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세상사는이야기

어설픈 설비 아저씨

오늘의 쉼터 2010. 8. 6. 02:41

 

    . 어설픈 설비 아저씨 몸이 찌뿌듯하여 며칠째 대문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날씨 때문도 있겠지만 요즘 집안일로 신경 쓴일이 있어 피곤해 졌기 때문이다. 몸을 추스려 집안을 정리하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누군가 싶어 내다보았더니 설비하는 아저씨였다. '맞다! 오늘 화장실을 고쳐달라고 전화를 했었지. 이렇게 정신이 없어서야…….' 라고 생각하며 현관문을 열었더니 문밖엔 빈손으로 서 있는 설비 아저씨와 그동안 주어오지 않은 신문들이 구문이 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신문과 우편물들을 주섬주섬 주워와 방바닥에 던져놓고는 아저씨에게 왜 장비를 가져오지 않았느냐고 이상해서 물었더니 "먼저 공사할 부분을 봐야 합니다."라고 했다. 얼마 전부터 이상하게 화장실 바닥에 물이 내려가지를 않았다. 욕조나 세면대는 배수가 잘되는데 바닥만 막혔기에 간단히 해결될 줄 알고 흔하게 붙어있는 스티커 「막힌 곳 뚫습니다」에 전화를 했었다. 그런데 그분들이라고 다 뚫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처음 왔던 분은 기술이 없었는지 하수구에 쇠줄을 넣어 돌리기도 하고 압축기로 빨고 하더니 하는 말이 "욕실 바닥을 파내어야겠네요!”라는 말을 남기고 돈 달라는 말도 않고 그냥 휑하니 가버렸다. 공사를 해야 한다는 말에 순간 ‘집을 팔려고 내어 놓았으니 사는 동안 불편하면 거실 화장실을 쓰면 될 것이고 그러다 집이 팔리면 가버리면 되지!’ 하는 못된 마음이 내 안에서 고개를 치켜들었던 것이다. 양식을 제대로 갖춘 사람이라면 이사 올 사람에게 살면서 불편했던 점과 좋은 점들을 알려주어 불편하지 않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말이다. 얼마 전 집을 부동산에 내어놓으면서 만약 집이 팔린다면 이사 올 사람을 배려하여 집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글을 써서 남겨두겠다는 아름다운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욕실 바닥을 파내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그 마음은 오간 데 없고 집이 팔리면 말없이 가버려야겠다는, 내 안에 또 다른 미운 내가 함께 숨 쉬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두 개의 마음이 있어 상대에 따라 천사도 악마도 될 수 있다지만 본성이라는 게 있어 그 틀을 벗어나질 않는데 나는 돈을 떠나 나만의 공간인 안방에서 공사한다는 게 싫어 잠시나마 그런 미운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요즘은 경기가 좋지 않아 상가 건물들은 매매가 쉽지 않다. 그래서 어쩜 나와 평생을 함께 보내야 할 집일 수도 있는데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며 다른 뚫는 곳에 다시 전화를 했다. 그런데 두 번째 오신 분도 차에서 많은 도구를 가져와 이것저것 바꿔가며 힘겹게 작업을 해 보아도 되지 않으니 아래층 천장을 뜯어 배관을 봐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가 여의치 않아 아래층에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세면대 밑을 풀고 그곳에 호스를 넣어 작업하다가 갑자기 도구들을 주섬주섬 챙겨 말도 않고 계단을 급히 내려가는 것이었다. 나는 “아저씨 안 되나예?”하니 “네!” 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비록 뚫지는 못했어도 땀을 흘려가며 고생하시는 걸 보았기에 그냥 보낸다는 게 미안해서 내려가는 등 뒤에다 "아저씨 그냥 가셔도 됩니까? "라고 한 번 더 물었더니 다시 "네! "라는 대답만 복도를 올라왔고 그분은 가버렸다. 현관문을 닫고 뚫어지지 않는 하수구가 걱정되어 화장실로 가보니 멀쩡하던 세면대 밑에서 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아저씨가 뚫으려다 세면대 밑으로 물이 새니 미안해서 도망치듯 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젠 어쩔 수 없이 공사를 해야겠구나 싶어 단골인 설비 아저씨한테 전화했던 것이다. 그런데 공사하러 오면서 혼자, 그것도 빈손으로 왔다. 나는 "욕조를 뜯어내야 하는데 왜 빈손으로 오세요?”라고 하니 아저씨는 "전체가 다 물이 안 빠지면 욕조를 들어내어야 하지만 이건 바닥만 물이 내려가지 않기에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라며 수건 한 장을 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받아든 수건에 물을 적셔 하수구를 막아 입으로 불고 압축기로도 빨아내고 한참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라도 나누는 듯하더니 20분 만에 "이제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너무도 쉽게 뚫어지는 게 믿기지 않아서 물을 부어보니 '쇄애-' 하고 시원하게 내려갔다. 나는 "어떻게 빈손으로 뚫었어요?” 하니 웃으며 “다 되는 수가 있지요."라고 하였다. '선무당이 장구만 나무란다.'라는 말처럼 「막힌 곳 뚫습니다」의 두 아저씨는 기술도 없으면서 "아래층 천장을 뜯어 배관을 봐야 한다.”. "욕실 바닥을 파내어야 한다."라는 등 잔뜩 겁만 주지 않았던가! 세상이 불황이니 기술이 없는 분들이 돈을 벌어 보겠다고 뚫는 기계를 사서 기계에만 의존하는, 기술 없는 어설픈 「막힌 곳 뚫습니다」의 말만 듣고 내 안에 또 다른 미운 나를 꿈틀거리게 했던 것이다. 이렇게 쉽게 뚫는 것을 보고 나는 '역시 기술자는 다르구나!'라며 중얼거렸다. 사실 IMF 이후에 많은 직업인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래서 길바닥으로 쫓겨난 이도 많았고 목숨을 끊는 이도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면 도둑질이 아닌 그 어떤 일이라도 다 해야 하는 절박한 심정이었기에 누구라도 하기 쉬운 기술계통인 「막힌 곳 뚫습니다」란 창업을 실직자들이 했었던 게 아닌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골 설비 아저씨가 고친 하수구를 한참이나 바라보며 이제껏 내 마음 안에 자리한 걱정거리가 모두 뚫어진 듯 속이 후련해졌다. 아저씨는 손볼 곳이 또 없냐며 세면대 밑에 흐르는 물도 파이프를 풀고 테이프로 둘러 꽉 조여주고 이런저런 것들을 자세히 살펴봐 주고는 30분 만에 갔다. 수리비용을 삼만 원 달라고 했지만, 너무도 고마워 식사하시라고 이만 원을 더 얹어 오만 원을 주었다. 어설픈 「막힌 곳 뚫습니다」설비 아저씨 말만 듣고 욕실 바닥을 파내었더라면 더 많은 돈이 들어갔을 터인데 간단히 고쳐서 고마웠고, 다음에 또 일손이 필요할 때 전화하면 달려와 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돈을 더 얹어 준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삶이란 무엇보다 서로 따뜻하게 나눌 수 있는 정이고 배려가 아니겠는가! 주고받는 거래에도 어떤 대가의 한도에 맞추어서만이 아니라 때론 더 주기도, 덜 받기도 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의 지혜인 것이다. <시인, 수필가 전미야>

'종합상식 > 세상사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나리 알뿌리를 심은 뜻은  (0) 2010.08.12
올바른 선택  (0) 2010.08.09
하치의 이야기  (0) 2010.07.29
배려  (0) 2010.07.26
독서하는 사람  (0) 2010.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