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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時代의 逆葬

오늘의 쉼터 2010. 5. 17. 15:05

 

朝鮮時代의 逆葬

 

逆葬이란 祖上의 墳墓 위쪽에 後孫의 墓를 쓰는 것을 말한다.

다른 말로 壓葬, 押葬, 倒葬이라고도 하는데 분묘의 腦後

즉 머리에 해당되는 부분에 후손을 매장하는 형태이다. 


이 역장은 조선시대에 禁忌視 되었던 매장 형태 중 하나였다.

主山에서 穴로 내려오는 氣의 흐름을 단절하는 가장 나쁜 형태의 매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7세기 이전에는 오히려 여러 유명한 인물들에게서 역장을 발견할 수 있다.


즉 禮學의 巨頭 沙溪 金長生, 大學者 栗谷 李珥, 역시 대학자 牛溪 成渾 등이

바로 이 역장 형태로 분묘를 쓰고 있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들이 역장이 나쁘다는 것을 몰라서였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이런 분들은 風水에도 造詣가 깊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바로 "朱子 性理學的 社會秩序의 普及如何"였다.

주자성리학적 질서가 사회 일반 구석구석까지 퍼졌느냐, 아니냐가 이 문제의 본질이다.


사실 역장은 風水書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정작 오래된 풍수책에는 이 역장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간혹 풍수상의 이유로 역장을 쓰는 경우는 있다.

 

조선 중기의 文人 李廷龜의 경우 묘를 순차적으로 쓸 경우 후손 중 逆賊이 나온다는

말에 따라 역장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지리에 따른 특별한 경우이고 대부분은 아무런 문제없이 역장을 행했던 것인데...

이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성리학적 질서가 보급된 후인 17세기 중엽 이후이다.


조선은 주자성리학을 國是로 출발했다.

그러나 17세기 중반 孝宗代 이전까지 성리학의 이념은 아직 정착되지 못했었다.

 

오죽했으면 退溪선생이 혼자된 며느리에게 再嫁를 권유했겠는가.

이렇듯 조선 전반기에는 前代의 遺風이 강하게 남아있어서

輪回奉祀(아들, 딸이 돌아가며 제사 지내는 것),

재산의 均等相續, 外孫의 祭祀奉祀, 딸, 사위, 外孫의 先山入葬, 庶子의 家系繼承 등이 모두 허용되었다.


이러던 것이 어느덧 長男 만의 奉祀, 아들에게만 재산 상속(그 중에서도 장남에게만 특히 많이 상속),

外孫의 奉祀는 어림도 없고 庶子가 있어도 이들은 家系를 계승하지 못하고 제사를 받들지도 못할 뿐더러

庶子는 아무리 많아도 嫡子가 없으면 다른 곳에서 入養을 해야 하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물론 외손, 딸, 사위의 선산 입장은 당연히 금지되어 先山은 宗山이라 불리며

그들만의 리그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17세기 중반 이후의 조선의 상황이었다. 생소하던 외래의 이념은 어느덧 “우리 것 화”하여

세계에서도 類例가 없는 "朝鮮性理敎"라는 하나의 종교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 무렵을 전후로 조선에서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하는 家父長的 宗法秩序가 발달하여 종가의

개념이 생기고 同族村이 형성되는가하면 선산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또 家門의 영광을 밝혀 줄

아들 중심의 族譜(혹은 譜學)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이러다 보니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묘소위에 아들, 손자, 조카가

묘를 쓰는 것이 무엄하기 그지없는 고얀 놈의 짓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는 性理學的 宗法秩序가 逆으로 風水上의 禁忌事項으로 채택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장의 형태는 위에서 언급한 偉人들 외에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18세기 이후에는 모두 사라지고 있어 주목이 된다.

역시 성리학적 종법질서의 영향 때문이다.


지방에 따라서 후손의 묘를 조상의 묘 위쪽에 모시는 逆葬을 아주 禁忌視 한다.

자손 된 입장에서 조상의 윗쪽을 차지할 수 없다며 尙禮를 빗대어 반대하지만 사실

역사 인물의 묘를 보면 역장도 매우 자연스런 葬法의 하나이다.


禮學의 巨頭이며 宋時烈과 宋浚吉을 가르친 金長生선생은 先塋에서 가장 위쪽을 차지하였고

李珥선생도 부모인 李元秀와 申師任堂을 合葬한 묘보다 위쪽에 자리 잡았다.

 

또 當代의 학자로 많은 性理學者를 배출한 成渾선생도 부모 묘 보다 위쪽을 차지하고

大文章家인 李廷龜선생도 부모 묘보다 윗쪽에 자리 잡았다.

이를 두고 順次的으로 묘를 쓰면 후손 중에 逆賊이 나오는 묘터라 하여

 逆葬했다고 안내판에 밣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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