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세상사는이야기

배려

오늘의 쉼터 2010. 7. 26. 18:52

 

    배려 지난 해의 일. 시골장터에서 오이 모종 3포기를 1,000원 주고 사서 텃밭에 심었다. 오이넝쿨이 벋고 잎새가 자랄수록 벌레가 자꾸만 끼었다. 손으로 일일히 잡아 주었더니만 오이는 그런 대로 노란 꽃을 피웠으며, 오이도 제법 많이 매달렸다. 끼니마다 풋오이를 고추장에 찍어서 반찬으로 질리도록 먹었다. 가을철이 다가올 수록 오이는 점점 더 늙어 갔고, 오갈병이 든 잎새도 더욱 시원찮았다. 오이 모종을 새로 더 샀다. 네 포기에 1,000원. 가을이 다가올수록 두번 째에 산 오이 모종은 덜 자랐으며, 오이도 덜 열었다. 그래도 내가 질리도록 먹을 만큼은 열렸다. 초가을을 지나면서 오이넝쿨은 늙고 병들고, 줄기와 잎새가 나날이 배배꼬였으며, 서서히 말라 죽어갔다. 병 든 넝쿨을 거둬내고 흙을 파 뒤엎은 뒤에 그 자리에 다른 작물의 모종을 심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처음 가꿔 본 오이 농사. 거름과 비료도 전혀 안 주고, 농약도 안 쳐 주었는데도 수확량은 제법 그럴 듯했다. 그게 고마웠다. 오이의 생명이 다 끝날 때까지 넝쿨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넝쿨은 자연스럽게 고사했으며, 잡초 뿌리는 더욱 무성해서 땅속 깊게 뻗었다. 올 6월에서야 낫으로 풀씨를 가득 인 잡초를 베어냈다. 쇠스랑으로 땅을 파 뒤엎고는 풀뿌리를 일일히 추어내는 작업이 지나치게 더뎠다. 지난해에 넝쿨을 과감히 거둬냈더라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을 터인데 하는 생각이 이따금씩 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거둬내지 않은 게 잘 하는 거여. 枯死할 때까지 기다려 준 '얼치기 농사꾼'의 배려를 이해했을 거여. 고마워 할 거여.' 하면서 나를 다독거렸다. 올 봄에도 오이 모종 6 포기를 샀다. 지난 해에 비하여 넝쿨은 지극히 불량했다. 모종이 균,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이 어린 잎새가 누렇게 뜨고, 열매의 모먕새가 배배 꼬였다. 이런 상태로 다 자란 오이라도 초보 농사꾼인 나한테는 고마웠다. 덜 먹으면 그뿐이니까. 올해에도 그들이 枯死할 때까지 넝쿨을 거둬내지 말아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더 생각해야 될 것 같다. 작은 것에도 관심을 갖고 배려해 주는 것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이치. 조금은 손해를 보는 듯하게 배려하면서 사는 것이 삶의 여유일 게다. 글쓰기도 이와 같지 않을까? <수필가 최윤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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