 하려구?"

 

 "그날 지현이하고 놀았죠?"

 

 불쑥 김양희가 물었으므로 강한은 입맛을 다셨다.

 

김양희가 폭탄주를 연거푸 퍼 마신 이유도 대충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양희의 시선을 받은 강한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꼬셨어."

 

 "지현이가 그랬다던데."

 

 "누가 그랬든."

 

 한 모금 커피를 삼킨 강한이 정색했다.

 

 "왜 그것 물어보려구? "

 

 "나, 사장 세컨드 아녜요."

 

 불쑥 말했다 김양희의 얼굴이 이제는 전체가 다 붉어졌다.

 

그러나 아직도 시선을 떼지 않는다.

 

 "사장은 여자 안밝혀요. 그럴 상황도 아니고."

 

 "난 모르는 일인데."

 

 이맛살을 찌푸린 강한이 김양희를 보았다.

 

 "금시초문이야."

 

 "그 소문은 내가 냈어요. 자꾸 남자들이 집적대서."

 

 김양희의 표정이 절실했으므로 강한은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용은 충격적이었지만 감동이 오지 않는다.

 

마음이 가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김양희가 말을 이었다.

 

 "경리부 양과장이 사장 처제예요.

 

사모님이 감시자를 심어 놓았기 때문에 사장은 회사 여자 손 못대요."

 

 "경리부 양 과장?"

 

 강한이 눈을 크게 떴다.

 

경리부 양 과장은 30대 후반의 이혼녀로 대기업 경리부 출신이라고 했다.

 

업무 처리가 빈틈없는데다 성깔도 있어서 거친 사내들도 그 앞에서는 기를 못편다.

 

사장이 형부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기세가 나왔던 것이다.

 

 "그랬군."

 

 쓴웃음을 지은 강한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렇게 기세가 등등했군."

 

 "알고있는 사람은 저뿐예요. 양 과장이 저한테만 알려 주었어요."

 

 "이제는 나까지 둘이네."

 

 "저기, 오늘밤 시간 있어요?"

 

 오늘 김양희는 다른 때와 달랐다.

 

 대화의 주도권을 쥐었고 기세가 있다.

 

비록 얼굴은 붉어져 있지만 끈질기다.

 

강한의 시선을 받은 김양희가 아랫입술을 물었다가 놓았다.

 

 "저 강한 오빠 좋아해요."

 

 "이거 젠장."

 

 이맛살을 찌푸린 강한이 김양희를 쏘아 보았다.

 

 "내가 지현이 하고 논거 알면서도 그럴 수 있는거야?"

 

 "상관없어요."

 

 그때서야 김양희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기가 떠올랐다.

 

 "같이 놀아도 돼요. 오빠."

 

 "한 방에서?"

 

 했다가 강한은 다시 입맛을 다셨다. 물론 농담이다.

 

 

 

 

19

 

 

 오후 5시경이 되었을 때 강한의 바지 주머니에 든 핸드폰이 진동을 했다.

 

사무실 안이다.

 

강한이 핸드폰을 꺼내어 들자 세 테이블이나 떨어진 자리에 앉은 김양희가 힐끗 시선을 주었다.

 

발신자 번호에 강원도 코드가 찍혀 있다.

 

강한은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예, 강한입니다."

 

 "여긴 강릉 경찰서인데요. "

 

 사내의 목소리는 낮고 가라앉았다.

 

 "저기, 강기섭씨가 아버님 되시죠?"

 

 순간 강한의 얼굴이 굳어졌다.

 

   숨을 들이켠 강한이 이를 악물었을 때 사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강기섭씨가 두 시간 전에 시외의 야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

 

 "나무에 목을 맨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사인은 자살 같습니다."

 

 "……."

 

 "저고리 주머니에 강한씨 앞으로 쓴 유서하고 전화번호가 적혀 있더군요. 그래서."

 

 "지금 어디 계십니까?"

 

 "시내 대동병원 영안실에 계십니다."

 

 "제가 바로 가지요."

 

 "오실 때 저한테 연락을 해 주시지요. 제 전화번호는…."

 

 사내가 알려준 전화번호하고 이름을 서둘러 적었을 때 황택수가 다가왔다.

 

   옆쪽에 있다가 심상치않은 분위기를 느낀 것이다.

 

 "형, 무슨 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강한이 황택수를 쏘아보며 낮게 말했다.

 

 "나, 혼자 다녀올 테니까."

 

 "형."

 

 놀란 황택수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딱 벌렸을 때 강한은 서둘러 사무실을 나왔다.

 

 "형, 어디로."

 

 서둘러 따라나온 황택수가 강한의 소매를 쥐었다.

 

 "형, 우리도 가야지. 어디야?"

 

 "시끄러."

 

 엘리베이터 앞에 선 강한이 눈을 치켜 뜨고는 잇사이로 말했다.

 

그러나 눈의 초점이 잡혀있지 않았고 자꾸만 이가 악물려졌다.

 

아버지는 강한이 준 용돈을 갖고 나흘 전에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어제 오후에 경포대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강한은

 

회나 실컷 드시라고 했던 것이 마지막 통화가 되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강한이 서둘러 발을 떼면서 황택수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연락할 테니까 들어가 있어."

 

 "형."

 

 "죽여버릴테다."

 

 강한이 눈을 치켜뜨자 기세에 질린 황택수가 마침내 발을 멈췄다.

 

지나는 택시에 오른 강한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버튼을 누르던 강한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떨어졌다.

 

쏟아진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강한은 이를 악물고는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신호음이 두번 울리더니 곧 강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난데. 너, 옷 입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나와. 바로."

 

 강한이 말하자 강민은 주춤대며 물었다.

 

 "아니, 형. 왜?"

 

 "빨리. 내가 표 끊어 놓을 테니까 강릉행 앞으로."

 

 강민은 가만 있었고 강한이 다짐했다.

 

 "서둘러. 기다릴게."

 

  핸드폰을 귀에서 뗀 강한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물은 그쳤다.

 

그리고 차츰 눈의 초점이 잡히더니 거리가 보였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으므로 강한은 다시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는 일하는 것이 낙이었다. 취미도 없었고 운동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 더 그랬다.

 

그리고 창업한 회사가 공중분해 되었을 때 아버지의 기력은 소진됐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으므로 강한은 발신자 번호부터 보았다.

 

김양희였다.

 

다시 핸드폰을 내려놓은 강한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마 황택수한테서 듣고 연락을 한 것 같았다.

 

 

 

20.

 

 

   알루미늄 캐비닛을 당겨 열자 곧 강기섭의 상반신이 드러났다.

 

담당 직원이 힐끗 강한을 보았다. 입을 열지도 않는다.

 

뒤쪽에 서있던 형사가 한 걸음 다가왔지만 그도 잠자코 있다.

 

 "맞습니다."

 

 강한은 자신의 목소리가 남처럼 들렸으므로 헛기침을 했다.

 

 "제 아버지가 맞습니다."

 

아버지를 발음했을 때 왈칵 목이 메었고 뒷말이 떨렸다.

 

아버지의 얼굴은 파랗게 굳어져 있어서 편안한 모습이 아니었다.

 

죽어서는 편한 모습이 된다던데 아버지는 여전히 불편한 것이다.

 

마침내 강한이 손바닥으로 아버지의 볼을 감싸 안았다.

 

차다.

 

 얼음덩이에 손을 붙인 것 같았지만 강한은 참았다.

 

온기가 전해져서 아버지의 굳은 얼굴이 펴지기를 바란 것이다.

 

 "저기, 이젠."

 

 얼마쯤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딴전을 피우고 있던 영안실 담당 사내가 몸을 돌리더니 말했다.

 

표정없는 얼굴이어서 장소와 꼭 어울렸다.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시체 비슷했다.

 

 "가시죠."

 

하고 형사가 말했을 때 사내는 알루미늄 박스를 다시 밀어넣었다.

 

영안실 밖으로 나오자 형사가 강한에게 담배를 권했다.

 

 "사인은 자살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만 유족이 원하면…."

 

 "아니, 됐습니다."

 

담배를 문 강한에게 형사가 라이터를 켜 불을 붙여주었다.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형사는 친절했다.

 

인상도 시골 아저씨 같았고 싸구려 점퍼에 낡은 구두를 신었다.

 

그들은 영안실 밖의 벽에 등을 붙이고 나란히 서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밤 10시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주위는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장례식장이 바로 옆 건물이기 때문이다.

 

 "동생이 곧 오겠군요."

 

형사가 앞쪽을 향한 채 말했다.

 

경찰서에서 간단하게 확인을 한 터라 형사는 강한의 인적사항을 아는 것이다.

 

 "그럼 장례식은 어디에서 하시려고?"

 

 형사가 물었을 때 강한이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여기 장례식장에서 하려고 합니다."

 

 "모시고 가지않고?"

 

 "친척도 거의 없는데다 고향이 서울이거든요."

 

 형사의 시선을 받은 강한이 희미하게 웃었다.

 

 "서울에서도 여러번 이사를 다녀서 고향 동네 따위는 없습니다."

 

 "요즘은 다 그렇죠."

 

 머리를 끄덕인 형사가 담배를 손끝으로 튕겼다.

 

   불똥이 멀리 날아갔다.

 

 "그럼 기운 내시고."

 

 벽에서 등을 뗀 형사가 강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강한씨는 이겨낼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고맙습니다."

 

 형사의 손을 쥔 강한이 힘을 주어 흔들었다.

 

 "형사님 호의가 가슴에 닿습니다."

 

 그러자 손을 뗀 형사가 한 걸음 물러서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습니다. 다 지난 일이 되지요."

 

 그리고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모두가 다 쓸쓸한 인생이지요."

 

강한은 다시 벽에 등을 붙이고는 형사의 뒷모습을 보았다.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힌 형사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드는 듯이 사라지자

 

강한은 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입에 물었다.

 

세게 빨아들이자 죽어가던 불씨가 살아나면서 연기가 가득 폐에 찼다.

 

길게 연기와 함께 숨을 뱉고난 강한이 잇사이로 말했다.

 

 "아버지, 사는 게 죽는 것보다 어렵다는 걸 아버지가 가르쳐 주시네요."

 

 담배를 땅바닥에 버린 강한이 구두끝으로 문질렀다.

 

 "부끄러웠던 겁니까?"

 

 어둠 속에다 대고 묻던 강한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웃었다.

 

 "아버지, 난 삽니다. 염려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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